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7화. 第六十八章 양사(兩死 : 두 죽음) (2)
숨이 안 끊어졌다.
역시 방주는 방주다. 정확하게 검을 찔러 넣었지만 죽이지 못했다. 방주가 마지막 순간에 몸을 비틀었다. 살기 위해서 일으킨 처절한 몸부림이다.
덕분에 심장이 꿰뚫리지는 않았다.
왼쪽 어깨뼈 밑을 찔러서 심장까지 관통시키려고 했는데, 상당히 크게 빗나갔다.
하지만 죽는 것은 변함이 없다. 검이 척추를 가르며 지나갔다. 일단 사지가 마비된다. 요행히 목숨을 부지해도 평생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
검이 빗나갔다고는 하지만 폐를 뚫었다. 심장만큼 치명적인 부위로 즉사까지 가능하다.
사령의 검에는 독이 묻어 있다.
물리면 일곱 걸음을 걷기 전에 절명한다는 칠보사(七步蛇)의 독을 묻혀 놨다.
그러니 옆구리에 첫 검을 맞은 순간 대방 방주는 이미 목숨이 떨어진 것이나 진배없다. 거기에 두 번째 검을 맞았고, 독 묻은 검이 폐를 갈랐으니 살아날 가능성은 전혀 없다.
“후후!”
사령은 웃음을 흘리며 돌아섰다.
천에 하나, 만에 하나…… 대방 방주가 살아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는 하지 않는다. 화타가 살아나도 구할 수 없다. 이미 저승길로 들어섰다.
사령은 자신의 검을 믿는다. 그래서 대방 방주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스읏! 척!
아걸이 뱃전 위로 올라왔다.
그는 한눈에 방주의 상태를 알아봤다.
얼굴색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중독 증상이다. 가슴을 뚫은 검도 치명적이다.
더는 살 수 없다. 삶의 기회가 완전히 사라졌다.
“방주.”
방주가 처연히 쳐다봤다.
방주는 움직이지 못한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한 상태에서 독에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방주님!”
그제야 다가온 흑수혈검이 뱃전으로 건너뛰었다. 그리고 확 달려들어서 방주를 껴안았다.
방주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몸을 가리켰다.
방주는 사력을 다해서 눈빛으로 자신의 행동을 표현한다. 생명을 놓기 직전인지, 얼굴색도 붉게 물드는 것 같다. 생기가 떠오른다고 해야 하나?
회광반조(回光返照)!
흑수혈검은 급히 방주의 품을 뒤졌다.
방주의 몸에서 작은 인장(印章)이 나왔다. 손잡이 부분은 붉고, 인주를 찍는 날인 부분은 푸르다. 온옥(溫玉)과 한옥(寒玉)이 한 몸을 이룬 특이한 옥(玉)이다.
청염지심옥(淸炎地心玉)이라는 보물이다.
청염지심옥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 수화(水火)가 침범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여름에도 더위를 느끼지 못하고, 한겨울에도 추위를 타지 않는다.
청염지심옥으로 만든 인장은 야천 대방 방주의 신물(信物)이다.
누구든 옥인장을 대하면 방주가 현신했을 때처럼 받들어야 한다. 인장을 지닌 자의 말이 곧 방주의 말이다. 그의 명령이 방주의 명령이다.
“이건?”
흑수혈검이 인장을 보고 놀라서 묻자, 방주가 비로소 안심한 듯 스르르 눈을 감았다.
“방주님!”
흑수혈검이 방주의 명문혈에 진기를 불어넣었다.
하지만 이미 방주는 절명했다. 명문혈로 밀어 넣은 진기가 들어가지 않고 튕겨 나온다.
“이익!”
흑수혈검이 이를 악물면서 이미 호숫가에 배를 댄 흑의인 두 명을 쏘아봤다.
저들도 유유히 배에서 내려 흑수혈검을 쳐다봤다. 아니, 방갓 무인을 봤다. 방갓 무인이 아니었다면 대방 방주도 죽이고 흑수혈검도 죽였을 것이다.
흑수혈검은 저들의 목표가 자신이 아니었다는 걸 안다.
저들의 목표는 대방 방주였다. 만약 자신까지 목표였다면 절대 살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아걸이 옆에 있어도 죽이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스으읏!
저들이 사라져 갔다.
대방 무인들은 흑의인을 막지 못한다. 가끔 앞을 막아서는 자가 나타났지만, 그럴 때마다 검광이 번쩍 빛났다. 그리고 어김없이 생명이 떨어졌다.
‘너희들! 용서하지 않는다!’
