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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336화 (336/600)

#336화. 第六十八章 양사(兩死 : 두 죽음) (1)

대방 방주는 두 무리를 봤다.

흑수혈검이 살아 있다. 그는 방갓 무인과 함께 나란히 배를 타고 움직인다.

‘저자는?’

대방 방주는 방갓 무인을 알지 못한다. 누군지 언뜻 짐작되는 자가 없었다. 야천 대방에 이런 자도 있었나? 아니면 흑수혈검이 아는 자 중에?

방주는 방갓 무인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그가 누군지 짐작해 냈다.

“아! 저자!”

지금까지 그토록 적으로 여겼던 방갓 무인이다.

흑수혈검이 방갓 무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달려오는 것을 보면 방갓 무인이 적으로서 온 것 같지는 않다.

‘너는 위기를 벗어난 거 같구나.’

대방 방주는 피식 웃었다.

흑수혈검이 위기를 벗어났다. 다소 안심이 된다. 하지만 그는 아직 위기를 벗어나지 못했다.

배라는 것은 무공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배를 움직이는 힘은 노 젓는 기술에 달려 있다. 물살을 잘 읽고, 적절하게 노를 움직여야 한다. 무턱대고 노만 젓는다고 배가 빨리 가는 게 아니다.

흑의인들이 탄 배가 쾌선처럼 빠르게 달려오는 것은 저 두 명이 진기로 노를 젓고 있어서가 아니다. 물살을 잘 아는 자들이다. 노 젓는 기술이 탁월하다.

한눈에 봐도 배를 다뤄 본 자들이다.

흑의인은 대방에 호수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저런 자들을 차출해 왔다.

실제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대방이 보기에는 그렇다.

반면에 방갓 무임과 흑수혈검은 노 젓는 솜씨가 상당히 서툴다. 노에 진기를 주입해서 물살을 철썩철썩 때려내고 있지만, 영 속도가 나지 않는다. 그렇게 힘으로 배를 밀어붙이는 것이 노련한 뱃사공의 노질 한 번만도 못하다.

흑수혈검과 방갓 무인이 다가오기 전에 자신은 저들과 부딪힌다.

“후후!”

대방 방주는 어깨에 잔뜩 올려져 있던 짐을 털어 냈다.

문득 죽음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오늘 죽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어떤 언제 어떤 자리에 가든 항상 자신이 있었다. 죽는 것은 상대방이지 자신이 아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지금, 이 순간 죽음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더는 피할 곳이 없다.

‘이 자리구나.’

대방 방주는 주위를 둘러봤다.

쪼그만 배, 푹신한 침상도 아니고 딱딱한 뱃전, 어쩌면 차디찬 물속…… 이곳이 묻힐 자리다. 시신이 누울 자리다.

죽는다는 사실이 아쉽지는 않다.

이만하면 한평생 잘 살아왔다.

처음, 파락호의 길에 들어섰을 때부터 편히 죽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 반대 생각을 하면서 살았다. 자신은 반드시 누군가가 칼에 죽을 것이라고.

이것이 구룡 방주들의 운명이기도 하다.

구룡 방주치고 편안하게 침상에서 죽은 사람은 없다. 전부 다 비명횡사했다.

차기 방주는 대체로 전임 방주를 암살한 자다. 피로 방주를 몰아내고 차지한다.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치고 무리를 장악한다. 판을 뒤집는다.

대방 방주도 그랬다 전임 방주를 죽이고 이 자리를 차지했다.

“이만하면 살 만큼 살았어.”

스릉!

대방 방주는 검을 검집에 넣었다.

저항을 포기하는 게 아니다. 문득, 검을 제대로 뽑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사는 검이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검을 한 번 더 뽑는데, 그 검은 죽는 검일 것이다.

쓱!

대방 방주는 뱃전에 앉았다. 그리고 차분하게 다가오는 흑의인들을 기다렸다.

‘아걸!’

사령은 아걸을 알아봤다.

흑수혈검과 같이 배를 몰고 오는 방갓 무인, 분명히 아걸이다.

아걸이 왜 이곳에 나타났는지 의문이다. 정보에 의하면 아걸은 지금 호북성에 있어야 한다.

‘정보에 구멍이 생겼군.’

사령은 피식 웃었다.

아걸의 등장이 의외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변한 것은 아니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늘 벌어질 일을 막을 수 있는 사람 역시 아무도 없다.

스읏!

사령은 검을 잡았다.

아걸을 이길 수 있나? 이길 수 없다. 이것은 명백하다.

