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327화 (327/600)

#327화. 第六十六章 당랑거철(螳螂車轍) (2)

“너희는 가라.”

임승간이 여인을 견제하며 말했다.

“안 그러셔도 되는데. 굳이 죽을 것 다리 아프게 뭐하러 멀리 가. 그냥 이 자리에서 죽는 게 편한데.”

여인이 방글방글 웃으면서 말했다.

입으로는 죽음을 말하고 있는데, 살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얼굴이 너무 해맑다.

스읏!

임승간이 여인 앞을 가로막았다.

“가!”

그러자 여섯 사내가 재빨리 움직였다.

임승간의 표정에서 여인이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고수가 분명하다. 오죽하면 앞을 막아서면서 가라고 할까.

‘으!’

신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이런 여자에게 집적거렸으니…… 지금 이곳에서 죽는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까딱했으면 입가에 침을 질질 흘리다가 목이 날아갈 뻔하지 않았나.

사내들은 여인의 눈치를 보면서 살살 움직였다.

그러자 여인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싸움판을 읽는 눈이 너무 없다. 지금은 도망갈 때가 아니라 최선을 다해야 할 때인데. 내 검이 너무 만만하게 보였나 보네. 좌우지간 난 분명히 경고했어.”

팟!

한순간, 여인이 연기 꺼지듯 사라졌다.

그녀가 서 있던 자리에는 주인 잃은 호롱만 얌전히 놓인 채 맑은 불빛을 토해 냈다.

“조심!”

막 여인을 공격하려던 임승간이 깜짝 놀라서 경악성을 내질렀다.

그는 여인이 사라지는 순간에 이미 전신 감각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사방을 경계하며, 어디서 검이 날아오든 즉시 반격할 준비를 했다.

수하들은 전혀 아니다. 여자가 사라졌는데도 전혀 싸울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 준비하지 않는다기보다는 즉각적인 반응이 느린 것이다.

피유우웃! 쒜엑!

검이 공기를 가른다. 그리고,

“악!”

매우 큰, 그리고 짧은 단말마가 터졌다.

제일 앞에서 길을 뚫던 사내가 맥없이 쓰러졌다. 마치 장작개비 넘어지듯이 앞으로 쿵 무너졌다.

사내들은 즉시 뒤로 물러섰다.

‘언제!’

사내들의 눈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언제 임승간의 검을 뚫고 앞으로 나왔나? 언제 막둥이를 죽였나. 그리고 지금은 어디 있는가?

여인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암술(暗術)이다! 조심해!”

임승간이 다시 소리쳤다.

무림에서 사용하는 은신술을 야천은 암술이라고 말한다. 무공으로 신형을 숨기기는 어렵지만, 위장포나 연무 등을 이용하면 쉽게 숨을 수 있다. 어둠을 이용하는 방법이 수백 가지나 되는데, 이것을 통칭해서 암술이라고 한다.

“으!”

암술이라는 말에 사내들이 호롱불 앞으로 모였다.

여인은 어둠 속에 숨어 있을지언정 자신들은 밝은 곳에 있는 것이 낫다.

적에게 환히 노출되지만 적이 공격해 오는 것은 감지할 수 있다. 최소한 한 명이 죽을 때, 다른 자들은 여인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어차피 어둠 속에 있어도 노출되기는 마찬가지다.

쒜에에엑!

파공음이 또 들린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동쪽에서도 들리고 서쪽에서도 들린다. 좌우, 전혀 다른 방향에서 검음이 터졌다.

“회향음(迴嚮音)!”

임성간이 버럭 일갈을 내지르며 우측을 향해 쏘아 갔다. 그러자,

“컥!”

좌측에 있던 사내…… 정명의 목을 조른 사내가 두 손으로 목을 움켜잡더니 피식 무너졌다.

쿨룩! 쿨룩!

사내의 목에서 진한 피가 쏟아져 나왔다.

“음!”

임성간은 침음했다.

그래도 싸움판에서 잔뼈가 굵었다고 자부하는데, 지금은 여인에게 철저하게 농락당하고 있다.

임성간은 즉각적으로 위험을 감수했다.

상대방은 대단한 고수다. 눈 깜짝할 순간에 두 명을 베었다. 그런데 어떤 수법을 사용하는지도 파악하지 못했다. 지금도 여인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한다.

대단한 암술이다.

“장간(張看).”

“네.”

주점에서 정명과 대화를 나눴던 사내가 즉시 대답했다.

