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348화 (348/600)

#348화. 348. 第七十章 백척간두(百尺竿頭)(3)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면서 한 발 한 발 옆으로 움직였다.

누구든 먼저 검을 쳐 내면 저 상대를 칠 수 있는 거리다. 두 사람 모두 상대가 선공을 취해오면 즉시 반격을 취할 수 있는 고수다. 선공이 나은가, 아니면 후공을 취할까?

신중한 눈치 싸움이 이어졌다.

두 사람의 싸움은 사실 조금 불공평하다. 흑수혈검은 이미 이 검을 맞았다. 검 두 개가 모두 깊은 위치에 꽂혔다. 등은 심하게 갈라졌고, 배에서는 피가 철철 솟구친다.

흑의인이 절반의 이득을 취하고 들어간다.

촤라라락!

빙빙 돌던 흑수혈검의 검에서 귀화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귀린(鬼燐)처럼 검첨에서 푸른 불꽃이 피어나 하늘하늘 솟구쳤다. 푸른 빛이 개똥벌레처럼 사방으로 번져갔다.

진기와 녹린(綠燐)으로 만들어 낸 불꽃, 검린(劍燐)이다.

검 끝에 발라 놓은 녹린이 진기의 울림으로 떨어져 나온다. 하늘하늘 움직인다.

불꽃의 움직임은 시간이 지날수록 빨라졌다.

파르르륵! 촤라라락!

검린이 요란하게 피어났다. 폭죽 터지듯 솟구쳤다. 흑의인의 눈을 단숨에 가린다.

그러자 흑의인은 움직임을 멈췄다.

검을 중단으로 들고, 두 다리를 땅에 깊게 단단히 박고, 검은 흑수혈검을 겨눴다.

파르랑! 파르랑! 파르랑! 팍!

귀화가 뭉클뭉클 피어나더니 화살처럼 사방으로 쏘아졌다. 그 순간,

쒜에엑!

흑수혈검이 검을 쏘아 냈다. 검에서 피어난 검화가 곧바로 검신 자체로 변해서 흑의인을 지져갔다.

쒯! 쒜에엑!

흑의인도 순간적으로 오 초를 전개했다.

흑의인은 자법(刺法)만 펼쳤다. 찌르는 검이다. 검을 창처럼 써서 순식간에 오 검을 찔렀다.

흑의인은 오 검을 떨쳐 냈지만, 옆에서 보면 검 하나가 쭉 뻗어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첫 검과 마지막 검이 겹쳐 보이는 묘한 현상이 벌어졌다.

깡! 깡깡깡깡!

흑수혈검은 정확히 오 검을 받아쳤다.

자신이 먼저 공격해 들어갔지만, 오히려 상대방의 검을 받아 내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검을 받자마자 즉시 빙글 몸을 돌면서 칼을 휘둘렀다.

까앙! 깡!

흑의인이 휘돌려 치는 검을 받았다. 한데, 울림이 한 번으로 끝나야 하는데 두 번이나 연속해서 터졌다.

이 순간, 흑수혈검도 놀라운 손속을 보여 주었다. 검과 검이 부딪히는 순간, 내리친 검이 위로 퉁겨 올라올 때, 흑수혈검은 그 검을 다시 잡아당겨서 또 한 번 내리쳤다.

비록 처음 공격처럼 거세지는 못해도 두 번째 검 또한 망치로 내리치는 것 같은 강한 타격력을 지녔다.

검이 비명을 내질렀다. 흑의인의 검이 밀렸다. 아주 약간, 검신이 밑으로 쳐지는 듯했다. 그 순간, 흑수혈검의 검은 내리치는 검에서 찌르는 검으로 변했다.

쒜에엑!

흑의인이 머리를 뒤로 빨딱 젖혔다.

검이 흑의인의 관자놀이를 훑고 지나갔다. 머리 위까지 긴 혈흔을 남기면서.

슷! 슷!

두 사람이 동시에 물러섰다.

연속으로 공격을 하기에는 호흡이 많이 흐트러졌다. 다시 정비해야 한다.

흑의인의 머리에서 붉은 피가 뭉클뭉클 흘러내렸다.

약간의 우세!

무인들 사이에 이 정도의 우세는 우세로 여기지도 않는다. 이러한 우세는 언제든지 뒤바뀔 수가 있다.

스읏! 슷!

흑의인과 흑수혈검이 다시 검을 겨눴다.

그때! 왼쪽으로 물러나서 조용히 싸움을 지켜보던 흑의인이 득달같이 달려들며 흑수혈검의 허리를 후려쳤다.

쒯!

검이 눈부신 속도로 허리를 파고들었다.

흑의인들의 목적은 흑수혈검을 죽이는 것이다. 새로 나타난 아걸과 싸우는 것이 아니다. 방갓무인과 싸울 생각을 하고 나타났지만, 최우선 목표는 대방 방주를 척살하는 것이다.

