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9화. 第六十八章 양사(兩死 : 두 죽음) (4)
“이런 곳에 있었나? 냄새가 독하군.”
한 사내가 둑길을 걸어왔다.
그는 한눈에 봐도 싸움꾼이다. 무인이라고 할 수 없다. 기운이 정제되어 있지 않다. 반면에 투기는 무척 강하게 일어난다. 싸우고 싶다는 모습이 확연히 엿보인다.
누구라도 시비만 붙으면 당장 주먹을 휘갈기겠다는 뜻이 여지없이 드러나 있다.
적당히 주먹깨나 휘두르는 파락호로 보인다.
건달들 두세 명쯤은 때려눕힐 수 있지만 네다섯 명이 우르르 달려들면 여지없이 얻어터질 것 같다.
이런 자는 대체로 야천에 몸담고 있다.
야천에서 말하는 중책 정도? 방주의 명을 쫓는 행동대원? 사내는 딱 그 정도로 보인다.
“이거 참! 이런 곳에서 그 짓 할 생각이 나나? 어휴! 냄새.”
그가 코를 쥐며 인상을 찡그렸다.
일전통은 강 옆에 있다. 하지만 그 강으로 시궁창이 흐른다. 썩는 냄새가 진동한다. 일반 사람들이 발길을 닿지 않는 곳에 머무는 사람들이다.
휘적! 휘적!
그는 거침없이 강둑을 걸어서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마을로 들어섰다.
스읏!
한 여인이 나타났다.
“누구냐?”
여인이 사내를 싸늘하게 노려보며 말했다.
사내가 주위를 둘러봤다. 여인이 누구에게 말을 한 것인지 모르겠다는 투로.
“나? 나에게 한 말이야?”
사내가 다시 여인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 너! 뭐 하는 놈이야!”
“아! 여자 생각이 나서 왔지. 하! 너도 일 전이야? 괜찮은데?”
사내가 입을 헤 벌리며 건들건들 말했다.
“여긴 예전 일전통이 아니야. 돌아가.”
여인이 즉시 검을 뽑을 기세로 위협하며 말했다.
“에이! 여기까지 왔는데. 그러지 말고 나하고 어때? 돈은 넉넉하게 줄게. 너라면 오 전까지는 줄 수 있어. 솔직히 나도 양심이 있지, 일 전에 너를 어떻게 안아. 오 전. 어때?”
사내가 여인을 보며 히죽 웃었다.
“네 놈이 죽으려고 작정했구나!”
스릉!
여인이 검을 뽑았다. 그 순간,
스읏! 팟!
어느새 사내가 코앞에 섰다. 그리고 여인의 명치에 주먹을 틀어박았다.
퍼억!
“끄윽!”
여인은 눈을 부릅뜬 채 신음을 쏟아 냈다.
‘언제?’
여인의 표정에는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이 가득 묻어 나왔다.
아니, 그보다 숨을 쉴 수가 없다. 사내의 주먹이 너무도 정확하게 꽂혔다.
스읏!
사내는 여인의 목을 움켜쥐었다.
순간, 사내의 다섯 손가락은 갈고리가 되었다. 아주 단단한 쇠갈고리다. 손가락이 움푹 들어가도록 단단하게 움켜잡았다. 금방이라도 목젖을 잡아 뽑을 듯 으르렁거린다.
“크으윽!”
여인은 신음만 흘렸다.
“그러게 같이 즐기면 됐잖아. 왜 말썽을 부리고 난리야? 아! 이런 거 좋아하나 보구나? 너 두들겨 맞는 거 좋아하지? 우리 잘 맞네. 난 때리는 거 좋아하는데.”
“크으윽!”
“이런 건 얼마든지 해줄 수 있지. 어떻게? 정신이 반쯤 나갈 만큼 때려 줘?”
퍼억! 퍽!
사내는 정말로 여인의 몸에 주먹을 마구 꽂아 넣었다.
사내의 주먹은 얼굴에도 틀어박혔다. 여인의 볼이 퉁퉁 부어올랐다. 입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이상한 점은 여인이 전혀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내는 여인의 목을 움켜잡고 있을 뿐인데, 전혀 저항하지 못하고 맞기만 한다.
그때, 한쪽 골목에서 노파가 나타나며 말했다.
“그 손 놓지.”
한쪽에서 노파가 걸어왔다.
사내가 피식 웃으면서 노파를 쳐다봤다.
“이건 또 뭐야? 에이, 내가 아무리 이런 델 찾아왔다고 해도 할망구한테는 관심 없어. 난 얘가 좋아. 몸도 탱탱하고, 취향도 같은 쪽이고. 일 전에 이만하면 횡재지 뭘.”
“손 놓으라고 했다.”
츠으읏!
노파…… 팔장로가 진기를 쏟아 냈다.
