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0화. 第六十八章 양사(兩死 : 두 죽음) (5)
퍼억! 퍽! 퍽!
오진북은 팔장로의 검을 피하면서 목 쥔 여인을 난자했다.
여인은 이미 절명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단검을 찔렀다. 곁에서 보기에도 너무 처참해서 차마 보지 못할 정도로 지독하게 단검을 찔러 댔다.
“십차(十車)!”
팔장로가 노기를 이기지 못하고 버럭 고함질렀다.
취화원 살수들이 오진북 같은 고수를 만날 일은 거의 없다. 이런 자를 죽여 달라는 청부는 문주 선에서 차단해 버린다. 취화원이 할 수 있는 청부만 받는다.
취화원 살수들의 살행이 낮은 자에게서 그치기 때문에 추격자도 낮은 자일 수밖에 없다.
오진북 같은 초절정 고수와 만날 일이 아예 없다.
하지만 무림이란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곳, 만약 지금 같은 경우가 생기면 죽을 수밖에 없다.
이게 냉정한 판단이다.
오진북과 싸워서 목숨을 구하는 방법은 없다.
팔짱으로는 최악에 대비해서 취화원 살수들에게 연수합격술을 수련시켰다.
십차망혼진(十車亡魂陣)이라는 진법이다.
무당파의 절대 검진인 구궁진법(九宮陣法)에서 착안해 만든 연수합격진이다.
십차망혼진은 구성원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두 명이 펼칠 수도 있고, 여섯 명이 펼칠 수도 있다. 이삼십 명이 한 사람처럼 움직일 수도 있는 최고 진법이다.
사실, 십차망혼진은 팔장로의 작품이 아니다.
전보영 호위청사 허굉우가 호위청의 독문진법을 넘겨주었다.
무인들에게는 낯선 진법이지만, 군인들에게는 냉혹하고 잔인한 진법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전보영은 언젠가는 취화원이 허도기와 싸우게 될 것이고, 그때가 되면 상당히 많은 살수가 죽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래서 힘이 될 수 있는 진법을 전해 주었다.
허굉우가 독단으로 진법을 전한 것이 아니라 전보영주와 상의한 끝에 넘긴 것이다.
십차망혼진은 바람개비 형태를 띠었다.
배치 순서는 일감(一坎), 이곤(二坤), 삼진(三震), 사손(四巽), 오중앙(五中央), 육건(六乾), 칠태(七兌), 팔간(八艮), 구이(九離)의 배치도를 따른다.
진의 구성원이 아홉 명을 벗어나서 열 명, 열한 명으로 늘어나면 각기 서고 싶은 위치에 서면 된다. 대체로 가장 취약하다 싶은 부분에 선다.
이런 형태는 오 중앙을 제외하고 계속 이어진다.
실질적으로 십파망혼진의 중심은 오중앙이다.
중앙에 선 사람은 적과 조우한다. 가장 거칠게 부딪친다. 그 순간에 외곽을 둘러싼 조원이 좌측으로 휘돌면서 바람개비를 일으킨다. 팽이채로 팽이를 치듯이 상대방을 팽이로 생각하고 왼쪽으로 회전하게끔 후려친다.
오진북의 왼쪽에 서 있는 사람들은 집중적으로 왼쪽만 타격한다.
반대쪽, 오른쪽에 서 있는 사람들도 오진북이 왼쪽으로 회전할 수 있게끔 사선으로 공격한다. 직접 몸통을 공격하지 않고 옆으로 비스듬히 후려친다.
상대방은 공격하든 수비를 하든 싸움을 벌이다 보면 어느새 바람개비를 따라서 왼쪽으로 돌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오중앙과 바람개비는 서로 공수를 보조하는 형태다.
일감이 공격할 때, 오중앙이 수비를 보조해 준다. 일감이 빠져나갈 때, 오중앙이 공격을 취한다.
오중앙은 진을 형성한 조원 중 네 명과 손발을 맞춘다.
일방적으로 혼자서 공격만 하는 조원이 세 명, 수비만 하는 조원이 한 명이다.
