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8화. 第六十六章 당랑거철(螳螂車轍) (3)
몽설은 매우 위험한 길을 가고 있다.
몽설이 취화원 살행을 드러낸 순간, 취화원은 야천에 집중 공격 목표가 된다.
취화원이 잘 숨어 있다고 하지만, 야천의 정보력도 만만치 않다. 반드시 취화원 은신처를 알아낼 것이다. 강호에서 암약하는 살수들을 찾아낼 것이며, 보복을 감행할 것이다.
취화원이 믿는 것은 무공이다.
개떼 수십 마리가 달려들어도 단숨에 찢어 버릴 수 있는 늑대의 날카로운 발톱, 강인한 이빨, 빠른 순발력, 치밀한 조직으로 싸워야 한다.
취화원은 이런 것으로 버텨야 한다.
개떼가 달려드는 것은 피할 수 없다.
피해는 불가피하게 일어날 것이다. 정동을 공격했을 때처럼 절반 이상이 죽을지도 모른다.
아걸은 몽설이 이런 길을 가는데도 내버려 두었다.
몽설은 자신만의 여자가 아니다. 그녀는 취화원이라는 살수 문파를 이끄는 원주다. 자신의 여인이기에 앞서서 수십, 수백 명의 목숨을 맡은 대장이다.
몽설은 언젠가는 지금과 같은 큰 강을 건너야 한다.
이런 강을 두어 개만 건너면 그녀는 무림 거성이 된다. 정동을 공격한 후, 취화원은 급성장했다. 중원인들의 머릿속에 취화원이라는 문파가 각인 되었다.
취화원은 명부판관과 함께 움직이면서 문파 성격을 확실하게 알렸다.
살수 문파이면서도 정의 또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번 야천 공격은 취화원이라는 문파가 어떤 목적으로 움직이는지, 보다 명확하게 말해 줄 것이다.
- 취화원의 칼을 맞을 때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중원인들은 어느덧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 생각을 보다 강하게 확신시킨다.
무림이라는 곳은 안주하면 안 되는 곳이다. 안주하면 죽는다.
좋든 싫든 상관없다. 피곤하더라도, 상처를 입었더라도 항상 움직여야 한다.
무인이 움직이고, 문파도 움직여야 한다.
무림은 살아 있는 생물이다.
움직이지 않는 순간 바로 죽는다.
지금 이 정도 무공이면 무림에서 자리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어림도 없는 생각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반드시 자신을 넘어서는 자가 나타난다. 그리고 죽는다.
이 정도면, 이만한 위치면, 여기까지 올라왔으니…… 이런 말은 무림에서는 절대 통용되지 않는다. 더 앞으로, 한 걸음 더…… 오직 이렇게 살아야 하는 매우 피곤한 세계다.
그래서 향유가 향유꽃 한 송이를 표식으로 놓는 것을 보면서도 말리지 않았다.
이것은 몽설이 반드시 헤쳐 나가야 할 그녀만의 과제다.
‘취화원이 움직였으면 반드시 반격이 시작된다. 야천의 반격은 빠르고 잔인해.’
아걸은 골목을 벗어나는 즉시 밀마를 남겼다.
야천의 움직임을 알아야겠다.
* * *
국화 종류만 세 가지다.
백국(白菊), 황국(黃菊), 적국(赤菊).
대파사국(大波斯菊:코스모스) 종류도 세 가지다. 하얀색, 붉은색, 노란색.
구절초, 투구꽃을 비롯한 온갖 꽃들이 즐비하게 널렸다.
갑자기 실내에 꽃향기가 진동했다.
꽃들은 줄기가 베인지 오래되어서 잎이 시들었지만, 개중에는 여전히 진한 향기를 뿜어내는 꽃들도 있었다.
“이게 다 뭐야?”
“살인 현장에 떨어져 있던 것들입니다.”
“꽃이?”
“네.”
“이 꽃들이 전부 살인 현장에 떨어져 있었다고?”
“아마도 살인 표식 같습니다.”
흑수혈검이 말했다.
살인 표식은 살인마들이 자신을 표시하는 방법으로 남겨 놓는 흔적이다.
어떤 자는 살인한 후에 왼쪽 귀만 잘라간다. 그래서 좌이절마(左耳切魔)라고 부른다. 좌이절마가 누군지는 모른다. 아직 흉수를 찾아내지 못했다. 다만 왼쪽 귀가 잘린 시신이 나오면 ‘또 좌이절마 짓이군’하고 말한다.
어떤 자는 등 뒤에서 머리를 움켜잡고 목 뒤로 검을 찔러넣는다.
결정적인 사인이 될 만하지만, 사인은 아니다. 자신이 죽였다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 이미 절명한 자에게 그런 식으로 검흔을 남겨 놓는다.
그자는 후경관살(後頸貫殺)이라고 부른다.
