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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343화 (343/600)

#343화. 第六十九章 살우(殺雨) (3)

탕! 타당! 탕! 탕!

비표비리가 날린 비표는 너무도 싱겁게 튕겨 나갔다.

비표비리는 실전을 통해서 비표술을 수련했다. 늑대를 죽이고, 사람을 죽이면서 비표 던지는 법을 깨달았다. 모든 초식이 목숨을 걸고 터득한 것이다.

그래서 상대방을 보면 어디로 어떻게 던져야 좋을지 그림이 그려진다. 상대방의 모습을 보자마자 가장 취약한 곳이 선명하게 드러난다고나 할까?

그러면 즉시 비표를 날린다.

이번에도 그랬다. 흑의인이 문을 박차고 들어섰을 때, 그들을 보자마자 허점을 찾아냈다.

허벅지, 허리, 어깨!

‘이 정도면 충분해. 꽂을 수 있어!’

그는 자신감을 가지고 비표를 날렸다.

하지만 눈앞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정말로 인간 같지 않은 움직임이 일어났다.

검이 뽑혀 날아오는 비표를 쳐 낸다. 아주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움직임이다. 비표가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날아오는데도, 전혀 서둘지 않고 유유히 쳐 낸다.

비표비리는 지금까지 이토록 넉넉한 검초를 본 적이 없었다.

빠르고 강한 칼이라면 당장 아걸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여유로운 검, 편안한 검, 넉넉한 검…… 절대적인 자신감으로 쳐 내는 검은 처음 봤다.

“재수 옴 붙은 것 같군. 오늘 일진이 꽤 사나울 것 같은데.”

비표비리가 손을 허리춤에 올리며 중얼거렸다.

흑의인들은 비표비리의 중얼거림 따위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안하무인 격으로 집무실을 쓱 훑어보더니, 다짜고짜 방주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왔다.

흑의인은 모두 네 명이다.

그중 한 명이 비표비리의 비표 여섯 개를 혼자 쳐 냈다.

일대일의 승부로도 비표비리는 흑의인을 상대할 수 없다. 한데 눈앞에 네 명이 다가온다.

이미 싸울 수 있는 여지가 없다.

그래도 비표비리는 전력을 다해서 비표를 내던졌다. 허리춤에 꽂혀 있던 비표 스무 개가 모두 날아갔다.

“이번에도 막아 봐!”

비표비리의 손이 품속으로 들어갔다.

품 안에는 최후에 사용할 생각으로 비표 두 자루를 숨겨놨다. 그것마저 꺼내 쓸 생각이다.

하지만 그의 비표는 힘을 잃은 지 오래다.

탕탕탕! 탕탕탕탕!

비표는 날아가는 족족 검에 퉁겨나갔다.

비표비리의 비표술은 죽음을 앞둔 인간이 어떻게든 목숨을 건져 보겠다고 발악하는 최후의 저항처럼 보였다.

쉬잇! 팟!

검이 위로 쳐들렸다. 그리고 밑으로 쭉 그어졌다.

“엇!”

“아!”

앉아 있던 삼리는 눈을 부릅떴다.

그들 모두가 봤다. 비표비리의 몸이 쩍 갈라진다. 단숨에 두 동강 난다.

실제로 비표비리의 몸은 두 동강 나지 않았다. 그가 왼쪽 어깨부터 오른쪽 옆구리까지 길게 베인 것은 사실이지만, 몸을 두 쪽으로 갈라낼 만큼 강한 검초는 아니었다.

흑의인은 딱 죽일 만큼만 검을 썼다.

그런데 지켜보는 사람들 눈에는 비표비리의 몸이 완전히 갈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너무도 강력한 검초다.

“제길! 이건 상대할 엄두가 나지 않네.”

철곤타리가 묵직한 철곤을 들고 일어섰다.

휘이잉! 휘잉!

철곤타리는 철곤을 허공에 휘두르면서 방금 비표비리를 죽인 흑의인에게 걸어갔다.

흑의인은 피가 뚝뚝 흐르는 장검을 들고 있을 뿐이다. 철곤타리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흑의인들은 일절 말이 없다. 그저 묵묵히 죽일 뿐이다.

“재수 없는 놈!”

쒜에엑!

철곤타리가 강력하게 철곤을 내질렀다. 철곤으로 흑의인의 가슴을 찔러 갔다.

그 순간 흑의인의 검이 밑에서 위로 쳐 올려졌다.

너무도 간단한 초식이다.

짚단을 벨 때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고, 처진 검을 다시 위로 올려친다.

그것과 똑같다. 비표비리를 벨 때는 위에서 아래로 내리쳤다. 그러니 그의 검은 지금 하단을 향하고 있다. 그 검을 방향을 바꿔서 다시 위로 올려친다.

쒜엑! 팟!

철곤타리의 철곤이 가운데 부분에서 싹둑 잘려 나갔다.

