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5화. 第六十五章 암추(暗錐) (5)
이른 아침, 전보영주 탁호는 숲길을 걸었다.
아침 산책은 하루를 상쾌하게 해 준다.
숲에서 받아들인 기운을 늘 유지하려고 애쓰다 보면 하루가 기분 좋게 지나간다. 안 좋은 일이 생겨도 아침 맑은 공기를 생각하면 마음이 밝아진다.
그래서 아침 산책은 거의 빼놓지 않고 즐긴다.
예전, 정동 무인들에게 기습을 받은 후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온 습관이다.
째짹! 짹! 째액!
새소리가 맑게 들려왔다.
“좋군.”
탁호는 빙긋 웃었다.
새소리를 들으면 절로 심신이 맑아진다. 아침 공기도 싱그럽고…… 모든 게 다 좋다.
아닌가? 좋지 않나?
탁호는 슬쩍 미간을 찡그렸다.
끄으으으으!
숲에서 일어나는 바람 속에 미미한 신음이 섞여 있다. 폐부를 쥐어짜는 듯한 소리다. 역한 피비린내도 맡아진다. 새벽 공기에 섞여서인지 냄새가 더욱 진하다.
‘기어이!’
탁호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살려 둘 필요가 없어서 죽였습니다.”
숲에서 처분한 음성이 들려왔다.
“오랜만이구나.”
탁호가 웃으면서 말했다.
숲에서 한 사람이 피 묻은 검은 정리하며 걸어 나왔다.
취화원에 가 있는 호위청사 허굉우다.
“언제부터 와 있었나?”
“며칠 됐습니다.”
“무심한 사람 같으니. 왔으면 인사부터 해야지.”
“제가 나서면 영주님의 움직임이 달라집니다. 평소대로 행동하실 필요가 있어서 참았습니다.”
“자넨 참 독한 면이 있어.”
“그런가요?”
“걸을까?”
“네.”
탁호와 허굉우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었다.
허굉우는 늘 탁호 곁에서 호위를 했다. 그가 호위청을 떠난 후에도 탁호는 청사를 따로 두지 않았다. 부청사에게 청사 임무를 대리로 맡겼다.
허굉우는 다시 돌아올 사람이다.
“나한테 이런 일이 있을 줄 어떻게 알고?”
“취화원주가 그러더군요. 야천이 생각을 바꾸면 제일 먼저 노릴 사람이 영주님이라고. 영주님 한 명을 죽이는 것이 전보영 전부를 죽이는 것만큼 효과가 크다고.”
“그랬나? 취화원주, 참 똑똑해.”
“적이 되면 가장 골치 아플 사람입니다.”
“그러니 적이 안 되도록 해야지.”
탁호는 말을 하면서도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고개를 내둘렀다.
전보영 사람들은 늘 이런 생각을 한다. 어떤 사람이든, 아무리 친분이 두터워도 항시 적이 될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 생각하면서도 마뜩잖다.
전보영에 몸담고 있으면 이런 일에 익숙해진다.
정말로 마음을 주는 사람이 있기는 하나? 있다. 하지만 진정으로 마음을 준 사람도 언젠가는 적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항시 염두에 둔다.
“숲에서 몇이나?”
“여섯 명입니다.”
“꽤 많이 왔군.”
“앞으로도 또 올 겁니다. 호위청에 말해서…….”
“후후후! 시작을 예상하지 못했을 뿐, 이미 일이 벌어졌으니 두 번은 당하지 않지. 염려하지 마.”
“감히 영주님께 칼을 겨눴습니다. 지금쯤 중원 전체에 살겁이 불고 있을 겁니다. 아마도 이삼일 내에 좋지 않은 보고를 많이 받으실 겁니다.”
“어쩔 수 없지.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생각했던 거잖아.”
이번 일이 단순히 야천에 국한된 일이라면 이렇게까지 신경 쓰지 않는다.
야천이 관원을 죽인다? 생각할 수도 없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지면 당장 흑도 소탕령을 내릴 것이다. 죄가 있든 없든 야천에 몸담은 자들은 전부 잡아서 압송한다.
관부는 야천 파락호들의 명부를 쥐고 있다.
정확하진 않지만 거의 육칠 할 정도는 포함되어 있다. 상위에 포진한 자들은 십 할 정확하다.
그들만 싹 잡아넣어도 야천은 붕괴한다.
야천 자체는 큰 위험 거리가 아니다. 뿌리 뽑기는 힘들지만, 어렵지도 않은 단지 귀찮은 족속들이다.
