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5화. 第六十九章 살우(殺雨) (5)
“가라!”
호위 무인 한 명이 혼사와 적풍의 등을 떠밀었다.
“그래. 너희는 가. 일단 우리 셋이 막아 보겠는데, 우리도 순식간에 당하겠지. 패도광마를 죽인 자라면 우리도 막지 못해. 시간만 잠시 지체시킬 뿐이니까.”
호위 무인들은 짊어지고 온 행낭을 풀었다.
그 안에는 화약이 가득 담겨 있었다. 광산에 운반하기 편하도록 막대 형태로 뭉쳐 놓은 화약이다.
세 사람은 한치도 망설이지 않고 화약을 꺼내 몸에 둘렀다. 그리고 아직 적이 보이지도 않는데 심지에 불까지 붙였다.
타악! 치잇!
심지가 타들어 간다.
“어서!”
세 사람이 두 사람을 쳐다봤다.
순간, 혼사와 적풍이 양쪽에서 아삼의 겨드랑이를 잡아 꼈다.
“도주할 생각이 없어도 좋은데 가만히만 계시기를.”
아삼은 멍하니 쳐다볼 뿐이다.
적랑대 간자들이 아삼을 보며 웃었다.
“아이고, 이제야 속 시원하네. 대주님 안녕히 계십시오. 대주님께서 살아 계신다면 저희도 원이 없습니다.”
“이놈들!”
“대주님은 이미 하실 만큼 하셨습니다.”
“키킥! 내가 뭘 했다고.”
“저희 곁에 있어 주신 것만 해도 큰 힘이 됐습니다. 정말 모르십니까? 아니면 아시면서도 모른 척하시는 겁니까? 대주님은 참 능구렁이 같다니까.”
“하하하!”
적랑대가 웃었다.
이곳에 있는 간자 십여 명, 이들이 죽으면 야천에 뿌리박고 있던 적랑대는 몰살당한다.
“그럼!”
혼사가 무인들에게 고갯짓을 했다.
“가!”
무인 세 명은 재빨리 움직였다. 두 명은 문 옆으로 바짝 다가붙었고, 한 명은 아삼이 누워 있던 자리에 가서 편한 자세로 드러누워 술을 마셨다.
무인은 진짜로 술을 마시면서 아삼 흉내를 내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겉옷 속에 숨겨진 심지는 이미 바싹 타들어 가고 있다. 곧 화약이 터질 것이다.
쉬이잇! 쉬이잇!
혼사와 적풍은 머뭇거리지 않고 신형을 날렸다.
“킥킥! 킥킥킥!”
아삼은 웃기만 했다.
너무 기가 막히면 웃음밖에 안 나온다.
꽝! 꽈앙! 꽝!
거대한 폭발음이 연달아서 세 번이나 울렸다.
“됐다.”
아삼이 팔을 들어서 혼사와 적풍의 손을 다독거렸다. 잡은 어깨를 놓으라는 손짓이다.
두 사람은 멀리 폭발 현장을 지켜보다가 안심해도 좋다고 생각했는지 손을 놨다.
“서풍국이 무슨 말을 했다고?”
아삼은 야천 팔방 방주, 혹은 팔룡이라는 말 대신에 방주의 이름을 불렀다.
혼사가 팔룡이 했던 말을 다시 말해 주었다.
“파락호 놈들한테도 의리는 있다, 이건가? 아니면 강단이 있다는 건가. 후후! 오지랖 넓기는.”
아삼이 눈을 끔뻑거리며 말했다. 아삼의 눈은 폭발이 일어난 곳을 뚫어지게 쏘아보고 있었다.
“사리도 방주님과 함께 묻혔습니다. 파락호도 인간입니다.”
혼사가 대답했다.
“가자!”
아삼은 혼사가 한 말을 귓가로 흘려들었다. 아니, 정확하게 들었다. 다만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 팔방에서 일어난 일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적랑대!’
그렇다. 적랑대! 지금은 모두 멸살 되었지만, 적랑대는 마지막까지 제 몫을 다했다. 팔방에서 일어난 일을 눈으로 본 듯이 보고했을 게 뻔하다.
쉬이이익!
아삼은 폭발음이 일어난 곳으로 다시 쏘아갔다.
“지금 무슨!”
쒜에엑!
혼사가 금나수를 펼쳐서 아삼의 어깨를 낚아챘다. 하지만 아삼은 술에 취해서 흐느적거리던 취노가 아니었다. 어느새 적랑대주로 돌아와 있었다.
스읏!
아삼이 먼지를 털어내듯 어깨를 들썩거렸다.
혼사의 금나수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니, 오히려 아삼의 어깨에 턱에 탁 걸렸다.
아삼이 어깨로 턱을 쳤다면 턱뼈가 부서져 나갔을 것이다.
“네놈들이 뭘 걱정하는지 아는데, 저런 폭발 속에서는 아무도 살아나지 못해. 모두 다 죽었어. 그럼 우릴 잡으려는 놈이 누군지 알아볼 기회라는 거야. 알것냐!”
