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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319화 (319/600)

#319화. 第六十四章 의혈(蟻穴 : 개미집) (4)

하남성(河南省) 대별산(大別山) 정추계곡(鄭樞溪谷)은 일반인 출입 금지 지역이다.

거의 삼만여 평에 이르는 큰 땅이 어떤 사람의 사유지다.

정추계곡 주위로는 철망이 처져 있고, 철망 안쪽으로 사람 다니는 소로(小路)가 잘 닦여 있다. 순찰하는 무인들이 매일 밟고 다니는 길이다.

정추계곡이 어떤 사람의 소유인지는 인근 주민도 알지 못한다. 고관대작의 별장이라는 말도 있고, 나라의 중요한 기관이라는 말도 있다. 어떤 사람은 흉신악살을 가둬 놓은 감옥일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어느 말이 맞든지 정추계곡 안으로 함부로 들어설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철망 주위로 날랜 무인들이 빈틈없이 경계하고 있다.

밤낮과 관계없이 철망을 넘어서 계곡 안으로 들어서는 자는 즉시 제재를 받는다.

쉬이이잇!

일단의 무리가 정추계곡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지리가 낯선지 계곡 입구에서 걸음을 멈추고 잠시 주변을 살폈다.

“이쪽이 길입니다.”

한 명이 말했다.

그러자 일단의 무리는 계곡 안쪽으로 뻗은 길을 따라서 쾌속하게 신형을 쏘아 냈다.

경계서는 무인들은 그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쉬이잇!

또 한 무리가 나타났다.

그들은 모두 여섯 명이다. 네 명이 가마를 매고 나는 듯이 달려왔다.

가마 위에는 뚱뚱한 중년인이 타고 있다.

“다 왔습니다.”

가마 옆을 수행하던 무인이 말했다.

비스듬히 누워서 건과를 씹어 먹던 중년인이 고개를 힐끗 쳐들어 앞을 봤다.

“아함…… 제길! 이제부터는 몸을 움직여야 하나? 귀찮은 건 딱 질색인데.”

중년인이 길게 기지개를 켰다.

계곡 입구, 철망을 쳐 놓은 곳부터는 가마가 들어가지 못한다. 산길이 워낙 좁고 험해서 한 사람만 걷기에도 빠듯하다. 앞에서 사람이 오면 길을 비키기도 힘들다.

“제가 업어서 모시겠습니다.”

“됐다. 힘 아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쉬이이잇!

그들은 날렵하게 산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들을 막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도 정추계곡을 지키는 무인들은 많다. 누구든 가까이 접근하면 불쑥 나타나서 용건부터 묻는다.

하지만 산속으로 스며든 몇몇 무리는 아무도 막아서지 않았다.

구룡회는 중원 곳곳에서 열린다.

회합 장소는 항시 변한다. 똑같은 곳에서 회합을 연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이번에 그들이 모인 대별산 정추계곡은 야천대방 비소(秘所)다.

야천대방에서 만든 비밀 장소로 야천에 아주 위급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를 대비해서 준비해 놓았다.

야천 각 방은 중원에 이런 비소를 수십 군데나 가지고 있다.

그중에 한 곳, 야천대방에서 자신들이 만든 비소를 다른 팔방에 공개했다.

비소는 한 번 사용하고 나면 버린다.

당장 내일이 되면 대별산 정추계곡 삼만여 평 임야가 매물로 나올 것이다. 또 정추계곡 안에서 야천과 연관될 만한 물건들은 모두 소각될 것이다.

구룡, 아홉 명의 방주는 물소리가 상쾌하게 흐르는 계곡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위에는 그들이 데리고 온 호법들이 제각각 편한 자세로 앉아 있기도 하고, 서 있기도 했다. 나무에 올라가서 가지 위에 앉아 있는 자도 있었다.

“이번에 관군들이 꽤 정밀하게 타격했어요. 정확하게 치고 들어오는데 손쓸 방법이 있어야지. 까딱했으면 내 아이들도 다칠 뻔했다니까. 알 것 다 알고 찾아왔어.”

야천 이방 방주가 말했다.

“그래도 이방주께서는 피하기라도 했죠. 우린 피하지도 못했수다. 어휴! 열불 나.”

야천사방 방주가 가슴을 툭툭 치며 말했다.

방주들이 내뱉는 한탄처럼 관군은 야천 무인들이 언제 어디서 뭘 하는지를 알고 나타났다. 이쪽에 몇 명이나 있고, 실력이 어떤지 정확하게 알고 들이쳤다.

다 알고 찾아온 불청객을 무슨 수로 막아 내나.

“우선 회주 말씀부터 들어 봅시다. 회주, 이번 일을 어떻게 풀어 나가실 건지?”

야천사방 방주가 대방을 쳐다보며 말했다.

“글쎄요. 시국이 이러니 난들 뾰족한 수가 있나요. 이봐, 흑화방에서는 무슨 연락이 없어?”

대방이 물가를 쳐다보며 말했다.

