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2화. 第六十九章 살우(殺雨) (2)
“보고드립니다. 일전통이 정비됐습니다.”
사령이 보고했다.
사령은 완성된 것만 보고한다. 티끌만큼이라도 미완성인 것은 보고하지 않는다.
일전통은 매우 지엽적이다. 지금 야천에서 일어난 일에 비하면 일전통 사건은 사건 축에도 못 낀다. 야천 대방 방주가 죽은 일만 해도 일전통 열 개를 정비한 것보다 세다.
그런데도 사령은 야천에 대한 보고는 일절 입에 담지 않았다.
허도기가 웃으면서 말했다.
“물론 놓친 자는 없을 테고?”
“없습니다.”
“그런데…… 겨우 일전통이야?”
“…….”
“일전통 대신에 야천에 대해 보고를 했어야지? 직접 움직였으면서.”
“아걸을 정리해 주셔야겠습니다.”
사령이 담담하게 말했다.
“사령.”
허도기가 사령을 조용히 불렀다.
“네.”
“이럴 때 보면 말이야. 사령이 내게 명령을 내리는 거 같아. 점점 말투가 강해져.”
“오해이십니다.”
사령이 털썩 무릎을 꿇었다.
“아걸은 내가 처리한다고 했지?”
“네.”
“아걸 때문에 못 한 일이 뭐지? 흑수혈검인가 뭔가 하는 놈을 죽이지 못한 것? 대방을 손에 넣지 못한 것을…… 내 책임으로 돌리는 건가?”
“아닙니다! 속하, 실언했습니다.”
“그놈들 외에도 쓰레기들이 많이 보이던데.”
“정리하겠습니다.”
허도기가 일어서라는 듯 손짓을 했다.
사령이 일어섰다.
“좀 이른 시간이지만 잠을 청할까 해. 내일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좋은 소식을 가져와.”
“네. 알겠습니다!”
사령이 대답했다.
지금 시간이 술시(戌時: 19시)다. 아침에 기침할 때까지라고 하면 겨우 반나절밖에 남지 않았다.
반나절 동안에 야천을 완전히 장악하라는 명령이다.
적랑대를 싹 쓸어 낼 것이며, 이번에 죽이지 못한 자들을 완전히 정리해라.
야천을 손에 넣어라!
이 모든 일을 반나절 안에 해내야 한다.
그런데도 사령은 분명히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조급해하지도 않았다.
반나절? 그까짓 놈들을 죽이는 데 반나절까지 필요한가? 정말로 움직인다면 한 시진이면 족한 것을.
그리고 그 명령은 이미 하달되었다. 허도기에게 보고하기 전에 잔당소탕을 지시해 놓은 터이다. 지금쯤 중원 전역에서 칼바람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스으읏!
사령이 사라졌다.
“후후!”
허도기는 사라진 사령을 보면서 웃었다.
마유를 움직이는 것은 양날의 검이다. 유용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주인을 해칠 수도 있다.
마유를 사용하는 것은 여기까지.
야천을 손에 넣고, 아걸을 죽이고 나면 무림은 거의 평정된다. 몇몇 잔당이 남지만 오진북과 초가평, 그리고 폐관 수련을 끝내고 나올 진개가 깔끔히 해결할 것이다.
야천을 이용해서 장군가를 공격한다. 아니, 이제 본격적으로 황상을 공격한다.
‘내가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보라고, 조위. 날 무림으로 내몬 것이 그대의 가장 큰 실패작이야. 후후후후!’
허도기는 짙은 웃음을 흘렸다.
* * *
팔룡은 수하 네 명을 불렀다.
단구혈리, 비표비리, 철곤타리, 환묘법리.
팔룡 서풍국을 야천 팔방 방주 직에 올려놓은 실질적인 힘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내 너희들과 술 한잔하려고 불렀다.”
“부르실 줄 알았습니다.”
네 명이 침중한 안색으로 술잔을 받았다.
그들도 야천에서 일어난 변고를 알고 있다. 그러니 방주가 내리는 술잔이 평범할 리 없다. 이 술잔에는 깊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을 것이다.
방주는 직접 술병을 들고 네 명에게 한 잔, 한 잔 따랐다.
“너희가 있어서 내가 두 발 뻗고 잘 수 있었다.”
“과찬이십니다.”
“과찬이 아니지. 진심이야. 너희, 정말 내게 잘해 줬다.”
네 명은 팔룡이 따라주는 술잔을 받았다.
“자! 내 술잔은 누가 따라줄까?”
“제가 따르겠습니다.”
비표비리가 일어나서 팔룡의 술잔에 잔을 채웠다.
