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350화 (350/600)

#350화. 350. 第七十章 백척간두(百尺竿頭)(5)

취화원은 뿔뿔이 흩어졌다.

몽설은 취화원이 허도기의 촉수에 걸려들지 않도록 예민하게 신경을 썼다.

야천 움직임에 가담해서 살행을 행할 때도 항상 치고 빠지는 방식을 고수했다.

한 장소에 두 번 나타나지 않는다.

살행을 행한 후에는 그 즉시 그 지역을 벗어난다. 성(城)을 벗어나는 게 아니라 성(省)을 벗어난다. 호북성에서 살행을 저질렀으면 저 멀리 사천성이나 섬서성으로 암행한다.

살행 후에 다음 장소로 움직이는 기간만 한 달이 넘는다.

움직이는 동안에는 일절 살행을 하지 않는다. 살행과는 완전히 무관한 상태로 움직인다.

그리고 이때, 취화원 살수는 원하는 것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여행하고 싶으면 하고, 악기를 배우고 싶으면 배운다. 길을 가는 도중에 하고 싶은 취미나 유흥을 즐긴다.

그러니 한 번 살행을 하고 나면 한 달 이상을 쉰다.

몽설은 이 철칙을 반드시 지켰다.

취화원 살수는 강력하다. 하지만 철저히 준비하고 기다리는 덫은 피하지 못한다.

몽설은 수하들에게 살행 지시를 내릴 때마다 자신이 치우현 동승에 가서 강조를 죽이던 일을 떠올린다.

살행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무척 쉬웠다.

문제는 강조 뒤에 버티고 있던 활검문이다. 그들이 무척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 사건 덕분에 아걸을 만났다.

또 그 사건 때문에 취화원이 멸절당했다. 취화원 모든 식구가 칼날의 이슬이 되어서 사라졌다.

청부 자체만 보면 안 된다. 청부 뒤에 있는 위험을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두 번 다시 그런 일을 경험하게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서 살행의 앞뒤를 살폈다. 살행 목표가 정해지면 다음은 살수의 능력을 봤다. 아무나 순차적으로 배치한 것이 아니라 살수의 무공 높이에 맞춰서 목표를 주었다.

지금은 허도기의 눈길을 피해서 움직여야 하므로 더욱 조심스럽다.

몽설도 취운과 단둘만 움직였다.

다른 구 곡주는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있다. 서로 연락을 기민하게 취하지만 모이는 일은 자제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구 곡주 모두에게 명을 내렸다.

“곡주만 불러요. 전부 모이라고 해요.”

몽설은 취운은 건네준 밀지를 와락 구겼다.

구 곡주는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하지만 누구도 웃음을 짓지 않았다.

칠 곡주 적화는 너무 울어서 눈이 퉁퉁 부었다.

팔 장로가 죽었다.

일이삼사 곡에서 선별한 살수 열두 명도 한 자리에서 죽었다.

팔 장로…… 그녀는 취화원 살수들의 기둥이었다. 유일하게 남은 어른이다.

그런 분이 오진북에게 당했다.

성검문이 야천 일에 개입한 첫 사례다. 물론 증거는 없다. 팔 장로가 죽은 일을 성검문에 가서 따질 수도 없다. 팔 장로가 오진북에게 죽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성검문이 하는 일은 늘 깨끗하다.

오진북이 살검을 휘둘렀다는 사실도 황련이 밀마를 남겨 놓았기 때문에 알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팔 장로의 죽음은 오랜 기간 수수께끼로 남았을 것이다.

“지금부터 닷새간 금식할 거야.”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닷새 금식’은 취화원 살수가 행하는 최고의 장례 의식이다.

원주가 죽었을 경우 닷새 금식을 한다. 물은 마실 수 있지만, 곡기는 완전히 끊는다. 팔 장로의 죽음도 원주의 죽음에 맞춰서 예를 갖춘다.

“원주님 무공은 어떠세요?”

사곡주 규화가 물었다.

