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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358화 (358/600)

#358화. 第七十二章 타초(打草) (3)

흑의인들의 움직임은 흑화방에도 위기의식을 불러왔다.

흑의인들이 직접 야천을 장악해서 통제하기 시작하면 흑화방이 할 일이 없다.

흑화방은 정도와 흑도의 중간에서 서로의 이견을 절충하고, 보완해 주고, 다독여가면서 이득을 취해 왔다. 어느 한쪽을 위해서 일한 것이 아니라 양쪽의 공존을 모색해 왔다.

그런데 흑의인이 야천을 직접 장악해 버리자, 흑화방은 끼어들 자리를 잃었다.

“이건 반칙인데.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

흑후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고민을 거듭했다.

허도기가 야천을 도대체 뭐로 보는지 모르겠다. 얕잡아 봐도 아주 단단히 얕잡아 본 것 같다.

어떻게 보면 허도기의 움직임은 매우 당연해 보인다.

야천을 직접 통제할 수 있는데, 뭐하러 제삼자를 통해서 중간 거래를 시키겠나. 내가 길들이면 되는데.

하지만 이것은 야천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다.

야천 같은 조직은 생겨났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또 생겨난다. 야천은 잠깐 두각을 나타낸 우두머리 중 하나일 뿐, 절대적인 군림자가 아니다.

흑의인이 야천 구룡회를 무력화시킨 것은 야천의 몰락을 가져올 뿐이다.

흑도의 몰락이 아니라는 거다.

지금은 흑의인이 흑도를 완전히 장악한 것처럼 보이지만 어림도 없다. 그들은 기껏해야 야천 껍데기를 쥐고 있을 뿐이다. 그것도 대방은 아직 건재하고.

흑후는 이런 점을 허도기에게 설명할 생각이 없다.

허도기에게 설명을 하고자 했는데, 허도기가 거절했다. 절대 권위로 짓눌렀다. 말 안 들으면 죽이겠다는 투로 윽박질렀다. 그것이 바로 거절이다.

“이거 이렇게 되면 나보고 배신하라는 소리인데, 그것참.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네. 그 양반, 왜 이런 선택을 했지? 성검문을 그만큼 다스렸으면 야천을 모를 리 없는데.”

흑후는 미간을 찌푸린 채 고민을 거듭했다.

“도대체 뭘 노리는 거야?”

흑후가 고민하는 이유는 허도기도 흑도의 사정을 잘 알고 있어서이다. 흑도의 실정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당연한 듯이 이런 일을 벌이니까 그게 더 궁금하고 의문이 간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을 했을까?

현재, 흑의인과 허도기 간의 관계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흑의인은 야천을 공격한 사람들이다.

허도기는 이번 일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

이것이 공식적인 관계다. 실제로 더 안으로 파고들어도 나오는 것이 없다.

누군가가 흑의인과 허도기의 관계를 밝히려고 들면 바로 살해당한다. 저들은 그러고도 남을 힘이 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을까? 정체불명의 흑의인들이 허도기의 명령을 받든 자들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일단 이렇게 되면…….”

흑후는 일어섰다.

만나 볼 사람이 있다.

흑후가 찾아간 사람은 야구다.

야구는 밝은 대낮인데도 술에 취해서 큰 대자로 널브러져 쿨쿨 코를 골아댔다.

“팔자 좋네.”

흑후가 야구 옆에 앉으며 말했다.

야구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 흑후를 쳐다봤다. 하지만 곧 다시 눈을 감았다.

“일어나 봐. 할 말 있어.”

“저리 가지. 꼴도 보기 싫으니까.”

“천하의 야구가 왜 이렇게 됐나? 이 세상에 못 잡을 놈 없다고 으르렁댈 때가 엊그제인데.”

“흥!”

야구가 코웃음을 쳤다.

“일어나 봐. 전에 약속했던 천운루를 주려고 왔으니까.”

“흥! 대갈빡 깨지기 싫으면 꺼지지. 천운루를 가질 욕심에 있는 밑천까지 다 털어먹은 지 오래야. 아무래도 재수 옴 붙은 사람과는 상종하지 않는 게 좋지.”

“거 말 한번 심하게 하네.”

“심해? 그때 날 꼬드기지만 않았으면 난 지금도 일전통을 다스리고 있을 거야. 그런데 이 꼴이 뭐야? 완전 개꼴이 되어서 비루먹고 앉아 있잖아!”

“그거 자네 능력이 모자라서 그런 걸 왜 내 탓을 해?”

“그러니까. 난 능력이 모자라니까 이렇게 슬이나 퍼먹고 누워나 있겠다는 거지.”

“아걸이 지금 흑의인들을 죽이고 있는데, 그건 알고 있어?”

“…….”

야구는 일시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몸이 뻣뻣하게 경직되는 것을 보면 무척 긴장한 것 같다.

“뭐야? 아무 소리도 못 들은 거야?”

흑후가 통박을 주었다.

