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335화 (335/600)

#335화. 第六十七章 낭추(囊錐) (5)

삐걱! 삐걱! 삐걱!

배가 호심을 향해 나아갔다.

대방 방주는 뒷짐을 진 채 호숫가를 쳐다봤다.

세 명이 느린 모습으로 호숫가에 나타났다. 흑의를 입은 자들인데, 절대로 서둘지 않는다.

두 명이 검을 휘두른다.

쒜에엑! 쒜엑!

“크아아악!”

검광이 터지고, 비명이 쏟아진다.

‘황 노인의 집’에서 울려 퍼진 비명은 저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저 검법은!”

방주가 눈살을 찌푸렸다.

흑의인들이 쓰는 검법은 절전 된 지 오래된 원령검법(怨靈劍法)이 아닌가 싶다.

‘원령검법이 틀림없어.’

틀림없다고 생각은 하지만 대방 방주도 확신하지는 못한다. 원령검법은 소문만 무성한 검공이라서 현존하는 무공인지 자신하지 못한다. 다만 저들이 쓰는 검을 보고 원령검법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한 것뿐이다.

원령검법을 실존검법이라고 인정하려면 마유(魔乳)라는 마인 집단도 인정해야 한다.

생후 삼사일 정도 지난 갓난아기의 유방에서 젖 비슷한 액체가 흘러나온다. 이것을 마유라고 한다. 또는 귀신의 젖이라고 해서 귀유(鬼乳)라고도 한다.

마유라는 마인 집단은 ‘태초의 마도’를 표방한다.

자신들이 마도 원류라는 것이다. 당연히 자신들이 사용하는 무공도 마공 원류다.

원령검법이 마도 검공의 원류라고 주장한다.

마유라는 마도 집단이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원령검법을 이 세상에서 분류되지 않은 전혀 다른 종류의 인간들이 수련한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오직 살인에만 미친 자들이 수련하는 검이다.

저들은 사람 죽이는 것밖에 원하는 게 없다. 부귀영화도 살인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버린다. 부모·형제, 처자식을 버리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죽이는 것은 아니다.

저들은 강자만 찾아다닌다. 강자를 찾아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죽인다.

이것이 마유의 전통이다.

중원에도 강자만 찾아서 겨루는 칼이 있다. 일홀도라고 한다. 일홀도 역시 풍문만 무성한 칼이지만, 그래도 일홀도는 오직 칼로만 싸운다.

마유는 말 그대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상대를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죽이는 것이 목적이다.

“아!”

대방 방주의 안색이 침울하게 굳어졌다.

“크악!”

“아아악!”

대방 무인들이 펑펑 나가떨어졌다.

방주는 죽는 수하들을 보지 않았다. 흑의인들의 무공을 보았다.

흑의인들……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자들과 싸우면서도 거침없이 육신을 내놓는다. 검을 쓸 때 보면 상대방의 손을 빌려서 자살하려는 것 같다.

확실하다. 소문으로 듣던 원령검법 같다.

검에 악귀의 원혼을 심으면 오직 상대방을 죽이겠다는 심정밖에 들지 않는다. 철천지원수를 죽이는 데 내 안위 따위를 신경 쓸 여력은 없다.

원령검법은 그런 검법이다.

“허! 이거…… 참. 엎친 데 덮친 격이라니. 요즘 우리 야천이 단체로 삼재에 걸렸나. 왜 이렇게 일진이 사나워. 되는 일은 없고, 오직 죽는 일뿐이니.”

원령검법을 쓰는 자들이 나타났다는 것은 야천 대방에 피바람이 불었다는 뜻이다.

이제 자신은 저들의 목표가 되었다.

중원 어디로 가든 저들이 쫓아올 것이다. 피할 곳은 없다. 당장 위기라고 해서 배를 타고 호심으로 나왔지만, 더 갈 곳이 없다. 마유 인간들을 피할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와서 검을 쓸 것이다.

누가 저들을 부리는 걸까?

팔방을 뒤흔든 방갓 무인인가? 아니면 누가?

설마 공부가? 그럴 리 없다. 흑후를 통해서 항복 문서까지 보냈는데 이런 자들을 보낼 이유가 없지 않나. 가만히 있어도 모든 걸 다 주겠다는데.

방주는 무심히 흑의인들을 쳐다봤다.

저들이 배에 올라탔다. 그리고 삐걱삐걱 배를 저어온다.

하인들이 급히 노를 저으려고 했다. 도주하려는 것이다.

어림없는 행동이다. 흑의인들은 노에 진기를 실었다. 한 번 노를 저을 때마다 배가 쾌선(快船)처럼 쭉쭉 뻗어온다. 하인들이 아무리 빨리 노를 저어도 저들에게 따라 잡힌다.

“됐다.”

대방이 그들을 만류했다.

“너희…… 수영할 수 있으면 당장 이 배에서 벗어나거라. 쯧! 괜히 호심까지 와서는. 여기 있으면 죽어. 수영할 줄 모르면 있고, 움직일 수 있으면…….”

첨벙! 첨벙!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인들이 호수로 뛰어들었다.

