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355화 (355/600)

#355화. 第七十一章 만회(滿懷) (5)

두 사람은 칼을 뽑은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서리가헌의 일탄십검, 서리형개의 화염도…… 두 칼 모두 매우 역동적인 칼이다. 고요함 속에서 불쑥 터지는 칼이 아니라 폭풍처럼 휘몰아친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움직임이 멎었다. 그렇다고 내면의 움직임마저 멈춘 것은 아니다.

스으읏! 스으으읏!

안에서는 막강한 진기가 터질 듯이 꿈틀거렸다. 진기가, 근육이, 신경이 금방이라도 터져나갈 듯이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핏줄이 불끈 솟구쳤다.

서리가헌의 진기 집중점은 두 발이다. 발바닥으로 진기가 꾹꾹 모인다. 단숨에 십여 보를 밟아 나가야 해서 발바닥에 힘이 축약된다.

서리형개의 진기 집중점은 검이다. 검을 쥔 손이 바르르 떨린다.

탓!

서리가헌이 발끝을 튕겨 냈다.

순간, 정말로 발이 움직였다 싶은 순간, 서리가헌은 단숨에 십여 보를 밟아 왔다.

쒜에에엑!

칼날이 떨어지는 소리는 뒤늦게 들렸다.

“훗!”

서리형개는 즉시 칼을 뻗어 냈다.

우박처럼 쏟아져 내리는 칼날에 맞서서 붉은 화염 덩어리, 진기로 응축된 칼을 내던졌다.

까앙! 깡깡깡깡! 까아아앙!

두 칼이 거칠게 부딪쳤다.

사형의 일탄십검은 사부가 인정한 일홀도다. 역대 삼십육 문주의 어떤 칼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없는 칼이라고 인정했다. 중원 제일 도객이었던 사부의 일홀도와도 맞설 수 있는 칼이다.

지금 당장은 뒤질 수도 있다. 이제 출발점에 선 칼이기 때문에 부족한 점도 비출 수 있다.

그런 점을 보완하는 것이 일홀도를 가진 주인이 할 일이다.

사형은 제대로 보완했다.

하지만 서리형개의 화염도 역시 사부가 인정한 일홀도다. 예전에는 사형에게도 칼을 뽑지 못했지만, 지금은 허도기 앞에서도 뽑을 자신이 있다.

깡깡깡깡깡……!

두 사람은 순식간에 이십여 초를 교환했다. 누구 한 사람, 물러서지 않고 거칠게 부딪혔다. 그리고 물러섰다.

“후욱!”

“후우욱!”

두 사람은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제법이군.”

서리가헌이 다시 칼을 고쳐 잡았다.

“제법이라는 말은 상수가 하수에게 하는 말. 사형에게 그런 말을 들을 정도로 약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역시 마음이 비비 꼬였어. 사형이 제법이라고 하는데 뭐가 불만이니? 기분 나빠도 퉁 치고 넘어갈 줄 알아야지.”

“그러기에는 반드시 꺾어야 할 칼이라서 말이지.”

스읏!

서리형개가 칼을 겨눴다.

사실…… 손목이 시큰거려서 칼을 들어 올리기가 힘들었다. 방금 일전에서 손목에 무리가 온 것 같다. 그만큼 강한 타격이었다. 하마터면 칼을 놓칠 뻔했다.

서리형개는 마음을 차분히 평온하게 유지했다. 몸은 아주 낮게 가라앉혔다.

진기와 정신과 감각을 칼에 모은다. 칼 한자리에 모든 것을 남김없이 담는다.

츠읏!

칼과 몸이 하나가 된다.

“타앗!”

이번에는 서리형개가 먼저 튕겨 나갔다. 순간, 사람은 사라지고 칼만 뻗어 나갔다.

화살이 쏟아진 느낌이다.

사람이 덮쳐가는 게 아니라 화살이 퉁! 쏘아졌다. 사람도 칼도 흐릿해졌다.

쒜에엑! 타타타탓!

사형은 즉시 옆으로 신형을 퉁겨 냈다. 하지만 검은 서리형개를 향해서 집중되었다.

앞으로 달려 나오면서 공격하는 일탄십검이 아니라 옆으로 비켜서면서 쏘아 내는 십검이다. 몸이 옆으로 돌려져 있지만, 검광 십여 자루가 눈부시게 번뜩인다.

화르르륵!

화염도가 빙도(氷刀)를 무너트리면서 달려들었다.

까앙! 깡!

빙도 두 자루를 무너트렸다. 그리고 다음 빙도를 향해 다가갔다. 예리하게 터지는 빙도를 화염도로 짓눌러 버리면서 서리가헌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화염도도 진기 덩어리다.

진기가 뭉치고 뭉쳐서 쇠가 녹을 듯이 이글거린다. 칼에서 뿌연 김이 치솟는다.