이런 식으로 살인 표식을 남겨 놓는 자들은 살인에 미친 살인마가 대부분이다. 살인하지 않으면 좀이 쑤시고, 남들에게 자신의 살인을 자랑하고 싶어한다.
무인도 표식을 남겨 놓기는 한다. 하지만 일부러 남긴다기보다는 무공 특성 때문에 문파나 무공, 혹은 살인한 사람이 저절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꽃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사람을 죽여 놓고, 시신에 꽃을 놓았다.
“풋! 선전포고군.”
야천 대방 방주가 웃었다.
“저희 공격이 많이 막혔습니다. 구출, 협박, 암살. 모든 부분에서 절단당했습니다.”
“다른 방(幫)도 같은 처지인가?”
“아닙니다. 주로 저희 대망과 상망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일이삼 방은 완전히 차단당했고, 중망 쪽에서는 일부 차단된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이거…… 어디일 것 같아?”
대방 방주가 향유를 집어서 꽃냄새를 맡으며 말했다.
“취화원이 개입한 것 같습니다.”
“또?”
“…….”
흑수혈검이 대답하지 못했다.
꽃을 죽음의 표식으로 남겨 놓을 곳이라면 취화원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꽃을 남겨 놨으니 취화원을 생각하는 건 당연하고. 그걸 몰라서 묻는 게 아니잖아. 취화원이 왜 굳이 이런 꽃을 남겨 놓아서 타격 목표를 자청한 거지?”
“두 가지가 아닐까 합니다. 우리 정도는 자신 있다. 아니면 이번 기회에 두각을 드러내자.”
대방 방주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취화원이 요즘 급성장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우릴 만만히 볼 정도는 아니고. 또 요즘 같은 시대에 두각을 나타내서 뭐하게? 요즘은 몸 사리는 게 제일이야. 튀어나오면 두들겨 맞아. 특히 취화원은 허도기 눈에 띄면 박살 나.”
“…….”
“후후후! 생각 못 하겠지? 네 말이 맞아. 우릴 만만히 본 거고, 이번 기회에 두각도 나타내려는 거고.”
“…….”
흑수혈검이 미간을 찡그렸다.
별로 재미있지 않은 말장난이다. 같은 말로 아니라고 했다가 다시 맞는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을 죽인 곳에는…… 관원도 있어. 관원만 없다면 지금 내가 한 말이 맞는데, 관원이 있어서 네 추측대로 싸움을 벌일 수가 있는 거지.”
“관원…….”
흑수혈검이 중얼거렸다.
“관원을 죽인 수법과 우리 아이들을 죽인 수법이 달라. 누가 봐도 다른 사람이 살수를 쓴 거야. 관원을 죽인 자를 우리가 죽였다. 그러니 우리는 정당한 일을 한 거다.”
사실대로만 보면 방주의 말이 맞는다. 하지만 사실은 종종 변형되기 마련이다.
관원도 취화원 살수가 죽였다면? 관원이 야천 무인들을 잡아서 압송하고 있는데, 취화원 살수가 개입한 것이라면?
상황을 이런 식으로 변형시키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방주 말대로 관원이 있고 없고에 따라서 공격 내용이 확연히 달라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또 그렇다고 해서 취화원이 관원을 죽였다는 사실도 변하지 않는다.
일은 이미 그런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야천 무인들이 관원의 몸에 칼집을 냈다. 죽은 사람들과 비슷한 흔적을 새겨 놓았다.
시신을 보자마자 이건 좋지 않다는 느낌이 들어서 바로 작업시켰다. 이런 작업은 아주 기본 축에 속한다.
“어쨌든 취화원이 나섰다면 죽여야지. 흑수혈검, 가.”
“네. 가급적 빨리 다녀오겠습니다.”
흑수혈검이 고개를 숙였다.
야천 대방 방주가 취화원 살수를 잡을 칼로 대방 제일검인 흑수혈검을 보내는 것이다.
* * *
개울이 모여서 강이 되듯이, 작은 정보들이 모여서 큰 무더기를 이룬다. 큰 무더기 역시 흐르고 흘러서 더 큰 무더기로 뭉친다. 중원 전체의 정보가 된다.
이러한 조직 구조는 적랑대가 해 왔던 것이 아니다. 적랑대는 정보들을 모은 적이 없다. 모으려고 시도한 적도 없다. 자신이 보고 들을 것을 밀마로 남겨 놓으면 어떤 자가 와서 지우고 간다. 그러면 정보가 전달되었다고 생각한다.
적랑대 간자는 이 이상의 행동을 한 적이 없다.
이번에도 최말단 간자들은 변함없이 행동한다.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지만, 그것은 취합 과정에서 일어나는 위험과는 전혀 다르다.
밀마를 취합하는 자를 만들었다. 그렇지 않고는 빠른 정보 취합이 불가능하다.
