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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334화 (334/600)

#334화. 第六十七章 낭추(囊錐) (4)

야천대방 방주의 저택은 ‘황 노인 집’이라고 불린다.

평지에 세워졌고, 가산은 없다. 이 층으로 지어진 집도 없다. 전부 단층이다. 담장도 벽돌로 쌓지 않았다. 싸리나무로 만든 울타리가 전부다.

하지만 황 노인의 집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철옹성이다.

무인이 두 명, 세 명씩 짝을 지어서 순찰한다. 정문이나 측문, 후문에는 대여섯 명씩 배치되어 있다. 이런 식으로 경계서는 무인만 백여 명에 이른다.

무림에서 경시하는 말을 그대로 사용하면 ‘파락호들의 우두머리’에 불과한 집인데, 어떤 고관대작의 저택보다도 많은 무인이 집 주위를 경계한다.

집 안에서 대기하고 있는 인원도 있다. 그 수도 거의 백여 명에 이른다.

어떤 일이 터지면 즉시 이백여 명이 일시에 달려 나온다.

이들 출신은 제각각이다. 파락호도 있지만, 무인도 상당히 많다. 흑도 무리만 있는 것도 아니다. 정도 문파 출신도 다수 보인다. 물론 파문당한 자가 대부분이다.

출신을 가리지 않고, 무공 여부도 가리지 않는다. 선발 기준은 오로지 싸울 줄 아느냐 하는 것이다.

들리는 말로는 이들은 모두 살인 경험이 있는 살인마들이라고 한다. 가장 적게 죽인 자가 두세 명이고 많게는 이십여 명을 죽인 자도 있다고 한다.

사람을 죽이는 데 서슴지 않는다는 거다.

“정신 바짝 차려!”

“네! 개미 새끼도 얼씬거리지 못할 겁니다.”

순찰하는 자와 경계서는 무인들의 대화가 들렸다.

방주는 호수로 나갔다.

황 노인의 집에는 인공으로 조성된 호수가 있다. 저수지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만큼 크고 넓은 호수를 파 놨다.

호숫가에는 배도 준비되어 있다.

혼자 젓는 일인용 작은 소선부터 십여 명이 탈 수 있는 큰 배까지 십여 척이나 묶여 있다.

방주는 호숫가에 서서 살랑거리는 물결을 쳐다봤다.

이제 흑후가 돌아오면 야천은 철저히 굴종해야 한다. 이런 결정을 자신이 주도했으니 후회는 없다. 다만 야천이 치를 대가가 너무 혹독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공부는 어떤 명령부터 내릴까? 어떤 명령이 되었던 무조건 수행해야 한다. 예전 같으면 조건이라도 내걸었지만, 지금은 조건 없는 항복이다.

정말 웃기다. 치고 들어온 건 다른 쪽인데 공부에게 사정을 하다니. 다른 곳에서 치고 들어왔기 때문에 공부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지만…… 공부가 너무 차가워서 탈이다.

“야비(野鄙)는 어느 정도나 완성되었지?”

방주가 물었다.

“당장이라도 쓸 수 있습니다.”

흑수혈검이 대답했다.

“쓸만한 정도 가지곤 안돼. 처음 우리가 생각했던 대로 철저한 살인 집단이 되어야지.”

“…….”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

“적어도 일 년은…….”

“시간을 앞당기자. 희생이 따르더라도 출문 시간을 당기도록 해. 목숨 떨어진 다음에 명도(名刀)가 나와 봤자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쓸 수 있을 때 쓰자.”

“네.”

흑수혈검이 대답했다.

대방 방주는 어금니를 잘끈 깨물었다.

그동안 대방이 손 놓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무림 각파에서 비급을 빼냈다. 돈 주고 빼낸 것도 있고, 협박해서 뜯어낸 것도 있다. 몰래 숨어 들어가서 훔쳐 온 것도 있다. 가짜 제자를 입문시키기도 했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비급들을 빼냈다.

그런 비급으로 무인을 양성하고 있다. 야비계(野鄙界)라는 계획을 수립해 놓고 무인을 수련시킨다.

그들이 무림에 들어서는 날, 야천은 새로운 비약을 한다.

흑수혈검 같은 무인이 십여 명이나 확 늘어난다면 당장 야천 전체를 흡수통일 할 수 있다.

그때는 구룡회가 필요 없다.

야천은 하나로 통일되어야 한다.

지금 충돌하면 너무 희생이 크기 때문에 서로 자제하고 있다. 어느 방파도 구룡을 흡수할 능력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언젠가 진짜 강자가 나타나면 모두가 굴종해야 한다. 알고 있다.

다른 방파도 대방의 야비계와 비슷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제대로 되는 방파도 있고, 실패한 곳도 있지만…… 현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은 모두가 한다.

