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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326화 (326/600)

#326화. 第六十六章 당랑거철(螳螂車轍) (1)

“아! 힘들어!”

장명(張明)은 길게 기지개를 켰다.

관원 생활이라는 것이 늘 바쁘고 힘든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대부분 한가하고 여유롭다. 입청 시간과 퇴청 시간도 정해져 있고, 웬만해서는 밤을 새우는 일도 없다.

하지만 요즘처럼 떠들썩하게 대사를 치르면 한동안은 엉덩이를 뗄 틈도 없을 만큼 바빠진다.

뇌옥에 갇힌 놈들에게서 자백을 받아 내야 한다.

한데 워낙 악귀 같은 놈들이라 자백을 순순히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가면 두고 보자는 식으로 겁박을 한다. 그러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근자근 두들겨 준다.

죄가 있든 없든 상관없다. 잡혀 왔으니 죄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죄를 만들어 내야 한다.

순순히 토설하는 놈은 조금 봐준다. 악착같이 버티는 놈은 살을 찢고 뼈를 부러트린다. 서둘 필요는 없다. 바쁜 것도 없으니 차근차근 짓이겨서 죄를 토설하게 만든다.

장명은 취조나 고문에 가담하지는 않는다. 그는 단지 취조장에서 죄인이 하는 말을 받아 적기만 한다.

별것 아닌 일 같지만,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죄인이 이런 실토를 했다는 자백이다. 내용에 따라서 형벌이 하늘과 땅처럼 달라진다.

똑같은 말을 해도 ‘내가 죽였다’하고 말하는 것과 ‘그 새끼 뼈마디를 오독오독 씹어 먹었다’ 하고 말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느낌을 준다.

받아 쓰는 사람이 어떻게 받아 적느냐에 따라서 가벼운 죄가 되기도 하고 중죄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 매우 주의해서 말하는 그대로 받아 적어야 할까?

꼭 그럴 필요는 없다. 받아 적는 내용은 주변 상황에 따라서 달라진다.

지금처럼 야천을 탄압하는 시기에는 어떻게든 야천 파락호들에게 죄가 있는 쪽으로 적어야 한다. 그래야 윗사람들의 눈총을 피할 수 있다.

죄인의 입장은 절대로 고려하지 않는다. 쓰레기 같은 놈들을 고려해서 뭐 하게.

더욱 재미있는 것은…… 파락호 중에는 글을 아는 자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무슨 말을 적어도 모른다. 네가 한 말을 그대로 받아 적었다고 하면 의심 없이 수인(手印)을 찍는다.

물론 사적으로 돈푼깨나 찔러주는 자들도 있다. 그때는 좀 봐주기는 한다. 돈 먹고 안 봐줄 수 있나.

정명은 기분 좋게 퇴청했다.

다른 때보다 한 시진이나 늦게 퇴청하지만 그래도 즐거운 일이 기다리고 있으니 발걸음이 가볍다.

‘이번에 걸려든 놈들이 스물. 몇 명이나 살려 달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푼돈 가지고는 안 되지. 이번에는 한밑천 단단히 잡아야 해. 이런 기회가 흔히 오는 게 아니니까.’

“킥!”

참으려고 했는데도 웃음이 흘러나왔다.

“쫓아오는 사람은?”

“장사 한두 번 하나. 왜 이래?”

파락호들은 정명이 지나온 길을 유심히 살펴봤다. 혹여 뒤쫓아오는 자가 있는지 살피는 것이다.

정명은 차분히 기다렸다.

“안쪽으로 쭉 들어가시면 불 켜진 곳이 나올 겁니다. 아주 작은 청등이오.”

“알았네.”

정명은 어두컴컴한 골목길로 들어갔다.

어두운 골목길을 대여섯 굽이 정도 휘돌자 파락호가 말한 청등이 보였다.

비밀 거래를 하기에 딱 좋은 곳이다.

돈 없는 사람들이 동전 한 닢에 화주 한두 잔 먹고 가는 그런 곳이다. 물론 오늘은 장사하지 않는다. 비밀 거래를 위해서 미리 야천이 손을 써 놨다.

정명은 이런 술집을 몇 번 와 봤다. 그때마다 은밀한 제안을 받았고, 뇌물도 두둑이 챙겼다.

자고로 뇌물은 사람 눈이 없는 곳에서 받아야 한다.

덜컹!

정명은 나무문을 밀치고 들어섰다.

주점 안에는 탁자가 세 개 있다. 탁자 곁을 스치면서 지나가야 다음 탁자로 갈 수 있을 정도로 좁다.

야천 제삼방에서 온 자는 가운데 탁자에 앉아 있다.

“정명 님?”

“아, 제가 정명입니다.”

“반갑습니다. 앉으시죠.”

야천에서 온 자가 반갑게 정명을 반겼다.

“저는 왜 만나자고……?”

정명이 앉으면서 물었다.