쇠로 만든 곤(棍)이 검에 잘렸다. 검을 뭉개 버리려고 만든 병기인데, 오히려 검에 잘렸다.

흑의인은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위로 쳐진 검을 다시 밑으로 그어 내렸다. 마치 예정된 초식을 이어가는 듯이 매우 매끄러운 연속 동작이 펼쳐졌다.

퍼어억!

철곤타리의 몸도 갈라졌다.

“방주. 이놈들이 누군지 아시겠습니까?”

환묘법리가 말했다.

“낸들 아나.”

팔룡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킥! 세긴 세네. 이러니 대방 방주도 나가떨어졌지. 하지만 이놈들도 주인한테는 안 되겠죠?”

단구혈리가 흑의인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 싸움까지 우리가 관여할 바는 아니지. 우리 목숨은 여기서 끝이니까. 우린 그저 죽어 주면 되는 거야.”

“방주, 그런데 정말로 이럴 가치가 있다고 보십니까?”

“가치라. 후후! 내 마음을 솔직히 말하면…… 솔직히 우리가 죽어도 아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아. 아걸은 우리에게 정이 없어. 정이 들만한 시간도 없었고. 그저 우리를 이용해서 알아보고 싶은 것을 알아낼 뿐이지.”

“그건 확실히 그렇죠. 아걸과 우리 사이에 딱히 뭐가 있을 건 없는데. 그래서 여쭌 겁니다. 이럴 만한 가치가 있는지.”

“우리는 죽어도 괜찮은데…… 대주가 죽으면 아걸은 크게 흔들려. 모신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우리가 주인으로 모신 자가 흔들린다면…… 후후!”

팔룡이 가늘게 웃었다.

아삼이 죽으면 아걸은 틀림없이 흔들린다.

방주가 도주하면 흑의인들은 당장 아삼에게 달려간다. 그 후에 방주를 쫓는다. 방주가 도주하지 않고 버티면 지금처럼 이들은 팔방부터 들이친다.

그 사이에 아삼을 빼돌린다.

아삼이 말을 듣지 않을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럴 때를 대비해서 최대한 적의 수를 줄인다. 조금이라도 아삼을 살릴 수 있는 형태로 만든다.

흑의인들은 우선순위에서 아삼보다 팔방을 앞에 두고 있다. 적랑대 척살보다도 야천 장악을 먼저 생각하고 있어서인데…… 팔룡은 그 점을 정확하게 읽어냈다.

팔룡이 말했다.

“흔들리지 않아도 천하제일검을 상대하기가 힘든데, 흔들리기까지 하면 필패지. 우리 주인까지 죽으면 우리는 살아 있으나 죽으나 매한가지. 차라리 죽어서 은혜라도 남기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은데. 이만하면 이득이지?”

“아걸이 방주의 뜻을 알아줘야 이득이죠.”

“알아줄 거야. 알아주고도 남을 사내야.”

“그러면 뭐 이렇게 죽는 것도 괜찮겠죠. 킥킥!”

환묘법리가 키득키득 웃으면서 말했다.

자신들의 죽음을 알아준다는 말은 남겨진 가족들을 보살펴 준다는 말이기도 하다.

방주는 아걸이 그렇게 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제길. 우리가 넘겨준 것이 얼마인데, 저도 사람이면 뒤는 봐줘야지.”

단구혈리가 툴툴 웃으면서 말했다.

“누가 달래? 그런 건 아무짝에도 쓸모없을지 모르잖아.”

“돈이 어떻게 쓸모없나? 저한테 쓸모없으면 우리 애새끼들에게나 주라고 해.”

“그런 건 살아서 직접 말해.”

환묘법리와 단구혈리가 티격태격했다.

아걸에게 팔방 전체를 넘겨주었다. 자신들이 넘겨준 것이 상당히 크다. 하지만 아걸의 눈에는 성이 차지 않을 것이다. 또 필요 없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거기에 자신들의 죽음까지 보태면…… 아걸이 사람이라면 뒤를 봐줘야 한다.

그가 진실로 자신들의 가족을 돌봐 준다면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야천에서 칼잡이로 사는 거, 좋은 생활이 아니다. 자신은 싸움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이런 길을 가지만 결코 자식에게 남겨 주고 싶은 길은 아니다.

아걸이 뒤를 봐준다면 자식들은 야천을 떠나 밝은 세상에서 편히 살 수 있다. 그것이 야천에서 중책 가족으로 사는 것보다 훨씬 나은 삶일 것이다.

“자, 그러면 저희 먼저 가겠습니다.”

환묘법리와 단구혈리가 일어섰다.

팔룡은 술잔을 들어서 마지막 술을 마셨다.

사리 두 사람이 나섰지만 아마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꿀꺽!