흑수혈검은 아랫입술을 잘끈 깨물었다. 피가 나도록 억세게.
흑수혈검은 인장을 아걸에게 내밀었다.
아걸은 묵묵히 흑수혈검을 쳐다봤다.
“내가 이걸 보호하지 못할 거라는 건 귀하도 알고 있지 않소.”
아걸은 잠시 신물을 쳐다보았다.
“귀하가 누군지 짐작하고 있소. 조금 전까지 적이었다는 사실도 부인하지 않겠소. 야천 대방이 귀하의 성에 차지 않는다는 것도 사실일 것이요.”
아걸은 묵묵부답, 말하지 않았다.
“귀하에게 이걸 내미는 이유는…….”
“이유는?”
아걸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우습지만, 귀하는 이 중원에서 야천을 이용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이걸 받으면 귀하의 목적을 한결 수월하게 이룰 수 있을 것이요.”
아걸이 손을 내밀어 인장을 받아들었다.
“그럼 잠시 보관하는 거로.”
순간, 흑수혈검이 한쪽 무릎을 꿇고 수하의 예를 취했다.
“흑수혈검, 방주님을 뵙습니다.”
아걸은 흑수혈검의 예를 담담히 받아들였다. 인장이 지닌 의미를 알고 있다. 알고 있으면서 받아들였다. 비록 잠시라고 하지만, 지금, 이 순간부터 야천 대방 방주가 된 것이다.
“지금 즉시 방주들의 안위를 확인해. 내 생각이 맞는다면 다른 방주들도 무사하지는 못할 거야.”
“설마 야천 전체를!”
“확인해 봐.”
“알겠습니다.”
“이건 비밀로. 난 당장 표적 될 생각이 없으니까, 암중에 움직이는 거로 하자고.”
아걸이 손에 든 인장을 흔들었다.
“알겠습니다. 속하, 방주 대행으로 움직이겠습니다.”
흑수혈검이 말했다.
야천 대방 방주가 피습당해 운명하셨다!
대방이 발칵 뒤집혔다.
사실, 급습을 당한 후부터 방주가 피습당했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나돌던 터였다. 한데, 방주가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죽는 일까지 벌어진 것이다.
누가 방주를 피습했나?
누가 피습을 했고, 방주가 죽기까지 했는데도 공격한 자는 드러나지 않았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공격자는 시신을 세 구나 남겼다. 흑수혈검이 한 명을 죽이고, 아걸이 한 명을 죽였다. 물론 아걸이 죽인 흑의인까지 흑수혈검이 죽인 것으로 포장되었다.
광주는 독에 암습당한 후, 검에 찔린 것으로 공표되었다. 하지만 방주는 마지막 순간까지 사력을 다했다. 검을 휘둘러서 피습자 한 명을 도륙했다.
적이 누구냐!
공격한 자들의 시신까지 있는데도 암습을 주도한 자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흑의인들을 알아보는 자가 전혀 없었다.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했다.
결국, 대방은 흑의인의 시신에서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야천 대방은 흑의인들의 시신을 발가벗겨서 알몸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대꼬챙이에 꽂아서 저잣거리에 내걸었다.
시신에 방부처리를 한 것은 물론이다. 머리가 잘린 시신은 몸뚱이와 머리를 모두 방부 처리했다. 또한, 대방 방주의 검을 느끼게끔 잘린 부위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매우 잔혹한 광경이다.
하지만 야천 대방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를 만천하에 공개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부고장이 전 중원, 모든 문파에 전해졌다.
하지만 조문객은 없다. 정도 문파는 아예 부고장을 무시해 버린다. 야천 방주의 장례는 야천만의 행사로 음울하게 진행된다. 더욱이 상주는 으레 암습자가 지정한 자다.
그러나 야천 사람들이 오더라도 잠시 얼굴만 보고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요식적인 조문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타방에서 조문객이 오지 않았다.
“모두 쓸려 나갔습니다.”
“정말이냐?”
“네. 무사한 방주는 육방과 팔방 방주밖에 없습니다. 육방 방주는 폐관 중이었고, 팔방 방주는 밀행(密行)해서 화를 모면했다고 합니다.”
“음!”
흑수혈검은 침음했다.
육방과 팔방 방주가 무사하다는 사실보다도 다른 칠 방 방주가 모두 죽었다는 사실이 무겁게 가슴을 짓누른다.
“패도광마는?”
흑수혈검은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물었다.
야천 삼방에 자신과 견줄 수 있는 칼이 있다. 패도광마다. 하지만 그는 죽었을 것이다. 흑의인이 방주를 노렸다면 방주를 제일선에서 지키는 측근은 당연히 죽는다.
