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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332화 (332/600)

#332화. 第六十七章 낭추(囊錐) (2)

음산사마도 이런 식으로 찾아졌다.

팔룡은 아걸이 왜 야천을 휘저었는지 이제야 이유를 알았다.

전보영을 동원해서 야천 기반까지 뒤집은 것은 좀 너무했다 싶었다. 야천을 이렇게까지 뒤집어 놓고 음산사마에 대한 정보를 어떻게 찾으라는 말인가.

하지만 결과적으로, 과거 음산사마를 어떠한 경로로 찾아갔는지 너무 쉽게 알았다.

팔룡 자신이 방주이기 때문에 알게 된 사실이다.

구룡회에서 나눈 말은 방주들밖에 알지 못한다.

이제 곧 대방이 항복 각서를 보낼 것이고, 성검문은 구룡 앞으로 명령서를 보내올 것이다.

어떤 미사여구를 붙여도 야천과 성검문의 관계는 부리는 자와 부림을 받는 자에 지나지 않는다. 명령서와 보고서만 주고받게 될 것이다.

아걸이 원하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지금 벌어지는 일, 성검문이 야천 구룡에게 전하는 명령일 것이다.

허도기가 무슨 일을 벌이려고 하나?

또 하나는 과거에 성검문에서 벌어진 일의 전모다.

아걸은 허도기를 주시하라고 하지 않았다. 음산사마에 대한 모든 정보를 찾아내라고 말했다. 미래를 말하지 않고 과거에 집착한 듯한 말이다.

음산사마에 대한 정보를 찾아내라는 명령은 아직도 유효하다.

단순히 정보를 찾아내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야천이 음산사마를 찾아내서 성검문에 내준 증거까지 필요하다. 물론 증거라는 게 남아 있다면 말이다.

팔룡은 탁자 위에 놓인 밀서 두 통을 보고 잠시 멍해졌다. 한순간 아무 생각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게 전부냐?”

“네.”

혼사가 대답했다.

“빠진 건 없고?”

“네. 이게 전부입니다.”

혼사가 다시 대답했다.

혼사가 보고를 빠트릴 리 없다.

이번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어서 혼사 역시 온 신경을 집중시켰을 터이다.

다섯 개 방파…… 일방, 이방, 삼방, 사방, 육방…… 이렇게 성검문 사건과 연관 있는 다섯 개 방파에서 움직인 수하가 모두 스물일곱 명이다.

밀서가 스물일곱 통이 왔어야 한다.

‘밀서가 오지 않았다면 사람이라도 왔어야 해. 이럴 수는 없어.’

단 두 통!

그것도 사방에서만 두통이다. 대방과 이방, 삼방, 육방에서 움직인 수하들은 일절 소식을 보내오지 않았다.

스물다섯 명이 활동하지 않았을 리는 없다.

활동했고 척살 당했다.

그들 중 최소한 서너 명쯤은 죽는 것이 두려워서 이실직고했을 가능성이 크다. 한두 명쯤은 자진하지 못하고 잡혀서 고문을 받았을 것이다.

전부 다 자진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최악이군.’

팔룡은 눈앞에 캄캄했다.

이런 경우를 생각하고 움직였지만, 막상 가장 좋지 않은 상황이 눈앞에 닥치자 숨이 탁 막혔다.

이제 어떤 식으로든 팔방에 문책이 떨어질 것이다. 아니면 즉각적으로 공격을 가해 올지도 모른다.

야천 율법에 따르면 구룡회가 벌어지고 있을 때는 야천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싸움, 분쟁을 멈춰야 한다. 정보 수집은 물론이고 교류조차도 금한다.

타 방파에 대한 모든 행위를 중지한다.

방주들이 구룡회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방의 안전을 도모해 놓은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직접 수하를 움직였으니.

더욱이 수하들이 찾은 것은 음산사마에 대한 정보다. 허도기에게 백기 항복을 하는 순간인데, 허도기와 관계된 옛날 사건을 수소문했다.

이건 쉽게 넘어가지 못한다.

물론 간자들을 움직일 때 이런 경우도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이 실패할 줄은 몰랐다. 최악이라도 절반은 살아남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말이다.

“훗!”

팔룡은 피식 웃었다.

자신이 야천을 너무 얕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방이나 이방, 삼방을 팔방처럼 생각했던 것이 오산이다. 하기는 자신만 해도 다른 방파에서 보낸 간자들을 환히 꿰고 있는데, 다른 쪽이야 오죽하겠나.

“내 실수가…… 컸어.”

팔룡은 자책하면서 밀서를 열었다.

밀서의 밀서 한 통에는 피가 묻어 있다.

밀서를 보내면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밀서를 보낸 자는 죽었다.

“음!”

밀서를 읽던 팔룡의 안색이 와락 일그러졌다.