분노를 담아서 미친 듯이 터트리던 칼에서 순수 결정체를 뽑아냈다. 진기의 응축을 이뤄 냈다. 그리고 칼이 부딪치는 순간에 모든 것을 폭발시킨다.

까앙! 깡! 까아아앙!

두 사람은 이십여 합을 교환했다. 조금 전 격돌보다 두 배는 더 많이 부딪쳤다.

일탄십검은 열 번에 걸쳐서 순차적으로 치고 들어온다. 수비할 때는 열 겹의 방어막이 된다. 화염도를 순차적으로 방어하면서 힘을 죽인다. 일곱 번, 여덟 번째까지 완전히 힘을 죽인 후, 마지막 두 번에 타격을 가한다.

뚫느냐, 막아 내느냐.

타악! 탓!

두 사람은 동시에 갈라섰다.

“허억! 헉!”

“하악!”

이번에도 아주 거친 숨이 쏟아져 나왔다.

가슴에서 토해지는 숨이 아니라 저 뱃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가쁜 숨이다.

그들은 숨조차 흘리지 않고 이십여 합을 교환했다.

폐기(閉氣) 상태에서 연신 도초를 펼쳤다. 잠시라도 숨을 돌리면 곧바로 칼이 날아들기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일부러 폐기한 것이 아니라 저절로 이뤄진 것이다.

‘으음!’

서리형개는 속으로 신음을 흘렸다.

오른 손목이 아주 심한 타격을 받아서 떨어져 나갈 듯이 시큰거렸다. 칼이 지금처럼 무겁다고 느껴진 적도 없었다. 아니, 서 있는 것도 힘들었다.

겨우 삼십 합을 싸웠는데 전신 기력이 모두 빠져나갔다.

서리가헌도 내색은 하지 않고 있지만, 마찬가지로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하다. 표정만 보면 전혀 아무렇지 않은데, 호흡이 매우 거칠다. 분명히 큰 충격을 받았다.

‘더는.’

스읏!

서리형개가 칼을 거뒀다.

순간이다. 서리가헌도 칼을 거뒀다.

“훗! 손해 봤군. 사형도 칼을 거둘 줄 알았으면 조금 있다가 거둘걸.”

서리형개가 쓴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두 사람은 직감했다. 여기서 한 번 더 겨루면 둘 중 한 사람은 죽는다.

“많이 컸구나.”

“그런 말, 사형이 할 말은 아니라니까.”

“아무래도 넌 내 손에 죽겠다.”

“그 말도. 아무래도 사형은 이것부터 추슬러야 할 것 같은데. 이게 영 엉망이야.”

서리형개가 손가락으로 자기 머리를 톡톡 치면서 말했다.

스읏!

사형이 다가섰다.

서리형개는 전혀 경계하지 않았다. 기습을 가해 올 사람이 아니다. 칼을 거뒀으면 이번 싸움은 끝난 것이다.

아닌가? 사부도 기습했으니 경계해야 하나? 만일,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마찬가지로 삼인독을 쓸까? 지금 같아서는 쓰지 않을 것 같은데.

“그거 좀 줘 봐.”

서리가헌이 손을 내밀었다.

“이것도 알고 있었나?”

서리형개가 서신과 지도를 넘겨주며 말했다.

“잔재비가 너무 팔랑거렸지 않니. 냄새를 너무 피우는데 어떻게 모를 수 있니?”

서리가헌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서리형개에게 예를 취하고, 서신과 지도를 넘겨준 자…… 귀적칠흔이다.

허도기가 한 가지 착각한 점이 있다. 귀적칠흔을 자신이 거뒀다는 착각이다.

귀적칠흔은 오직 한 명의 주인만 모신다.

사기침류공이라는 사공을 수련하는 과정에서 저들은 주인을 인식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때 인식한 주인이 평생 주인이다.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오직 한 명만 인식한다.

한데 이런 사실을 무림은 전혀 모른다.

사기침류공의 실체는 완벽하게 가려져 있다.

이런 점은 허도기도 모른다. 사실, 허도기는 사공이나 마공을 수련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어떠한 사공이나 마공도 짓누를 수 있는 조명 천검이 있다. 그러니 한낱 잡술에 불과한 사공이나 마공 따위를 탐구할 필요가 없다.

그런 오만함이 사기침류공을 간과하게 만들었다.

귀족 출연을 거둬서 수족처럼 부리면서도, 그들이 여전히 옛 주인을 모시고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다.

정동의 모든 것이 무너질 즈음, 서리형개는 귀적칠흔을 풀어놓았다.

그들은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풀어놓아도 결국은 주인을 찾아온다. 어떤 상황에 놓여 있어도 주인이 부르기만 하면 당장 달려와 목숨을 내놓는다.