아걸을 죽일 수 있나? 죽일 수 있다. 이것 또한 명백하다.

이기고 지는 싸움을 하려면 지금 당장 검을 부딪치면 된다.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하려면 약간의 준비가 필요하다. 지금 당장 부딪혀서는 안 된다.

“이삼(二三). 방주만 친다.”

노를 젓는 흑의인에게 한 말이다.

흑의인들은 대답이 없었다. 사령이 하는 말을 들었지만, 묵묵히 노만 저었다.

“보자, 어디를 칠까?”

사령이 대방 방주를 쳐다봤다. 그리고 멀리서 다가오는 방갓 무인도 쳐다봤다.

사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 둘 다 상단을 취해라.”

명령은 그것으로 끝이다.

대방 방주 정도 죽이면서 이렇게까지 할 이유는 없다. 이런 식으로 싸울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아걸이 쫓아온다. 찰나에 승부를 내고 빠져나가야 한다.

잠시라도 지체하면 방주를 죽이는 일조차 쉽지 않게 된다.

한낱 두더지도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하게 되면 최선을 다한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

삶의 본능이다.

지금 방주는 그 최선이라는 걸 버렸다.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럴 때 죽이지 않으면 다음 기회는 무척 어렵다. 지금은 삶의 본능을 버렸지만, 다음에는 더욱 처절하게 살아날 것이다.

사령은 죽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헤아린다.

방주가 지금 어떤 마음인지는 사령처럼 잘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타악!

아걸이 갑자기 뱃전에서 신형을 띄웠다.

‘저 먼 거리를?’

사령은 아걸이 무슨 짓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미친 것도 아니고 갑자기 왜 뛰어올라? 하지만 곧 아걸이 무슨 짓을 하는지 확 깨달았다.

아걸은 이미 노를 여러 토막으로 잘라 놓았다. 품에 잘린 노 한 무더기를 안고 도약했다.

쉬이이잇!

허공으로 솟구친 몸이 탄력을 잃고 뚝 떨어진다. 호수로 떨어져 내린다.

쉬익!

아걸은 즉시 자신이 떨어질 자리에 나무토막을 던졌다. 그리고 물 위로 떨어진 나무토막을 밟고 다시 뛰어올랐다.

탁!

아걸이 단숨에 삼 장 거리를 좁혔다.

“답수도약(踏水跳躍)!”

사령의 눈이 번쩍 뛰었다.

아걸이 답수도약까지 펼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저런 식으로 달려오면 자신보다 훨씬 빠르다.

그렇다고 당황할 필요는 없다.

사령은 품에서 검은 묵통(墨筒)을 꺼냈다.

묵통에는 비침이 오백 개나 쟁여져 있다. 묵통 끝에 있는 단추를 누르면 비침이 일시에 쏟아져 나간다. 용수철의 탄력을 빌어서 사방으로 빠르게 쏘아진다.

야천 파락호들이 암살할 때 사용하는 침사묵통(針死墨筒)이라는 암살 기병이다.

어두운 골목길에서 침사묵통을 쏘면 상대방은 거의 피하지 못하고 죽는다.

사령은 망설이지 않고 침사묵통을 터뜨렸다.

탁! 쒜에에에엑!

비침이 허공을 날았다.

방갓 무인을 향해서 그물망이 쫙 펼쳐지듯 비침 오백 개가 일시에 쏟아져 나갔다.

“후후!”

사령은 웃었다.

아걸은 허공에 도약해 있다. 몸을 돌리지 못한다. 옆으로, 위로, 아래로, 뒤로…… 어느 쪽으로도 움직이지 못한다. 오직 앞으로 달려 나오다가 비침을 맞는 수밖에 없다.

그러자 아걸의 신형이 묵직한 추를 달아 놓은 듯 뚝 떨어졌다.

“웃!”

아걸은 사령조차도 깜짝 놀랄 정도로 빠르게 떨어졌다.

풍덩!

아걸은 곧장 물속으로 떨어졌다.

현재 상황에서 비침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물속이다. 비침이 물 위로도 떨어지겠지만, 물의 저항을 뚫고 물속까지 쏘아지지는 못한다. 물에 떨어지는 즉시 힘을 잃어 버린다.

촤아아악!

물속에서 잠영해 오는 아걸이 보였다.

‘지겨운 놈이군.’

사령은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어떤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이제는 됐다. 아걸이 아무리 빨리 달려와도 자신을 막지 못한다. 대방 방주가 죽는 것을 막을 수 없다.

탁! 탁!