“넌 무슨 일이 있어도 빠져나가. 일을 성사시켜야 해. 나머지는 호위해. 목숨을 걸고 장간을 지켜!”

“넷!”

그러자 살아남은 세 명이 장간을 바싹 에워쌌다. 몸이 찰싹 달라붙을 정도로 가까이 섰다.

쉬이이잇!

그들이 움직였다.

임성간도 그들과 함께 움직였다. 하지만 그는 도주할 생각이 없다. 곧 다가올 검을 노린다.

이번 임무에 투입된 자들은 싸움을 꽤 잘한다. 싸움하는 것을 밥 먹는 것보다 더 좋아한다.

그런 자들이 맥없이 나가떨어졌다.

여인은 어디 있나! 어둠 속에 있다. 바로 옆에 있다!

임성간은 여인을 찾고자 눈을 부릅떴다. 온 감각을 최고로 끌어 올렸다. 그때,

슷!

임성간은 매우 나직한 소리를 들었다. 도둑고양이가 담장을 밟는 듯 매우 가볍고, 날렵한 소리다.

‘뒤!’

쒜에엑!

임성간은 즉시 등 뒤를 향해 검을 후려쳤다.

페에엑!

검은 허공을 쳤다. 검에 걸리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헛손질!’

실수는 죽음으로 이어진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착각한 것일까? 잘못 들었나? 아니다. 분명히 들었다. 갑자기 매우 기분 나쁜 느낌이 치민다. 그리고 그 느낌은 바로 현실로 나타났다.

푹!

갑자기 오른쪽 옆구리에서 화끈한 통증이 일어났다.

“큭!”

임성간은 옆구리를 활처럼 휘면서 신음을 내질렀다.

퍼억! 퍽! 퍽! 퍽!

소검은 옆구리를 계속 연타했다.

검이 들어왔다 싶으면 다시 나갔다. 그리고 다시 들어왔다. 무려 대여섯 번이나 같은 자리를 강타했다.

“컥!”

임성간은 손으로 옆구리를 잡으면서 담장에 몸을 기댔다.

그의 옆구리는 호랑이가 물어뜯은 듯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상처는 별것이 아니다. 정작 장기 손상이 치명적이다.

검이 들어왔다가 나가기를 반복하는 동안 창자가 가닥가닥 잘려 나갔다. 밑에서 위로 뚫고 들어온 검은 위장과 심장을 동시에 찔렀다. 위에서 아래로 꽂힌 검은 골반을 갈라놨다.

임성간은 두 발로 딛고 서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끄으으윽!”

임성간은 신음을 흘리면서 무너졌다.

“빨리! 빨리!”

장간은 임성간이 무너지자 마음이 더욱 급했다. 한시라도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하지만 살기는 틀렸다는 생각도 든다.

‘형님이!’

임성간의 무공은 상당히 강하다. 야천삼방 중책이라고 하면 무인들도 어느 정도는 양보해 준다.

그런 사람이 너무 쉽게 쓰러졌다.

“마구 휘둘러! 마구!”

네 명이 죽을힘을 다해서 치달렸다. 그러면서도 검을 뽑아서 사방에 휘둘렀다.

여인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찾지 못하겠다. 그러니 검이라도 휘둘러서 쉽게 다가오지 못하게 만든다. 여인의 암술은 매우 뛰어나서 이런 것밖에는 할 것이 없다.

푸욱!

“악!”

장간을 보호하고 있던 사내가 비명을 지르더니 펄쩍 뛰었다.

고통이 너무 심해서 자신도 모르게 엉뚱한 행동을 한 것이다. 그리고 다음은 볼 것도 없다. 이미 뛰어오른 순간에 절명해서 살펴볼 필요도 없다.

“빨리 가! 빨리!”

앞에 불빛이 보였다. 드디어 어두운 골목길을 거의 벗어났다. 이제 십여 보만 더 달리면 골목에서 빠져나간다. 한데,

푹!

장간은 갑자기 옆구리에서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검이 갈비뼈 사이를 쑤시면서 들어왔다. 밑에서 들어온 검이 간을 뚫고 폐까지 찔렀다.

‘크으윽!’

장간은 비명을 토하려고 했지만 신음이 흘러나오지 못했다.

목구멍으로 흘러나와야 할 소리가 폐로 빠져나간다. 몸에서 바람이 샌다.

“가가가, 크가…….”

장간은 신음인지 비음인지 모를 소리를 흘리면서 쓰러졌다.

“사, 살려 주십시오. 살려 주세요.”