그때를 대비해서 허도기에게 굴종하는 것이다.

대방의 전력을 훼손하면 안 되기 때문에 참는다. 하지만 공부의 요구가 대방의 희생을 크게 요구한다면…… 그때도 굴종할 수는 없겠지.

‘다른 팔룡과도 부딪쳐야 하고, 어쩌면 공부와 부딪칠 날도 빨라질 것 같은데…… 흠!’

대방은 침음했다.

지금 당장 급한 것은 없다. 허도기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전력을 강화해 간다.

흑후에게 항복 문서를 보낸 것은 잘한 결정이다. 그때였다.

“아악!”

“크아아아악!”

멀리 정문 쪽에서 난데없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응?”

방주가 고개를 돌려 정문 쪽을 쳐다봤다.

물론 정문이 보이지는 않는다. 탁 트인 평원이지만, 호수 주위로 집들이 늘어져 있어서 시야가 가린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겠습니다.”

흑수혈검이 즉시 신형을 날렸다.

“아아악!”

“끄으으윽!”

비명이 끊이지 않고 터져 나왔다.

분명히 누군가가 기습을 가해 왔다. 감히 황 노인의 집을 들이쳤고, 사람을 죽인다.

‘누구냐! 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방주는 미간을 있는 대로 찡그렸다.

“멈춰라!”

흑수혈검은 고함부터 내질렀다.

흑의인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굉장히 날렵하다. 빠르다. 또 표독하다. 검을 휘두르는 데 전혀 사정을 두지 않는다. 마치 닭 잡듯이 가볍게 검을 쓴다.

흑의인은 모두 다섯 명이다.

정 중앙에 한 명이 있고, 다른 네 명이 각각 좌우에서 복면인을 호위한다.

비명을 만들어 내는 자들은 좌우에 있는 흑의인들이다. 가운데 있는 자는 검도 뽑지 않았다. 대방 무인들이 접근조차 못 하고 있다는 증거다.

쒜에엑! 퍼억!

“크악!”

흑의인이 검을 휘둘렀고, 무인 한 명이 절명했다.

흑의인들은 멈추라는 말을 듣고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하기는 말을 들을 이유가 없다. 수하도 아니니.

그들은 거침없이 검을 휘둘렀고, 주위에 있던 무인이 비명을 토하며 쓰러졌다.

“멈춰!”

흑수혈검이 다시 일갈을 내지르며 달려갔다.

평범한 자들이 아니다. 대방 무인을 종이 인형처럼 구기고 있다.

일대일 승부라면 충분히 눕힐 수 있다. 이 대 일이라면 싸워 봐야 알겠고, 삼 대 일은 버겁다. 사 대 일? 자신 없다. 저런 자들에게 포위당하면 여지없이 당한다.

흑의인들은 두말할 필요 없이 절정 무인들이다.

더욱이 흑의인 중에는 아직도 검을 뽑지 않은 자가 있다.

주변에서 울리는 비명을 전혀 개의치 않고 태연히 걸음을 옮기고 있는 자.

그자는 더 날카롭다.

‘세상에 이런 자가!’

흑수혈검은 사내를 보자마자 위축되는 자신을 느꼈다.

검을 쳐 내야 하는데 쉽게 겨눠지지 않는다. 싸우기도 전에 투지부터 소멸시킨다.

대단한 악기(惡氣)다.

단지 기운만으로 상대를 짓누른다.

“멈춰! 멈춰!”

흑수혈검이 급하게 말하며 손을 들어 올렸다.

일단 대방 무인들부터 제지했다. 흑의인들은 대방 무인들과는 질이 다른 부류다.

‘이런 자들에게 덤벼들면 몰살당해.’

대방 무인들이 일제히 멈춰 섰다.

흑수혈검은 검을 뽑아 들고 흑의인들 앞으로 걸어갔다.

“뉘신…… 웃!”

흑수혈검은 말을 하려다 말고 급히 검초를 쏟아 냈다.

쒜에에엑! 쒜에에엑! 까앙! 깡! 깡! 깡!

흑의인과 흑수혈검은 격렬하게 검을 부딪쳤다.

흑수혈검이 막 말을 하려고 할 때, 흑의인 중 두 명이 앞으로 불쑥 나섰다. 그리고 말을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다짜고짜 검초를 쏟아 냈다.

흑수혈검을 전력을 다해서 검초를 펼쳤다.

그들은 순식간에 십여 합을 교환했다.

상대도 빠르지만, 흑수혈검도 빠르다. 상대도 강하지만 흑수혈검도 강하다.

이 대 일 싸움, 해봐야 아는 싸움.

쒜에에엑! 까앙! 깡! 깡!

또다시 십여 초가 지나갔다.

그 사이, 다른 흑의인들이 흑수혈검을 지나쳐서 안쪽을 향해 걸어갔다.

