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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330화 (330/600)

#330화. 第六十六章 당랑거철(螳螂車轍) (5)

“됐어. 이제 넌 끝났어.”

미령혈수가 지창수를 쳐다보며 말했다.

독기가 충분히 번졌다. 지창수는 이제 검조차 들고 있을 힘이 없다. 옆에서 봐도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 보인다.

“오(五) 사부님!”

소유검파 무인들도 지창수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움직이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화살이 날아오는 바람에 꼼짝도 하지 못했다.

“으……!”

지창수가 어금니를 으득 깨물면서 검을 쳐올렸다.

“끝났다니까.”

저벅! 저벅!

미령혈수는 전혀 방비하지 않은 채 걸어왔다. 지창수의 공격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이다.

“이이익!”

방패를 든 소유검파 무인들이 와락 달려들었다.

그들은 제법 머리를 썼다. 한 명이 방패를 들고 뒤따르고, 다른 한 명이 검을 휘둘렀다.

쒜에에엑! 탕탕탕!

철전이 날아와 방패를 두들겼다.

소유검파 무인들의 생각은 옳았다. 방패로 철전을 막는 동안, 다른 한 명이 공격할 수 있다.

문제는 공격하는 자가 미령혈수를 감당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감당할 수 없다. 지창수마저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자를 무슨 수로 감당하나. 그래서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 공격을 위장해서 오 사부 지창수를 빼내는 데 주력한다.

“웃! 후후! 그래도 의리는 있는데?”

미령혈수가 공격에 대응하지 않고 물러섰다. 가볍게 웃는 것이 데려갈 수 있으면 데려가라는 투다.

스읏!

공격하던 무인이 지창수를 붙잡았다.

그런데 오히려 지창수가 있는 힘을 다해서 무인을 밀쳐 냈다.

“물러서! 가라! 저놈…… 어서 가!”

“오 사부님! 윽!”

지창수를 데려가려던 무인이 가슴을 움켜잡으며 신음을 흘렸다.

그만 그런 게 아니다. 방패로 화살을 막던 무인도 털썩 무릎을 꿇었다. 마치 다리 관절이 저절로 뚝 부러진 듯했다.

슷!

어느새 미령혈수가 코앞에 섰다.

“백묘(白描)든 흑묘(黑猫)든 쥐만 잡으면 되는 거야. 쥐 잡는 데 색깔은 왜 따져.”

쒜에엑! 퍽! 퍼억!

검광이 흐르고, 무인 두 명이 털썩 쓰러졌다.

무인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검을 맞기 전에 두 명 모두 목을 움켜잡았다. 독기가 극성해서 숨을 쉴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슷!

미령혈수의 검이 지창수의 가슴을 겨눴다.

“이곳을 차지할 때는 매우 기분이 좋았을 거야. 그 기분 그대로 간직하고 가.”

쓰으으으읏! 푸욱!

검이 심장을 뚫었다.

지창수도 먼저 죽은 무인들처럼 비명을 지르지 못했다.

미령혈수는 검을 천천히 찔러 넣었다. 그러니 살을 찢고 들어와 심장이 뚫리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입이 저절로 벌어지고, 비명도 쏟아졌다.

그러나 모든 음성은 성대 아래로 가라앉았다.

‘지독한 독!’

지창수가 이승에서 떠올린 마지막 생각이다.

“으으!”

소유검파 무인들은 지창수가 당하는 것을 보면서도 은신처에서 나오지 못했다.

몸을 움직이려고 하면 여지없이 화살이 날아왔다.

숲 깊은 곳에서 자신들의 자세히 살피는 자들이 있다. 노궁에 화살을 재우고 모습이 드러날 때만 노린다.

“이익!”

이대로 있으면 당한다고 생각했는지 한 명이 재빨리 신형을 쏘아 냈다. 하지만 그는 몇 걸음 움직이지도 못하고 털썩 쓰러졌다. 화살이 머리를 꿰어 버렸다.

쒜에엑! 퍼억!

파공음과 화살에 적중당하는 소리는 화살이 몸을 뚫고 지나간 다음에야 울렸다.

소리가 화살보다 느리다.

그 사이, 미령혈수는 귀신이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움직였다.

그가 방패를 걷어 냈다. 그리고 검을 찔렀다.

방패 안에 숨어 있던 무인은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검에 찔렀다. 검이 찔러오는 데도 전혀 피하지 않는 기이한 모습을 보였다.

쓰윽! 쓰윽! 쓰으윽! 쿵!

미령혈수는 검을 천천히 찔러 넣었다. 급히 목숨을 취하지 않았다. 검이 몸 안으로 들어가면 자연히 표정이 일그러진다. 처절하게 찌푸려진다.

그런 모습을 즐기면서 찔렀다.

미령혈수는 악마의 화신이었다.

“독!”

아걸은 미간을 찌푸렸다.

