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357화 (357/600)

#357화. 第七十二章 타초(打草) (2)

‘송천공방(松川工房).’

크게 이름난 곳은 아니다. 이제 겨우 자리를 잡기 시작한 공방으로, 일하는 사람도 모두 가족뿐이다.

스읏! 스으으읏!

아걸은 지붕 위로 올라섰다.

지붕에서 지붕으로 건너뛰며 공방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덜컹!

이상한 기척을 느꼈는지 집 안에서 사람이 나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역시.’

아걸은 방금 나온 자가 무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아걸은 지붕을 밟으면서 일부러 기척을 흘렸다.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이 느끼게끔 기와를 살짝 발로 찼다.

물론 기척이라고 해도 기와가 부서질 정도로 큰 소리를 낸 것은 아니다. 큰 쥐가 기어 다니다가 몸으로 기와를 부딪친 정도의 소리에 불과했다.

보통 사람도 들을 수 있는 소리지만, 이런 소리를 들었다고 해서 나와 보지는 않는다. 쥐가 기어가거나 솔방울 같은 것이 떨어졌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소리가 울리자마자 즉시 사람이 튀어나왔다.

눈빛, 몸놀림, 발의 움직임, 공격해 대비하는 자세…… 무공을 상당히 오랫동안 수련한 자다.

공방 옹기장이가 무공을 저 깊이로 수련했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나? 그럴 수도 있다. 어느 문파나 속가제자를 둔다. 일상생활을 영위하면서도 무공을 수련하는 사람이 많다.

스스슷!

아걸은 공방 깊숙이 파고들었다.

한성은 오음산으로 가는 길목에 있지 않다. 한성을 통해서 오음산으로 가려면 대략 이틀쯤 시간이 더 걸린다. 상당히 많이 돌아가는 길이다.

하지만 만사를 제쳐 놓고 한성으로 왔다.

흑의인이 펼친 이격술은 매우 잔인한 살법이다. 만약, 아걸이 어떤 마을에 들어가서 잠을 청했다면 그 마을 사람들은 전부 살해당했을 것이다.

저들은 사람을 죽이는 데 전혀 망설이지 않는다.

아걸도 상당히 많은 사람을 죽인 적이 있다. 그래서 혈도비자라는 별호까지 얻었다. 하지만 그들은 무인이다. 그들을 죽이지 않았다면 자신이 죽었다.

칼을 든 사람은 자신도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칼 든 사람이 칼 들지 않은 사람을 죽일 때는 반드시 명분이 있어야 한다. 죽일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작위적으로 만들어 낸 이유가 아니라 세상이 인정하는 이유여야만 한다.

이것이 아걸만의 생각이라고 해도 상관하지 않는다. 자신의 이런 생각에 반대한다면, 아무나 마음대로 죽여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칼로 말하면 된다.

아걸은 흑의인에게 철저히 칼로 물을 생각이다.

그래서 먼 길이지만 빙 돌아서 들린다. 명부판관처럼 징계를 내리면서 움직인다.

스읏!

아걸은 가장 안쪽,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옹기까지 왔다.

송천공방에는 옹기가 두 개 있다. 그중 하나는 사용하지 않는 것 같다.

스스스스!

아걸은 경쾌하게 움직였다.

이번에도 움직이면서 약간 기척을 흘렸다. 먼저보다는 약하게, 하지만 분명하게.

소리를 흘리지는 않았다. 아걸의 발걸음은 도둑고양이처럼 가벼워서 전혀 소리가 나지 않는다. 다만, 도기(刀氣)를 약간 뿌렸다. 날카로운 칼의 기운이 슬쩍 흘러나갔다. 순간,

스스스스!

흑의인 두 명이 나타났다.

그들은 동시에 나타났고, 앞뒤를 틀어막았다. 앞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물러서지도 못한다.

‘훗!’

아걸은 실소를 흘렸다.

생각했던 대로…… 애써서 이들을 찾을 필요가 없다. 이들이 제 발로 걸어 나왔다. 자기들 무공으로 아걸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저들은 아걸을 모른다. 단지, 송천공방에 침입한 고수로만 안다. 그것도 무공이 매우 강하다. 하지만 그들 두 명이 합공하면 얼마든지 눕힐 수 있다는 자신이 선다.

사실은 아걸이 그런 생각이 들게끔 유도했다.

들어오면서 공방 무인들의 무공을 봤다. 흑의인들의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도 안다.

이 둘 사이, 공방 무인과 흑의인들의 사이에 자신을 둔다. 딱 그 정도의 무공만 드러낸다. 그러면 틀림없이 흑의인들이 나타난다. 이곳에 흑의인이 있다면.

스릉! 스르릉!