“후후! 그래도 네놈들은 갈 곳이라도 있구나. 나보다는 훨씬 나아.”

방주는 검을 꾹 잡았다.

단 다섯 명이 ‘황 노인의 집’, 철옹성을 뚫었다.

야천에서 날고 긴다 하는 자들 이백 명을 모아놓는 데도 다섯 명을 막지 못하고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졌다.

‘이대로는 승산이 없다!’

흑수혈검은 검을 고쳐잡았다.

순검(順劍)에서 역검(逆劍)으로 거꾸로 잡았다. 검도 등 뒤로 숨겼다.

파아악!

검에서 검은 운무가 피어났다.

그에게 흑수혈검이라는 별호를 안겨 준 흑연(黑煙)이다.

흑연이 점점 넓게 번졌다. 흑수혈검을 가려 주었다. 그리고도 점점 넓게 번진다.

“킥!”

흑의인이 흑연을 보고 웃음인지 비웃음인지 모를 소리를 흘렸다.

흑의인이 나타나고 처음 듣는 음성이다. 성대를 잠깐 울린 것도 음성이라면.

‘이놈들 내 검을 알아!’

스으읏!

흑수혈검은 흑연에 몸을 숨긴 채 무릎을 낮게 구부렸다. 거의 앉다시피 눌러앉았다. 앉았다가 일어서는 탄력으로 단숨에 귀혼십이검을 몰아치기 위해서였다.

숨을 죽이고 조용히 기다렸다.

저들도 움직이지 않는다. 흑연에 완전히 파묻혀 있지만, 벗어날 생각도 하지 않는다. 저들은 먼저 공격할 생각이 없다. 방주를 쫓아가고 싶으면 네가 달려들라고 한다.

‘으음!’

흑수혈검은 미간을 찡그렸다.

상황은 자신이 유리하다. 하지만 마냥 좋은 것만도 아니다. 저들은 무방비 상태로 있는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단언하지만 감각을 최고조로 끌어 올렸다.

한 명을 공격하면 다른 한 명이 즉시 반격한다. 그런 구조다. 어느 쪽을 공격하든 반대쪽에 있던 자가 즉시 공격한다. 공격을 당한 자는 수비만 한다.

공수가 완전히 분리되었다.

이들의 연수 합격은 꽤 정밀하다. 지금까지 수십 초에 걸쳐서 귀혼십이검을 펼쳤지만 모두 막혔다. 작심하고 끝까지 밀어붙이면 한 명은 죽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자신은 두세 검을 맞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흑연으로 몸을 가리고 있지만, 저들은 컴컴한 가운데도 자기들끼리 교감을 주고받는다. 저들의 기감교환(氣感交換)은 흑연 속에서도 유지되고 있다.

‘이것으로도 안되나.’

흑수혈검은 절망했다.

지금쯤 방주도 상당히 위험해졌을 것이다. 방주의 무공이 자신보다 약하지 않지만, 흑의인들에게는 아직 검을 뽑지도 않은 고수가 있지 않은가.

빨리 상황을 끝내고 방주에게 달려가야 한다.

옛날, 곤륜 장문인과 싸웠을 때처럼 일 검을 맞는다. 일단 한 명을 죽인다.

‘그 수밖에 없어.’

온전한 상태로 이 난관을 돌파할 방법은 없다.

‘남은 한 명은 어떻게 되겠지.’

쒜에에엑!

생각을 굳히자, 흑수혈검은 거침없이 공격해 들어갔다.

쒯! 쒯!

앞과 뒤에서 동시에 검음이 터졌다.

생각했던 것과 똑같다. 앞에서 만든 검풍은 날카롭지 않다. 상당히 두텁다. 검으로 벽을 쌓고 있다. 뒤에서 터진 검음은 세상을 찢어발길 듯이 날카롭다. 완전한 공격이다. 수비가 없다.

한쪽에선 막고 한쪽에선 공격한다.

‘생각하고 있었어!’

흑수혈검의 검초가 급변했다.

홱! 뒤돌아섰다.

공격하던 자를 버려두고, 뒤에서 달려드는 자에게 쏘아간다.

그 순간, 두 명의 검초도 즉시 변했다. 흑수혈검의 검이 향하는 곳, 그곳에서는 어느새 검벽이 만들어졌다. 방금까지 검벽을 만들던 곳에서는 색다른 파공음이 튀어나왔다.

쒜에에엑!

변초를 일으켜 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다.

흑수혈검은 검벽을 향해 바로 찔러 갔다. 등 뒤는 포기했다. 생각하지 않았다. 마음껏 치라고 해라. 그 대신, 검벽을 만든 자는 무너뜨린다. 단숨에 갈라낸다!

‘마동귀화(魔童鬼火)!’

스읏! 파앗!

조용히 흐르던 검에 양강지력(陽綱之力)이 쌓였다. 어린아이가 불꽃놀이를 하듯이 새빨간 화염을 뿜어낸다.

파르르릉!

상대방은 연검을 휘둘렀다. 밀밀한 검막이 앞을 막아섰다.

밀(密) 대 화(火)다.

