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2화. 第六十五章 암추(暗錐) (2)
아걸은 적랑대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움직이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적랑대 밀마로 소식을 주고받았지만, 딱 거기까지만 원했다. 더 깊이 개입하는 것은 원치 않았다.
절대로…… 이런 식으로 움직이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원래는 일전통을 거쳐서 천천히 야천을 공략할 생각이었다. 급하게 서둘 생각도 없었다. 속도보다는 정확한 정보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허도기가 냄새를 맡기 전에 성검문 사건의 진상을 알아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허도기가 살아 있는지 확신하지는 못했다. 또한, 자신의 생사 역시 드러나지 않았다.
이것이 최대 장점이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는 채로 은밀히 움직이면 원하던 정보를 얻어 낼 수 있다.
일전통을 치고 야천 팔방을 들이쳤다.
야천 팔방을 공격하면서 심오한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딱히 목적이 있어서 야천 팔방을 건드린 것이 아니다. 일전통을 이끌던 야구가 야천 팔방에 도움을 청했다. 도첨삭리에게 도움을 청했고, 도첨삭리는 무인을 내주었다.
이유가 있다면 그것뿐이다.
일전통 야구의 꼬리를 쫓아가다 보니 야천 팔방이 나왔다. 도첨삭리가 나왔다. 그래서 부딪쳤다. 야천 팔방이라서 공격한 것이 아니라 야천 문도이기 때문에 싸웠다.
거기에 어떤 생각이 들어 있을 수 있을까? 전혀 들어 있지 않다.
그때까지는 옛날 성검문 사건을 조사해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음산사마를 딱 꼬집어서 조사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사실, 음산사마라는 별호조차 떠올리지 않았다.
아걸에게는 음산사마나 다른 마인들이나 다를 바 없었다. 성검문을 공격한 많은 무인 중 한 명일 뿐이다.
그런데 적랑대가 움직였다.
적랑대는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에게 많은 정보를 알려 주었다.
아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방적으로 보고 들은 바를 쏟아 냈다.
덕분에 야천 팔방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자신의 손에 이미 죽은 도첨삭리를 비롯해서 쾌창둔리, 환검살리가 다른 팔방과 손잡았다는 사실을 그전엔 어떻게 알았겠나.
아걸은 야천에 관심도 없었다.
야천의 속성은 알지만, 야천을 이루는 인적구성 같은 세부적인 내용은 전혀 모른다.
모두 적랑대 간자들이 알려 준 것이다.
할배와 같이 돌아다닐 때 절대적으로 들은 말이 있다. 할배가 몇 번이고 강조해서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다.
- 간자는 목인(木人)이 되어야 한다. 목각인형처럼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한 자리에 서서 눈만 떼굴떼굴 굴려야 한다. 간자가 움직이면 반드시 죽는다.
그래서 그토록 말렸는데.
적랑대가 너무 적극적으로 나서는 바람에 아걸은 전반적인 계획을 대폭 수정했다.
그때부터 타방파와 손잡은 팔룡의 수하를 죽였다.
팔룡을 도와주려는 의도는 없었다. 물론 팔룡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도 좋지만, 나중에…… 적랑대 간자들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놔야 한다는 생각이 더 컸다.
팔방은 적랑대 간자들의 도피처다.
팔룡은 적랑대를 건드리지 않아야 한다. 그러자면 다른 여덟 방파가 팔방의 움직임을 읽을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저들과 손잡은 무인이나 저들이 파견한 간자를 죽이는 거다.
그런 작업을 했기 때문에 적랑대가 주는 정보를 다 받아들였다.
전보영에 선을 댈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기별을 넣었다.
야천을 공격하는 일은 민생을 돌보는 일이기도 하다. 야천은 해악이다. 백성에게 고통만 안겨준다. 이들이 도대체 백성에게 무슨 행복과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야천은 없앨 수만 있다면 지하 만장 깊이까지 파고 들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완전히 뿌리를 뽑아버리는 게 훨씬 낫다. 죽는 게 사는 것보다 나은 자들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
왜? 이들이 잡초라서? 아니다.
야천을 철저하게 짓밟으면 야천은 몰락한다. 사라진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또 나타난다.
지금 야천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처럼 가진 것이라는 주먹 하나밖에 없는 사람들, 배운 것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오직 사람을 두들겨 팰 줄만 아는 자들, 땀 흘려서 일하기보다는 힘을 써서 다른 사람 등이나 처먹고 사는 자들.
이런 자들은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반드시 나타난다.
원래 사람 사는 세상이 그렇다. 매년 새로운 자들이 나타나서 주먹을 휘두른다.
그런 자들이 작게 모이면 일전통이 된다. 덩치를 한껏 키우면 야천이다.
아걸은 지금까지 타방 무인들을 죽이는 데 주력했다.