피 묻은 전서만큼이나 내용도 답답하다.

성검문 사건이 있기 두 달 전, 야천사방에서 사자참군(死者慘君)이라는 자를 내보냈다. 그 후, 음산사마가 움직였다. 사자참군과 음산사마가 연관 있어 보인다.

이것이 밀서 내용 전부다.

사자참군과 음산사마가 어떤 연관이 있는지, 허도기와는 어떤 관계인지 전혀 기재되어 있지 않다.

이 정도를 알아내기 위해서 목숨을 던졌다.

사자참군이 야천이방 사람이라는 것은 팔룡도 알고 있다. 이미 오래전 사람이지만 무공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지금도 야천에서는 전설처럼 말하곤 한다.

사자참군은 성검문 사건이 벌어진 해에 실종되었다.

은거했는지, 죽었는지…… 야천사방 방주가 입을 꾹 다물고 있으므로 알 방법이 없다.

또 한 통의 밀서는 깨끗하다. 피 같은 것이 묻어 있지 않다.

- 당시(當時) 야천사방(夜天四幫) 제일검(第一劍) 팔로검사(八路劍士) 성검문(聖劍門) 파견(派遣). 이후(以後) 실종(失踪).

그 당시, 야천에는 날카로운 칼들이 제법 많았다.

야천사방만 해도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칼이 네 명이나 있었다.

팔로검사, 사자참군, 화염도객(火焰刀客), 견혈풍자(見血瘋子).

팔로검사가 이십여 년 전에 실종된 사실은 팔룡도 알고 있다. 하지만 실종되기 직전, 성검문에 파견되었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음!”

팔룡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성검문 사건은 너무 유명한 사건이라서 잘 알고 있는데, 팔로검사가 그 사건에 개입했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면 성검문에 파견된 팔로검사는 어디에 있나?

그러고 보니 대방 방주가 묘한 말을 했다.

야천에서 제일 좋은 칼을 허도기에게 보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칼받이에 안 된다. 야천에서는 절정이라는 자들인데 크게 쓰이지도 못한다.

칼받이? 누구의 칼받이인가?

성검문 사건에서 또 다른 싸움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없다. 각 방에서 파견 나간 칼들은 도대체 누구의 칼받이가 되었던 것인가.

스물일곱 명이 목숨을 던져서 얻은 두 통.

이런 내용이 아걸에게 도움이 될까?

팔로검사와 사자참군은 찾지 못한다. 그야말로 완벽하게 실종되었다. 그 당시 사정을 알고 있을 화염도객과 견혈풍자는 더더욱 찾을 수 없다.

화염도객은 청성파(靑城派) 장로와 시비를 벌이다가 소청검법(小靑劍法)에 죽었다. 견혈풍자는 사천당문(四川唐門)의 암기에 벌집이 되어서 절명했다.

네 명 모두 현재는 찾을 길이 없다.

“모두 들어.”

팔룡이 무심히 말했다.

“너희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을 테니까 긴말은 하지 않겠다. 야천에 등을 돌린 자는 살아남지 못한다. 빠지고 싶으면 빠져도 좋아.”

“섭섭한 말씀을 참 쉽게 하십니다.”

적풍이 말했다.

팔룡은 적풍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 말했다.

“상황이 이러니 나한테 의리 지키라는 말은 못 하겠다. 빠지고 싶은 자들은 빠져라.”

팔룡 주위에는 무인 몇 명이 남아 있다.

십리 중에 네 명이 있다. 호법도 다섯 명이나 있다. 아홉 명 모두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다.

제이선으로 내려가면 믿을 수 있는 자가 많지 않다. 수하 중 칠할 내지 팔 할은 떨어져 나갈 것으로 생각된다.

파락호에게 야천은 하늘이다. 하늘에 거역하는 일은 정말로 생각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제 곧 야천 전체와 전쟁을 벌일지도 모를 상황이 되었다.

수하 중 아걸의 신위를 본 자들은 생각을 바꿀 수도 있다.

방갓 무인의 무공은 그야말로 신이었다. 반면에 허도기의 무공은 본 적이 없다.

절정 무공을 볼 줄 모르는 자들은 방갓 무인을 더 높게 생각할 수도 있다. 방갓 무인 정도 되면 영원히 패배를 모르는 무적인간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야천과 전쟁을 벌이더라도 배신하지는 않을 것이다. 방갓 무인이 도와주면 타 방파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할 테니까. 팔룡이 아삼에게 했던 말처럼.

팔룡이 말했다.

“정말로 강요는 하지 않는다. 떠날 사람은 내일 조회 때 오지 않으면 된다. 다시 말하지만 어떠한 보복도 없다. 분명히 말하지만 남는 자는 야천과 싸워야 해. 지금 바로 명령을 내려야 할 것들이 있는데…… 내일 아침에 하지.”

