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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318화 (318/600)

#318화. 第六十四章 의혈(蟻穴 : 개미집) (3)

정마(正魔)는 양립할 수 없다.

맞는 말인가, 틀린 말인가. 맞는 말인 거 같기도 하고, 틀린 말인 거 같기도 하다.

정마는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한데 붙어 있다. 정의 뒷면이 마다. 마의 뒷면이 정이다.

모든 사람이 정도인이면서 마도인이다.

다만 몸에 깃들어 있는 농도가 조금씩 다르다. 어떤 사람은 구 대 일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칠 대 일도 있고, 오 대 오도 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십 대 영처럼 완전히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사람은 없다. 정이 손톱만큼도 없는 사람, 마가 전혀 개입하지 못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의 농도가 칠 정도 되고, 마가 삼 정도만 섞여 있다면 세상 사람은 마를 보지 못한다. 오직 정만 본다. 그리고 정도인이라고 부른다. 간혹 마의 성질을 보더라도 화가 나면 그럴 수 있지 하고 무심히 넘어간다.

그 반대는 마도인이다.

육 대 사가 마도인이고, 사 대 육이 정도인이라면 서로 농도 차이는 이 밖에 되지 않는다.

정과 마의 구분은 그렇게 크지 않다.

성검문과 마인은 어떨까? 마인이 성검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차 한 잔, 식사 한 끼 대접받을 수 있을까? 없다. 마인은 성검문 안으로 한 발짝도 들여 놓지 못한다.

성검문의 기치가 마도척결(魔道剔抉)이다.

마인이라면 누가 되었든 살을 발라내고 뼈를 도려낸다는 마음으로 검을 닦고 있다.

무공을 사악하게 쓰는 자, 사악한 무공을 수련하는 자, 모두 마찬가지다.

이 둘은 엄연히 다르다.

무공을 사악하게 쓰는 자는 살인자다. 흉신악살이다. 마도가 아니다. 성검문 무공을 수련해서 사람을 죽이거나 물건을 빼앗을 때 사용할 수도 있다.

나쁜 놈이지만 마도는 아니다.

이상한 무공, 사람을 해쳐야만 수련할 수 있는 무공, 무공을 수련하면 심성이 사악하게 변하는 무공…… 그런 무공을 수련하는 사람이 마도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와서는 흉신악살과 마인은 한데 섞어서 마인이라도 부른다.

한마디로 말해서 나쁜 놈은 마도라는 거다.

그런 면에서 보면 야천은 분명히 마도다. 중간, 회색 구역은 인정하지 않는다. 정도 아니며 마도 아닌데, 정도가 될 수 없으니 마도인 것이다.

흑화방은 어떤가? 흑화방은 정사 중간이다. 농도를 따지면 오 대 오다. 색깔로 따지면 회색이다. 이럴 경우, 미리 말했다시피 분명히 마도다.

흑후는 성검문 안으로 들어섰다.

정마는 양립할 수 없다지만, 그런 가운데도 예외는 있다. 항시 이게 문제다. 예외에 있는 규정을 둔다. 예외가 있으면 그게 무슨 규정인가.

마도척결을 기치로 내세웠다면 철저하게 지켜야지, 왜 마도로 분류된 사람을 성검문 안에 들이나.

모두 자기 편한 대로 규칙을 짜 맞춘다.

“흑후입니다.”

흑후가 소축 앞에서 깊이 예를 취하며 말했다.

“아직 내가 말한 보름이 안 됐는데. 일찍 왔군.”

삐걱!

문이 열리면서 허도기가 걸어 나왔다.

“두 가지 문제가 있는데, 이건 긴히 말씀을 드려야겠다 싶어서 찾아뵈었습니다.”

“두 가지씩이나?”

“죄송합니다.”

“말해 봐.”

“하나는 공부님께서 살아 계시는 것을 야천이 믿지 않습니다. 그 동굴 폭발이 워낙 강력해서…… 그 후로 공부님을 봤다는 사람도 없으니 더 믿기 힘든 모양입니다.”

허도기는 성검문 거처에 잠시 머물다가 소축으로 왔다. 그리고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 십몇 년 만에 처음으로 쉬는 중이다. 그러니 당연히 봤다는 사람이 없다.

“그건 네 말이 야천에 먹히지 않는다는 뜻이겠고, 그러면 흑화방을 접어야지? 이 대답은 나중에 하고, 두 가지라고 그랬지? 또 하나는 뭐야?”

“지금 야천이 공부님 명령을 생각할 처지가 못 되어서.”

흑후가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이번 진압 때문에?”

“네.”

“고전하나 보지?”

“고전 정도가 아니라 워낙 강력하게 치고 들어오는 바람에 무척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는 막아 낼 줄 알았는데. 내가 야천을 너무 높게 본 건가?”

“아닙니다. 막아 낼 수 있습죠. 그렇지 않아도 지금 막을 준비를 끝냈는데, 제가 말렸습죠. 야천이 움직이면 피가 워낙 많이 흘러서. 피 튀기 전에 공부님께서 좀 해결해 주실 수 없을까 하고.”