성검문 사건은 팔룡에게 맡기고, 야천을 숨죽이는 일은 전보영에게 맡겼다.
자신이 할 일은 타인에게 맡겼다.
대신 그는 자신을 위해서 정보를 가져다주는 적랑대를 살릴 생각이었다.
현재, 야천은 야천 속에 잠입한 모든 간자를 척살하고 있다.
적랑대 간자만 당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적랑대가 유난히 소리를 내면서 움직였기 때문에 더 많은 희생을 당했다. 팔룡은 간자들을 죽이고 싶지 않아도 죽일 수밖에 없다. 다른 방파와 움직임을 함께 해야 한다.
죽이지 않고도 죽였다고 말할 수 있다면…… 팔방에서 일어난 일을 숨길 수 있다면.
그래서 타 방파의 눈을 죽인다.
기왕 이렇게 일이 이렇게 벌어진 이상 적랑대의 희생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방법으로 움직여야 한다.
삐걱!
아걸은 문을 밀치고 평개찬관(平價餐館) 안으로 들어섰다.
평개찬관은 성읍(城邑)에서 두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고급 식당이다.
일반 시민은 평개찬관을 이용하지 않는다. 이곳에 출입하는 사람은 오직 야천 주먹들뿐이다.
일반 사람들이 이용하지 못한다는 규정은 없다. 하지만 워낙 험상궂은 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어서 감히 들어설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일반 사람들이 얼씬거리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파락호들이 평개찬관을 애용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돈이다. 파락호들에 한해서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이 무료다. 이곳에서 먹는 음식값, 술값은 모두 야천 팔방 본단에서 지급한다.
야천 팔방은 이런 음식점을 하북성 곳곳에 두고 있다.
야천 팔방에서 직접 운영하기도 하고 식당과 계약을 맺기도 하며, 경제로 치고 들어가서 장악하기도 한다.
또 파락호들에게 평개찬관은 허리띠를 풀어놓고 마음껏 취할 수 있는 안전장소이기도 하다.
본방에서 정해 준 식당이지 않나. 주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모두 야천 팔방 사람들이다. 칼 맞을 염려는 터럭만큼도 할 필요가 없다. 술에 취해서 추태를 부려도 괜찮다.
이런 이유로 해서 평개찬관은 늘 만석이다.
아걸이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안에 있던 파락호들이 일제히 조용해졌다.
흑의, 얼굴 완전히 덮어 버리는 방갓, 허리에 찬 대도.
야천 팔방 사람들은 방갓 무인이 누구인지 안다. 호북성을 발칵 뒤집어 놓은 인물인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나.
저벅! 저벅!
아걸이 음식점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걸, 방갓 무인이 걸음을 멈춘 곳…… 그곳에는 턱수염을 거칠게 기른 장한이 앉아 있었다.
“강만(姜滿)?”
아걸이 턱수염 장한 이름을 말했다.
“네. 소인이 강만……”
강만이라고 불린 사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방갓 무인의 대도가 번쩍 빛을 뿜었다.
쉬익!
“컥!”
대도가 빛을 뿌리고 다시 칼집에 들어간 후에야 털보 장한이 비명을 내질렀다. 동시에 그의 목에서 붉은 피가 물줄기 터지듯이 팍 터져 나왔다.
“커, 커, 커!”
그자는 두 손으로 목을 움켜잡고 방갓 무인을 쳐다봤다.
그는 아무것도 보지 못할 것이다. 이미 그의 두 눈은 흰자위로 가득하다. 눈동자가 위로 돌아가 버렸다. 그가 흘린 마지막 비명은 죽은 뒤에 흘리는 사음(邪音)이다.
저벅! 저벅!
아걸은 볼일을 마친 듯 밖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다가 우뚝 걸음을 멈춰 세웠다.
평개찬관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방갓 무인이 슬쩍 뒤돌아섰다.
사람들은 숨을 죽인 채 얼어붙었다.
방갓 무인에 대해서는 소문을 들어서 익히 알고 있다. 그가 십리 중 여섯 명을 죽인 사실도 안다. 호암산에서는 매복을 섰던 무인들이 떼 몰살당했다. 들리는 말로는 야천 팔방 방주도 놈에게 패했다고 하는데.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는 칼이 아니다. 이것은 소문으로 들은 것이고, 방금 번쩍! 하고 빛나는 칼을 봤다. 정확히 어떤 수법을 썼는지 보지도 못했는데 강만이라고 불린 털보 장한이 목을 움켜쥐고 쓰러졌다.
강만은 파락호들 사이에서는 알아주는 강자다. 감히 건드리는 자가 없을 정도로 힘이 세고 몸이 빠르다. 그런 자가 저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죽었다.
방갓 무인의 무공은 소문보다 훨씬 강하다.
평개찬관 안에 있는 사람들이 떼를 지어서 달려들어도 상대가 안 된다.
저벅! 저벅!
