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화. 第六十五章 암추(暗錐) (3)
“저자가 아삼이냐?”
“네. 맞습니다.”
혼사가 대답했다.
팔룡은 아삼을 만나야만 했다.
방갓 무인이 아걸일 것이라는 확신하고 있지만, 직접 아삼 입을 통해서 확인할 생각이다.
그런데 아삼이라는 자…… 도무지 무엇인가를 획책하거나 진행할 인물로 보이지 않았다. 해가 중천에 떠 있는 밝은 대낮에 술에 잔뜩 취해서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사람이…… 적랑대 전임대주 아삼, 정말 맞나?
지금 적랑대 간자들이 사방에서 죽어 나가고 있는데 전임대주라는 자는 인사불성이다.
“그자, 어제도 죽였지?”
“네. 강만, 도정 등등 성읍을 돌아다니면서 십여 명쯤 죽였습니다. 모두 내간(內間)으로 의심되던 자들입니다. 그중에 마성탁이라는 자는 저희도 확실하게 단정하지 못하고 있는 자인데, 단칼에 죽여버렸습니다.”
“마성탁이라는 자, 단정했다면 어느 쪽 사람이야?”
“오방 쪽일 것으로…….”
“우리가 죽인 게 아니라 방갓 무인이 죽였다는 사실을 알려야 하는데?”
“그게…… 저희가 소문을 흘리기도 전에 이미 소문이 퍼졌습니다. 아마도 적랑대가 입을 턴 것 같습니다.”
“흐음!”
팔룡은 침음했다.
지난밤, 팔방은 간자를 죽이지 않았다.
다른 팔방에서는 숙청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 중이지만, 팔룡은 일체 중지 명령을 내렸다.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 분명하게 알아야만 했다.
그런데 방갓 무인이 몇몇 간자를 죽였다. 그중에는 팔방에서조차 파악하지 못한 자도 있다. 적랑대가 얼마나 치밀하게 살펴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방갓 무인이 죽인 자들을 숫자로 보면 십여 명 안짝이지만,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인물들이다.
그들은 모두 팔룡과 가까운 곳에 서 있다.
강만과 마성탁은 중책(中責)이다. 일반 문파로 치면 당주급이다. 팔룡이 얼굴을 알고 있는 자들이며, 직접 명을 하달한 적도 서너 번 정도 있다.
도정은 팔방 본단 식자재를 공급한다.
이들은 팔룡과 가까운 위치에 있는 만큼 팔룡의 움직임도 면밀히 관찰할 수 있다.
다른 여덟 방파에게는 죽은 여섯 명의 십리만큼이나 중요하다.
방갓 무인은 팔룡에게 최대한의 성의를 보이고 있다.
그는 자신과 함께 야천과 싸우든, 야천 편에서 자신에게 검을 들든 양자택일을 하라고 종용한다. 하지만 퇴로를 끊지는 않았다. 물러설 공간을 충분히 주고 있다.
만일, 지난밤에 간자들을 계속 죽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간자들은 죽이되 팔방에서 침투시킨 간자들은 손도 대지 못했다. 그들은 여전히 팔룡 곁에서 충실히 보필하는 척하면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것이다.
아니다. 그래도 방갓 무인은 죽였다.
적랑대 간자도 죽고, 팔방 간자도 죽는다.
다른 팔방에서는 모든 간자들의 죽임이 팔룡의 지시라고 생각한다. 저들은 팔룡이 알면서도 자신의 눈과 귀를 떼어냈다고 의심할 것이 뻔하다.
적랑대 간자들은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입소문이 번졌다.
- 방갓 무인이 미친 듯이 칼을 휘둘렀다!
팔방 간자들의 죽음은 팔룡 짓이 아니다. 방갓 무인이 죽였다고 만천하에 소문났다.
팔룡에게는 지금 상태가 매우 편하다.
계속 야천에 적을 둘 수도 있고, 방갓 무인과 손을 잡을 수도 있다. 어떤 선택을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적랑대 간자들이 입만 털지 않았어도 퇴로가 끊기는 것인데…… 그러면 부득불 방갓 무인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는데…… 적랑대가 드러나는 것을 감수하면서 퇴로를 열어주었다.
물러서고 싶으면 물러서라는 것이다.
‘빌어먹을! 외통에 걸렸나.’
팔룡은 피식 웃었다.
방갓 무인이 사정을 한껏 봐주는 것 같지만, 팔룡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여전히 퇴로가 없다. 방갓 무인이 무적도를 휘두르는 한, 퇴로는 끊긴 것이다.
“넌 여기 있어라.”
팔룡은 혼사를 떼어놓고 아삼에게 걸어갔다.
털썩!
팔룡이 남의 집 담장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야천 팔방 방주가 길거리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본다.
“팔방 방주 서풍국이라고 합니다. 흔히 팔룡이라고 불리죠.”
팔방 방주가 자신을 먼저 소개했다.
드르릉! 드릉!
아삼은 깊은 잠에 빠진 듯 코를 골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죠. 방갓 무인이 명부판관입니까?”