적랑대는 야천이방이 대대적인 공격 준비를 마쳤다고 알려 왔다.

야천이방의 정예가 일시에 움직인다. 방주의 칼로 지칭되는 미령혈수도 같이 움직인다.

그렇다면 관원을 죽이는 것은 아니다.

야천이방의 정예가 일시에 들이칠 정도라면 그만큼 중요한 곳, 혹은 강력한 무인이어야 한다.

저들이 전력을 다해서 상대할 만한 무인은 없다.

야천이방이 정예를 총동원해서 빼앗을 곳은 있다. 야천이방 재원 중 절반은 안겨 주는 유수지다.

유수지는 호북성에 있다.

야천팔방 영역이지만 야천이방에게 내줄 수밖에 없었던 노다지 땅이다.

그래서 단숨에 달려왔는데, 어김없이 싸움이 벌어졌다. 야천이방이 공격을 시작했고, 꽤 주요하다 특히 철전을 이용한 포위, 그리고 미령혈수의 공격은 매우 사악하다.

미령혈수는 싸우기 전에 반드시 말을 건다.

말을 거는 동안에 미산을 뿌린다. 어떤 종류인지 모르겠는데, 일단 몸을 마비시킨다.

그가 말할 때, 주의해서 살펴보면 손가락이 퉁퉁 퉁겨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미산을 뿌리는 동작이다.

미령혈수는 상대를 가리지 않고 미산을 뿌린다. 무공이 높든 낮든 상관하지 않는다. 무조건 암산을 해서 움직임을 멈추게 만든다. 그리고 차분히 죽인다.

가장 확실하게 죽이는 쪽을 택했다고 하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미령혈수는 상대를 저항하지 못하게 만든 후, 죽임을 즐긴다.

아걸은 지창수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그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미령혈수의 검이 지창수의 가슴을 뚫고 들어간 후였다.

스읏!

아걸을 살겁을 막기 위해서 몸을 일으켰다. 아니, 일어서다 말고 다시 주저앉았다.

이 싸움…… 자신이 개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후후후후!”

미령혈수가 웃었다.

유수지 둑에서 무엇인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지창수를 죽일 때까지 그곳에 누가 있다는 걸 알지 못했으니 상당한 고수다.

그래도 미령혈수는 당황하지 않았다.

상대가 누군지 대충 짐작한다. 자신이 노리는 참새다. 참새가 사마귀를 잡을 때, 자신은 매가 되어서 참새를 공격한다. 그렇다. 취화원 살수다.

야천 이방 방주는 이번 공격을 철전수(鐵箭手) 포장(葡章)에게 맡겼다.

철전수 포장이 지창수를 공격하면, 취화원 살수가 나타나서 포장을 위협할 것이다. 그때, 상대방의 뒤통수를 가격하라는 것이 이번 공격 계획이다.

하지만 미령혈수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숨어 있을 필요가 있나. 네놈에게 잡힐 지창수도 아냐. 오히려 네 놈이 멱살을 잡히면 더 곤란해. 뒤에서 화살이나 날려. 공격은 내가 하지.”

굳이 싸움을 지켜보지 않아도 된다. 앞에 나서서 마음껏 검을 휘둘러도 참새는 나타난다.

미령혈수는 취화원 살수는 참새로밖에 보지 않았다. 그런 주제에 감히 매를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웃음만 나온다. 그래서 틀림없이 나설 것으로 생각했는데.

쉬이이잇!

바람에 옷자락 펄럭이는 소리가 들렸다.

미령혈수는 피식 웃었다.

취화원 살수는 여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들었는데, 그럼 오늘은 여자도 죽여야 하나?

미령혈수는 살수를 멈추고 바람 소리가 들린 곳을 쳐다봤다.

쉬이이잇!

생각한 대로 여인이 내려섰다.

“취화원?”

미령혈수가 대뜸 물었다.

“풋!”

나삼을 화려하게 입은 여인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 섭선을 꺼내 살랑살랑 부치며 말했다.

“사람은 왜 근본이 안 변하는지 몰라. 독개(禿疥), 당신은 싸움을 참 지저분하게 배웠네. 퉁구발 출신이라서 그런가? 아! 이건 말하면 안 되는 거지?”

“……”

미령혈수의 눈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퉁구발은 일전통과 같은 곳이다.

홍루에서 몸을 팔다가 나이가 들거나 병이 들어서 퇴기로 물러난 여인들이 운집한다. 몸 파는 대가는 일전이니, 일전통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미령혈수는 퉁구발에서 염병에 걸려 머리가 벗겨진 적이 있다. 그래서 대머리 독, 학질 개 독개라고 불렸다.

미령혈수가 퉁구발 출신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오직 한 명, 이방주 뿐이다.

이방주가 취화원에 정보를 흘렸을 리는 없고…… 어렸을 적에 형옥을 들락거렸는데, 그때 기록이 남아 있는가 보다. 그렇다면 정보 출처는 전보영이다.