누가 공격을 하고, 수비하며, 중앙과 손발을 맞추는지는 오로지 구궁의 위치에 따라서 결정한다.
지금 십차망혼진은 팔장로까지 모두 열 명이 구성하고 있다.
팔장로는 육건 위치에 섰다.
아홉 위치에서 오직 수비만 하는 곳이다. 그곳에 한 명이 서 있지만, 팔장로가 같이 서서 힘을 보탰다.
그녀들은 ‘십차’를 수십, 수백 번도 넘게 연습했다. 그래서 눈 감고도 손발을 맞출 수 있다.
쒜에에엑! 쒜엑!
사방에서 검풍이 일어났다.
여인들이 팽그르르 회전하면서 검을 몰아친다. 오진북의 왼쪽 팔, 옆구리, 다리를 공격한다. 다른 쪽 여인들도 팽이를 친다. 직접 몸을 공격하고 싶어도 참는다. 오중앙과 연결해서 팽이가 원활하게 돌 수 있도록 공격한다.
좌측에서 네 명이 달려 나오고 우측에서 회전하며 검을 쓸어 냈다.
오진북과 직접 만난 여인도 스르륵 사라졌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절정에 이른 암영검이다.
“훗! 하루살이들.”
오진북이 웃었다.
그가 단검을 들어서 몸에 달라붙는 장검들을 쳐 냈다. 정말로 몸 주위에 왱왱거리는 파리나 모기를 쫓아내듯이 가벼운 손놀림으로 훑어 냈다. 순간,
까앙! 깡! 깡깡! 깡!
장검 아홉 자루가 거의 동시에 단검과 부딪쳤다.
조명십해 중에 선풍만검이라는 검해가 있다. 몸을 휘돌면서 천하를 검으로 가득 채우는 검해다.
선풍만검은 십차망혼진을 역으로 공격했다.
그는 오른쪽으로 돌았다. 취화원 살수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돌지 않고 거꾸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리고 부딪치는 모든 검을 강력한 내기로 쳐 냈다.
“우욱!”
“헉!”
살수들이 새파랗게 질려서 주춤거렸다.
검에 부딪히는 힘이 너무 엄청나다. 마치 철벽으로 손바닥을 후려친 느낌이 든다.
“하하하하하!”
오진북이 크게 웃었다.
“이따위 장난질을 할 시간이 있으면 방중술(房中術)이나 하나 더 연구해 봐. 그래야 사내가 즐거워하지. 하하하하!”
쒜에에에엑! 까앙! 깡깡깡!
선풍만검이 더 빨라졌다. 장검에 부딪히는 힘이 더 거세졌다. 그리고 마침내 장검이 뚝뚝 부러져 나갔다.
“위험! 물러서!”
팔장로가 사색이 되어서 소리쳤다.
오진북의 단검은 그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장검을 휘두르고 있던 오중앙을 행했다.
단검이 여인의 머리를 송곳으로 수박 찍듯이 내리찍었다.
퍽퍽퍽! 퍽퍽! 퍽퍽퍽!
오중앙에 선 여인은 한순간에 피범벅이 되었다.
그녀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주춤주춤 물러섰다. 한 걸음 물러설 때마다 검이 한 번씩 틀어박혔다. 그녀가 물러서고 싶어서 물러선 것이 아니다. 머리에 박히는 단검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육신이 밀려난 것이다.
“하하하! 하하하하!”
오진북이 미친놈처럼 웃어 대면서 단검을 찍었다.
오중앙은 족히 이십여 검이나 얻어맞았다. 눈 깜짝할 순간에 터진 검초에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오진북은 처음에는 머리는 노렸지만, 나중에는 전신을 가리지 않고 쳐 냈다.
머리, 어깨, 가슴, 팔…… 가리지 않고 찍는다.
무조건 육신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모조리 찍는다.
매우 잔인한 도법이다.
“후후후!”
십차망혼진의 중심을 무너뜨린 그가 주위를 돌아보며 웃었다.