물론 밀마를 취합하는 행동이 활달하고 적극적이다 보니 발각되는 경우도 많아진다. 그럴 경우, 최말단 간자들이 보낸 정보는 한순간에 날아간다.
하지 않았던 행동을 하면 아무래도 틈이 많이 생긴다. 그런 점을 알면서도 상당한 위험을 무릅쓰고 이런 행동을 하고 있다. 발각되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그렇게 모인 정보는 아삼에게 건네진다.
정말 중요한 일은 지금부터다. 아삼은 그렇게 모인 정보들을 분류한다. 공통된 행동을 한데 묶어서 살펴보면 야천의 움직임이 환하게 보인다.
구룡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 앉아서도 알 수가 있다.
무엇을 하는지 알면 대응하기도 쉽다.
이번에는 기존의 분류 작업에 한 가지 일을 더 한다.
취화원과 연관된 보고는 따로 추린다. 어떤 내용이라도 상관없다. 따로 분류한다.
두 번째는 취화원과 연관된 것이라고 짐작되는 보고를 추린다. 취화원과 연관되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무심히 흘려보낼 수 없다고 생각되는 부분이다.
세 번째는 야천의 대응으로 짐작되는 부분들을 추린다.
야천의 대응은 공격이 직접 일어나지 않는 한, 확인하지 못한다. 그래서 막연하지만, 반격이라고 생각될 부분으로 보이면 즉시 추려 놓는다.
“오늘 분, 다 정리했습니다.”
“뭐가 이렇게 많아!”
아삼이 눈살을 찡그렸다.
아걸에게 건네 줄 정보가 등짐으로 하나다. 그것도 오늘 분량만 그렇다.
“이걸 언제 읽어. 좀 추리하고 했잖아.“
“추린 게 이겁니다.”
“아이고! 모르겠다. 갖다 줘. 갖다 줘.”
아삼이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아걸은 등짐 가득 짊어지고 온 정보를 귀찮아하지 않고 반갑게 받았다.
스륵!
정보를 첫 장부터 차분하게 읽었다.
아걸의 집중은 굉장히 강하다. 아걸은 글을 읽을 때도 도신 일체를 시전한다. 글과 눈과 몸이 하나로 연결된다. 글을 읽는 순간에는 정신을 땅속에 묻어 놓는다.
어떤 생각도 일으키지 않는다. 오직 글만 읽는다.
정보를 읽다 보면 정보와 연관된 생각을 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도신일체가 되면 생각이 소멸한다. 눈이 글을 본다. 그것으로 끝이다. 그냥 글만 본다.
몰안이 글을 읽는 데도 작용한다.
이렇게 글을 읽으면 굉장한 집중력이 생긴다. 적을 맞이할 때와 마찬가지가 된다.
착! 착! 착!
아걸은 빠른 속도로 정보를 읽었다.
윗부분은 취화원이 공격한 내용이다. 어디서 누가 누구를 어떻게 죽였다. 그때 야천은 누가 무엇을 하던 중이었다. 대충 그런 내용들이다.
후반으로 가면 야천의 대응이 나타난다.
한데 이 대응 부분은 정확하지가 않다. 적랑대 살수들은 야천 상층부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래서 고위 무인들의 움직임을 보고 대응 추측한 부분이 많다.
아니, 적랑대 살수들은 추측조차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고스란히 전달했다. 정작 생각을 한 것은 모든 정보를 취합한 할배 쪽이다.
정보를 취합하고 분류하는 자들의 생각이 담겼다.
그러니 이 중에는 빠진 것도 있을 것이다. 정작 중요하지만 관계없다고 빼놓은 부분이 분명히 있다. 또 반대로 전혀 상관없는데도 상관이 있을 것으로 생각해서 끼워 넣은 부분도 있다. 모든 게 정확하지는 않다.
착! 착! 착!
아걸은 계속해서 읽었다.
스읏!
아걸은 정보를 모두 읽자 즉시 몸을 일으켰다.
하루 치 정보만 읽었을 뿐인데도 야천의 움직임을 알겠다.
야천은 굉장히 강한 공격을 펼칠 생각이다. 중망과 하망은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취화원 살수들에게 피해를 보았지만, 반격을 자제하고 있다.
반면에 대망과 상망은 표적 반격을 시작했다.
그중에 가장 신경을 거슬리는 부분은 대망이 항상 옆에 끼고 살던 흑수혈검이 방을 떠났다는 내용이다.
흑수혈검이 취화원 살수를 노린다면?
흑수혈검 같은 자는 암영검으로 상대할 수 없다. 흑수혈검의 무공은 중망이나 하망의 방주들을 능가한다. 무공으로만 말하면 상망 방주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한다.
야천에는 이런 자가 몇 명 있다.
구룡들조차 경외심을 갖고 대하는 진짜 야천의 칼들이다.
그들이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