따악!
아삼이 손을 들어서 혼사의 이마를 탁 쳤다.
쉬이잇! 쉬잇!
아삼은 매우 빠르고 기민하게 움직인다. 역시 적랑대주다. 취기는 어디로 갔는지 전혀 엿보이지 않는다.
쒜에엑! 쒜에에엑!
그들은 폭발이 일어난 곳으로 돌아왔다.
화약을 몸에 품고 자진한 호위 무인 세 명은 시신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사방에 살점 덩어리와 뼛조각이 흩어져 있다. 핏물이 연기에 그을려 까맣게 탔다.
적랑대의 시신도 처참하기는 마찬가지다.
“어찌 멀쩡한 놈이 한 놈도 없냐.”
아삼이 시신들을 수습하며 중얼거렸다.
흑의인이 무서워서 도주한 사람은 없다. 일초지적조차 안될지라도 모두 남아서 끝까지 싸웠다. 폭발이 일어날 때까지 죽을힘을 다해서 시간을 끌어 주었다.
“여기!”
적풍이 흑의인의 시신을 찾아냈다.
흑의인의 폭발 여파로 복면이 반쯤 벗겨진 상태였다.
그나마 육신이 멀쩡한 것을 보면 폭발로부터 꽤 안전한 곳으로 몸을 숨긴 듯하다. 어차피 건물 전체를 폭삭 주저앉힌 대폭발은 견디지 못했지만.
아삼은 재빨리 흑의인에게 가서 반쯤 벗겨진 복면을 확 벗겨 냈다.
“응?”
순간, 아삼이 인상을 확 찡그렸다.
흑의인의 얼굴, 완전히 일그러져 있다. 아니, 곪아 있다. 입술이 절반이나 날아갔다. 이빨도 반쯤은 뽑힌 상태다. 코는 푹 주저앉았다. 눈도 한쪽은 녹아내렸다.
“이, 이거 문둥병 아닙니까?”
적풍이 놀라서 물러섰다.
아삼은 조심스럽게 웃옷을 벗겼다.
흑의를 벗기자 온통 곪아 터진 육신이 나왔다. 몸은 상처투성이였고, 죽은 뒤에도 진물이 흘러내렸다. 왼손 손가락은 네 개나 떨어져 나갔다.
나병 환자다.
이들은 이런 몸으로 절정 검을 펼쳤다. 성한 몸으로도 펼치기 힘든 검법을 수련해 냈다.
이자만 나병 환자인가, 아니면 다른 자들도?
옷을 벗겨서 확인한 자가 한 명뿐이라서 단정할 수 없다. 나병 환자 집단이라고 하기보다는 흑의인들 속에 나병 환자 한 명이 포함되었다고 보는 편이 더 설득력 있다.
아삼은 흑의인의 옷을 완전히 벗겼다.
나병 상태를 보려는 것이 아니다. 몸에서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단서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 옷을 털어 봤다.
흑의인은 몸에 아무것도 지니지 않았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먼지 한 톨 지니고 다니지 않는다. 흑의에 아예 주머니라는 것이 없다. 전낭 같은 것을 찔러넣을 수 있는 공간도 없다.
흑의는 항상 손목과 발목을 묶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일종의 침투복이다.
“이거 싸움이 굉장히 지저분해지겠는데. 이런 놈들은 물러서질 않아. 목적을 이루기 전에는.”
아삼이 중얼거렸다.
* * *
야구가 아걸을 찾아서 야천 대방으로 왔다.
야천 대방은 초긴장 상태다. 누군가가 주변 십 리 안에 나타나면 즉각 흑수혈검에게 보고하게 되어 있다.
야구가 아걸을 위해서 발 노릇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야구 자신은 본의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발 노릇을 충실히 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야구는 하남성에 들어서는 즉시 대방 문도에게 이끌렸다.
곧장 가! 왼쪽으로! 계속 가! 앉지 마라, 계속 가!
대방 문도가 야구를 휘몰아쳐서 사흘 걸릴 거리를 하루 만에 오도록 만들었다.
“하악! 학!”
대방에 도착한 야구는 손가락을 들어 올릴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입에서 단내가 쏟아지고, 눈에서는 까만 불통이 번쩍였다. 전신에서는 뜨거운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보고!”
대방 무인이 사정없이 몰아쳤다.
“빌어먹을! 좀 쉬고!”
스릉!
검이 뽑히는 소리…… 야구는 알았다는 듯 손을 번쩍 쳐들었다.
“나, 난…… 비표비리가…… 비표비리가 가라고 해서 왔는데…… 이거! 이것만 전해 주면…….”
야구가 품에서 밀랍으로 봉인된 서신을 꺼냈다.
야구는 일전통에서도 쫓겨난 인간말짜다. 흑의인도 야구에게까지는 신경이 돌아가지 않는다. 그들이 죽이기에는 오히려 손이 더러워질까 염려되는 자다.