오진북은 전신이 피로 물들었다.
지금까지 죽은 여인은 두 명이다. 하지만 수십 명을 죽인 듯 전신이 피에 흠뻑 젖어 있다.
“너희들 오늘 다 죽는다니까. 지금이라도 옷 벗고 이 어르신 품에 달려드는 년은 봐줄 수 있는데.”
스읏!
오진북이 단검에 묻은 피를 혀로 핥았다.
절명한 두 여인의 피가 섞여 있다.
“음! 향기로워. 이 맛이야. 너희들 피 맛은 어떨까? 할망구는 싫어. 어쩐지 피 맛이 탁할 것 같아. 피도 젊고 싱싱해야 맛있지. 그럼 다음은…….”
스으으읏!
오진북이 단검을 어깨높이로 들어 올리고 여인들을 가리켰다. 다음은 누구의 피 맛을 볼지 결정하는 것처럼 보였다.
“미친놈!”
쒜엑! 팟!
사손에 있던 여인이 갑자기 사라졌다. 눈앞에서 연기처럼 팟 꺼져 버렸다.
그런데 그 순간, 오진북도 팟! 사라졌다.
“웃!”
모두가 경악성을 토해 낼 때, 오진북이 취화원 살수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졌던 사람들이 다시 나타났다.
오진북은 여인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있었다. 단검은 이미 명치를 뚫었다. 여인의 몸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린다. 밑으로 축 떨궈진 얼굴에서 삶이 사라져간다.
“사, 사령귀변이다!”
팔장로가 놀라서 말했다.
사령귀변은 암영검과 빼닮았다. 조명십해 중 하나라는 점에서 더 강력할 수도 있다.
푸욱! 푹! 푹! 푹!
오진북은 서둘지 않았다. 천천히 단검을 뽑아서 다시 찔렀다.
그때마다 목덜미를 잡힌 여인이 꿈틀거렸다.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이미 허파가 뚫렸다. 입으로 토해져야 할 비명이 가슴으로 새어 나온다.
끅! 끅!
여인은 단검이 몸을 쑤셔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나중에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오진북은 그제야 부서진 장난감 던지듯 그녀를 내던졌다. 그리고 다시 단검을 들어서 피를 핥았다.
“역시 맛 좋아. 좋아. 다음은 누구 피를 맛볼까?”
그가 눈알을 번들거리면서 여인들을 돌아봤다.
“정상이 아냐. 소축십검이 어쩌다가 이렇게…….”
취화원 살수가 중얼거렸다.
“마공이다. 마공을 수련했어. 지금 저놈에게는 우리가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미 환청, 환각에 사로잡혔어.”
팔장로의 눈에 암울한 기운이 드리워졌다.
오늘 모두 무사하지 못한다. 이 자는 일전통에 자신들이 있는 것을 알고 왔다. 우연히 온 게 아니다.
자신들을 말살시키기 위해서 왔다.
임시 성검문주가 강호에 나왔는데 아무도 알지 못했다. 적랑대, 취화원, 전보영…… 모든 눈과 귀가 가려졌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급습이다.
역시 허도기답다.
허도기가 귀찮은 적들을 깔끔히 정리하는 중이다.
오늘 일전통은 막을 내린다.
팔장로는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도주해. 사방으로 흩어져서. 이놈은 우리 살법을 꿰뚫어 보고 있어. 수가 다 읽히는데 무슨 수로 싸워. 지금 이 상황에서는 한 명이라도 살아남는 게 최선이야.”
“장로님!”
“토 달지 마. 내가 내리는 최후 명령이야. 퇴각해.”
팟!
팔장로가 사라졌다. 암영검처럼 몸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육신은 고스란히 존재하는데, 영혼이 사라졌다. 한순간에, 사람이 목석으로 변한 느낌이다.
‘사생락!’
취화원 살수들이 일제히 뒤로 물러섰다.
팔장로는 삶과 죽음의 끝에서 칼이 날아오는 걸 보고 마지막 일격을 날릴 것이다. 그 순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모두 뒤로 물러선다.