만나자는 이유를 모르지 않지만 그래도 모르는 척 말을 꺼내는 것이 자연스럽다.

앞에 앉은 자가 묵직해 보이는 목함을 탁자 위에 올려놨다.

“서로 용건을 알고 있을 테니까, 거두절미하고…… 황금 오십 냥입니다.”

“화, 화, 황금……!”

정명은 헛바람을 내질렀다.

웬만큼 큰돈이 들어올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황금 오십 냥이라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왜, 왜 이 돈을…….”

정명은 너무 큰 돈이라서 손이 선뜻 나가지 않았다.

이 돈은 왜 주냐고 묻는 말도 덜덜 떨려 나왔다.

“붓으로 끄적대는 장난질은 필요 없고…… 사람 좀 빼내자. 한 명당 열 냥. 다섯 명만 빼내.”

앞에 앉은 자가 갑자기 말을 툭 놨다. 그리고 다섯 명의 명단이 적인 종이를 내밀었다.

‘탈옥!’

파락호는 정명에게 탈옥을 말하고 있다. 다섯 명을 탈옥시키라는 것이다.

진술 내용을 곱게 포장해서 적는 정도의 일이 아니다.

‘이건 이, 인생을 걸어야 해!’

황금 오십 냥이면 단숨에 재벌 행세를 할 수 있는 큰돈이다. 욕심이 난다. 하지만 돈을 받기 전에 할 수 있는 일인지를 따져 봐야 한다. 현재 오양현청(烏壤縣廳)은 경계가 워낙 삼엄해서 탈옥은 꿈도 못 꾼다. 탈옥은커녕 개죽음만 당한다.

“저, 저는 이런 일은…….”

정명은 명부조차 보지 않고 급히 일어섰다. 그때,

“그럼 목숨을.”

어느새 등 뒤에 와 있던 자가 정명의 목에 밧줄을 걸었다.

“컥컥! 자, 잠깐만…….”

정명이 급히 손을 휘저었지만, 밧줄은 목에 찰싹 달라붙었다. 그리고 점점 안으로 파고 들어왔다.

“큭큭!”

정명은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목에 압력이 더욱 심해진다. 목을 조르는 자는 솜씨가 매우 능숙하다.

“끄윽! 끄으으…….”

발버둥 치는 움직임이 점점 느려졌다.

푸득! 푸드득!

정명은 계속해서 움직이려고 발버둥 쳤다. 이미 몸이 말을 듣지 않았지만, 그래도 계속 살아 보려고 했다. 살고 싶다는 본능이 손가락을 꿈틀거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혀를 길게 빼물고 말았다.

“후후! 다른 놈은?”

“한 시진 후에 만나기로 했습니다.”

“이놈 시신을 끌고 와. 그럼 다음 놈과는 말이 슬슬 풀릴 거야. 돈 줄 때 받아 처먹고 했으면 죽지는 않지. 이것들은 꼭 일은 안 하면서 돈만 처먹으려고 해.”

맞은 편에 앉았던 사내가 술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덜컹!

정명과 말을 나눴던 사내, 정명을 죽이고 시신을 어깨에 들춰 멘 사내 두 명이 문을 밀치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골목길에서 사내 네 명이 스읏 나타났다. 밖에서 경계를 서던 파락호들이다.

“형님, 이리 주십시오. 제가 메고 가겠습니다.”

나타난 자 중의 한 명이 나서며 말했다.

시신을 메고 있던 자는 당연하다는 듯이 정명을 넘겨주었다.

“앞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가시면 됩니다.”

두 명이 앞에 서고, 다른 두 명은 맨 뒤에 섰다. 주점 안에 있던 자들을 보호하는 형태다.

“이놈 시신을 보면 사색이 될 겁니다. 우리 말을 안 따를 수가 없죠. 거기에 황금까지. 채찍과 당근을 동시에 내미는데 넘어가지 않을 도리가 없죠.”

“그렇지?”

“그런데 정말 이렇게 죽여도 되는 겁니까?”

“안 될 건 뭐야?”

“어찌 되었든 관원을 죽인 일이라.”

“병신. 요즘 얘네 목숨, 파리 목숨이라는 거 몰라? 사방에서 죽이고 있어. 요즘 같은 때 칼맛 보지 않으면 언제 맛보려고. 죽이고 싶은 놈 있으면 이번 기회에 죽여.”

그들은 농담을 나누면서 골목길을 걸었다.

그때, 앞에서 손에 호롱을 든 여인이 나타났다.

그녀는 좁은 골목에서 낯선 사내들과 마주쳤는데도 위험을 느끼지 못한 듯 태연히 걸어왔다.

그들이 걷고 있는 골목길은 술 취한 사내들로 득실거린다. 담벼락에 소변을 누는 사내도 있고, 그런 사내를 털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모리배도 있다.

