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1화. 第七十一章 만회(滿懷) (1)
몽설은 봇짐 하나, 검 한 자루만 들고 길을 나섰다.
아걸이 얼굴을 전부 가리는 큰 방갓을 쓰고 다닌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도 삿갓을 썼다. 아걸처럼 크지는 않다. 대나무로 만든, 햇볕만 가리는 작은 삿갓이다.
“마반사가 오음산으로 간다는 소문 들었어?”
“아이구! 또 그 소리. 귀에 딱지 앉겠다.”
논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허리를 펴며 말했다.
어디를 가나 마반사 소문이다.
소문이 매우 빠르고 정확하게 번진다. 흑수혈검이라는 사람, 정말 일 하나는 잘하는 것 같다.
저벅! 저벅!
몽설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걸었다.
일차 목적지는 성검문 본문이 있는 초도성이다. 오진북이 성검문 임시 문주이기 때문에 초도성으로 간다. 아걸이 그랬던 것처럼 그녀 역시 혈무대에 혈첩을 올릴 것이다.
허도기가 나선다면 어쩔 수 없이 싸운다.
패배가 불 보듯 뻔하고, 혈첩을 전한 자가 취화원주라고 하면 괘씸해서라도 나설 가능성이 크다. 허도기에게는 일 검에 벨 기회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있나. 싸워야지.
그녀는 임시 문주인 오진북이 나서기를 기대한다.
자신이 초도성으로 가는 동안, 취화원은 전력을 다해서 오진북을 수소문한다.
만약, 행방이 발견되면 그때는 혈무대 비무가 아니라 암살로 진행한다.
취화원은 살수 문파다. 살수 문파를 건드렸으니 살수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살수 문파의 보복은 정당한 비무보다는 암살이 훨씬 격에 맞는다.
행방을 찾을 수 없으면 저돌적으로 대문을 두들기고, 행방을 찾게 되면 취화원 방식으로 처리할 셈이다.
이것은 취화원이 무림에 주는 경고다.
상대는 성검문 오진북이지만, 그녀의 경고는 무림을 향한다.
취화원을 건드리면 누구든지 암살당할 준비를 해라. 누가 건드리든 간에 반드시 처리한다.
모든 게 오진북을 이긴다는 단서가 붙는다.
오진북을 이기지 못한다면 경고고 뭐고 없다. 아주 형편없는 살수 문파로 전락할 것이다.
- 문주라는 것이 주제도 모르고 날뛰니 칼 맞아 죽지.
- 취화원을 건드릴 때는 자기가 죽을 줄은 몰랐을 거야. 살수 문파는 함부로 건드리는 게 아니야.
어떤 말을 들을지는 몽설이 하기 나름이다.
저벅! 저벅! 저벅!
초도성을 향해서 걷는 길이 매우 외롭다.
예전에…… 아걸이 혈무대 비무를 하기 위해 이 길을 걸을 때는 겁이 났다. 그때도 패배가 거의 확실했기 때문에 제발 살기만 하라고 기도했다.
‘이 길은 항상 좋지 않네. 겁이 나거나, 외롭거나. 훗!’
그녀는 될 수 있는 한, 많은 것을 보면서 걸었다.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수도 있기에.
길가에 조그마한 다점(茶店)이 보였다.
길을 오가는 길손들이 다리로 쉴 겸, 목도 축일 겸 차 한 잔 마시고 가는 다점이다.
점소이도 없이 주인 한 명이 모든 일을 다 한다.
탁자도 세 개뿐이다. 다점 앞에 두 개가 놓여 있고, 다점 옆 빈터에 하나를 만들어 놨다.
몽설은 무심히 탁자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다가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할아버지!”
아삼이 다점 옆에 마련된 탁자에 앉아 차를 마시는 중이다.
이 넓은 세상에 이렇게 우연일 수가…… 아니다. 아삼이 자신을 찾아온 게 분명하다.
몽설은 잰걸음으로 다가가서 아삼의 손을 꼭 잡았다.
“이게 얼마 만이에요? 오랜만이죠?”
“얼마 만이긴, 이놈아. 네가 일 엉망으로 만들려는 거 뜯어말린 후 처음이지. 하하!”
아삼이 기분 좋게 웃었다.
“뭐야? 그 차림새는?”
아삼이 못마땅한 듯 몽설을 흘겨봤다.
“이미 다 아시면서.”
“그러니까 묻는 말이다. 세상에 어떤 문주가 문도를 제쳐 놓고 복수하겠답시고 검 들고 설치는지.”
“할아버지, 너무 야단치지 마세요. 저도 힘들어요.”
“쯧!”
아삼이 혀를 차면서 몽설에게 차를 내밀었다.
몽설은 뜨거운 차를 조금씩 음미했다.