팔룡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홉 명 모두 왔다.

그래도 이들이 의리는 지켰다.

“후후! 내가 그동안 잘 살아왔던 모양이군.”

“이제 명령을 주십시오.”

비표비리가 충혈된 눈으로 말했다.

비표비리는 아예 돌아가지 않았다. ‘물러가라’라는 말에 문밖으로 나가서 대기했다. 그리고 날이 밝자, 바로 들어섰다.

“혼사.”

“네!”

팔룡은 혼사에게 밀지 두 통을 내주었다.

“지금 즉시 이걸 방갓 무인에게 전해.”

“네!”

“너희는 오늘 안으로 간자들을 모두 제거해. 긴가민가 의심되는 자들까지 모두 정리해. 취혼(醉魂).”

“네.”

“너는 여기 남아 있어. 적랑대 사람 중에 신분이 드러난 자는 우리 팔방으로 숨어들 거야. 그들을 수습해서 아삼에게 보내.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해.”

“알겠습니다.”

늘 술에 취해 있는 호법, 취혼이 대답했다.

팔룡은 완전히 틀을 바꿨다.

지금부터는 야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야천에 검을 든다. 하기는 간자들이 발각된 상황이라면…… 팔룡은 싸우지 않으려고 해도 대방이 먼저 검을 뽑을 것이다.

명령을 듣는 아홉 명은 싸늘한 한기를 느꼈다.

정말로 야천과 갈라졌구나. 정말 싸우는구나.

그들은 비로소 자신들 앞에 어떤 싸움이 기다리고 있는지 절감했다.

* * *

“하! 이거 참……”

흑후가 밀지를 앞에 놓고 난감한 듯 혀를 찼다.

밀지는 야천이 보내왔다.

내용을 읽어 보지 않았지만, 어떤 글이 적혀 있는지는 익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백기 항복이다.

어떠한 대가도 원하지 않고 오직 성검문의 보호만을 원한다는 서신이 분명하다.

“일이 또 이렇게 돌아가나?”

세상일이라는 게 참 재미있게 돌아간다.

방갓 무인…… 아걸로 짐작되는 자가 전보영을 움직여서 야천을 쳤다. 야천이 그들을 다시 공격했고, 그러자 취화원이 뒤를 쳤다. 야천에 가장 잘 드는 칼로 취화원을 급습하려다가 덜미를 잡혔다.

철전수와 미령혈수가 죽었다는 소식은 흑후도 전해 들었다.

한 마디로 되잡혔다.

이 사건 하나로 야천은 백기 투항이다.

방갓 무인과 취화원, 적랑대는 분명히 허도기 반대편에 서 있는데, 그들의 행동이 오히려 허도기를 도와주었다.

허도기가 배짱을 부려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너희들 존재 가치를 보이라고 했다.

정말 배알이 틀리는 말이다. 기분 나빠서라도 등을 돌리고픈 말이다.

그런데 야천은 그 말조차도 어떻게 하지 못했다.

존재 가치를 전혀 보이지 못하고 무조건 살려 달라는 식으로 항복 서한을 보내왔다.

“이렇게 되면 내 역할도 싱거워지는데. 이거 야천이 왜 이렇게 맥을 못 추지? 원래 이랬나? 이게 아닌데.”

흑후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야천의 생명력은 무공의 강함에 있지 않다. 무공까지 강했으면 벌써 중원 천하를 넘봤다. 정도 무림이나 관부에 핍박당하면서 밑바닥을 전전하지는 않을 것이다.

야천의 강함은 끈끈함에 있다.

질기디질긴 생명력!

야천은 그런 생명력을 전혀 발휘하지 않았다.

죽여도 죽여도 계속해서 달려드는 집착, 한시도 두 발 뻗고 잠들지 못하게 만드는 악귀 근성, 칼에 맞아도 욕지거리를 내뱉는 처절함…… 이런 것들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

흑후는 야천의 생각을 읽고 있다.

더는 피해 보지 않겠다는 거다. 어차피 허도기의 청을 거부하지는 못하니, 이쯤에서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더불어서 우리가 완전히 머리를 숙였으니 이제는 성검문이 호의를 베풀어 달라고 한다.

관부를 조용히 만들어라.

야천에서 빼앗아간 영역을 다시 돌려달라.

형옥에 갇힌 동료를 석방하라.

취화원이 날뛰고 있는데 조용히 시켜라.

서신에는 그런 내용이 매우 비굴하게 적혀 있을 것이다. 머리를 숙이면서 이득을 보겠다는 거다.

“이게 될까? 어쨌든 움직이긴 해야겠군. 일이 영 재미없게 됐어. 공부도 이 정도 속내는 빤히 읽을 텐데.”

흑후가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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