“자! 건배!”
팔룡이 잔을 높이 들고 건배를 외쳤다.
“건배!”
네 명이 일제히 복창하며 잔을 높이 들었다. 그리고 손에 든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준비하라고 한 것은?”
“마쳤습니다.”
“끝내 놓고 오는 길입니다.”
네 명이 일제히 대답했다.
단구혈리는 함풍에서 상인을 통제한다. 통제하기보다는 몇몇 상인과 교분을 트고 서로 필요한 것들을 주고받는다. 정보에 관한 내용이 전부이지만.
비표비리에게는 야천 팔방의 재산이 있다. 환묘법리는 각방에 숨어 있는 사백 간자를 관리하고 있고, 철곤타리는 삼천 명이나 되는 고수를 숨겨 놓고 있다.
이들은 방주에게 부름을 받기 전, 자신들이 관리하던 모든 것을 제삼자에게 이양해 놓았다.
방갓무인, 아걸! 그가 새 주인이다.
아걸은 아직 이 사실을 모른다. 하지만 조만간 알게 될 것이고, 어쩔 수 없이 모든 것을 차지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야천 팔방의 숨겨진 힘을 고스란히 넘겨주는데 ‘어쩔 수 없이’라는 말을 쓸 수 있나? 누가 돈과 힘을 싫어하나. 오히려 감지덕지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아걸에게는 팔방의 힘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아걸을 모른다면 당연히 ‘감지덕지’라는 말을 떠올리겠지만, 아걸을 알면 ‘어쩔 수 없이’라는 말을 쓰게 된다.
아걸은 칼밖에 모른다.
돈, 세력, 조직…… 모든 것에 관심이 없다. 부귀영화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런 사람에게 필요 없는 것을 맡기니 ‘어쩔 수 없이’라는 말을 쓰게 되는 것이다.
팔룡이 말했다.
“자! 이제 곧 우리 팔방 주인이 바뀐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놈입니까? 어떤 놈인데 감히 이따위 짓거리를 스스럼없이 하는지…….”
철곤타리가 묵직한 철곤을 꽉 움켜쥐며 눈을 부라렸다.
“폐관 수련 중이던 육방 방주가 주화입마(走火入魔)된 채 발견되었다. 부작용은 물론 즉사.”
“네?”
모두 깜짝 놀라서 팔룡을 쳐다봤다.
폐관 수련 중에 주화입마를 당하는 일은 흔하지는 않지만, 아예 없지도 않다. 늘 주화입마를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네 명은 팔룡의 말을 듣는 순간, ‘암살’을 떠올렸다.
“음! 그럼 방주님을 제외하고는…….”
“모두 죽었다.”
팔룡이 담담히 말했다.
“너희에게 이 말을 하기 전, 아걸이 소식을 보내왔다. 피하라고. 그 말을 들었을 때는 피할 만한 시간이 있었지. 피할 곳도 있었고. 아걸 그늘로 들어가면 설마 죽기야 할까. 취화원에 잠시 몸을 의탁해도 될 것 같았고.”
“…….”
사리는 입을 열지 않았다.
“너희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이 길을 택했다. 미안하구나.”
팔룡이 술주전자를 들어서 잔에 따르려고 했다.
“혼자 계시는 것도 아닌데 자작하십니까. 소신이 따라드리겠습니다.”
환묘법리가 주전자를 가로채서 술잔에 술을 따랐다.
팔룡이 술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육방주가 죽었다는 전서를 방금 받았으니까…… 우리도 아마 오늘 안으로 죽을 것이다. 너희 넷은 내 오른팔, 왼팔. 나와 너희는 동일체야. 날 죽이면서 너희를 죽이지 않을 리 없지.”
팔룡이 들고 있던 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저는 이 시궁창에서 태어나 시궁창을 전전하며 살았습니다. 매일 끼니조차 걱정하던 놈이 이 정도까지 살았으면 잘 산 것 아닙니까. 모두 방주님 덕분입니다.”
비표비리가 고개 숙이며 감사했다.
“솔직히 우리라는 놈들, 칼질 밖에 잘하는 게 더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칼질로 밥 벌어 먹고사는 데는 여기밖에 없고. 괜찮습니다. 죽음이야 항상 생각하고 있었느니. 그런데 방주님, 굳이 살길을 포기하고 죽음을 택하신 이유가 뭔지 궁금하네요?”
철곤타리가 물었다.
“한 사람을 살리려면 누군가는 죽어야 하니까. 내가 살 길을 택하면 그가 죽을 테니까.”
“같이 살자고 하면 되지 않습니까?”