“하하! 하하하!”

허도기가 하늘을 보며 크게 웃었다.

흑후는 두 손을 모은 채 공손히 서 있었다.

“네 놈 말이 참 우습군.”

“저는 진심으로 양쪽이 잘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허도기가 흑후 말을 중간에서 끊고 말했다.

“그러니까 네놈 말은 뭐냐? 한낮 쓰레기들이 용의 얼굴을 보지 못했으니 용을 믿지 못하겠다, 이거 아니냐?”

“아, 아닙니다.”

흑후가 급히 부인했다.

“머리를 숙이기 전에 일단 자신들을 짓밟고 있는 장마부터 걷어 달라, 장마를 걷어 내면 그때 머리를 숙일지 안 숙일지 고려해 보겠다, 이거지? 당신이 정말 용인지 보지 못했으니 모르겠다. 용이라면 조화를 부려 봐라.”

“아, 아닙니다. 그런 뜻은 절대 아닙니다. 어떻게 감히 그런…….”

“그럼 뭔데? 나는 그렇게밖에 들리지 않는데?”

꿀꺽!

흑후가 마른 침을 삼켰다.

흑후는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성검문 땅을 밟았다.

일이 이 지경이 되었으니 이제 야천은 허도기에게 머리를 숙일 것이다. 이건 당연하고…… 지금 당장 야천에 일이 생겼으니 바로 도와줬으면 좋겠다.

흑후는 자신이 청하면 흔쾌히 들어줄 줄 알았다.

그런데 허도기 입장에서는 상당히 불쾌한 협상으로 비쳤나 보다.

‘이거 뭐야? 이건 아닌데.’

허도기가 눈을 좁히면서 말했다.

“야천. 야천. 이것들이 내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상당히 교만해졌군. 그걸 몰랐네. 말 몇 마디면 머리 숙이고 들어올 줄 알았는데, 간을 보고 있어.”

“절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제가 괜히 와서…… 사실, 여기 온 건 순전히 제 뜻입니다. 야천은 제가 온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정말입니다. 믿어 주십쇼!”

아니다. 야천에 말하고 왔다. 이 정도 일은 충분히 생색내야 한다. 그래서 흑화방의 위신, 소용 가치가 높아진다.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이 생긴다.

흑후가 빨리 말했다.

“대방은 지금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정신없습죠. 제가 보다 못해서 공부님이라면 이 일을 해결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해결해 주지 않는다.”

“네. 네. 알겠습니다.”

“가서 전해. 내 발가락에 낀 때라도 되어야 물 한 방울이라도 얻어 마실 수 있다고. 야천, 너무 건방져졌어. 후후! 감히 날 간을 본다 이거지?”

“아닙니다. 이건 정말 순전히 제 의견으로 온 겁니다.”

“야천을 아예 없애 버릴까? 기분이 나빠져서 말이야.”

“죄송, 죄송합니다. 약속된 보름 기한이 아직 며칠 남았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흑후가 납작 엎드려서 말했다.

야천을 없앤다는 말이 다른 사람 입에서 나왔다면 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공부 입에서 나오면 사실이 된다. 정말로 야천이 사라질 수 있다.

지금 야천은 상당히 힘들다.

관군이 무림과 연수해서 야천을 두들겨 패고 있다. 정신을 잃을 정도로 흠씬 두들겨 맞았다.

관군은 이미 빠져나갔다. 일차 진압을 끝내자마자 잡은 불량배들을 형옥에 쳐 넣고 물러선 상태다. 이미 관군의 위엄을 충분히 보인 후이기 때문에 더 머물 이유가 없다.

지금 중원 각지에서 난리를 치고 있는 것은 무림 문파다. 한데 이 무림 문파를 자세히 살펴보면 거의 중소 문파가 대부분이다. 정작 큰 문파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구파일방(九派一幫), 오대세가(五大勢家), 삼대검문(三大劍門), 십대고수……

이들은 통문을 받았으면서도 움직이지 않는다.

관부의 통문은 강압적인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협조문이다. 그러니 사정상 움직이지 않는 문파도 많다.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등은 대체로 이런 일에 형식적으로 응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형식적인 응대조차 하지 않았다.

성검문이 내준 통문이 아니라 관부에서 직접 통문을 보내왔기 때문에 거부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통문에는 야천을 두둔하면 구족을 멸한다는 황상 전문이 기재되어 있다. 그래서 대놓고 말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속뜻은 분명하다.

이들은 여전히 허도기를 지지한다.

현재 중원을 살펴보면 대단히 요란한 것 같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중원 무림 중 삼분지 일만 움직이고 있다. 삼분지 이를 꿈쩍도 하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허도기가 일갈을 터트리면 상황이 달라진다.

무림이 움직인다.

지금 야천을 두들겨 패는 자들의 무공은 그래도 그나마 상대할 수 있다. 야천 제이선 정도의 무공을 지닌 자들이라면 상대할 수 있고, 제일선에 있는 자들은 피까지 볼 수 있다.