불길이 촘촘함을 뚫지 못하면 검이 부러진다. 힘차게 뚫는다면 협검이 부러진다.

어느 한쪽은 치명상이다.

까아아아앙!

검과 협검이 부딪혔다.

순간, 협검이 부러질 듯 휙 휘더니 검 끝이 뱀처럼 살아서 튕겨 나왔다.

‘탄력!’

협검은 부러지지 않았다. 아직도 생명을 유지한 채 흑수혈검의 관자놀이를 노린다.

하지만 그 순간 흑수혈검의 검초도 변했다.

‘마동요희(魔童妖戱)!’

마동이 눈앞에서 깐족대며 장난질을 친다. 그 모습을 빤히 보면서도 어쩌지 못한다. 장난질에 넘어가서 몇 대 얻어맞는다. 즉시 반격을 취하려고 하면 마동은 어느새 거리를 벌려 놓는다. 그야말로 희롱당하는 격이다.

쒜에에엑!

희롱하는 검이 상대방에게서 거리 감각을 완전히 빼앗아 버렸다. 달려들듯 하다가 물러난다. 아니, 어느새 달려들었다. 검이 목을 찔렀다. 아니다. 목을 찌르는 듯하다가 느닷없이 크게 휘둘려 치며 배를 그었다.

싸아아악!

굉장히 기분 좋은 파육음이 터졌다.

검이 정확하게 상대방의 복부를 그었다. 순간, 흑수혈검은 등 뒤로 밀어닥치는 검기를 감지했다. 피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어느새 검기 등을 후려치고 있다.

흑수혈검은 최선을 다해서 움직였다. 검을 피해 보려고…… 고작 등을 움츠리는 행동에 불과했지만. 그런데,

퍼어어억!

등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울렸다. 격타음이다.

누군가가 크게 격타당했다. 커다란 대부(大斧)로 달려오는 들소의 머리를 후려칠 때 나는 바로 그 소리다. 매우 강력한 무기로 몸통을 쳤다.

쉬이잇!

흑수혈검은 급히 신형을 빼내면서 검으로 뒤를 후려쳤다.

하지만 검에 걸리는 것은 없었다. 그를 뒤쫓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언제 나타났는지 방갓을 쓴 무인이 서 있다.

그는 대도를 들고 있다. 흑수혈검을 노리고 달려들던 자는 일도에 배가 반이나 갈려서 죽었다.

길게 베어 낸 칼이 아니다. 복부를 정면에서 후려쳤다. 몽둥이로 배를 때리듯이, 대도로 배를 가격해 버렸다.

흑의인은 그 일격에 배가 갈려 나갔다.

방갓 무인은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만약 전력을 다했다면 상대방은 몸이 두 쪽으로 갈라졌을 것이다. 방갓 무인에게 흑의인은 전력을 쏟아 낼 필요도 없는 상대였다.

휘릭!

방갓 무인이 칼을 휘둘러서 붉은 피를 털어 냈다.

“귀하!”

흑수혈검이 즉시 검을 고쳐 잡았다.

방갓 무인이 누군지 안다. 너무 잘 안다. 팔방에 나타나서 십리 중 여섯 명을 척살한 자다. 짐작으로는 공부 허도기에게 도전한 명부판관이 아닐까 한다.

“당신. 내 적수가 안 돼.”

방갓 무인이 차분하게 말했다.

“알고 있다. 그렇다고 검을 들지 않을 수는 없지.”

흑수혈검이 차분하게 말했다.

“나보다는 저쪽이 더 위급해 보이는데. 방주가 죽는 모습을 보고 싶은가?”

“귀하의 뜻은?”

“내 뜻…… 간단하지. 일단 방주를 구할 생각이야. 그다음은 구해 놓은 다음에 생각하고. 아마도 죽이지 않을까 싶은데.”

흑수혈검의 눈에서 기광이 번뜩였다.

구하고 다시 죽인다? 희한한 말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방주를 죽일 생각이 아닌 것 같다.

“그럼 귀하의 말을 믿고.”

쒜에에엑!

흑수혈검은 거침없이 신형을 쏘아 냈다.

정말로 방갓 무인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급습을 가해 오면? 그런 건 정말로 신경 쓰지 않는다. 방금 일전을 봐서 짐작하는데, 방갓 무인이 자신을 죽일 생각이면 굳이 급습을 가할 필요도 없다. 아무 때나 칼만 휘두르면 된다.

무공 차이가 워낙 벌어진다.

쉬이잇!

방갓 무인이 흑수혈검의 뒤를 바짝 쫓았다.

흑수혈검은 방갓 무인을 힐끔 쳐다봤을 뿐 그가 따라오는 것을 만류하지 않았다.

지금은 방갓 무인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자신과 방주가 힘을 합친다고 해도 흑의인 세 명을 상대하지 못한다. 가운데서 움직인 자를 이기지 못한다.

네 명의 호위를 받으면서 태연히 걸어간 자!

“배!”

흑수혈검은 호숫가에 도착하지 급히 말했다. 혹시나 방갓 무인이 자신들을 버릴까 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