흑의인 두 명이 뱃전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두 명 모두 허공으로 치솟았다. 위에서 칼을 내리친다. 두 명이 노리는 위치는 각기 다르다. 한 명은 왼쪽 어깨, 다른 한 명은 오른쪽 어깨를 노린다.

좌우 협공의 기본대로 전개되었다.

대방 방주는 차분하게 두 명을 쳐다봤다.

두 명을 칠 수 있다. 상대방의 검은 매우 날카롭지만, 방주가 막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죽음은 다른 곳에서 터진다.

다가오는 배에는 아직 신형을 쏘아 내지 않은 자가 서 있다. 검도 뽑지 않은 흑의인이 노골적으로 살기를 던진다. 대방 방주의 배를 노린다.

‘배!’

상단을 막으면 중단이 빈다. 복부가 환히 드러난다. 그걸 알면서도 막지 못한다. 허공에서 쏘아오는 흑의인들의 공격도 매서워서 복부까지 방비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후웃!”

방주는 숨을 크게 들이쉬면서 발로 뱃전을 부쉈다.

쇠뭉치보다 단단한 철각(鐵脚)이 단숨에 뱃전을 산산조각 냈다. 동시에 떨어져 나온 나뭇조각을 배에 우뚝 서 있는 흑의인을 향해서 차 냈다.

쒯! 파아아앗!

나뭇조각이 흑의인을 향해 암기처럼 쏘아졌다.

동시에 허공에서 떨어지는 두 흑의인을 향해서 검을 쳐 냈다.

비록 죽음이라는 말을 떠올리고 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맥없이 칼 맞아 죽는 것은 파락호의 삶이 아니다. 마지막 숨이 떨어지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서 칼을 휘둘러야 한다.

상단에서 쳐오는 흑의인들의 검은 반드시 반격해야만 막아낼 수 있다. 다른 방법이 없다. 육지 같으면 신형을 움직일 수도 있겠지만 좁은 뱃전에서는 오직 막는 방법밖에 없다.

쉬잇!

검 하나는 신형을 비틀어서 피했다.

파앗!

대방 방주의 검이 허공에서 번쩍! 빛을 토해 냈다.

뇌전검법(雷電劍法)!

번갯불처럼 눈부시게 터진 검이 다른 자의 목을 쳤다. 머리를 잘라 냈다.

대방 방주의 검은 가볍지 않다. 그래도 야천을 이끄는 검이지 않나. 솔직히 한때는 자신의 무공이 천하제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 적도 있다.

공부 허도기가 성검문을 장악하기 전, 그도 성검문에 도전할 생각까지 했었다.

당시 혈무대에서 성검문의 장자인 허문승이 일격필살, 살인도, 혈귀도라고 불리던 낭야와 싸우는 모습을 봤다. 일검에 낭야가 쓰러지는 모습을.

그 검은 보고 정통 무공과는 아직도 거리가 멀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후부터는 무림에 두각을 나타내려는 마음을 접어 버렸다.

파앗!

흑의인 한 명이 즉사했다.

순간, 배에 타고 있던 흑의인이 움직였다. 그가 달려온다. 그의 검의 옆구리를 노린다.

방주는 검을 틀어서 옆구리를 막고자 했다. 한데,

퍽!

어느새 검이 치고 지나갔다.

상대방의 움직임은 방주의 생각보다 적어도 한 수 이상 빠르다. 아직 검이 다가올 순간이 아닌데 벌써 몸을 치고 지나간다.

‘이렇게 빠를 수가!’

방주는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순간, 다시 검이 등을 뚫고 가슴 앞으로 삐져나왔다.

“흑!”

방주는 헛바람을 내질렀다.

이번 검도 예상하지 못했다. 일 차에 이어서 이 차 공격이 가해질 것은 생각했다. 하지만 흑의인은 방주의 생각보다 적어도 반 초 이상 더 빠르게 움직였다.

‘암전(暗箭)! 암전검(暗箭劍)!’

어떤 판단을 내리든, 어떤 감각으로 방어하든 상대보다 늘 반 초 이상 앞서서 검을 쳐 낸다는 죽음의 검법.

암전은 어둠 속에서 쏘아지는 화살을 말한다. 검법이면서도 암전처럼 빠르다고 해서 붙여진 검법 명칭이 암전검법이다. 바로 마유에 존재한다는 검법이지 않나.

‘역시 마유 인물이었어.’

털썩!

방주는 뱃전에 무릎을 꿇었다.

흑의인은 더는 공격하지 않았다.

그들 두 명이 자신들의 배에 올라탔다. 그리고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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