그녀가 몽설의 무공 정도를 모를 리 없다. 다만 한동안 서로 만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어떤 발전은 없었는지 묻는 것이다. 아니다. 묻는 의도는 정확하다.

“하고 싶은 말이 뭔데요?”

“원주님은 소축십검을 상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어요.”

그래, 이 말이 하고 싶었다.

“사곡주!”

취운이 사곡주를 눈짓으로 나무랐다.

몽설이 손을 들어서 취운을 제지했다.

“내 무공, 강해요. 소축십검도 강하고. 우린 싸워 보기 전에는 몰라. 그래서 부딪혀 보려고 해요.”

몽설이 매우 담담하게 말했다. 너무 담담해서 마치 농담을 하는 것처럼 들렸다.

“원주님! 안 됩니다!”

취운은 몽설이 진심인 것을 알았다. 그래서 강력하게 만류했다.

몽설이 또다시 손을 들어서 취운을 막았다.

“복수해야 하잖아. 야천이 죽였다면 이해해. 우리가 친 게 있으니 받는 것도 있지. 하지만 성검문은 아니지. 성검문이 치려면 날 쳤어야지. 장로님은…… 아니잖아?”

“하지만 원주님은…….”

“오진북 같은 자는 암살이 안 돼. 그자는 어떤 암살도 다 막아낼 수 있어. 무공이 그만큼 강해. 거기에다가 술도 먹지 않아. 여자도 좋아하지 않고, 재물도 탐내지 않아. 오직 무공만 수련해. 가족도 없어. 이 세상에 아끼는 게 전혀 없는 거야. 즐기는 것도 없고, 아끼는 것도 없고, 어디서 틈을 찾아?”

틀린 말이 아니다.

취화원은 소축십검의 빈틈을 연구했다. 언젠가는 부딪칠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악하면 할수록 소축십검은 정말 암살하기 어려운 존재들이었다.

“오진북은 오직 무공으로만 겨뤄야 하는데 우리 중에서 누가 할까? 나밖에 없잖아.”

“상부께 말하면 안 될까?”

이 곡주 소호가 말했다.

“언니들.”

몽설이 차분하게 말했다.

“팔 장로님은 우리 취화원 사람이야.”

구 곡주는 이쯤에서야 몽설이 차가울 정도로 침착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곡주가 말하기 전에 이미 소축십검과 싸우겠다는 생각을 굳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누가 뭐라고 해도 변하지 않는다.

조곤조곤 제 생각을 말해 나가는 모습에서 단호한 결단이 엿보인다.

그녀가 구 곡주에게 존대를 하거나 ‘언니’라고 부를 때는 원주 직책을 내려놓는다는 뜻이다. 사적인 감정으로 말한다. 그러니 듣는 사람도 사적으로 대할 수 있다.

몽설은 취화원주 자격으로 오진북과 싸우겠다는 것이 아니다. 취화원 살수로 싸우겠다는 것이다. 팔 장로가 죽었으니 취화원 이름으로 복수하는 거다.

몽설이 바로 그런 점을 말했다.

“그럼 우리가 복수해야지, 누구에게 맡겨. 오빠에게 부탁하면 복수를 할 수 있을 거야. 난 믿어. 오빠는 오진북을 이길 수 있어. 하지만 이 일은 내가 해야 해.”

“아니요. 이 일은 참아야 합니다.”

취운이 냉정하게 말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정중하게 예의를 갖춰서 말했다.

취운은 몽설과는 정반대로 오직 원주에게만 말하고 있다. 사적인 관계, 몽설은 고려치 않는다.

“오진북은 예전의 소축십검이 아닙니다. 상부가 소축십검을 박살 내자, 공부가 제자들을 다시 수련시켰어요. 폐관 수련을 시켰는데, 이번에는 정말 강해졌습니다.”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잖아?”

“소림사 방장 혜문대사(慧文大師), 청성파 장문인 태운진인(泰運眞人), 모용세가 가주 모용화(慕容華)가 죽었어요. 세 사람 모두 정식 비무 중 절명했습니다.”