아걸은 다른 탁자로 갔다.
그곳에는 세 명이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아걸이 그들이 앉아 있는 탁자 앞에 서자 세 명은 완전히 얼어붙어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스읏!
아걸이 손을 내밀어서 탁자 위에 놓인 술잔을 집어 들었다.
술잔에는 장한들이 따라놓은 술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아걸은 단숨에 술을 들이켰다.
성읍에서 수위를 다투는 고급 식당, 평개찬관에 어울릴 만한 고급 고량주다.
이들은 이 음식점에서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자기들이 내는 돈이 아니라서 무조건 가장 비싼 음식을 시키고, 가장 좋은 술을 마신다.
아걸이 술잔을 내려놓고 한 사람을 쳐다봤다.
사내의 왼쪽 얼굴에 기다란 흉터가 그어져 있다. 검상인 듯 깊고 진하다. 흉터도 광대뼈에서부터 목 부근까지 길게 그어져 있어서 단숨에 알아볼 수 있다.
“마성탁(瑪晟柝)?”
“아이고! 사, 사, 살려, 살려 주십쇼!”
아걸이 이름만 말했을 뿐인데, 그자는 즉시 탁자에 머리를 박으며 싹싹 빌었다. 순간,
쒝!
파락호들이 봤던 바로 그 칼 빛, 도광이 번쩍였다.
마성탁은 탁자에 머리를 붙인 채 일어서지 못했다. 그때,
스읏!
사내의 목 뒤로 가는 혈선이 그려졌다.
처음에는 무척 가느다란 실선이었는데, 금방 핏물이 한두 방울 또그르 맺혔다.
칼이 턱 밑으로 해서 목 뒤로 빠져나왔다. 탁자 밑으로 칼을 집어넣어서 위로 쳐들어 올렸다.
굉장히 칼을 쓰기 어색한 동작이다. 하나, 칼 쓰는 모습조차 보지 못할 정도로 빨랐다.
마성탁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순간 그는 머리를 탁자 위에 올려놓은 채 몸만 스르륵 미끄러져서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아걸은 돌아섰다.
저벅! 저벅!
그가 걸어간다. 문 쪽으로 향해서 걷는다.
‘어서! 어서! 어서!’
빨리 가라. 빨리 나가라.
음식점 안에 있는 파락호들의 심정은 한결같았다. 어서 빨리 방갓 무인이 가 줬으면 좋겠다. 혹시 다시 돌아오는 건 아닐까? 그럼 또 한 명이 죽겠지?
사람들은 혹시 그가 다시 걸음을 멈추고 되돌아설까 봐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삐걱!
방갓 무인이 문을 밀치고 밖으로 나섰다.
그래도 떠드는 사람이 없었다.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입을 벙긋거리기만 해도 아걸이 다시 돌아올 것 같다. 그래서 눈만 끔뻑인 채 조용히 숨을 죽였다.
팔룡을 감시하는 눈이 있다.
다만 감시라기보다는 어떤 인물을 쓰는지, 무슨 사업에 주력하는지, 약점은 무엇인지 등등 유사시에 사용할만한 정보를 모으는 역할밖에 하지 않는다.
다른 팔방에서 투입된 간자들이다.
야천 팔방에만 간자들이 득실거리는 것은 아니다. 팔룡 서풍국 역시 다른 방파에 간자를 심어 놨다.
구룡은 서로 다른 용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고 싶어 한다.
아걸은 그런 간자들만 베었다.
그런 간자는 호북성 곳곳에 퍼져 있지만, 그들을 모두 벨 필요는 없다. 지금 당장 팔룡의 코앞에서 팔방의 행동을 감시하는 자들만 베면 된다.
이들을 베면 일단은 다른 팔방의 눈이 가려진다. 하지만 곧 간자들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 것이다.
팔룡에게 운이 따른다면 이번 간자 색출 과정에서 그들도 횡액을 당했을 것으로 생각할 테지만, 운이 따르지 않으면 경계심이 가득한 눈으로 볼 것이다.
어쨌든 그것은 차후의 문제, 지금 당장은 지켜보는 눈들을 제거한다. 그러면 저들은 먹통이 된다. 야천 팔방에서 피비린내가 진동해도 진위를 파악하지 못한다.
아걸은 전쟁을 생각했다.
이 전쟁, 누가 이길지 모른다. 이쪽 장수는 자신이 되어야 할 것이다. 팔방을 이끌고 다른 팔방과 싸운다. 저쪽 장수는 허도기일 테고, 도구는 다른 팔방이다.
누가 봐도 압도적인 열세다.
‘하나씩 풀어 나가면 돼.’
아걸은 장위식당(長委食堂)으로 들어섰다.
적랑대 정보에 의하면 장위식당에는 야천 사방에서 침투한 도정이라는 자가 있다. 이마가 유난히 좁아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고 하니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