순간, 매서운 살기가 쏟아져 나왔다. 사내를 향해서 무서운 검기가 몰아친다.
사내는 검기를 느끼지 못한 듯 태연히 말했다.
“이 손을 놓아야 하는 이유, 한 가지만 말해 봐?”
“안 놓으면 네놈이 죽어.”
“에이! 그 말은 틀렸어. 할망구.”
사내가 농담하듯이 말했다.
“할망구가 거기서 한 걸음만 더 움직이면 이년 목뼈 부러져. 자! 어떤 게 위협이 될까? 이년 목에서 손을 떼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이게 협박이 될까, 할망구가 한 걸음만 더 움직이면 이년 목뼈가 부러진다는 말이 협박이 될까? 어떤 게 통할까?”
팔장로가 걸음을 멈췄다.
스읏! 스스스!
주변에서 고요한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미 상황을 판단한 여인들이 사내를 에워쌌다.
다섯 명은 모습을 드러낸 채 사내를 쏘아봤다. 여섯 명은 몸을 숨긴 채 암습을 노린다.
지붕 위, 담벼락 뒤, 길모퉁이에서 말 없는 살기가 피어난다.
사내가 주변을 돌아보면 픽! 웃었다.
그가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 들고는 여인의 가슴을 겨눴다.
“내가 지금부터 이년을 찌르려고 하는데. 아! 나, 정말로 찌를 거야. 알지? 킥! 그럼 누가 막을 수 있을까?”
사내가 유들유들 웃으면서 말했다.
스릉!
팔장로가 검을 뽑았다.
“너희는 모두 물러서라.”
순간, 사내를 포위했던 여인들이 팔장로를 쳐다봤다.
팔장로가 차분한 표정으로 검을 단단히 움켜잡으면서 말했다.
“너희 상대가 아니야. 물러서. 귀하를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무림에서 오래 떠나 있었더니 눈이 무뎌졌네요.”
팔장로가 사내를 향해 정중하게 말했다.
“킥킥킥! 뭐야? 이제야 눈깔이 제대로 박힌 거야? 뭘 보긴 봤어? 본 거 같지 않은데?”
사내는 계속 유들거리면서 말했다.
“어린애들은 놔주시죠.”
“에이, 그럼 재미없지. 할망구한테는 관심 없다니까. 난 젊은 계집이 좋아.”
사내는 여인을 놔줄 생각이 없다. 누가 보아도 놔줄 생각이 없다. 오히려 축 늘어진 여인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논다. 목을 움켜잡고 이리 흔들, 저리 흔들 흔들어 댄다.
팔장로가 말했다.
“성검문 소축십검 오검 장반 오진북. 현 성검문 대리 문주. 제가 잘못 봤는지요?”
순간, 주위에 늘어선 취화원 살수들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사내를 쳐다봤다.
이 자가 장반 오진북이라고?
그렇다면 장반의 성정이 매우 크게 변했다. 지금 장반은 파락호처럼 건들거린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자가 중원 무림 최강자 중의 한 명이라는 것이다.
팔장로조차도 이 자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아걸이 소축십검을 와르르 무너뜨려서 약해 보이기는 하지만 이들은 절대 약하지 않다.
아걸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혈무대는 어떤 자의 도전도 받아들였다. 또 누구에게도 꺾이지 않던 진정한 강자의 무대였다. 소축십검이 그 무대를 지켰다.
아걸이 소축십검을 무너트리자, 이들은 절치부심했다.
남은 자들이 일제히 폐관 수련에 들은 사실은 이미 무림에 널리 알려져 있다.
예전보다 훨씬 강해져서 나왔다.
오진북이 이처럼 성정이 변한 것도 아걸 영향이 크다.
“지금 어린애를 데리고 이러시는 건 소축십검 님 위명에 맞지 않는 행동입니다.”
“지금 그거 나 화나게 하려고 하는 소린가? 아니면 칭찬? 분간이 어렵네?”
사내가 웃었다.
팔장로에게 생각이 있다면 사내가 장반 오진북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어야 한다. 아니면 장반만 들을 수 있게 작은 소리로 속삭이거나.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그의 신분을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오진북도 자신의 위명을 지키기 위해서 지켜본 눈들을 제거해야 한다.
팔장로는 이런 사실까지 예측하고 말했다.
오진북은 결코 그냥 온 것이 아니다. 이곳을 멀쩡하게 내버려 두고 떠날 자도 아니다.
오진북이 죽거나, 이쪽이 몰살당해야 끝난다.
상대방의 신분을 공공연하게 밝힌 것은 이런 뜻이 내포되어 있다.
팔장로가 말했다.
“너희는 지금 즉시 물러나라. 도주할 수 있으면 도주해. 내 생각에는 도주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지만, 돌아갈 수 있으면 돌아가라.”
“장로님!”