야천이 숨겨 놓은 칼까지 꺼내 들면 무림도 쉽게 날뛰지는 못한다.

지금 야천은 이런 보복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대문파가 참여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사정이 달라진다. 그때는 야천이 자랑하는 칼도 감당하지 못한다.

허도기가 나서지 않더라도 소축십검 같은 무인들이 대거 쏟아져 나온다는 것인데, 그것을 어떻게 감당하겠나.

허도기가 흑후를 보며 말했다.

“야천은 아직도 상황 판단이 안 되나 보는군. 대방, 이방, 삼방. 적어도 이 세 명은 내 발 앞에 무릎을 꿇어야겠어. 내 발가락을 빨라고 전해.”

“네. 바로 가서 말하겠습니다.”

“바로 말 안 해도 돼. 약조한 날짜 안에만 하면 돼. 후후! 이건 약속하지. 약조한 날짜가 넘으면 너희는 지옥을 보게 될 거다. 지금 같은 지옥이 아니라 진짜 지옥.”

허도기가 차게 말했다.

“어떻게 됐나?”

“야천 팔방에 사단이 생겼었습니다.”

침착한 보고다.

“얼마 전에 야천 팔방에 한 놈이 나타나서 팔룡 휘하의 졸개 여섯 명을 베었습니다.”

“후후! 십리를 졸개라고 하면 안 되지.”

“팔룡이 복수를 하겠다고 남은 졸개를 데리고 화암산으로 갔는데, 어떻게 됐는지 아십니까?”

“팔룡의 무공이야 별 것 아니지만 그놈들 싸우는 방식이 지저분하지. 정상적인 싸움은 아냐. 그래, 어떻게 됐어?”

허도기가 호기심을 드러냈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럴 리는 없고…… 숨겨진 이야기가 있군. 그래, 야천을 친 놈은 어떻게 됐고?”

“아직 살아 있습니다. 야천은 놈을 무명인이라고 부릅니다. 방갓을 쓰고 다닌다고 해서.”

“무명인! 하하하! 하하하하!”

허도기가 웃었다.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놈은 뭔가를 숨기는 놈이다. 무엇을 숨기고자 하나.

“그놈이 누군지는 알아내지 못했고?”

“아직…….”

“찾아내야지?”

“네. 그리고…… 재미있는 일이 있습니다. 그 사건이 있고, 바로 이번 야천 소탕이 시작되었습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번 소탕에서 야천 팔방이 입은 손해는 지극히 미미합니다. 마치 은근슬쩍 봐주기라도 한 것처럼 보입니다.”

“확실해?”

“겉보기에는 치명타를 입은 듯한데, 가만히 보면 모두 대망과 상망의 사업체들입니다. 야천 팔방이 직접 관할하는 사업체는 교묘하게 비껴갔습니다.”

다른 자들은 이런 사실을 탐지하지 못한다. 야천 구룡도 야천 팔방 역시 자신들과 똑같이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령(死靈)이 ‘교묘하게’라는 말을 사용했다는 것은 사령조차도 깜빡 속아 넘어갈 뻔했다는 뜻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보고가 있습니다.”

“오늘은 할 말이 꽤 많군.”

“적랑대주 아삼이 야천에 있습니다. 야천에 잠입한 적랑대 간자들이 활발하게 움직입니다.”

팟!

허도기의 눈에 기광이 번뜩였다.

아삼은 적랑대에서 손을 뗐다. 그런데 적랑대가 움직여? 무엇인가 심상치 않다. 무명인이라고 불리는 놈은 무엇이고, 야천 팔방은 무슨 일에 휘말린 것인가.

“좀 더 자세히 알아야겠다.”

“네.”

사령이 사라졌다.

허도기는 무명인이 아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걸이라면 아귀가 착착 맞아떨어진다.

아걸이 야천 팔방을 공격했다. 팔룡이 아걸에게 휘말렸다. 아삼이 적랑대를 움직였고, 때마침 전보영이 야천을 들이쳤다.

무명인이 아걸이라면 이런 순서도가 그려진다.

‘놈! 살아 있었군. 살아 있을 줄 알았다. 후후!’

허도기는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아걸이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즐겁다. 놈을 벨 수 있다는 것이 기쁘다.

‘야천에서 뭐 하고 있는 거야? 재밌는 놈. 언제나 허를 찌른다니까. 후후…… 어!’

생각을 이어가던 허도기가 갑자기 헛바람을 내질렀다.

야천에 가서 하는 일이 뭐겠나? 마인을 때려잡고 있다. 목적이 없이 단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 그런 일을 할 놈은 아니다. 마인, 마인들을 건드리고 있다.

야천과 연관된 마인!

허도기는 퍼뜩 성검문 사건을 떠올렸다.

“하하하하! 하하하! 그러냐? 그걸 조사하고 있던 거였어? 하하하!”

허도기가 웃었다.

이제는 확실하다. 역시 놈이 살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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