앞뒤를 막아선 흑의인들이 가타부타 말도 없이 검을 뽑았다.

이들에게는 말이 필요 없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무조건 검부터 휘두른다.

아걸은 무심이 그들을 쳐다봤다.

순간, 두 명이 움찔거렸다.

무심한 눈길 속에서 아걸의 본색을 봤다. 맹수의 눈빛을 봤다. 오금이 저절로 오그라들면서 상대하지 못할 자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늦었다. 이미 모습을 나타냈을 뿐만 아니라 아걸의 앞뒤까지 가로막았다.

스읏!

흑의인들이 검을 들어 올렸다.

스릉!

아걸도 대도를 뽑았다.

아걸은 벌써 이들을 어떻게 공격해야 할지 방법을 찾았다. 아니, 방법은 이들이 나타나는 순간부터 존재했다. 지금은 어디를 어떻게 쳐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흑의인을 죽이면서 느꼈던 광경이 그대로 재현되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흑의인들이 검을 뽑은 것과 동시에 아걸의 손에서도 칼이 튀어 나갔다.

앞에 있는 자는 단도격타로 가슴을 친다.

두 발이 지면을 박참과 동시에 대도가 가슴을 후빈다. 도검이 부딪치는 일은 없다. 칼은 흑의인이 내뻗는 검을 따라서 아래로 흘러 들어갈 것이다. 즉시 심장을 찌를 것이다.

일격 즉사다.

가슴에서 빼낸 칼은 수신도를 담는다. 몸 주위로 칼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그러면 뒤에 있는 흑의인은 허공으로 솟구친다.

끝났다. 아걸은 십팔대 문주의 일홀도, 사도진파를 떨쳐 낼 것이다. 그러면 목젖 밑에 구멍이 뻥 뚫린다.

아걸은 흑의인 두 명을 단 이 초 만에 잡을 방법을 찾아냈다. 아니, 저절로 퍼뜩 떠올랐다.

허도기의 발검술이다.

엄밀히 말하면 허도기의 발검술보다는 반 초 정도 늦는다.

허도기의 발검술은 검이 튀어나오자마자 살상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상대가 타격을 느꼈을 때는 검은 이미 검집에 회수된 후이다. 검이 발출되었다가 들어가는 모습을 보지 못한다.

거기에 비하면 자신은 확실히 늦다.

허도기는 ‘찰나’, 자신은 ‘일단 몸을 움직여야 하는 만큼’……. 시간 차이가 너무 많이 벌어진다. 일격 즉사는 맞지만, 순간적인 살상과는 거리가 있다.

‘허도기보다 늦는 칼이라면 따라갈 필요가 없지.’

같은 칼이라면 능숙한 쪽이 이긴다. 허도기가 완승한다.

아걸은 손을 축 늘어트렸다. 대도는 땅을 가리켰다. 그는 시선도 가마 쪽으로 돌렸다.

완벽하게 무방비 상태로 전환했다.

쒯! 쒜에엑!

예상했던 대로 두 검이 날아왔다.

앞에서는 내리찍는 검, 뒤에서는 밑에서 올려치는 검……. 이들의 공격, 눈에 확 들어온다. 흑수혈검을 공격하면서 사용했던 바로 그 검초다.

아걸은 저들의 검이 몸 가까이 붙을 때까지 기다렸다.

저들의 검을 허도기의 검이라고 생각한다. 허도기만큼 빠르게 만든다. 그러자면 거리를 내주어야 한다. 아주 가까이 다가서도록 만들면 된다.

이런 기다림은 목숨을 걸어야 한다.

쒜에엑!

직하검, 내리치는 검……. 아걸은 몸을 틀어서 피했다. 흑의인의 검이 간발의 차이로 가슴을 훑으면서 지나갔다. 아니, 지나가려는 순간…… 검이 뚝 떨어질 때…… 아걸의 대도도 하늘에서 밑으로 뚝 떨어졌다.

땅을 향해 축 늘어트렸던 칼을 언제 쳐들었는지 모르겠다. 칼은 머리 위로 쳐들려 있다. 그리고 상대방의 머리를 향해서 뚝 떨어져 내렸다.

상대방의 검을 피해 낸 후, 자신의 칼을 떨궜다.

“흑!”

퍼억!

경악성과 격타음이 동시에 울렸다.

상대방은 피하지 못한다. 피할 틈을 주지 않았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방향에서 완전히 낯선 칼이 떨어졌다.

아걸은 내리치는 칼에 힘을 더 주어서 뒤쪽으로 홱! 휘갈겼다.

쒯!

칼은 흑의인의 몸통을 노렸다.

뒤에서 달려들던 흑의인이 깜짝 놀라면서 반사적으로 물러섰다.