그들은 죽더라도 흑수혈검만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

흑의인은 이런 사실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아걸에게 떠밀려서 한쪽으로 물러선 후에도 흑수혈검을 노려보며 호시탐탐 검을 쳐 낼 기회만 엿보았다.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마침 두 사람이 검을 겨누는데 흑수혈검이 흑의인에게 등을 보이고 섰다.

거리도 가깝다. 그냥 쳐도 벨 수 있다. 전력을 다한다면 결코 실패할 리 없다. 설혹 기습이 실패하더라도 동료가 그 틈을 노리지 않고 달려들 것이다.

이 대 일 승산이 있다!

번쩍!

흑의인의 검은 흑수혈검의 등을 두 쪽으로 쫙 갈랐다.

흑수혈검도 이번 공격은 예상하지 못했다. 단 둘만의 싸움은 서로가 인정한 것이라서 싸움이 끝날 때까지 손 쓸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야비한!”

흑수혈검은 소리를 지르면서 홱 돌아섰다. 하지만 급공을 피할 가능성은 없다. 순간,

까앙!

장도가 흑의인의 검을 막았다. 그리고 바로 칼날을 뒤집어서 장검을 타고 들어갔다. 장도가 검신 위를 뱀처럼 미끄러지며 안으로 쑥 들어섰다.

퍼억!

기습을 가했던 흑의인의 목에 칼집이 생겼다. 목동맥이 잘리면서 붉은 핏물이 확 솟구쳤다.

“학! 칵!”

흑의인은 목을 움켜잡고 비틀비틀 물러섰다.

아걸은 더 이상 그를 보지 않았다. 흑수혈검과 흑의인을 쳐다보며 계속 싸우라고 고갯짓을 했다.

흑수혈검과 마주 선 흑의인은 절호의 기습 기회를 잡고도 공격하지 못했다.

기습을 가려는 순간, 아걸과 눈이 마주쳤다.

다른 사람의 개입으로 생긴 빈틈은 노리는 게 아니다. 두 사람만의 싸움을 해라.

아걸의 주문은 매우 명확했다.

만약 아걸의 눈빛 경고를 무시하고 흑수혈검을 공격했다면, 아걸이 대신 나섰을 것이다.

아걸이 나섰다면 어디까지 개입했을까? 죽였을까? 아니면 기습하는 검만 쳐 냈을까?

흑의인은 후자라고 생각했다.

아걸은 자신의 목숨을 끊을 사람으로 흑수혈검을 지명했다. 그 일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중간에 어떤 변고가 생겨도 자신의 목숨만은 흑수혈검에게 양보할 것이다.

스읏!

흑수혈검이 다시 흑의인을 보며 섰다.

“밤이 길면 꿈도 긴 법!”

쒜에엑!

흑수혈검이 달려들었다.

다시 검 끝에서 귀화가 피어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느낌이 다르다. 매우 사악한 귀화다.

파르르릉!

검에서 방울뱀이 꼬리를 흔들 때처럼 찰랑거리는 방울 소리도 울렸다. 검 끝에 뚫린 작은 구멍으로 바람이 흘러든다. 날카로운 방울 소리를 흘린다.

쒯! 쒜에엑! 쒜에엑!

두 사람은 연달아 검을 쳐 냈다.

방어는 신법으로 한다. 검은 공격만 한다. 몸으로 피하고, 검으로 친다. 검으로 검을 막지 않는다.

쒯! 쒯! 쒯! 쒯! 쒯!

검이 눈부신 속도로 휘젓고 있다. 하지만 누구도 우세를 점하지 못했다. 호적수다. 팽팽하다.

하지만 검초가 계속될수록 두 사람의 몸에는 크고 작은 상처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서로가 검을 완전히 피하지 못했다. 몸에 검흔이 하나씩 새겨졌다.

파파! 쉿! 쒜엣!

피하고, 치고, 피하지 못하면 몸으로 맞아 주고, 검이 몸에 박힌 순간을 이용해서 한 번 치고…… 투지의 싸움이다. 먼저 검초를 늦추는 자가 죽는다.

더 빠르게, 더 빠르게, 더 빠르게, 검초가 극한을 향해 치달았다.

쎄쎄쎄쎄쎗!

두 사람은 평생 이렇게 빨리 검을 써 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거세게 검을 휘둘렀다. 또 그만큼 빠르게 피했다. 서로가 절정을 향해 치달렸다.

퍼어억!

어느 한순간, 매우 큰 소리가 울렸다.

흑수혈검이 흑의인의 검든 손을 잘랐다. 검이 손목 부근을 내리쳤고, 단번에 손목 밑이 뚝 떨어졌다.

쒝!

흑수혈검은 틈을 놓치지 않고 이차 공격을 가했다.

승기를 잡았다고 머뭇거리면 또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른다. 완전히 싸움이 끝날 때까지 검을 늦추지 않는다. 흑의인은 손목이 잘렸어도 계속 싸울 수 있는 자다.

퍼어억!

이어진 검이 흑의인의 목에 틀어박혔다.