대방에게서 오 장쯤 떨어진 곳에 한 자루 검이 앉아 있다. 흑수혈검!

검이 입을 열었다.

“들은 말 그대로 전해드리면 ‘당분간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다.’라고 합니다.”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다고? 다른 말은?”

“없었습니다.”

“그래? 흠! 들으셨죠? 여러분.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답니다.”

대방주가 팔방 방주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언뜻 들으면 뜬금없는 소리처럼 들린다. 하지만 방주들은 대방의 말이 무슨 뜻인지 단박에 알아들었다.

“후후후! 허도기! 깨 벗고 달라더니, 정작 어려울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이거지. 후후후!”

야천육방 방주가 잔혹한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다’라는 말은 허도기가 한 말을 흑화방에서 전해온 것이다.

그 말은 공부 허도기가 야천을 구해줄 생각이 없다는 거다.

관군을 중지시키지도 않을뿐더러, 이미 잡힌 야천 무인들도 구해 줄 생각이 없다.

이게 표면적인 말이다.

야천 구룡은 표면 뒤에 숨어 있는 말뜻도 감지했다.

허도기는 야천이 어느 정도 힘을 지녔는지 일단 먼저 움직여 보라고 한다.

너희들 솜씨로 막아봐라!

그런데 ‘막아보라’ 말에도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겁난을 피해서 잘 숨어 보라는 뜻이다.

겁난에 전력을 잃으면 안 된다. 전력 손실을 최소한으로 줄인다. 그렇게 숨어 있다가 겁난이 진정되면 즉시 튀어나와서 제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또 하나는 전쟁이다.

야천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적극적으로 한번 드러내 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낮과 밤이 정면에서 충돌한다.

지금은 관군이 빠져나가고 없다. 그러니 전쟁을 벌인다면 관군에 동조한 무림 문파와 싸워야 한다. 그것도 일정 지역이 아니라 전 중원에서.

자칫하면 중원 무림 대 야천의 싸움이 된다.

이럴 경우, 이긴다는 보장도 없을 뿐만 아니라 설혹 만에 하나 운이 작용해서 이긴다고 해도 손해가 극심할 것은 자명하다. 자칫 야천의 지형도가 바뀔 수도 있다.

사실 이런 부분들…… 구룡은 이쪽 경우든 저쪽 경우든 모든 경우를 고려해 봤다. 회합에 오기 전부터 수십 번에 걸쳐서 이 생각, 저 생각을 했다.

오늘, 그 결정을 하기 위해서 회합을 여는 것이다.

충돌이냐 회피냐!

“나는 이번 기회에 한 번 들이쳐 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언제까지 우리가 애꿎은 놈들 밑만 닦아 줄 수도 없고. 모두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방주가 물었다.

구룡은 침묵했다.

중원 무림과 충돌하면…… 승산이 있을까?

모두 말이 없자, 방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우선 한 달 정도 더 기다려 봅시다. 이번 사태가 어떻게 흘러갈지 지켜봐야 하니까. 하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일은 하고 있어야겠죠? 이 문제는 추후, 다시 토의하기로 하고…… 일단 싸울 수 있는 준비는 해 놓읍시다.”

“정리하자는 말씀이신지?”

“그래요. 정리합시다.”

방주가 명쾌하게 말했다.

“정리라면 어느 선까지 생각하시는지……?”

야천팔방 방주가 물었다.

방주들끼리 말하는 ‘정리’는 내부 정리를 말한다.

이번 사건처럼 야천의 일거수일투족이 정확하게 새 나가는 경우는 하나밖에 없다.

간자!

사실, 야천은 온갖 곳에서 모여든 간자 천지다.

정도 문파에서도 간자를 심어 둔다. 그들은 야천하고 관계가 없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아니다. 그들 역시 이권에는 마냥 눈 감고 있을 수가 없다.

또 자기 지역 내에서 마인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감시하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다. 마인이 힘을 얻으면 그 즉시 정도 문파를 위태롭게 하니까.

간자를 심어 놓거나, 야천 무인을 포섭해 놓았거나.

관부에서도 간자를 심어 둔다.

관부의 간자는 야천 소식을 탐지해 낸다기보다는 필요할 때 야천을 쓰기 위해서 심어 두는 편이라고 봐야 한다. 물론 심하다 싶은 마인은 직접 제거하기도 한다.

성검문 같은 대문파에서는 간자를 두지 않는다.

그럴 만한 가치가 없다. 그런 대문파는 야천을 사마외도에 뭉뚱그려서 취급한다.

이 밖에도 간자를 투입한 곳은 아주 많다.

그들이 야천 움직임을 읽고 외부로 흘리는 한, 행동이 자유롭지 못하다. 늘 조심해야 한다. 이번처럼 공격자들을 되받아칠 생각일 때는 더욱 곤란하다.

야천대방 방주는 그들을 솎아 내라는 것이다.