문제는 야천 뒤에 허도기가 있다는 거다.
허도기가 움직일 힘은 무척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힘은 역시 황상이다.
황상은 공부 허도기와 조위 대장군을 모두 총애한다.
굳이 말하면 오른팔 왼팔이다. 아니, 팔은 잘라 낼 수 있다. 황상에게 이 두 사람은 잘라 낼 수 없는 분신이다. 하나는 심장이고 하나는 폐다.
두 사람이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믿고 맡길 만큼 아끼고 사랑한다.
그래서 허도기도 황상의 입은 함부로 빌리지 않는다. 가장 완벽한 순간이 아니면 황상을 이용하지 않는다. 일이 잘못되면 자신에게 몰아칠 화도 적지 않아서다.
그런 점은 대장군도 마찬가지다.
허도기의 음흉한 속셈을 잘 알면서도 황상에게 고하지 못한다. 자칫 질투나 모함으로 비칠 수도 있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한, 입도 벙긋하지 못한다.
어쨌든 황상은 허도기에게 공부라는 칭호까지 내렸다.
황족의 핏줄을 타고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황실 사람으로 대우한다는 것이다.
그 총애는 아직도 가시지 않아, 허도기는 군부를 움직일 수가 있다.
대장군 편에 서 있는 군대도 있지만 허도기 편에 서 있는 군대도 꽤 많다.
양쪽이 충돌하면 공멸이다.
그래서 허도기가 무림으로 돌아간 것인지도 모른다. 야천을 손에 쥐고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마침 아걸이 야천에 있다. 아걸이 전보영을 움직여 달라고 요청했다.
아걸의 요청이 아니더라도 전보영 입장에서는 이 일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만 했다.
“많은 사람이 죽겠군.”
“야천은 관부와 무림을 동시에 칠 겁니다.”
“그 말도 취화원주가 하던가?”
“아닙니다. 적랑대 소식입니다.”
“후후! 적랑대가 우리 전보영보다 소식이 빨라.”
“체제나 사람 문제가 아닙니다. 적랑대 그 사람들 지금 목숨을 내놓고 뛰고 있습니다. 요 며칠 사이에 오 할 이상이 죽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 이다음은 뭘 하려고?”
“취화원주는 역공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움직인 자들…… 중간에서 요격할 수 있으면 요격하고, 요격할 수 없으면 뒤를 밟아서 처리하려고 합니다. 다만 어떤 일을 행하든 아걸의 움직임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아걸의 뜻을 우선으로 한다.”
“네.”
“그렇겠지. 자네를 나한테 보낸 걸 보면 우리 입장을 알고 싶어서겠군.”
“그렇습니다.”
허굉우는 전보영과 취화원은 연결해 주는 다리다.
오래전부터 아예 그럴 목적으로 호위청을 벗어나 취화원에 가 있는 것이다.
“우리 전보영은 원주와 뜻이 같다고 전하게.”
“그러면?”
“이번 일에 대해서 일절 함구할 것이야.”
“전보영 수장 중에 암살당한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업무가 시작되면 알 수 있겠지. 몇 명이나 당했는지. 할 수 있나. 우리도 무인들처럼 칼날 위에 누워서 사는 사람들인데. 참! 뇌옥에 있는 사람들, 이제 풀어 줘도 되지 않을까?”
은거 무인들을 말한다.
그들을 풀어 주면 당장 아걸에게 달려갈 것이다. 그래서 잡아 놓고 있다.
“가서 물어보죠.”
“아걸에게?”
“아니요. 저는 아걸과 연계되어 있지 않습니다. 취화원주에게 물어보겠습니다.”
“음!”
탁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걸은 철저하게 혼자 움직이고 있다. 원래 혼자 움직였어야 한다. 그런데 적랑대가 달라붙었다.
이것은 아걸도 생각하지 못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아걸이 행동을 바꿨다.
누구든 달라붙거나 떨어지는 일…… 가감은 반드시 행동을 바꾸게 만든다. 그것이 좋은 쪽으로 작용할 때보다는 나쁜 쪽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더 크다.
적랑대가 도와주겠다고 나선 이번 일, 탁호는 탐탁지 않게 여긴다.
지금 벌어지는 많은 죽음이 어쩌면 애당초 일어나지 않았을 죽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침이나 같이 하지?”
“아닙니다. 식사는 나중에 전보영으로 다시 돌아오면 그때 거창하게 대접받겠습니다.”
탁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몸조심하십시오.”
쉬잇!