“뭐? 언제?”

몽설이 놀라서 물었다.

“비무를 청한 사람은 낯선 괴객인데, 무림에서는 일검수혼(一劍收魂)이라고 부르죠. 일검에 영혼을 거둬간다고 해서. 소림 방장을 일검에 죽인다? 어떨까요?”

“그런 사실이 왜 알려지지 않았지?”

“우리가 다른 곳에 신경을 쓰고 있고, 이들 문파에서 장문인의 패배를 숨기기 위해서 죽음을 숨기고 있으니까. 하지만 곧 알려질 거예요. 비무는 없었다. 패배도 없었다. 연로하셔서 돌아가셨다. 그 정도로 공표되겠죠.”

“그러면 일검수혼이 가만있을까? 이긴 비무를 도둑질당하는 거잖아.”

“이 조건은 일검수혼이 먼저 제안한 거예요. 무림에 풍파가 일어나는 게 싫다고.”

어처구니없게도 세 문파는 이 조건을 받아들인 듯하다. 그러니 아직 세 장문인의 죽음이 알려지지 않은 것이겠지. 소림방장이 낯선 자와 비무 끝에 죽었다면 그만한 망신도 없을 테니까.

“언니, 똑바로 말해. 일검수혼, 누구야?”

“제가 파악한 바로는 소축십검 둘째 초가평이라고 짐작해요. 물론 초가평이라고 단정할 만한 사실은 전혀 없죠. 장문인들과 싸울 때 사용한 무공도 조명천검이 아니었고. 하지만 이건 순전히 제 판단인데, 초가평이 맞아요.”

“초가평이 왜 장문인들을?”

“지금 죽인 장문인들…… 허도기에게 호의적이지 않아요. 전임 성검문주와 인연이 깊은 사람들이라서 오랫동안 대척해 왔는데, 이제 정리하는 거죠.”

“으음!”

“혜문대사, 태운진인, 모용가주…… 이 사람들, 정말 고수예요. 이 사람들을 상대로 일검? 예전의 소축십검이라면 어림없어요. 일검수혼이라는 별호, 결코 못 들어요. 아무리 못해도 천 합 이상은 싸워야 할 텐데.”

몽설과 구 곡주는 뜻밖의 사실에 침묵했다.

초가평이 무림을 돌면서 허도기와 대척해 왔던 무림 명숙을 참살하고 있다.

비무라는 이름을 빌린 참살!

더욱이 그는 조명천검도 사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 검에 상대방을 죽인다.

조명천검을 사용하면 성검문 무공이 드러난다.

일검수혼은 타문파 무공에 조명십해를 실었을 것이다.

소림사, 청성파, 모용세가에서도 일검수혼의 무공을 알아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살해하는 데 사용한 무공이 아니라, 무공을 이끈 조명십해를 본 사람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들이 입 다물었다.

일검수혼 뒤에 허도기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니면 죽은 사람과 뜻이 맞지 않아서 입을 다물었을 수도 있다.

문제는 그들이 아니다.

소축십검이 적어도 아걸과 견딜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갔다는 게 중요하다.

취운이 몽설보다도 더 차갑게 말했다.

“원주님의 무공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진북과 겨루면 승률은 이 할밖에 되지 않습니다. 저는 그렇게 판단합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언니, 판단은 늘 정확해. 그렇지?”

몽설이 조용히 말했다. 말을 하면서 무엇인가를 생각한 듯 고개까지 끄덕였다.

“원주님!”

취운이 몽설을 불렀다.

몽설의 행동에서 이상한 기미를 눈치챘다. 자기 말이 오히려 몽설을 부추겼다는 느낌이다.

사실, 이 순간…… 몽설은 대단히 편안했다.

취운의 판단은 정확하다. 항상 정확했다. 냉정하고 침착한 판단으로 무림 정세를 읽는다. 움직일 때와 움직이지 않을 때를 안다.