허도기는 자신을 부활시킬 수 있는 부화장이다. 그러니 그에게 귀적칠흔을 보내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아니, 굳이 보낼 필요도 없다. 허도기가 스스로 알아서 데려갔으니까.

귀적칠흔이 이번에 가져온 정보는 전보영에서 빼낸 것이다.

아걸은 전보영을 통해 야천 팔방에 모종의 정보를 요구했다. 야천 팔방에서 각 방파에 심어놓은 간자들은 역순으로 전보영을 거쳐서 아걸에게 소식을 전했다.

귀적칠흔은 모종의 정보가 전보영에 머물 때, 살짝 빼냈다.

그들은 허도기의 명으로 전보영을 감시하는 중이다. 중간에서 정보를 가로채는 것은 무척 쉬운 일에 속한다.

허도기의 명령을 받으면서 서리형개의 명령도 같이 수행한다. 허도기에게 받은 명령까지 모두 보고한다.

전보영은 야천에서 보내온 정보를 토대로 지도에 표식을 했다. 야천의 서신을 전보영의 밀마로 변화시켰다. 그리고 산신의 족자에 기재해서 산신당에 걸어 놨다.

한데 그것이 필사되어서 서리형개의 손에 쥐어졌다.

야천에 숨어든 정체불명 무인들의 인적 사항!

엄밀히 말하면 인적 사항은 아니다. 정체불명의 무인들이 거주지만 점찍혀 있다. 아니, 이 말도 틀렸다. 정체불명의 무인으로 추측되는 자들의 거주지다.

저들은 하나같이 복면을 쓰고 흑의를 입고 있어서 정체를 파악할 수가 없다.

“여기가 그 이상한 놈들이 있다는 곳이니?”

서리가헌은 중원 돌아가는 사정을 알고 있는 듯했다.

“사형도 만만치 않군. 움직이지 않는 듯하면서 움직이고. 정말 무서운 사람이야.”

“후후! 넌 정말 이번에 중원 나가면 살아서 못 돌아오겠다. 눈이 동태눈이야.”

“내가 보지 못한 게 있나?”

“방금 싸워 봤으니 내 칼은 알지 않니? 꽤 자신 있는 표정이던데. 그럼 눈을 다른 데로 돌려야지. 정말 무서운 사람, 싸우면 이기지 못할 사람. 네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아걸 아니겠니? 아걸은 염두에 두지 않고. 쯧!”

서리형개는 입을 다물었다.

사형 말이 맞다. 이상하게도 아걸은 경계 대상이 아니다. 사형은 노려보면서도 아걸은 쳐다보지 않았다.

옛날에는 너무 약해서, 지금은 너무 강해서.

너무 강해서? 그렇다면 놈이 허도기의 반열인가?

허도기를 볼 때면 죽는다는 생각이 앞선다.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죽고 싶으면 칼을 뽑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꼭 아걸을 그렇게 보고 있다.

자신이 일홀도를 가지고 있으니 언젠가는 아걸과도 싸워야 한다. 하지만 지금 상태라면 백전백패다. 싸우면 반드시 죽는다. 옛날의 아걸이 아니다.

아걸에 대한 마음…… 그를 만나기 전까지 극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형 말대로 죽는다.

“눈이 동태눈. 후후!”

서리형개가 웃었다.

“아걸, 그놈은 죽겠다고 부득부득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데도 죽지를 않아. 난 말이야, 허도기가 왜 잠자코 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어. 아걸을 잡을 수 있는데.”

“사형도 그 생각을?”

“날 바보로 아니? 후후!”

서리가헌이 툴툴거리면서 웃었다.

두 사람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허도기가 아걸을 죽이지 않는 이유……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다. 허도기의 노림수가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 ‘다른 곳’이 무엇인지 모를 뿐.

“내서 여기 농성(嶩城)으로 가지. 농성에서 허도(墟都), 고천(泒川)으로.”

“그럼 난 이쪽으로.”

서리형개가 반대쪽 노선을 택했다.

“그럼 나중에 오음산에서 만나지. 오음산, 죽을 자리치고는 딱 적당하지 않겠니?”

서리가헌이 웃었다.

그렇다. 아걸과 허도기가 싸우겠다는데 그런 싸움을 놓칠 수 없다.

귀적칠흔을 통해서 아걸의 칼이 일홀도에 근접했다는 말을 들었다. 아니, 이미 아걸만의 일월도를 얻었다.

아걸의 일홀도가 어떤 것인지 안다. 동귀어진이다. 다만 상대방의 칼을 급소에서 한치쯤 밀어낸다. 상대방은 즉사시키고, 자신은 부상으로 그치는 아주 영악한 동귀어진이다.

아걸의 칼은 거기서 더 발전한 듯하다.

어떤 칼일까? 말만 들어도 이렇게 궁금한데 보지 않을 수 없지 않나.

두 사람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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