“삼방 방주 곁에 있다가 같이…….”
역시 생각했던 답변이다.
흑수혈검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아걸이 아니었으면 죽을 뻔했다. 흑의인은 이쪽 사정을 환히 꿰뚫고 다가왔다.
야천이 한순간에 물갈이되었다.
흑수혈검은 야천 전역에서 일어난 일을 낱낱이 보고 받고 침음을 흘렸다.
보고가 이어질 때마다 계속해서 침음이 흘러나왔다.
“들으셨습니까?”
흑수혈검이 말했다.
“방주들이 모두 당했다면 차기 방주는 흑의인 쪽에서 내세웠겠네. 본인 무리든, 꼭두각시든.”
“방주만 죽인 게 아니라는 말씀……?”
“방주를 죽일 때는 이유가 있어야지. 그것도 야천 전체를 발칵 뒤집는 것이니 반드시 이유가 있어야 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아.”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럼 차기 방주를 살펴보면 꼬리는 잡을 수 있을 것 같고. 우선 누가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는 알아야 할 것 같으니까. 난 이방 방주를 살펴보지.”
“이방을 찾아가실 생각이십니까?”
“그래야겠지?”
“저들도 준비하고 기다릴 겁니다.”
“준비한 쪽이 파악하기는 더 쉬워. 많은 것을 드러낼 테니까.”
아걸은 거침없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거침없는 말을 할 수 있을까? 도무지 두려운 사람이 없는 듯하니.
“구룡회가 열릴 겁니다.”
흑수혈검이 현안부터 말했다.
“……?”
“저희가 주도하는 구룡회는 아닙니다. 야천 방주들이 요구하는 구령회겠죠.”
누군가가 전임 방주를 암살하고 방주직을 꿰차는 경우, 구룡회 소집을 요구할 수 있다.
구룡의 순서를 다시 정하자는 요구다.
대방이 아닌 이상, 순위를 올린다고 해서 방주 위상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권이 달라진다. 더 많은 이권, 더 편한 이권을 차지할 수 있다.
그럴 경우에는 방주들 간에 손속 교환이 필수적으로 벌어진다.
물론 손속 교환을 원하는 방주가 숨겨 둔 무공이라도 있다면 오히려 목숨을 잃을 경우도 있다.
그래서 거의 구령회는 소집되지 않는다. 방주가 바뀌었다는 통문만 돌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완전히 물갈이된 상황이라면 구룡회가 소집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일단 상대를 알아야 하니까 구룡회 소집은 장례 후로 미루지.”
“그 정도로 되겠습니까? 길어 봤자 십일 장입니다.”
“사십구재로 할까? 최소한 망자가 떠난 것을 본 후에 만나자. 그러면 될 것 같은데.”
“귀하, 아걸이십니까?”
흑수혈검이 불쑥 말했다.
“짐작하고 있다면서?”
“확인하고 싶습니다.”
“야천 사람들은 왜 이렇게 확인하는 걸 좋아하지? 아걸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때서?”
“아걸이면…… 일홀도를 보고 싶습니다.”
“지금?”
“정말로 검의 끝을 봤다 싶을 때, 검을 들고 싶습니다.”
“일홀도가 아니더라도 혈무대가 있잖아.”
“……!”
“혈무대에는 서지 못하고 일홀도와는 싸우겠다. 일홀도는 사정을 봐줄 것 같아서 하는 말처럼 들리는데. 어렵게 일홀도를 찾지 말고 혈무대를 찾아. 검을 확인하는 것은 그걸로 충분해.”
쉬잇!
천정 대들보에 앉아 있던 아걸이 신형을 날려 사라졌다.
흑수혈검은 눈을 감았다.
아걸이 남긴 말은 충격이었다. 방갓 무인이 아걸이라는 점은 전혀 놀랍지 않다. 그가 떠나면서 남긴 말이 비수가 되어서 가슴을 후벼팠다.
혈무대에는 왜 못 서나?
그곳에 서면 죽는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함부로 서지 못한다. 그래서 혈무대 대신 일홀도를 선택한 건가? 한심하네. 쓸데없이 호기 부리지 말고 목숨이나 부지해.
아걸의 마지막 말이 마치 비아냥처럼 들렸다.
“후후! 후후후!”
흑수혈검은 웃었다.
그렇다. 야성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한동안 육신이 편했더니 검까지 무뎌졌다.
“좋아! 혈무대에 서고, 일홀도와 겨루고. 후후! 이 나이에 인생 목표가 생겼군. 하하!”
흑수혈검이 호쾌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