드르릉!
아삼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코를 골 때마다 뿜어져 나오는 숨에서 독한 화주 냄새가 풍겨 코를 찔렀다.
“말하기 싫은 것은 알지만, 지금 내가 남의 형편을 봐줄 상황이 아니라서.”
스릉!
팔룡이 검을 뽑았다. 그리고 다짜고짜 자고 있는 아삼을 향해 전력으로 검을 쳐냈다.
쒜에엑!
경고도 없이 날아간 검이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삼의 머리를 노렸다.
아삼은 즉시 몸을 옆으로 데구루루 굴렸다.
퍼억!
검이 흙바닥을 후려쳤다. 방금까지 아삼이 누워있던 자리에서 뿌연 흙먼지가 피어났다.
“이런 호랑 말코 같은 새끼가! 지금 누구 대가리를 노리는 거야!”
아삼이 여전히 땅에 누운 채 눈을 게슴츠레 뜨고 팔룡을 쏘아봤다.
“알고 계시겠지만 난 이미 목숨 떨어진 지 오래요. 말하는 송장이라고 할까? 그러니 말해줘야겠어. 방갓 무인, 아걸 맞지? 죽었다고 소문난 명부판관.”
“흐흐! 영 멍청한 놈은 아니네. 니 목숨 떨어진 줄은 알고 있냐? 나는 대가리가 텅 빈 줄 알았지.”
“후후! 당신 목숨도 이미 떨어진 거 같은데?”
“아니, 아니. 나는 반쯤은 붙어 있어. 여기. 여기 봐봐. 이 정도는 잘렸는데 이 정도는 붙어 있잖아.”
아삼이 자신의 목을 가리키며 말했다.
팔룡은 피식 웃었다.
아삼이 말하는 것으로 봐서 방갓 무인은 확실히 아걸이다.
“아걸, 맞죠?”
“밑도 끝도 없이 무슨 말이야? 방갓 무인은 뭐야? 뭘 알아듣게 말해줘야지.”
“대주, 나도 목숨을 내놓았으니 어느 정도 기본적인 것은 알아야 하지 않겠소.”
그러자 아삼이 벌떡 일어나더니 자신의 얼굴을 팔룡의 얼굴에 바싹 들이밀었다.
“어이. 말하는 송장.”
“…….”
팔룡은 눈만 끔뻑거렸다.
“자신이 죽었다고 말하니까 말하는 건데. 말하는 송장은 그래도 말이라도 할 수 있지. 말 한마디 못하는 진짜 송장이 되고 싶지 않으면 입 다물어.”
‘아예 알지도 말라.’
아삼은 방갓 무인의 방갓을 벗기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냥 아무것도 모른 체 묵묵히 명령만 받는 거다. 명령? 그냥 강압적인 위협에 휘둘린 정도로 해두자.
“그놈을 아는 순간 당신, 어떻게 되는 줄 알아? 바로 그놈을 위해서 일하는 게 되는 거야. 뭘 하든. 숨만 쉬어도 죄가 되는 거야. 누구에게는.”
‘허도기!’
팔룡은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하지만 알아야 할 사항들은 모두 알았다.
“입 다물고 그냥 가. 그러면 진짜 송장은 되지 않을지도 모르지. 운 나쁘면 뒈지는 거고.”
“아걸, 맞죠?”
“하! 이놈도 귀창시가 배꼽에 붙은 놈일세. 영 말귀를 못 알아먹네. 어떻게 말해야 알아듣지?”
“진작 좀 말해주시지.”
팔룡이 신발을 벗어서 담에 대고 툭툭 쳤다. 신발 안에 돌 부스러기가 들었던 모양이다.
“우리가 뭘 찾아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이미 명령을 내렸소. 음산사마에 대해서 알아낼 게 있으면 속속들이 알아내라고. 그러자면 은밀히 움직이는 것은 틀린 것이고, 아마 우리도 적랑대만큼이나 드러날 거요.”
“하! 여기 뚝 멍청한 놈이 또 하나 있었네.”
아삼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팔룡을 쳐다봤다.
“후후! 제가 멍청한 겁니까?”
“멍청하지. 넌 네가 되게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이번에 도박 한 번 걸어서 망하면 도망치고, 운 좋으면 야천을 움켜쥘 수 있겠다. 뭐 이거 아냐?”
“목숨을 걸었는데, 그 정도는 꿈꿔도 되지 않겠습니까?”
“위협 때문에 억지로 움직였다면 목숨을 보전하지만, 꿈을 좇아서 움직인 건 죽어. 쯧! 이미 수하를 움직였다면 당신도 이제 어쩔 수 없네. 쯧쯧!”
아삼이 혀를 차며 웃었다.
“세 번째 묻는 것 같은데, 방갓 무인 아걸 맞습니까?”
“맞다. 아걸이다.”
팔룡은 아삼의 대답을 듣는 순간 히죽 웃었다.
“이놈이 미쳤나? 지 모가지 떨어진다는데 왜 웃고 지랄이야?”