팔방주가 ‘어느 선’까지냐고 물은 것은 관부와 무림을 분리해서 솎아 낼 것이냐, 아니면 한꺼번에 싹 쓸어버릴 것이냐는 점을 묻는 것이다.

전부 다 쓸어버릴 경우…… 정사(正邪) 대결이 된다.

대방 방주가 말했다.

“일단 무인은 건드리지 맙시다. 우리 영역에서 단 꿀을 빨아 먹더라도 내버려 두자 이거죠. 대신…….”

대방주가 과일 바구니에서 사과를 집어 들었다.

“여기 썩은 사과가 있군요. 사과 중에서 썩은 부분은 극히 일부분이지만, 우린 썩은 사과라고 부릅니다. 쬐금밖에 섞지 않았는데, 이게 썩은 사과라니. 쯧!”

툭!

방주가 사과를 다시 과일 바구니에 던졌다.

“아무래도 썩은 사과는 먹고 싶지 않아요. 그렇죠? 전부 다 버립시다. 썩은 부분만 잘라 내고 먹을 수도 있긴 한데, 눈이 시원치 않아서 썩은 부분이 잘 안 보여.”

구룡은 한마디 하면 열 마디를 알아듣는다.

지금부터 간자라고 생각되는 자들은 모조리 제거한다. 구방은 오래전부터 이미 많은 간자를 파악해 놓고 있다. 알고도 내버려 둔 것은 이중간자로 쓰기 위해서다. 상대방에게 역정보를 흘릴 때 아주 유용하다.

간자인지 아닌지 미심쩍은 자도 있다. 모두 제거한다. 충실한 자인데, 괜히 의심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게 눈이 잘 안 보여서 썩은 부분을 파악하지 못하는 거다.

이들이 간자인지 아닌지 계속 확인하고 있지만, 아직은 단정 짓지 못하고 있다.

이들마저도 말끔히 제거한다.

썩은 부분을 도려내는 것이 아니다. 사과 전부를 버리듯이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는 자들은 모두 제거한다. 야천을 아주 말끔한 상태로 만든다.

옛날에는 간자였지만, 지금은 아닌 자들도 있다.

뿌리를 잃어버렸거나, 야천 생활을 오래 하는 바람에 동화되어 버린 자들이다.

이들은 간자 쪽보다는 야천 사람 쪽에 가깝다.

이런 자들은 간자인지 아닌지 구분해 내기가 매우 어렵다. 오랫동안 지켜보면 알 수 있겠지만 지금 당장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리고 확인도 하지 말란다.

모두 죽인다!

방주가 말했다.

“간자 한 놈을 잡기 위해서라면 열 놈이 벼락을 맞아도 상관없지 않겠습니까. 모두 죽이세요. 이번 기회에 간자들을 싹 쓸어내 버리는 겁니다. 청소는 앞으로 열흘 후. 우리가 당했듯이 중원 전역에서 한날한시에 동시에 시작합니다.”

미처 손쓸 사이도 없이 쓸어버려야 한다.

이것이 야천의 일차 반격이다.

“참! 팔방주님.”

대방 방주가 팔방주를 쳐다보며 말했다.

“팔방에 전임 적랑대 문주인 아삼이라는 자가 있다던데, 알고 있어요?”

“알고 있습니다.”

팔방주가 태연하게 말했다.

“적랑대는 간자 운영이 매우 탁월한데. 이번 일도 적랑대 활동이 컸겠죠?”

“아삼이 저의 구역에 있긴 한데,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습니다. 아직은 접촉하는 자도 없고. 어쨌든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접촉하는 자가 있으면 바로 잡을 생각이죠.”

팔방주가 차분히 대답했다.

“이번 척살 대상 속에 적랑대 간자도 포함되는데…… 어때요? 아삼도 제거하는 게.”

“죄송하지만…….”

팔방주가 말을 끊고 일단 대방 방주를 향해 머리를 숙여 보였다. 딴생각은 전혀 없다는 충성의 표식이다.

“아삼 뒤에는 전보영이 있습니다. 대장군과도 모종의 연관이 있는 것 같고…… 적랑대 간자는 철저하게 척살하되, 아삼은 계속 감시하는 게 어떨까 합니다. 만약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면, 그때는 제일 먼저 척살해야겠죠. 제 구역에 있으니까요.”

“흠! 방주 생각이 그렇다면…… 그렇게 합시다.”

오늘 중요 안건은 간자 제거였다.

모두 대별산 회합이 잡혔다는 말을 듣자마자 바로 떠올렸던 부분이다. 이런 의결이 나올 줄 알았다는 거다.

간자를 제거하면 저들이 급히 움직인다. 그 움직임을 쫓다 보면…… 어떤 자들이 걸려든다. 그들마저 도륙하면 바로 정사 대전이 벌어진다.

대방 방주가 말했다.

“이번 일이 끝나기 전에…… 성검문에 연통을 넣어 보겠어요. 어떻게든 소통은 돼야겠죠?”

허도기는 끌어들일 테니, 안심하고 죽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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