‘장로님!’
모두 암울한 눈으로 팔장로를 쳐다봤다.
팔장로는 삶을 버렸다. 오진북에게 사생락을 걸면 어쩌자는 것인가.
팔장로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보는 순간, 마지막 순간을 볼 때, 오진북의 검은 몸에 틀어박힐 것이다. 하지만 팔장로도 일 검을 날릴 수 있다.
이기지는 못해도 동귀어진은 가능하다.
“후후! 사생락인가?”
오진북은 취화원의 절기인 사생락도 알아봤다.
“우리한테도 그거하고 비슷한 수법이 있거든 해 볼까?”
저벅! 저벅!
오진북이 거침없이 걸어왔다.
그의 전신에서 무거운 검기가 풍겨 나온다. 살기를 쏟아 내는 것은 아닌데, 전혀 기운을 드러내지 않는데…… 그런데도 조금만 움직이면 검이 튀어나올 것 같다.
그 검은 무척 빠르고 강할 것이다.
취화원 살수들은 오진북을 보는 순간, 압도당했다. 기운이 위축되어서 검을 들지 못했다. 오진북은 숨겨진 기운으로 드러난 기운을 압도한다.
저벅! 저벅! 저벅!
그가 다가왔다.
스읏!
그는 팔장로 앞에서 단검을 들어 올렸다.
장검 대 단검, 분명히 장검이 유리하다. 그런데도 팔장로는 검을 쳐 내지 못했다.
사생락! 삶과 죽음의 경계! 분명히 지금이다! 그런데도 검을 쳐 내지 못하고 있다.
스읏!
단검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서 쏘아져 왔다.
‘지금!’
팔장로는 전력으로, 그야말로 한 줌의 진기까지 모두 짜내서 검을 휘둘렀다.
쒜에엑!
그녀의 검은 오진북의 코끝을 스치며 지나갔다.
사생락이 아니었다. 아직은 아니었다. 칼끝과 코끝의 경계, 그만큼을 더 기다려야 했다. 실오라기 한 올의 차이, 그 차이를 견디지 못하고 검을 쳐 냈다.
슈웃! 퍽!
검이 팔장로의 가슴을 뚫었다.
“큭! 너희는 이래서 안 된다니까. 마음이 너무 소심해. 계집이면 계집답게 몸이나 굴리고 있어야지. 어디서 칼을 들고 설치는 거야. 아, 늙어서 그게 안 되나?”
“바, 방금 그거…… 은장…… 재계이살?”
“후후! 보는 눈은 있군. 맞아. 은장재계이살을 제대로 쓰면 이렇게 돼. 후후!”
오진북은 팔장로의 숨을 끊지 않았다. 절묘하게 즉사시키지 않고 삶을 연장시킨다.
그때 취화원 살수 두 명이 오진북을 향해 공격해 왔다.
쒝! 쒜에엑!
오진북은 피식 웃으면서 옆으로 피했다. 공격이라고 하기에는 살수들의 검이 너무 정직했다. 공격하는 모습은 물론이고, 검 끝까지 환히 보였다.
그 순간, 살수의 검이 팔장로의 몸에 틀어박혔다.
푹! 푹!
“장로님, 안녕히.”
“큭! 도주…… 하라니까. 그래…… 고맙다.”
팔장로가 고개를 푹 떨궜다.
설수들의 검은 애당초 오진북을 향하지 않았다. 팔장로를 겨눴다.
오진북이 검을 거두고 물러난다고 해도 팔장로는 살리지 못한다. 그래서 팔장로를 편하게 보내준 것이다.
“공격해!”
쒜에엑! 쒜에에에엑!
취화원 살수들이 일제히 오진북을 노리고 검을 쳐 갔다.
오진북은 무너지지 않는 바위다. 취화원 살수들은 거대한 바위에 부딪히는 날파리처럼 보인다. 그래도 부딪힌다.
‘장로님 혼자 보낼 수 없어.’
여인들은 입술을 잘끈 깨물면서 살수를 쳐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