환묘법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물론 이제는 다 지나간 이야기다. 지금에 와서는 돌이킬 수가 없다. 육방주가 당했다면 팔방도 곧 당한다. 이미 몸을 빼낼 수 있는 시간은 사라졌다.
아걸이 경고를 보내왔을 때…… 그때 같이 피했다면.
이런 한탄이다.
팔룡이 살리려는 사람이 아삼이라는 것도 안다.
방주는 사리를 부르면서, 옆에 있던 호법 다섯 명은 오히려 떠나보냈다. 아삼에게 보냈다. 그들의 죽을 자리는 아삼 옆이라고 당부까지 했단다.
“그 양반, 살 생각이 없어. 모두 다 죽었는데, 혼자만 살겠다고 도주할 사람이 아냐. 적어도 나 정도는 죽어 줘야 눈이라도 깜짝하려나? 하하하!”
팔룡이 웃었다.
팔룡이 말하는 사람은 아삼이다.
아걸의 충고를 받았을 때, 제일 먼저 적랑대 소식부터 물은 이유도 아삼 때문이다.
수하가 목숨을 내놨는데, 수장이 도망갈까.
아삼은 피하지 않는다. 앉은 자리에서 다가오는 칼날을 상대할 것이다. 물론 아걸이 아삼에게도 경고를 보냈겠지만, 그런 말에 눈 하나 깜짝할 사람이 아니다.
아걸이 던진 경고보다 훨씬 실질적이고 피부에 와닿는 충고가 필요하다.
그래서 죽음을 택했다.
사람들은 잘못 알고 있는 게 있다. 파락호라고 하면 의리도 헌신짝처럼 던져 버리는 개망나니들의 집단이라고 알고 있는데…… 사실, 야천처럼 의리로 뭉친 집단도 드물다.
물론 개망나니들도 많다. 아니, 상당수가 개망나니다. 하지만 몇몇 사람만은 진실로 의리를 지킨다.
사리가 자신에 보이는 충성심, 흑수혈검이 야천 대방에게 보이는 충성심, 패도광마가 야천 삼방 방주에게 보이는 충성심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팔룡이 아걸에게 굴복했을 때, 팔룡은 아걸을 마음의 주인으로 모셨다.
그 주인이 힘든 일을 겪고 있다.
수하된 자, 주인의 힘든 일을 막아주는 것이 최선이다. 그것은 바로 아삼을 살리는 일이다.
팔룡은 적랑대의 멸절 소식을 듣고 이 부분을 가장 깊게 고민했다.
“시간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술이나 들죠?”
환묘법리가 말했다.
“그럴까? 누군지 빨리 와야 하는데. 늦게 오면 술이 부족하겠어. 하하하!”
팔룡이 웃으면서 술주전자를 들었다.
“자! 내가 한 잔씩들 더 따르지. 이따가 힘을 써야 하니까 취하지는 말고.”
“방주님도 참. 이런 맹물 마시고 취하는 사람도 있답니까. 하하하!”
비표비리가 웃었다.
“아아악!”
“크아아아악!”
밖에서 비명이 터지기 시작했다.
비명이 매우 날카롭다. 일부러 안쪽에까지 들리라고 처절한 비명을 끌어내고 있다.
비명이 유난히 크고 길게 이어지는 것이 그 증거다. 간단하게 죽일 자도 일부러 죽음을 길게 끌어낸다. 도주할 수 있으면 도주해 보라고 도발한다.
“자식들, 어린애 장난질은.”
“왜? 우리도 이런 짓, 많이 해 봤잖아. 솔직히 이렇게 밑에서부터 무너트리면 절망감이 와락 일어나지 뭐.”
철곤타리와 환묘법리가 웃으면서 말을 주고받았다.
비표비리는 허리춤에 꽂힌 비표를 꺼냈다가 집어넣기를 반복했다. 비표 상태를 살펴보는 것인데…… 정작 싸움이 벌어지면 몇 개나 던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리는 결코 패도광마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저들은 패도광마도 죽였다.
무공 차이가 심하게 벌어지리라는 건 이미 짐작하고 있다.
“아아악!”
“크윽!”
비명이 바로 지척에서 들렸다.
거의 다 왔다.
꽝! 내문(內門)이 발길질에 차이는 소리도 울렸다.
“첫 번째는 내가.”
비표비리가 집무실 문을 노려보며 섰다. 그의 두 손은 허리춤에 올라가 있었다.
꽝!
집무실 문이 거친 발에 채워졌다.
문짝이 떨어져 나간다. 그리고 흑의를 입은 자들이 안으로 들어섰다. 순간,
쒜에엑! 쒜엑!
비표비리 손에서 비표가 쏟아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