달려들던 몸을 일시에 멈추기도 어려운데, 흑의인은 뒤로 물리기까지 했다.

아걸은 즉시 따라붙었다.

승부는 이미 끝났다. 남은 것은 처형이다. 흑의인은 아직도 싸운다고 생각하겠지만.

쒯! 쒜에엑!

아걸은 허리를 낮게 숙인 체 검을 가로 그었다.

흑의인은 또다시 뒤로 훌쩍 뛰어서 물러섰다. 하지만 이번에 아걸이 뻗어 낸 칼은…… 중간에서 속도가 갑자기 배가되었다. 두 배는 더 빨라졌다.

퍼어억!

흑의인의 양쪽 허벅지에서 붉은 핏물이 확 솟구쳤다. 대도는 정확하게 흑의인의 허벅지 근육을 가르면서 지나갔다.

상대가 무릎을 꿇었다.

아걸은 신형을 휘둘려 상대방의 등 뒤로 돌아갔다. 그리고 대도를 내리쳤다.

상대방의 머리가 앉은 자세 그대로 뚝 떨어졌다.

“웬 놈이냐!”

“여기가 어디라고!”

공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분분히 뛰쳐나왔다.

일가족으로 보이는 중년인과 청년들은 흑의인이 죽어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 아걸을 보고 놀랐나? 두 눈이 퉁방울만 하게 부릅떠졌다.

아걸은 득달같이 쏘아 갔다.

쒜에엑!

칼이 허공을 갈랐다.

아걸의 칼에는 일절 사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팍! 팍팍!

단숨에 세 명을 베어 냈다.

배를 가르고, 배를 가른 칼로 내리찍고, 다시 휘둘려서 목을 쳤다.

중년인과 청년 두 명이 순식간에 나가떨어졌다.

나타난 자는 네 명이었다. 아걸은 다른 한 명의 어깨에 피 묻은 칼을 얹혔다.

툭!

대도의 묵중한 무게가 사내에 어깨를 눌렀다. 아니, 칼에서 흘러내리는 핏물이 사내의 옷 속으로 스며들었다.

청년의 아버지, 그리고 형제들의 피다.

이런 방식은 매우 잔인하다.

할배와 함께 강호를 떠돌 때, 파락호들이 이런 식으로 협박하는 것을 봤다.

그때, 울분을 견디지 못하고 달려들어 한바탕 싸움을 벌였는데…… 자신이 이런 방법을 쓰고 있다. 부모 형제의 피로 몸을 물들인다. 차마 못 할 일이다.

아걸은 청년의 어깨에 칼을 얹는 순간, 즉시 후회했다.

하지만 기호지세(騎虎之勢), 이미 빼든 칼이다. 이미 세 명을 죽였고, 칼을 얹었다.

아걸을 일부터 차게 말했다.

“할 말이 있으면 해.”

청년은 몸만 덜덜 떨 뿐 말을 하지 않았다.

“복수는 해야지. 기회를 주려고. 몇 가지 듣고 싶은 게 있는데, 말 몇 마디만 해 주면 널 놔줄 수…….”

아걸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말을 이어나가는 도중인데, 청년의 입가에서 검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동시에 청년의 얼굴에서도 삶의 기운이 급격하게 사라져갔다.

“큭큭! 큭큭큭! 네놈…… 네놈도 죽어.”

청년이 입가에 미소를 베어 물었다.

슷!

아걸은 대도를 거뒀다.

이런 자들은 어금니 안에 독단을 물고 산다. 비밀이 흘러나가는 것보다는 죽음을 택한다.

“큭큭큭!”

청년은 바로 무너졌다.

독단의 효력은 매우 강하다. 숨 몇 번 몰아쉴 시간이면 피부가 검게 변색된다. 그리고 숨이 끊어진다. 하지만 청년은 죽는 순간에도 웃었다.

네 뜻대로 해 줄 수 없다는, 득의에 가득 찬 웃음이다. 너를 거부했다, 내가 이겼다.

“후우!”

아걸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들이 이럴 줄 예상했는데……. 그래도 밀고 들어가 봤는데, 여지없다. 부모 형제를 죽인 원수 앞에서 복수보다 자결을 택할 정도로 세뇌가 잘 되었다.

서둘지 않는다.

이제, 야천 팔방 간자들이 전해 준 정보가 정확하다는 점이 입증되었다. 전부 다 정확할 수는 없다. 지금처럼 살펴보고 난 다음에 칼을 써야 한다.

하지만 흑의인을 찾아내는 데는 성공했다.

‘공방…… 생각 잘했군.’

아걸은 고은을 떠올렸다. 한성에서 이틀 거리인데…… 그곳에도 공방이 있다. 그리고 오음산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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