정명을 둘러업고 있는 자가 털썩 무릎을 꿇으면서 말했다.

그는 장간 뒤에 있다. 장간이 쓰러지는 바람에 앞으로 달려 나가지 못했다.

스읏!

장간을 죽인 여인은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파락호 세계에서는 전혀 보지 못했던 환술이다. 암술 중에서도 최상급이다.

스으읏!

여인은 골목길 입구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막 골목을 뛰쳐나가려던 사내는 여인이 앞을 가로막자 급히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의 오른손은 여인에게 잡혔다.

여인의 힘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강철 같은 힘이 검 든 손을 꽉 잡았다. 그리고 다른 손이 사내의 몸에 소검을 찔러 넣었다.

“끅…… 끅…….”

사내는 몸을 바르르 떨면서 신음을 쏟아 냈다.

검이 천천히 가슴을 찌른다. 저항할 여력은 없다. 저항할 틈을 주지 않는다.

확실히 자신들과는 상대가 안 되는 고수다.

“이이익!”

무릎을 꿇었던 사내가 파다닥 뛰쳐나가면서 검으로 여인을 후려쳤다. 동시에 골목 밖으로 신형을 던졌다.

한 발! 한 발만 더 내디디면 골목을 벗어날 수 있다. 그런데,

슷!

여인이 앞을 가로막았다.

여인은 검을 쳐들고 있었다.

사내는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 나가는 중이었고…… 자신 스스로 쳐들린 검에 몸을 던진 꼴이 되고 말았다.

푸욱!

소검은 정확하게 몸통 한가운데를 뚫고 들어갔다.

휘릭!

여인은 소검을 휘둘러서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냈다.

골목에는 시신 여덟 구가 놓였다. 관원은 목 졸려 죽었고, 나머지는 검에 죽었다.

여인은 사박사박 걸어서 임성간에게 갔다.

임성간은 이미 절명했다. 마지막 살초를 생략했지만 여섯 번의 공격만으로도 이미 살기 힘들다.

여인은 허리춤에서 꽃을 꺼내서 여인이 비녀를 꽂듯이 임성간의 머리에 꽂았다.

향유라는 들꽃이다.

향유는 꽃향기가 매우 향기롭다. 꽃대에 많은 꽃이 피며, 군락을 이뤄서 화려한 꽃밭을 만든다.

벌과 나비가 가득한 꽃밭이다.

살인, 꽃…… 어떤 생각이 드나? 꽃이라고 하면 당장 취화원이 생각나지 않나. 시신 옆에 꽂을 놓아둔 것은 취화원이 죽였다고 표시한 것과 마찬가지다.

임성간의 머리에 꽃을 꽂은 여인이 몸을 일으켰다.

그때, 담장 위에서 나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표식을 남기는 것은 취화원 특성이 아닌데.”

여인이 깜짝 놀라 담장 위를 쳐다봤다.

그곳에 한 사람이 앉아 있다. 폭이 좁은 담인데, 방갓 무인은 마치 의자에 앉은 듯 편안하게 앉아 있었다.

깜짝 놀랐던 여인이 눈에 이채를 반짝이며 말했다.

“혹시 상군이십니까?”

휘릭!

방갓 무인, 아걸이 담장 위에서 내려왔다.

상군은 취화원 살수들이 자신을 부르는 호칭이다. 원주의 남편이란 뜻이다. 상군이라는 호칭을 알고 있다면 여인은 취화원 살수가 분명하다.

“암영검이 뛰어나던데?”

“제일곡 월영님 휘하 향유라고 합니다. 지금은 일전통에서 팔 장로님 지시를 받습니다.”

“이건 팔 장로님 지시요?”

아걸이 머리에 꽂힌 꽃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뇨. 원주님 생각이세요. 흔적을 남겨 놓지 않으면 야천에서는 관군이나 무인들의 반격으로 생각할 거다. 그러면 더 잔인하게 살수를 펼칠 것이다. 차라리 야천의 공격 목표를 취화원으로 옮겨 놓자. 이런 의도십니다.”

“일부러 공격 목표가 된다. 후후!”

아걸은 쓴웃음을 흘렸다.

“야천의 칼들이 움직이는 모양인데 위험한 싸움을 거네. 몸조심하시오.”

아걸이 방갓을 까딱거린 후 몸을 돌렸다.

“상군께서도 몸 보중하세요. 원주님을 울리시면 안 됩니다.”

취화원 살수 향유는 이미 골목길을 벗어나고 있는 아걸의 등 뒤에 대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