비표비리는 딱 적당한 자를 밀자로 뽑았다.
만약 수하 중에 누군가를 뽑았다면 벌써 중간에서 척살 당했을 것이다.
스읏!
대방 무인이 야구의 손에서 서신을 채갔다.
아걸은 보고받고 또 받았다.
방주 중에서 요행히 살겁을 피했던 육방 방주와 팔방 방주가 죽었다. 적랑대도 모두 당했다. 할배도 습격받았다. 일전통이 무너지고 팔 장로와 십이 살수가 죽었다.
순식간에 몰아친 광풍이다.
아걸은 보고받으면서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다섯 명이 대방 방주를 죽이겠다고 나타났을 때부터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있었다. 중원 전역에서 이만한 고수 서른 명이 한꺼번에 움직이면 하지 못할 일이 없다.
할배가 목숨을 구한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다.
중원에서 일어난 일이 너무 전격적이라서 아걸은 모든 계획을 포기했다.
뭐라고 할까? 그냥 멍청하게 서서 치는 대로 두들겨 맞았다고나 할까? 현재 멈춰선 자리, 대방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지금 팔방에 머물러 있다면 그곳에서 움직이지 못했을 것이다.
허도기는 자신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 놓았다.
실제로 움직이지 못하게 다리를 묶어 놓은 것은 아니지만 중원 전역에서 너무 갑작스럽게 일이 빵빵 터지는 바람에 어디부터 막아야 할지 전혀 알지 못했다. 아니 손을 댈 곳조차 없었다. 이미 일은 다 터졌다.
결국 모든 계획을 포기하고 대방에서 보고나 듣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스륵!
아걸은 야구가 가져온 서신을 펼쳐 놓았다.
팔룡은 목숨을 던지면서 자신이 건사해 왔던 모든 것을 아걸에게 남겨 놓았다.
금광, 상인들의 눈과 귀, 그들의 연락처, 야천 각 방에 숨어 있는 간자 사백 명의 명단, 연락 방법, 숨겨서 양성한 삼천 무인…… 능히 일개 문파를 세우고도 남을 거대한 힘을 건네주었다.
“오늘 한꺼번에 많은 걸 받네.”
아걸이 중얼거렸다.
아걸 주위에는 살수 열 명이 늘어서 있었다. 할배가 보내준 적랑대 살수다. 취화원 살수와는 또 다른 전문 살수다. 오직 사람 죽이는 수련만 쌓았다.
“당신들은 돌아가지.”
아걸이 그들을 보며 말했다.
“아직 전임대주님이 살아계십니다. 돌아갈 수 없습니다.”
“시킬 일 없어. 돌아가도 좋아.”
“명을 함부로 어길 수는 없습니다. 전임 대주님께서 돌아오시라고 할 때까지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고집들하고는. 어떤 명령이든 다 듣는다고?”
“네. 어떤 명령을 내리시든.”
적랑대 살수는 살인 명령을 기대했다. 죽은 적랑대의 복수를 해줘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아걸이 뜻밖의 말을 했다.
“그러면 당분간 여기 흑수혈검의 손발이 되어 줘.”
“네?”
적랑대 살수 열 명의 눈가에 잠깐 불쾌한 빛이 어렸다가 사라졌다. 적랑대 살수는 지독할 만큼 혹독한 수련을 받은 자들인데 한낱 파락호의 손발이 되라니.
아걸은 어쩌겠냐는 듯 십살수를 빤히 쳐다봤다.
“알겠습니다. 명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살수 열 명이 아걸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아걸이 흑수혈검에게 팔룡이 보내준 서신을 건넸다.
“여기 팔방에서 내놓은 게 있어. 여기 보면 팔방의 눈은 두 개, 인과 각방에 숨겨진 간자 사백 명인데…… 이 사람들을 완전히 장악해 줘. 적랑대가 사라진 지금 이들이 우리의 눈과 귀가 되어야 해.”
아걸은 팔룡의 선물 중에서 상인들의 눈과 귀를 가장 중요시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흑수혈검이 상인과 간자들의 명단을 받아들였다.
그는 이제부터 적랑대 살수를 동원해서 가장 은밀하게 이들과 접촉해야 한다. 지금까지 알던 모든 힘을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힘만 움직인다.
“중원을 다닐 때는 변복하고.”
“풋!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도 저들에게 걸리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흑수혈검은 흑의인 두 명을 상대하지 못한다. 실전으로 겨뤄본 결과, 한 명은 죽일 수 있지만 두 명은 힘들다. 오히려 자신이 죽을 위기에 처했었다.
“여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지금 흑의인들이 장악하지 못한 것은 야천 대방뿐이다. 그러니 곧 손님이 올 것이다. 표면상 임시 방주인 흑수혈검을 죽이려고 달려온다.
“손님이 찾아온다는데 기다려 줘야지.”
“허도기가 올 겁니다.”
“그렇겠지.”
아걸이 태연히 말했다.
아걸은 이미 허도귀와 벌일 네 번째 승부를 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