“미쳐도 좋죠. 당금 무림에서 허도기와 세 번이나 싸우고도 살아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 정도 패를 쥐었다면 인생 한 번 걸고 도박해도 될 것 같은데.”
“지랄도 풍년이다.”
“자, 생각해 보세요. 내가 죽을 때까지 노력한다면 야천 대방 노릇 할 수 있을까요?”
“네놈이 잘 알잖아?”
“안 되죠, 안 돼. 무공도 뒤져, 조직도 뒤져. 뭐 좀 하려고 하면 당장 눈칫밥을 주고. 내 능력으로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대방 노릇은 할 수 없죠.”
“잘 아네.”
“그런데 내가 싸우지 않는다면 어떻습니까? 난 아걸 손을 쥐고 있고, 저쪽은 허도기 손을 쥐고 있다면. 그러면 얼핏 이 싸움이 저와 다른 팔방의 싸움 같지만…… 천만에. 여전히 아걸과 허도기의 싸움이죠. 아걸이 이기기만 하면 허도기 손을 잡은 저쪽 여덟 방주는 단번에 나가떨어지는 겁니다.”
“네놈…… 정말 제명에 못 죽겠구나. 목숨 떨어졌다는 놈이 갑자기 꿈을 키우고 있네?”
“잘 부탁드립니다. 제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팔룡이 아삼에게 정중히 포권을 취하며 물었다.
음산사마는 음산을 무대로 활동한 산도적이다. 오가는 길손을 급습해서 목숨과 물건을 뺏는 산도적이었는데, 매우 잔인해서 목숨을 살려준 사람이 없다고 한다.
음산사마는 우연히 마서를 구하게 된다. 그리고 마공을 수련한 후에는 음산 일대에 제왕이 되었다.
음산을 장악한 네 명의 마인, 그들이 음산사마다.
음산사마의 횡포가 날로 극심해지자 정도 무림은 음산사마를 무림 공적으로 낙인찍었다. 척살령을 내렸고, 상당한 금액의 현상금도 걸렸다. 한 사람당 천 냥씩이라고 했나?
당연히 많은 무인이 음산으로 모여들었다.
현상금을 노리고 온 사람도 있었지만, 단순히 정의심에서 마인을 베고자 찾아온 무인도 꽤 많았다.
음산사마도 무인들이 연수 합공하는 데는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이 수련한 마공은 상당히 강했지만, 수백 년 동안 전승된 무림 절공 또한 절대 약하지 않았다.
음산사마는 음산의 모든 기반을 버리고 도주했다.
그 후 그들은 호북성 승천부(昇天府) 장산(章山)에 안착했다. 하지만 운 나쁘게도 허도기를 만난다.
승부는? 물을 게 뭐 있나. 음산사마는 절명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죽지 않았다. 그들은 멀쩡하게 살았고, 장산에 눌러앉았다. 허도기와 만난 산에서 자리를 잡고 더욱 강한 마공 수련에 몰두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처럼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다.
허도기의 검을 봤기 때문인지 아니면 크게 한 번 당해서인지 철저하게 숨죽인 채 무공수련에만 전념했다.
팔룡은 이런 사실들 때문에 아걸이 자신한테 음산사마를 조사하라고 지시한 줄 알았다.
아니다. 아걸이 원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아걸은 음산사마가 장산에서 무엇을 했건 상관하지 않는다. 누가 음산사마를 다시 무림으로 불러냈나? 즉, 구룡 중 누가 음산사마와 연결되었나?
허도기에게 죽은 음산사마가 어떻게 해서 살아있으며, 성검문주의 세 자식을 죽이던 그 날, 어떤 연유로 성검문에 뛰어 들어가서 칼을 휘둘렀는지를 찾아내야 한다.
팔룡은 무엇을 찾아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았다.
아걸은 이런 부분을 말하지 않았다.
위압적으로 모든 것을 알아내라고 말했지만, 세부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아걸은 정작 중요한 부분은 자신이 직접 알아낼 생각이었다.
이런 부분은 대충 야천 대방이나 이방, 삼방쯤이 관여한 것으로 팔룡이 알아낼 수도 없다. 그러니 단지 털끝만 한 단서만 찾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거다.
사실을 말하고 ‘이걸 찾아내!’라고 말했다면 상당히 곤란할 뻔했다. 그때는 팔방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하니 훨씬 더 심각하게 고민했을 것이다.
고민해 봤자 빠져나갈 길도 없지만.
그때까지도 아걸은 팔룡에게 퇴로를 열어주고 있었다.
팔룡을 이용하지만 팔룡을 무너뜨릴 생각은 없었다. 아삼이 말해준 것들을 찾으려면 정말로 각 방에 스며있는 간자들이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러면 그들도 죽고, 팔룡도 무너진다. 야천과 야천 팔방은 완전히 다른 길을 간다.
“혼사.”
“네!”
“우리 아이들에게 이 밀지를 전해. 목숨 한 번 걸어보자.”
팔룡이 눈을 매섭게 뜨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