오늘은 야천에서 골목을 접수한 관계로 조용하지만, 이런 길을 여인 혼자서 걷는다는 것은 대단한 배짱이다. 아니면 이 골목길의 특성을 모르거나.

“여자네?”

정명을 죽인 자가 히죽 웃었다.

“신경 꺼. 오늘 할 일은…….”

주먹 동생을 나무라던 사내가 말을 멈췄다. 그리고 눈빛을 반짝 빛났다.

여인, 예쁘다! 대단히 매혹적이다!

기녀나 몸 파는 여인은 아니다. 그런 여자들이 보이는 퇴폐적인 나른함이 엿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지필묵을 옆에 끼고 사는 듯 은은한 먹 냄새가 풍긴다.

“잠깐!”

사내가 여인을 불러 세웠다.

여인이 걸음을 멈추고 사내를 쳐다봤다.

“여기 위험한 곳인데. 여자 혼자 다녀도 되나?”

“위험한 곳인가요?”

여자는 미처 몰랐다는 듯 되물었다.

‘말하는 모습도…… 예쁘네.’

사내는 여인에게 홀딱 빠졌다.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해 보기는 정말 오랜만이다. 매우 중요한 임무가 있는데, 그걸 잊어버리고 수작질이다.

“어디까지 가시는지?”

“전 다 왔어요.”

“술집에서 일하나?”

사내가 대뜸 말을 놨다.

골목길 주변에는 허름한 주점밖에 없다. 정말 값싼 주점이다. 이런 곳에서 일하는 여자라면 거의 일전통 창녀 수준이다. 세상 쓴맛 단맛 다 보고 막장까지 굴러떨어졌다.

“아뇨.”

여인이 생긋 웃으면서 말했다.

여인의 웃음을 잘못 판단하면 꼭 사내에게 호감이 있다는 투로 비친다. 한데,

스릉!

여인이 갑자기 소검(小劍)을 뽑았다.

칼 길이가 한 자 다섯 치(45cm) 정도 되는 작은 검이다. 단검보다는 길고, 장검보다는 훨씬 짧다.

여인이 등허리에 검을 꽂고 있는 것을 미처 보지 못했다.

“후후! 위험한 물건을 가지고 다니는군.”

사내는 웃었다.

여인이 호신용으로 검을 가지고 다닌다고 생각했다. 낯선 사내가 말을 걸자 두려운 마음에 검을 뽑아서 위협하는 거라고. 호신용 검이 아닌데도…… 죽으려니 눈이 뒤집혔나 보다. 여인의 검이 꼭 호신용 검으로 보였다. 그때,

“병신. 고수를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다니. 쯧!”

혀 차는 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엇! 형님.”

여인에게 말을 걸던 사내가 급히 허리를 숙였다.

다른 다섯 사내도 같이 허리를 숙였다.

“병신들, 비켜!”

어둠 속에서 나타난 사내, 임승간(林承幹)이 앞에 있는 사내를 힘으로 밀쳐 버리며 말했다.

그는 야천삼방 중책(中責)이다.

웬만한 싸움은 그의 선에서 마무리된다. 특히 야천 중에서도 상망에 속하는 야천삼방 중책의 무공은 중망, 하망에서는 상책(上責)에 버금갈 정도다.

이번 일은 야천삼방이 벌인 일 중에서도 매우 큰 일에 속한다. 황금이 오십 냥이나 걸렸다. 그만한 일을 밑에 있는 애들에게만 맡길 수는 없다.

정명 정도 죽이는 일은 아랫것들 시키고…… 그는 암중에서 주변을 살폈다.

만약, 두 번째로 만나고자 한 서판(書判)까지 잘 만나 일이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면 그가 나설 일은 없었다.

“우리를 노리고 온 것 같은데?”

임승간은 얼굴에 잔악한 미소를 머금으며 물었다.

“협척검(狹刺劍)을 쓰는 자는 대체로 자법(刺法)에 능하지. 그런데 내가 무식해서 그런지 강호에 소저 같은 사람이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는데. 우릴 노리더라도 어디서 온 누구인지 정도는 말해 줘야 하는 거 아냐?”

“풋! 아는 척하기는.”

여인은 실소 한 마디로 사내의 말을 뭉개 버렸다.

스릉!

임승간이 검을 뽑았다.

“말로 안 되면 검으로. 내 검에는 눈이 없어서 사정을 봐주지 못하는데, 괜찮을까?”

“호호호! 호호호호!”

여인이 간드러지게 웃었다.

“아까 너 저기서 나타나면서 뭐라고 그랬더라? 병신, 고수를 보고도 알아보지 못한다고? 너도 그런 병신 아냐? 내 눈에는 네 검이 어리게 보이는데, 너는 아니라고 생각하나 봐?”

“말로는 안 되겠군.”

“누가 말로 하자고 했어?”

스읏! 슷!

두 사람은 동시에 검을 쳐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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