팔룡이 술잔을 비웠다. 그 사이 환묘법리가 쓰러졌다. 단구혈리도 흑의인의 검을 막지 못하고 무너진다.

술 한 잔 마실 시간, 그 시간에 두 생명이 쓰러진다.

환묘법리가 물었다. 이럴 가치가 있냐고. 충분히 가치가 있다. 사리가 죽는 동안 흑의인 네 명이 집무실 안쪽 깊숙이 들어왔다. 덫에 걸렸다.

팔룡이 술잔을 던져버리고 일어섰다.

저벅! 저벅!

그는 태연히 흑의인에게 걸어갔다.

그는 애병도 잡지 않았다. 흑의인에게 걸어가다가 환묘법리가 떨군 검을 집었다.

쉬이익!

팔룡이 허공에 검을 휘둘러보며 말했다.

“당신들 어디에서 왔는지 알려 줄 수 있나? 염라대왕 앞에 불려 가거든 적어도 누가 보내서 왔는지는 말해야 할 것 같아서.”

흑의인은 말없이 검을 들어 올렸다.

팔룡이 피식 웃었다.

“그럴 줄 알았어. 몰인정한 놈들. 어디서 왔는지 몇 글자 말해주면 뭐가 어떻게 된다고. 참 야박하네. 그런데 너희들 말이야, 여기가 어디라고 온 거야?”

“…….”

“너희는 정말 야천이 만만한가 봐?”

팔룡이 진기를 끌어냈다.

흑인은 여전히 묵묵부답 말이 없다. 그들은 네 명이 왔지만 세 명은 아예 검도 뽑지 않았다. 한 명이 사리를 모두 척살했다. 나머지는 뒤에 멀찍이 서서 싸움을 지켜본다.

흑의인은 팔룡도 무시하고 있다.

‘정나미 떨어지도록 강한 놈들.’

팔룡은 거치적거리는 것을 치워 버리겠다는 듯 집무실에 차려진 술상을 발로 걷어찼다.

탁!

꾸르르르릉! 멀쩡하던 집무실이 지진이라도 만난 듯 심하게 흔들렸다.

순간, 흑의인의 어깨가 꿈틀거렸다.

“후후! 놀랐나 보지?”

흑의인은 분명히 격동했다.

“너흰 내가 바보로 보여? 상대가 안 될 줄 아는데, 너희하고 검으로 맞서겠냐고. 우리는 말이야. 싸움을 칼로 하지 않아.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찾지.”

구르르릉! 구르릉!

집무실이 마구 요동쳤다.

뒤에 물러서 있던 흑의인 세 명이 재빨리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앞에 서 있던 한 명은 바로 공격해 왔다. 흑의인도 더는 여유를 갖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세 명 중 한 명이 막 집무실 밖을 벗어났을 때, 그들이 발로 차 부숴 버린 문 위로 철문이 쿵 떨어져 내렸다.

네 명 중의 한 명만 빠져나갔다. 다른 세 명은 팔룡과 함께 집무실 안에 갇혔다. 사리가 목숨을 잃으면서 저들을 끌어들인 효과가 나타났다.

팔룡은 환묘법리의 검으로 박투검(搏鬪劍)을 펼쳐서 흑의임의 검을 막았다.

박투는 서로 치고받는 싸움을 말한다. 박투검이란 검 몇 번 맞을 각오를 하고 오직 상대를 죽이겠다는 신념으로 검을 떨쳐 내는…… 투전꾼들의 검법이다.

초식이 없는, 본능에 의존하는 검이기도 하다.

쒜에에엑!

하지만 박투검은 무의미했다. 그저 본능적으로 검을 떨쳐 냈을 뿐, 상대방의 검초를 막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어차피 집무실에 갇힌 자들은 모두 다 죽는다.

까앙! 깡!

검과 검이 마주쳤다. 그 순간,

퍼억!

팔룡은 날카로운 쇠붙이가 육신을 헤집고 들어서는 것을 느꼈다.

검이 몸으로 가르고 빠져나간다.

“흑! 흐흐흐!”

팔룡이 웃었다. 그때,

꽝! 꽈아아아앙!

집무실 바닥에 설치된 화약이 터지기 시작했다.

팔룡의 눈에 흑의인 중 한 명이 가루가 되어서 날아가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도 정신을 잃었다. 발밑에 있던 화약이 터져 팔룡의 육신도 한 줌 가루로 만드는 중이었다.

꽝! 꽝! 꽈앙! 꽝!

광산에서 금을 캐낼 때 쓰이던 화약이 집무실 바닥에 대거 매설되어 있다.

상대할 수 없는 자들이 공격해 온다는데 어떤 미친놈이 검으로 싸우겠나.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적이라도 함께 끌고 가야지. 혼자 죽을 수 있나.

꽈아앙! 꽈앙!

하하하! 우하하하하!

화약 터지는 소리가 마치 팔룡의 웃음소리처럼 크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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