야구는 야천에서 떨어져 나왔을 뿐만 아니라 세간에 흘러 다니는 소문에도 귀를 막고 있다. 흑의인들이 대방 방주까지 죽이자 일시 몸을 사리는 눈치다.

흑후가 말했다.

“아걸이 허도기하고 또 한 번 붙는 모양이야.”

“큭큭!”

야구가 키득거리면서 웃었다.

이 싸움의 결과는 빤히 짐작한다. 아걸이 죽는다. 그 미련한 위인은 이번에도 빤히 지는 싸움을 할 생각인가 보다. 전에 허도기 손에서 빠져나왔다고 해서 이번에도 빠져나올 줄 알고 있나? 어림도 없다. 허도기는 두 번 실수하지 않는다.

“오음산이라면 나도 들었어.”

야구가 별것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나 이번에 말이야. 네가 예전에 일전통을 아걸에게 던졌던 것처럼 흑화방을 던져 볼 생각인데.”

“그러시든가.”

야구가 관심 없다는 듯 돌아누웠다.

“나야 흑화방이라도 던질 게 있지. 넌 뭐 잃을 거 다 잃어버리고…… 가진 거라고는 달랑 불알 두 쪽과 모가지 하나뿐이면서 뭘 튕겨? 쥐뿔도 없으면서.”

“가진 게 없으니까 잠이나 잔다고!”

“마음대로 하든가.”

흑후가 일어섰다.

야구는 아주 특이한 길을 알고 있다.

인간말짜들만 이용하는 시궁창 길, 너무 지저분해서 거지도 피해 가는 길…… 일명 취수도(臭水道)라고 하는 길인데, 이런 길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어떤 때는 정말 취수구(臭水溝)로 걸어가야 한다. 지하에 뚫어 놓은 하수구 길을 기어간다. 또 쓰레기가 산처럼 쌓인 길을 걷는다. 인분을 퍼 나르는 곳, 길에서 죽은 사람을 내다 버리는 망지(亡地)를 걸을 때도 있다.

하나같이 멀쩡한 사람이라면 얼씬거리지 않는 곳이다.

흑후가 야구를 찾아온 것은 그가 이런 길을 빠삭하게 알고 있어서다.

허도기의 눈을 피하려면 이런 길로 갈 필요가 있다.

“좀 빨리 갈 수 없나?”

“왜? 마차라도 타고 가시게?”

“아걸을 따라잡아야 하니까 그렇지.”

“앉아. 여기 딱 좋은데, 밥이나 먹고 가게.”

야구가 쓰레기 더미 위에 털퍼덕 앉았다.

“어휴! 이건 냄새가…….”

흑후는 차마 앉지 못하고 옷소매를 들어서 코를 막았다.

쓰레기 더미에서는 온갖 오물 냄새가 섞여서 풍겨 왔다. 뒷간 분뇨도 같이 퍼 나른 듯했다.

하지만 코를 막은 옷에서도 악취가 물씬 풍긴다. 야구와 같이 며칠 동안 움직이다 보니 아예 옷에 지린내가 배어 버렸다. 옷이 아니라 몸에 밴 건가?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허도기의 눈길은 천하에 깔려 있다. 그 눈길을 피해서 아걸을 만나야 한다. 조금이라도 허도기 이목에 걸려들면 흑화방은 그날로 잿더미가 된다.

한 번 경험해봐서 알지 않나. 일기장군 하원랑이 흑화방에 들어왔을 때, 흑후가 자랑하던 제일 검수들이 대항도 해 보지 못하고 펑펑 나가떨어졌다.

“앉아서 먹어. 별로 깨끗하지도 못하면서. 지금 먹어 두지 않으면 저녁때까지 쫄쫄 굶어야 해.”

“아무리 그래도 여기서는…….”

“시산(屎山)이라고 들어 봤어?”

“시산? 시산(屍山)이 아니고 시산(屎山)?”

시산혈해(屍山血海)를 뜻하는 시산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시체가 산처럼 쌓여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똥 시(屎) 자를 쓴 시산은 많은 사람이 모른다. 관가에서 쓰는 말이다.

전임자가 똥 같은 업무를 잔뜩 쌓아 놓고 물러간 경우 후임자가 이 업무를 모두 치워야 한다. 전임자가 싸질러 놓은 똥을 치우는 일이라고 해서 똥산이라고 말한다.

야구가 말했다.

“앞으로 똥산을 지나쳐 가야 해. 그래도 여기가 제일 깨끗한 곳일 테니까, 앉아서 먹어. 어차피 지금 먹은 것들도 모두 게워 낼 게 뻔하지만.”

“우웩! 으웨엑!”

흑후는 배 속에 있는 것을 모두 게워 냈다. 너무 게워 내서 나오는 것도 없었다. 누런 신물만 꾸역꾸역 밀려 나왔다.

“아!”

흑후가 창백하게 변한 얼굴로 사람들을 쳐다봤다.

시산은 여러 가지가 버무려진 복합적인 말이다.