“단, 절차를 지켜.”
늑대에게 쫓긴 토끼는 무조건 굴속으로 뛰어든다. 대체로 자기가 살던 굴로 뛰어든다. 하지만 그런 행동이 오히려 굴에 남아 있던 새끼들까지 위험에 빠트릴 소지가 있다.
도망자는 자신의 굴로 들어가면 안 된다.
그래서 살수는 추격당한다 싶으면 절대로 본방에 돌아가지 않는다. 제일 은신처, 제이 은신처…… 계속해서 곁가지로 옮겨 다니면서 눈치를 본다. 본방에서 이제 돌아와도 좋다는 연락을 보내올 때까지 계속 도주한다.
팔짱으로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걸 지키라고 염려했다.
“장로님!”
취화원 살수들의 눈가에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팔장로가 이 정도까지 말했으면 승부는 명확하게 기울어진 것이다.
취화원 살수들이 봐도 그렇다. 일전통 살수 모두가 합공을 취해도 오진북을 이길 수 없다.
그 사실을 이제야 봤다.
사내가 건들거릴 때는 몰랐는데, 팔장로가 ‘오진북’이라는 말을 꺼내자 그제야 보였다.
사내의 단검이 숨 막힐 정도로 날카롭다. 전신에서 풍기는 살기에 숨이 멎는다.
왜 이걸 지금까지 보지 못했을까?
취화원 살수는 퇴빙을 최고의 살수 경지로 여긴다. 취화원뿐만이 아니라 모든 살수 문파에서 최고로 여긴다. 그리고 늘 퇴빙을 향해 노력한다.
얼음이 매우 천천히 녹는 것, 녹아서 없어져 버리는 것, 전혀 살기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 보통 사람과 섞여 있어도 전혀 구분되지 않는 살수.
살수이면서도 살기를 드러내지 않는 살수를 말한다.
오진북이 그런 경지까지 올랐다.
극강의 무인이면서도 무인의 기운을 뿜어내지 않는다. 고작 뿜어낸다는 게 파락호의 기운이다. 파락호로 위장해도 감쪽같이 속는다는 것이다.
지금은 파락호의 기운을 드러내지만, 오진북이 원하면 이런 기운조차도 숨길 수 있다.
살수들의 눈에도 이제는 이런 점들이 보였다.
팔장로가 말했다.
“빨리 가. 지금부터 내 싸움에 개입하는 자는 설혹 살아남더라도 용서하지 않는다. 가!”
그때 여인 중의 한 명이 말했다.
“장로님 혼자는 상대할 수 없어요. 나중에 용서하지 않더라도 저희는 싸워야겠습니다.”
스릉! 스릉!
여인들이 검을 뽑았다.
숨어 있던 여인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여섯 명이 숨어 있었는데, 그중 다섯 명이 나타났다.
한 명은 소리 없이 사라졌다.
목숨이 아까워서 도주한 것은 절대 아니다. 취화원 살수들은 수만 가지 경우를 생각해서 대비책을 세워 놓는다.
팔장로와 십이살수가 모두 죽을 경우도 고려해 놨다.
모두가 죽더라도 한 명은 빠져나가야 한다. 취화원에 소식을 전해야 한다.
전장을 빠져나간 자가 끝까지 살아남는다는 보장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밀마를 남겨 놓는 데 주력한다. 단, 전장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밀마를 남긴다.
이런 일은 팔장로와 목숨을 함께 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사라진 한 명이 그 역할을 한다. 일전통에서 오리 간격으로 밀마를 남긴다.
그녀는 밀마를 몇 개나 남길 수 있을까?
“못난 것들.”
팔장로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자신이 말린다고 들을 살수들이 아니다. 또 도주한다고 해도 오진북이 절대 놔주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다가 죽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자신과 십이살수는 아마도 오늘 이 자리에서 죽을 것이다.
“자 그럼 간은 다 본 것 같고, 시작해 볼까?”
스읏! 푹!
오진북이 손에 들고 있던 단검으로 여인의 심장을 찔렀다.
푸욱! 푹푹푹!
목을 움켜잡힌 여인의 몸에 단검이 꽂혔다.
한 치도 망설임이 없는 정확한 살수다.
“끄으으윽!”
여인이 비명을 토해 냈다.
오진북은 잔인하게도 숨을 단숨에 끊지 않았다. 치명적인 부위는 피하면서 계속 단검을 찔렀다.
여인이 몸을 바르르 떨었다. 그리고는 축 늘어졌다.
절명이다.
죽은 여살수는 일곡주 월영의 수하였다. 일곡주로부터 암영검을 제대로 전수 받았다. 그런데 오진북에게는 일초지적도 되지 못했다. 검조차 써 보지 못하고 죽었다.
“이런! 죽어!”
팔장로가 급히 검을 몰아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