허굉우가 포권을 취하더니 바람처럼 사라졌다.
암습을 시도한 자들은 독심을 가진 자들이다. 독종이다.
그들은 어금니를 빼내고 그 안에 독단을 심어 놨다. 언제든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 또 정체가 발각되면 손쓸 틈도 주지 않고 즉시 독단을 깨물어서 자결한다.
허굉우가 사로잡을 필요가 없어서 죽였다고 한 것은 그런 뜻이다.
설혹 생포했다고 해도 어떤 대답을 듣지는 못한다.
책상에 앉아 있지만, 마음이 무겁다. 아직 출근하지 않은 청사가 네 명이다.
‘모두 당했나?’
그럴 리는 없을 텐데.
“급보입니다. 보문청(保文廳) 청사님이 돌아가셨습니다.”
“보문청사가?”
“전보영으로 오시는 길에 사고를 당하셨다고 합니다.”
“사고?”
“네. 갑자기 골목에서 미친 말이 튀어나와 들이받았다고…… 미친 말이 쓰러진 청사님을 짓이기기까지 한 모양입니다. 결국, 말을 죽인 후에서 청사님을…… 그때는 이미.”
“음!”
탁호는 미간을 찡그렸다.
사고 같지만 살인이다.
몇 명이나 이런 죽임을 당했을까.
“저…….”
문을 밀치고 들어선 수하가 말을 하지 못하고 쭈뼛거렸다.
“무슨 일이야? 말해.”
“감찰청(監察廳) 청사님이 자진하셨습니다.”
“자진?”
“출근하시는 길에 다리 난간에서 잠시 멈추라고 하시더니 바로 강물 아래로 투신하셨습니다.”
“…….”
탁호는 어처구니없어서 되묻지도 못했다.
“시신은?”
“물살이 급한 곳이라서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탁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친 말이 달려와서 짓밟는 것은 어떻게든 만들어 낼 수가 있다. 말에게 흥분제를 먹여도 되고, 발정제를 먹여도 미친 듯이 날뛰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감찰청 청사를 죽인 일은 쉽지 않다.
마차를 타고 오던 사람이 다리 중간에서 마차를 멈추게 하고 제 발로 뛰어내린다?
이걸 어떻게 만들어 냈을까?
‘인질!’
탁호는 미간을 확 찡그렸다.
감찰청 청사는 인질로 협박당했다. 본인 스스로 뛰어내리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소중한 사람이 잡혔다.
그 인질 또한 지금쯤은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이게 야천이 잘하는 짓이다. 야천은 이런 식으로 사람을 죽인다.
“상종 못 할 자들이군.”
두 명! 전보영에서 두 명이 죽었다.
다른 보고도 들어왔다.
“첩보청 청사님께 달라붙던 자들이 있어서 베었습니다.”
“몇 명이나?”
“네 명입니다.”
“신분 확인은?”
“불가합니다.”
“알았다.”
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탁호는 아침 사건이 있었던 직후, 급히 호위청에 기별을 넣어서 청사들을 보호하라고 지시했다. 물론 청사들에게는 개별 호위가 있다. 하지만 야천은 그들을 따돌렸을 것이다.
드러나지 않은 호위가 필요하다.
그래서 호법들을 붙였고, 네 명을 베었단다.
저들은 누군가가 단지 의심스럽게 행동해서 베었다. 야천 암살자가 아닐 수도 있다.
탁호는 이런 살인까지 허락했다.
지금은 그만큼 상황이 매우 급하다.
“금원청(金圓廳) 청사님을 암살하려던 자들이 있었습니다. 일곱 명인데, 모두 베었습니다.”
야천은 적랑대 청사 일곱 명 중 네 명을 노렸다. 전보영주까지 다섯 명을 암살할 생각이었다.
대단한 자들이다. 아예 전보영을 쑥대밭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보문청사와 감찰청사는 죽인 것만 해도 저들은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다.
전보영은 어디 가서 분풀이할 수도 없다. 이 짓이 야천 짓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저들은 죽음을 자살로 위장시킨다. 아니면 의문사로 만든다. 사람을 죽여도 일절 단서를 남기지 않는다. 설혹 단서를 남기더라도 단서를 쫓아가 보면 살인자는 이미 죽어 있는 경우가 흔하다.
살인멸구로 뒤를 끊어 버린다.
지금 중원 전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살인이 이런 식일 것이다.
“후우!”
탁호는 큰 숨을 불어 냈다.
야천의 공격은 주효했다.
이번에는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