밖에서, 논 냄새를 맡으면서 바람과 함께 마시는 차는 값싼 차라고 해도 맛있다.
“장례는?”
아삼이 지나가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
“저희는 시신 없이 장례 치르는 데 익숙해서. 섭섭하지 않으실 거예요.”
“그 할망구는 섭섭한 게 있어도 말할 위인은 아니지.”
“할아버지도 힘드셨죠?”
“큭!”
아삼이 실소를 흘렸다.
아삼도 몽설만큼이나 힘들다. 이번에 마음고생이 아주 심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충성을 맹세한 수하들이 몇 달도 버티지 못하고 절명했다.
아삼은 이 책임이 모두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저 사람들은 누구?”
몽설이 다점 뒤쪽에서 배회하고 있는 무인 두 명을 흘겨봤다.
“이번에 새로 얻은 호법.”
“아! 팔방요?”
“가자. 가는 길이 달라질 때까지는 같이 가는 것도 괜찮지.”
아삼이 일어섰다.
아삼이 몽설을 찾아온 것은 야천 상황을 말해 주기 위해서였다.
현재 야천 상황을 명확하게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외형적인 모습을 흘겨볼 수는 있지만, 속사정은 몇몇 사람만 정확하게 안다.
아삼은 야천에서 벌어진 일을 낱낱이 말해 주었다.
몽설은 아삼이 하는 말을 흘려들었다. 지금 그녀에게는 야천 상황이 중요하지 않았다. 야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면 참고가 되지만, 몰라도 전혀 상관이 없었다.
현재, 아걸은 야천을 빠져나왔다.
아걸은 야천과는 전혀 상관없는 행보를 하고 있다. 야천의 도움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아걸은 허도기를 겨냥하고 있다. 누가 봐도 그렇다.
또 자신은 당분간 야천 동향에 귀를 기울일 여유가 없다.
자신의 모든 감각은 오진북을 향해야 한다. 그를 찾고, 그의 무공을 분석해야 한다. 오진북이 조명십해를 깨달았다면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검을 구사할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파악해서 이기는 길을 찾아야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삼이 하는 말은 상당한 도움이 되었겠지만, 지금은 조금 흘려듣는다.
“그놈이 왜 오음산에 가는지 아냐?”
아삼이 비로소 관심을 훅! 잡아끄는 말을 했다.
“허도기와 싸우려고요?”
“허도기와 싸우기 위해서 굳이 오음산에 갈 필요는 없지. 후후! 아걸, 그놈. 허도기의 목덜미를 잡은 것 같아.”
“목덜미요?”
“성검문 사건.”
“정말요?”
몽설이 깜짝 놀라서 아삼을 쳐다봤다.
아걸이 야천으로 뛰어든 건 성검문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서였다.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아걸이 일전통 야구를 건드릴 때부터 알았다.
팔장로가 일전통을 오로지 이용하는 데만 사용했다면, 일전통은 야천에게 불벼락을 내리는 폭풍의 핵이 되었을 것이다. 아걸도 일전통에 머물렀을 것이고.
“기어이 뭔가 얻었네요?”
“글쎄? 나도 몰라.”
“몰라요?”
“그놈하고는 일절 뭐 소식을 전달할 수가 있어야지. 내 눈과 귀는 다 떨어져 나갔고, 그놈한테는 소식을 전할 수단이 있는데 그놈이 그걸 안 써.”
“흑수혈검 수족들요?”
“아니. 팔방주가 죽으면서 남겨 준 게 있거든. 그걸 쓰면 언질이라도 던져 줄 수 있는데. 야속한 놈. 쯧!”
아삼이 혀를 찼다.
아걸이 허도기의 목덜미를 물었다는 말도 단지 추측에 불과하다. 정확하게 무엇을 아는 것은 아니다.
“이런 말들, 너도 몰랐던 사실이야?”
“네. 이런 보고는 전혀 들어오지 않아서.”
“킥킥! 물어본 내가 잘못이지. 네게 가는 정보는 모두 내 손에서 나가는 것을. 휴우!”
아삼이 가늘게 한숨을 뿜어냈다.
적랑대가 괴멸한 후부터, 모든 소식이 차단당했다.
“오음산은 허도기에게 굉장히 뼈아픈 장소일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잘못 생각했을까?”
“맞을 거예요. 제 생각도 같아요.”
몽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허도기는 오음산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검을 잡았을 것이다.
그 광경을 보지는 못했지만, 눈에 선하다. 성검문 사건과 관련이 있어서 무시하지도 못할 것이고, 이번에는 기필코 아걸을 죽이려고 들 것이다.
이 정도는 이미 예상했다.
아걸은 이번에는 정말로 살아남기 힘든 길을 걷고 있다.