“후후! 오늘 죽일 자들이 많군.”

톡! 톡!

미령혈수가 손가락을 톡톡 쳤다.

여인은 미산이 뿌려진 줄도 모르고 섭선을 부친다. 부채질로 바람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겨온다. 밖으로 밀어낸다고 해도 상관없지만.

미령혈수는 입술을 비틀며 웃었다.

“취화원 살수라…… 내가 죽으면 내 시신에도 꽃을 올려놓을 생각이었나?”

슷!

여인이 허리춤에서 노란 국화를 꺼내 땅에 놓았다.

“산국이라. 오다가 길에서 꺾어 왔나? 성의가 없군.”

“산국화의 꽃말은 순수한 사랑이야. 뭐가 어때서? 퉁구발 출신이라고 해도 순수하다는 말의 의미 정도는 알잖아?”

여인은 계속해서 미령혈수의 비위를 건드렸다.

미령혈수는 도발하지 않았다. 아직 독기가 작용하지 않고 있다. 지금쯤 사지가 무력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을 텐데, 전혀 표정 변화가 없다.

톡! 톡!

미령혈수는 다시 손가락을 튕겨 냈다.

지금도 미산이 충분하게 던져졌지만, 너무 멀쩡해 보여서 독을 추가했다.

스읏!

여인이 섭선을 접어서 허리춤에 꽂으며 말했다.

“우리가 정겨운 연인도 아니고…… 이 정도면 인사치레도 한 것 같고, 싸워야지? 서로 더 할 말도 없잖아? 이야기가 길어져 봤자 퉁구발 이야기만 나올 텐데. 아!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었는데. 아무리 몸을 판다고 해도, 어떻게 어머니를 죽여?”

스읏!

미령혈수는 검을 들어 올렸다.

독기가 충분히 퍼진 것 같지는 않지만, 인제 그만 싸워야겠다. 더 말을 나누기가 싫다.

스릉!

여인이 검을 뽑으며 말했다.

“상군, 제 검을 봐주세요. 틈을 많이 보완했는데, 상군 보기에는 어떤지.”

“상군? 다른 자가 또 있나?”

“넌 신경 쓸 것 없어. 아! 그리고 네가 뿌린 독, 내겐 통하지 않아. 너무 치졸한 놈들이 많아서 아예 문밖을 나설 때 피독단을 복용하고 나서거든.”

“뭣!”

“최선을 다하라고. 본신 무공도 꽤 강해 보이는데, 왜 치졸하게 독을 쓰고 그래?”

그는 한령검법(寒靈劍法)을 수련했다. 마음을 얼음처럼 차게 굳힌 후에 검을 떨친다. 마음이 얼어붙었기 때문에 육신에 대한 미련도 없다. 오직 적을 죽이는 데만 집중한다.

한령검법은 안위를 돌보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상처를 입는다.

미령혈수가 미산에 의존하기 시작한 것도 상처를 입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본신 무공을 완전히 드러내야 한다. 취화원 살수는 그 정도 강자다.

쒜에에엑!

미령혈수가 검초를 떨쳐 냈다.

검초가 여인을 휩쓸어 갔다.

물론 미령혈수의 전신이 텅 비었다. 복부가 제일 크게 눈에 들어온다. 가슴과 얼굴도 보인다. 하반신도 환히 드러났다. 틈이 너무 많아서 어디를 쳐야 할지 모르겠다.

상대방의 검이 허점을 노리며 달려들 때, 한령검법은 벼락같이 검초를 변화시킨다.

몸을 내주고 살을 취한다.

그런데, 여인은 달랐다. 여인은 검을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마치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멀거니 검초를 쳐다본다.

‘싸울 생각이 없다!’

번개처럼 머릿속을 스쳐 간 생각이다.

그래도 한령검법은 용서가 없다. 마음이 얼어붙어서 일말의 동정심도 느끼지 못한다. 자신의 육신에 애착이 없는데, 다른 사람의 육신인들 아낄 리 있나.

쒜에에엑!

검이 여인이 머리를 후려쳤다. 순간,

팟!

여인이 사라졌다.

절체절명의 순간, 몸과 검이 동시에 움직였다.

미령혈수의 눈에는 마치 여인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환술의 절정이다.

퍼억!

검이 배를 찢었다. 가슴을 쳤다. 목을 치고 머리도 그었다.

사검이 거의 동시에 흘러나왔다.

“좋군요. 하지만 너무 빨리 움직였어요. 조금만 더 기다렸다면 완벽한 사생락이 되었을 텐데.”

“그런 말 할 줄 알았어요. 더 기다리라는 건 제겐 너무 무리한 요구에요.”

“하하! 잠시 본 본 사이에 놀라운 발전을 했군요. 이곡주님.”

어디선가 낭랑한 사내 음성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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