일단 시산에는 버려진 사람들이 산다. 사회에서 버려져서 내다 버린 시신의 옷을 벗겨서 입고, 사람 뼈를 갈아서 장신구로 만들어 내다가 판다. 늑대 뼈라고 속이고.

시산은 시신을 내다 버리는 북망산이기도 하다.

길에서 죽거나, 인수할 사람이 없는 시신은 망지에 묻는다. 하지만 이곳은 토질이 좋지 않아서 비만 오면 쓸려 내려간다. 시신이 금방 드러난다.

짐승들이 와서 뜯어먹고, 새가 쪼아 먹는다.

세월에 썩어서 완전히 백골이 되어 버린 시신은 그나마 덜 역겹다. 이제 막 썩기 시작한 시신은 냄새와 흉측한 몰골 때문에 토악질이 치민다.

그런 길을 이틀이나 걸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시산 마을 어린아이들이 그런 시신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논다는 것이다.

흑후도 어지간한 일들은 보아 왔지만, 눈 앞에 펼쳐진 정경은 한 폭의 지옥도였다.

“이곳까지 떠밀린 사람들은 그야말로 최악이야. 잠잘 때 조심해. 모가지 떼어 가.”

야구가 하는 말은 괜한 겁박이 아니다. 시산 마을 사람들은 정말로 그런다. 몰래 습격을 가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가차 없이 공격한다. 사람을 죽이고 가진 것을 빼앗는다.

마을 사람들의 눈이 광기로 번뜩였다.

하지만 그들도 야구를 보고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야구를 잘 아는 듯 곁눈질도 하지 않았다.

‘이놈…….’

흑후는 야구를 다시 봤다.

야구…… 어쩌면 야구는 결코 깨끗한 세상으로 나올 수 없는 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흑후는 눈 앞에 펼쳐진 불야성을 보면서 경탄을 흘렸다.

고은은 큰 도읍이다. 휘황찬란한 불빛이 끝도 없이 늘어져 있다. 늦은 밤인데도 아직 사람들이 흥청거리면서 돌아다닌다.

어둠과 밝음!

“아걸, 오늘 만날 거야, 내일 만날 거야?”

야구가 물었다.

“기왕이면 오늘 만나야지. 왜?”

“오늘 만나면 섬돌 아래 쭈그리고 앉아서 대면해야 하고, 내일 만나면 차 한잔하면서 말할 수 있고.”

“어째서?”

“씻어야지! 냄새 풀풀 나는 이 꼴로 저길 들어가겠다고? 들어갈 수는 있지. 하지만 방안에는 못 앉아. 양심이 있으면 방 안에 들어가겠다는 말이 안 나오지.”

야구 말대로 두 사람의 몸에서는 심한 악취가 풀풀 풍겼다.

흑후는 야구의 충고를 무시하고 아걸을 바로 찾았다.

마음이 급했다.

‘허도기에게 발각되면 곤란해.’

냄새 따위는 상관없다. 사람들 속에 섞이면 이런 악취가 관심 대상이 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대화를 빨리 끝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헤! 오랜만입니다.”

야구는 아걸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야구는 방갓 벗은 아걸 모습을 처음 봤다. 그토록 곁을 오래 지켰지만 참모습을 보기는 처음이다.

“여긴 어떻게 알고?”

“헤헤! 흑수혈검께서 소식을.”

아걸은 두 사람에게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히히! 저희 냄새가…….”

“냄새가 심하긴 하네.”

“그렇죠? 히히! 저희가 취수도를 걸어와서. 시궁창 냄새, 똥 냄새, 쓰레기 냄새. 온갖 냄새가 다 섞여서.”

“식사는?”

“아직…….”

“먹었습니다.”

두 사람은 각기 다른 대답을 했다.

아걸이 빙긋 웃으면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안에서 기다려. 남은 밥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있다면 가져오지. 다른 사람을 시키는 것은 싫잖아? 보는 눈이 있을 테니까. 하하! 취수도? 하하하!”

아걸이 웃으면서 나갔다.

아걸도 취수도에 대해서 아는 모양이다.

“하! 영락없는 애송이인데.”

야구가 걸어가는 아걸의 뒷모습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야구 같은 사람이 보기에는 아걸은 한낱 애송이처럼 앳돼 보인다. 그런데 이 사람을 잘못 건드리면 큰일 난다. 방갓만 써도 날카로운 칼이 된다.

아걸은 손수 밥상을 들고 왔다.

밥상에는 고봉으로 쌓아 올린 공깃밥 두 그릇과 채소 반찬 세 개 놓여 있었다.

아걸이 집적 주방에 들어가서 가지고 나온 듯하다.

‘사람은 좋은데, 무공이……’

흑후는 속으로 탄식했다.

아걸의 무공이 허도기만큼 강하면 아무 근심 걱정이 없을 텐데.

흑후는 탄식을 하면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이틀 만에 먹어 보던 제대로 된 식사여서인지 꿀맛이다. 배 속에 있는 것을 모두 겨워 낸 다음에 먹는 맛 음식인데도, 눈이 돌아갈 정도로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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