“초도성에 가기 전에 오빠를 한번 봐야 할까요?”
몽설이 물었다.
그녀는 불길함을 느꼈다. 아삼도 사실은 불길함을 느끼고 있다.
두 사람이 아걸을 모를까. 아걸이 어떤 사람인지는 너무 잘 안다. 잘 알아서 불안한 것이다.
아걸이 일절 소식을 전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번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거다. 주위의 모든 인연을 다 끊어 버리고 오지 허도기와의 싸움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뭐가 아걸을 그토록 집중하게 했나. 도대체 오음산에 뭐가 있는 것일까?
이번에 야천에서 무슨 일이 단단히 있었던 게 분명하다.
“만날 수도 없을걸? 그놈이 안 만날 거야.”
“저도 안 볼까요?”
“넌?”
“예?”
“그놈이 찾아오면 넌 그놈을 볼 수 있겠어?”
“…….”
몽설은 대답하지 못했다.
오진북과의 싸움은 사는 길보다 죽는 길이 넓다. 그런 점은 아걸도 잘 안다. 하지만 만류는 하지 않을 것이다. 원래 일홀도가 그런 길을 걸으니까.
하면 두 사람은 마지막 만남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서로를 봐야 한다. 그러니 헤어지기도 어렵다.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머릿속에 콱 박혀 있다.
차라리 보지 않는 편이 낫다.
아걸도 같은 심정이라면 그녀를 피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후유!”
몽설은 깊게 한숨을 토해 냈다.
“내가 심각하게 보는 문제는 야천 놈들이야. 내 새끼들이 도륙당했다고 해서 하는 말이 아니고…… 그놈들 매우 심상치 않아. 특히 허도기가 중히 여긴다는 점에서 더 그래.”
“야천은 오빠와 허도기의 싸움이 끝날 때까지는 잠잠하지 않을까요?”
“그게 잘 모르는 소리라니까. 지금 야천은 정체불명 종자들이 차지하고 있는데, 그놈들 무공이 꽤 강해. 나는 한주먹감이고, 저놈들도 마찬가지고. 취화원도 마찬가지일걸?”
“그렇게 강해요?”
“그런 놈이 서른 명 가까이 돼. 지금 그나마 호북성과 하남성이 버티고 있지만…… 다른 데는 이미 다 떨어졌어. 호북성도 지키는 놈이 없으니 누구든 오기만 하면 그저 날로 냉큼 주워 먹는 거고, 더 이상 저항할 놈이 없으니까. 하남성은 흑수혈검이 버티고 있는데, 그놈도 뭐 볼 장 다 봤지. 그놈들이 와서 칼을 들이대면 제 놈 모가지라고 안 떨어져?”
“전보영에 은거했던 분들이 있어요. 아직 뇌옥에 갇혀 있는데, 그분들이 나서면…….”
“그것들 나와 봤자 한주먹 거리라니까. 그것들 무공이나 여기 이놈들 무공이나 뭐 거기서 거기지. 한주먹 거리야. 그런 놈들이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기습은 어때요?”
“공격하자는 말이 아니고, 그놈들 정체가 수상하다는 거야. 그놈들 중에 문둥병 환자도 있었어. 지금 무림사에서 문둥병 환자에게 무공을 전수한 전례가 있는지 살펴보고 싶어서. 난 이미 손발이 잘렸으니까, 취화원 쪽에 부탁 좀 하자.”
“나병 환자라도…….”
“양성. 나병을 옮겨.”
“예?”
몽설은 깜짝 놀랐다.
그녀는 아삼이 왜 이토록 야천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지 이제야 이유를 알았다.
무림에는 많은 문파가 있다. 불문도 있고 유문도 있고 도문도 있다. 모든 문파에서 나병에 걸린 사람도 무재(武才)만 출중하다면 제자로 받아들인다.
단, 전염성이 없는 음성일 경우에 한해서다.
양성일 경우에는 어떤 경우든 세상 속으로 흘러들면 안 된다. 본의 아니게 나병을 전염시킬 수 있다. 그러니 제한된 구역에서 병을 치료하며 살아가길 권한다.
전염되는 나병 환자를 잘못 받으면 문파 전체가 타격받을 수 있다.
전염성이 있는 환자를 받아 줄 문파는 없다.
도대체 어떤 문파가 전염 균을 풀풀 날리는 나병 환자를 받아들일 수 있나. 그런 환자를 받아들여서 절정 고수로 만들었다는 건 매우 놀랄 일이다.
검은 손으로 잡아야 하는데,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면 악력이 달라진다. 신체 전반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무공을 수련하기가 매우 어렵다.
워낙 특이한 일이라서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또 반대로 전혀 찾지 못할 것 같기도 하다.
“네. 알았어요. 찾아볼게요.”
몽설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