흑의인의 머리는 몸에서 분리되어 둥실 떠올랐다.

‘끝!’

흑수혈검은 비로소 털썩 주저앉았다.

모든 힘이 쭉 빠져서 들고 있던 검조차 철렁 놓아 버렸다.

“하악! 하악! 하악!”

거친 숨이 쏟아져 나왔다. 싸우는 동안에는 티도 내지 못하던 고통이 비로소 밀려왔다.

주위에 흩어져 있던 십살수가 나타났다.

그들 중 일부는 죽은 흑의인을 한곳에 모았다.

또 일부…… 세 명은 흑수혈검에게 다가와서 상처를 보살폈다. 물 묻은 헝겊으로 피를 닦고 금창약을 발랐다. 혈을 눌러 지압도 했다. 적랑대 살수들의 손놀림은 매우 빨랐다.

“됐다. 이제는 내가 해도…….”

“치료받으십시오.”

적랑대 살수가 공손하게 말했다.

강자에 대한 존경이다.

흑수혈검이 살수를 쳐다봤다.

십살수는 감정 없는 얼굴로 치료에 전념했다. 흑수혈검을 치료하는 데 온 성심을 다했다.

“후후! 적랑대가 궁금해지는군.”

“그런 걸 궁금해하면 죽습니다.”

“죽지 않고 궁금함을 풀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부방주님은 이미 그 길을 알고 있습니다.”

십살수가 차분히 말했다.

“부방주가 아니라 대방 방주야.”

아걸이 다가와서 눈으로 흑수혈검의 상처를 살펴보며 말했다.

흑수혈검과 십살수가 무슨 말이냐는 듯 아걸을 쳐다봤다. 아걸이 대방을 이었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다만 흑수혈검이 이어받은 척 선포만 했을 뿐이다.

아걸이 말했다.

“나는 어떤 집단을 이끌기에는 짐이 너무 많아서. 지금 지고 있는 짐만 해도 무거워. 흑수혈검이 대방 방주야. 흑수혈검을 부를 때는 ‘방주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해.”

대방을 인수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알겠습니다.”

십살수가 즉시 대답했다.

“안 됩니다. 대방을 버리실 겁니까!”

흑수혈검이 즉시 반대했다.

“방금 무공을 봤으니 안심하고 맡겨도 되겠어. 대방은 원래부터 당신 것이었으니까. 죽은 방주도 그걸 원했을 테고. 내가 요구하는 것은 하나, 허도기에게만 휘둘리지 마. 그거면 돼.”

흑수혈검도 더는 권유하지 않았다.

아걸에게는 정말 짐이 많다. 그중에 가장 큰 짐은 허도기와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방주님을 친 놈 중에 한 놈이 또 있습니다. 올까요?”

“오겠지.”

“준비해야 합니까?”

흑수혈검이 준비라는 말을 썼다. 그만큼 방주를 죽인 흑의인의 무공은 놀라웠다. 흑수혈검도 승부를 자신하지 못할 만큼 강한 자다. 아니, 자신이 없다.

아걸이 고개를 내둘렀다.

“아니. 그자는 내가 죽은 다음에 올 거야. 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바로 준비하는 게 좋을걸?”

흑수혈검과 십살수가 동시에 미간을 찡그렸다.

아걸의 말은 곧 허도기와 싸운다는 뜻이다.

“허도기의 검이 정말…… 빠릅니까?”

흑수혈검이 믿지 못하겠다는 투로 물었다.

지금 그들이 본 아걸의 무공은 천하무적이다. 아걸은 전혀 방어를 생각하고 있지 않다. 오직 공격만 한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천하제일의 방어막을 형성해 준다.

아걸은 전신을 환히 드러내 놓고 있지만, 그곳을 노리는 자는 모두 죽는다.

흑수혈검이 전신에 피투성이까지 되어가면서 간신히 이긴 흑의인조차도 아걸에게는 일초지적에 불과했다. 그저 칼로 푹 찌르면 저항하지 못하고 죽었다.

이런 강자를 쓰러뜨릴 자가 있을까?

허도기가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이런 강자를 어떻게 쓰러뜨린단 말인가.

이런 강자를 쓰러트리려면 도대체 어느 정도나 빨라야 할까?

아걸이 말했다.

“지금까지는 운이 좋았지.”

“운…… 입니까?”

“맞아. 운. 무공이 아니라 운이 좋아서 살았어.”

“으음!”

흑수혈검은 침음했다.

아걸이 운이라고 말했다면…… 두 사람 사이에 상당한 무공 격차가 있는 것이다. 간발의 차이로 패했다면 ‘운’까지 끌어들이지는 않는다. 허도기가 조금 빨랐다거나, 내가 실수를 했다거나…… 패배 원인을 말하게 되어 있다.

아걸이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번에 허도기를 만나면 어떻게 될지 몰라. 좌우지간 내가 진다면 난 죽어. 이번에는 요행을 바라지 못해. 사실 세 번이나 살아났으면 많이 살아난 거지. 하하!”

아걸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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