“웃!”

흑수혈검이 급히 신형을 뽑으려 했지만, 검에 가로막혔다.

쒜에엑! 쒜엑! 쒜에엑!

검이 무지막지하게 날아온다. 말도 하지 않고, 숨소리도 흘리지 않고 검만 쓴다.

‘이놈들, 누구야!’

누군데 이토록 강한가? 흑수혈검은 강호상에 이런 자들이 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상대가 쓰는 검은 검신이 굉장히 좁은 협검(狹劍)이다. 또 검신이 연검(軟劍)처럼 낭창거린다.

연검 형태의 협검은 검초를 쏟아 낼 때, 파공음이 더욱 날카롭다. 소름 끼치도록 날카로운 소리라고 할까? 마치 면도날로 종이를 찢는 듯한 소리다.

검초도 무척 특이하다. 검을 사용하면서 채찍의 효용도 섞었다. 검인지 채찍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래서 더 막기가 어렵다.

적랑대? 취화원?

흑수혈검은 야천대방을 공격할 만한 자들을 떠올려 봤다. 하지만 그들 중에 이런 자들은 없다.

다른 것은 몰라도 한 가지만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이들은 결코 광명정대한 자들이 아니다. 정도 쪽보다는 사도 쪽 인간들이다.

이들의 검은 정도에서 벗어나 있다.

매 검초에 죽음이 담겨 있다. 검초를 펼치면서 상대방의 목숨을 노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검초는 살기가 짙다고 말하지 죽음이 담겼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이들은 초식을 전개할 때마다 자신들의 죽음을 담았다.

자신의 생명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검을 쳐 낸다.

야천에도 이런 검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들처럼 생명을 완전히 도외시하고 달려들지는 않는다. 이들은 방어할 바에는 차라리 공격을 한 번 더 하겠다는 투로 달려든다.

흑수혈검이 마음을 독하게 먹으면 당장 피가 튄다.

그의 검은 흑의인들 중 한 명을 베어 낼 것이다. 몸을 전혀 가리지 않고 달려드니 치기도 쉽다. 하지만 그 순간 자신은 더 큰 일격을 얻어맞는다.

“으!”

흑수혈검이 신음했다.

지금 검집에서 검조차 뽑아내지 않은 사내와 다른 두 명이 대방을 향해 걸어간다.

저벅! 저벅!

그들은 대방에 있는 위치를 정확하게 한다. 대방이 호수에 있다는 걸 알고 호수로 간다.

“휘이익! 휘이이이익!”

흑수혈검은 휘파람을 길게 불어 냈다.

대방 방주에게 보내는 신호다. 저들의 발길을 막지 못하니 전갈이라도 보내야 한다.

위기!

대방과 약조한 신호다.

휘이익! 휘이이이익!

진기 실린 휘파람 소리가 찢어질 듯 길게 들려온다.

방주는 눈살을 찌푸렸다.

흑수혈검이 위기를 알려 왔다.

흑수혈검은 무공이 무척 강하다. 솔직히 중원 어디에 내놔도 좋다고 자부한다. 무림 대방파 장문인이나 장로들과 손속을 겨뤄도 밀리지 않는다.

흑수혈검은 실제로 곤륜파(崑崙派) 장문인과 싸워 본 적이 있다.

장문인의 곤륜삼원검(崑崙三元劍)이 흑수혈검의 복부를 후려쳤다. 그래서 지금도 흑수혈검의 복부에는 늑대 발톱에 할퀸 것 같은 흉터가 남아 있다.

곤륜삼원검은 탄금기법(彈琴技法)을 가미해서 전개하는 곤륜파의 상승 검술이다.

검발금음(劍發琴音), 초식을 전개할 때 터트리는 금음을 가미시킨다. 이 음공(音功)은 내경변가상인어무형(內勁便可傷人於無形), 무형의 내기로 사람을 살상할 수 있다.

흑수혈검도 온전히 당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당연히 반격했다. 귀혼십이검(鬼魂十二劍)의 정수를 펼쳐서 장문인의 허벅지를 뼈가 드러나도록 베었다.

지금도 곤륜파 장문인은 다리가 불편하다. 약간 절룩거린다. 흑수혈검에게 받은 일격 탓이다.

그 싸움 때문에 흑수혈검은 정도에서 마인으로 낙인찍혀 추격까지 받았다. 결국, 야천까지 굴러들어 와서 대방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지만, 무공만큼은 단연 압권이다.

그런 흑수혈검이 위기라고 신호를 보내왔다.

그렇다면 정말 위기다.

스읏!

방주는 배에 올라탔다.

방주가 언제 배에 오를지 모르기 때문에 배에는 하인 두 명이 항시 노를 잡고 대기한다.

“호심으로 가자.”

“네!”

하인들이 급히 노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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