팔 장로가 죽은 지금도 취운의 판단은 ‘눌러 참을 때’이다.

이 판단이 옳을 것이다.

‘언니가 있으니까…… 편하네.’

오곡주는 좌에 일이삼사, 우에 육칠팔구를 두고 있다. 정중앙이다. 좌는 실전 살수들이고, 우는 행정으로 보조한다. 오곡주의 정보를 바탕으로 좌와 우가 균형 있게 움직인다.

취운은 실질적으로 취화원 부원주다.

취운이 취화원을 이끈다면 비약적인 발전 대신 점진적인 발전을 이뤄나갈 것이다. 남들이 신경 쓰지 않는 사이에 어느 날 문득 보면 부쩍 커져 있는 취화원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래. 됐어. 된 거야.’

몽설은 불안한 마음을 완전히 떨쳐 버렸다.

“오곡주, 오진북의 행방, 수소문해요.”

취화원주가 내리는 명령이다.

“안된다고 하잖아!”

월영이 당장 반대했다.

“오빠가 오음산으로 가고 있어.”

“그거하고 무슨 상관인데!”

취운도 다급하게 말했다. 몽설의 표정에서 물리지 않을 단호함을 봤기 때문이다.

몽설은 오진북과 싸우기로 결심했다. 팔 장로의 복수를 기어이 하려는 것이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이번 소문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은 야천 사람들이야. 야천 사람이 오빠를 마반사라고 불러. 그러면서 오음산으로 간다고 얘기해. 거기다가 음산사마라는 옛날 마인까지 끄집어냈어. 언니, 언니가 말해 봐.”

몽설이 취운을 쳐다봤다.

“음산사마는 성검문 사건에 가담한 마인입니다. 허도기를 불러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맞아. 허도기를 불러내는 거야. 오빠가.”

모두 침묵했다. 예상한 일이다.

마반사가 오음산으로 간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부터 ‘아! 아걸이 허도기를 오라고 하는구나. 오음산으로.’ 이렇게 받아들였다.

“오빠하고 허도기하고 싸우면…… 언니, 오빠의 승률은 얼마나 될까?”

취운이 입을 다물었다.

승률 영이다. 지금까지 삼전삼패(三戰三敗), 다시 부딪혀도 허도기를 이길 가능성은 없다.

“오빠에 비하면 나는 이 할 승률이라도 있어.”

“그래도 무모합니다.”

취운은 정말 만류하고 싶었다.

“호호호! 호호호호!”

갑자기 몽설이 크게 웃었다. 실성해서 웃는 게 아니다. 정말 기쁜 표정으로 웃는다.

“나는 오빠가 잘 이해되지 않았거든. 왜 뻔한 싸움을 자꾸 할까? 왜 죽을 자리만 찾아가나. 그렇게 다치는 게 좋은가? 한데 지금은 알겠어. 어쩔 수 없어서야.”

몽설이 구 곡주를 쳐다봤다.

“어떤 사람은 계속 걷지 않으면 죽는 사람도 있어. 오빠가 그래. 오빠에게 허도기는 일홀도가 넘어서야 할 벽이야. 허도기를 넘어서지 않으면 일홀도를 버려야 해. 죽는 거지. 또 원수이기도 해. 부친과 사부를 시해한. 그러니 원수를 두고 멈춘다는 것은…….”

취화원도 같은 입장이다.

오진북은 팔 장로만 공격한 것이 아니다. 정식으로 취화원에 검을 겨눈 것이다. 겨눠진 검을 피해서 마냥 도주하는 것은 평생 약자로 살겠다는 거다.

여기서 물러서면 취화원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팔 장로의 죽음은 취화원을 백척간두에 올려놓았다. 절벽 밑으로 떨어지던가, 한 발 내디뎌 벼랑 위로 올라서던가.

“언니.”

몽설은 아주 단호하게 취운을 불렀다.

“알았습니다. 오진북의 행방, 수소문하겠습니다.”

취운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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