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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359화 (359/600)

#359화. 第七十二章 타초(打草) (4)

일홀도는 어떤 칼일까?

늘 의문이 따른다. 천하에서 제일 강한 도법일까? 아니면 세계에서 제일 강한 도객일까? 칼을 사용하는 방법일까, 칼을 쓰는 무인을 말하나.

세상에 절정 도법은 상당히 많다.

절정 도법을 수련한 도객도 바닷가에 흩어져 있는 모래알처럼 무수히 많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칼이 제일이라는 자긍심으로 칼을 닦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대부분의 문파는 문도를 받아들여서 기본공을 수련시키고, 권각술을 가르친 후에 병기술을 배우게 한다. 점차 무공의 강도를 높여가다가 최종에는 문파의 절기를 전승한다.

차츰, 차츰…… 완성된 인간을 만들어 나간다.

그러면 일홀문은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방식을 선택했나. 왜 일홀도를 든 자는 항상 죽음과 싸워야 하나. 왜 더 강한 자를 찾아서 중원을 떠돌아야 하나.

일월도는 최강의 칼이 아니다. 최강의 무인이다.

내가 탄생시킨 일홀도는 오직 나에게만 맞춘 것이다. 감각, 반사신경, 근육, 신장, 몸무게 등등 모든 것을 고려해서 내 몸에 최적화한 도법을 창안해 낸 것이다.

그러니 나한테는 천하제일 도법이 될 수 있어도 나의 제자에게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일홀문은, 모든 사람이 오직 수련만 하면 되는 가장 강한 무예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견해다. 이것도 수련하고 저것도 수련하고 모든 걸 수련해서 그 속에서 자신만의 도법을 찾아야 한다.

무공을 칼에 국한했기 때문에 일홀도라는 말이 나왔다. 만약 병기를 고정하지 않았다면, 어떤 병기를 사용해도 좋다고 하면 그때는 일홀도가 아니라 일홀무공이라고 해야 한다.

일홀도는 천하 최강의 도법이 아니다. 천하 최강의 무인이다.

일홀문주가 제자를 거둬들이는 기준은 무재(武才)가 아니다. 수재를 골라내는 것이 아니다. 근골이 뛰어난 자, 반사신경이 탁월한 자, 성깔이 있는 자…… 모든 무인의 요소를 종합해서 ‘이놈 같으면 죽음 속에서도 기어 나올 수 있겠다.’ 하는 놈을 제자로 받아들인다. 태생부터가 전투적인 인간인 것이다.

여타 문파와 일홀문은 제자를 받아들이는 기준 자체가 다르다.

그러니 일홀도라는 것은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 최강의 무인이 구사하는 도법일 뿐.

이것이 서리가헌이 받아들인 일홀도의 정의다.

저벅! 저벅!

서리가헌은 관도를 걸었다.

그는 외팔인 데다가 칼을 차고 있다. 눈매도 상당히 날카롭다. 어디에 있어도 단박에 눈에 띈다.

하지만 서리가헌을 알아보는 사람은 없다.

서리가헌은 누가 뭐라고 해도 당금 무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초절정도객이다. 일홀문도이며, 풍도곡의 주인이다. 소축십검까지 한 수 접는 강자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서리가헌이라는 사람을 알지 못한다.

서리가헌은 무림에 나온 적도 없고, 무명을 얻으려고 애쓴 적도 없다. 풍도곡 안에 틀어박혀서 살았을 뿐, 풍도곡 주인을 앞세워서 세상을 활보한 적도 없다.

‘쉬었다가 갈까.’

서리가헌은 길가에 있는 다루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 차 좀 주지.”

“다과(茶果)도 같이 올릴까요?”

“아니, 차만 줘. 목만 축일 셈이니까.”

“네. 알겠습니다.”

점소이가 쪼르르 달려들어 갔다.

서리가헌은 다루에 앉아서 따갑게 내리쬐는 햇볕을 즐겼다.

자신, 서리형개, 아걸…… 셋 중 누가 살아남을까?

강하기는 아걸이 제일 강한데, 살아남을 것 같지는 않다. 아걸은 너무 강한 자와 척졌다. 허도기 같은 자와 척 져 놓고 살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아걸이 허도기 손에 죽는다면 자신과 서리형개는 어떤 길을 가야 하나.

“훗!”

서리가헌은 피식 웃었다.

생각해 볼 것도 없다. 남은 사람도 모두 죽음의 길을 간다. 원래 일홀도의 길이 그러니…… 그렇게 되면 일홀도는 제삼십칠대 문주를 정하지 못한 채 멸문한다.

‘그래도 후인은 남겨야지. 그러자면 모두 죽으면 곤란하고…… 한 놈이라도 살아야겠지.’

서리가헌은 서리형개를 떠올렸다.

결국, 살아남을 놈은 서리형개다.

자신과 아걸은 오음산에서 죽을 것이다. 아걸이 죽으면 곧바로 자신이 부딪칠 것이다. 물론 결과는 정해져 있다. 지금도 허도기와는 싸울 수 없다는 생각이다.

주눅이 들어서 칼을 못 드는 것은 아니다. 칼은 든다. 다만 결과가 그럴 것이라는 거다. 이것은 일홀도를 가진 도객이 객관적으로 판단한 무공 강약이다.

서리형개는 오음산에 도착하지 못한다.

‘후후! 살아남아라. 살아남아 봐.’

결국은 서리형개도 허도기와 싸울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우선 삼십칠대 문주가 되고, 후인을 양성하고, 서리 성을 물려주고…… 그다음에 죽어야 한다.

서리형개는 먼 훗날에 죽어야 한다.

점소이가 다 떨어진 주전자에 따뜻한 차를 담아 가지고 왔다.

서리가헌은 차를 따라 마셨다.

길에는 오가는 무인도 많다. 하지만 그들 중 서리가헌을 주목하는 사람은 없었다.

저벅! 저벅!

서리가헌은 무심히 계단을 밟고 올라갔다.

농성제일루(嶩城第一樓)는 농성에서 제일 큰 기루다. 요즘 농성황루(嶩城凰樓)가 새로 개장해서 규모 면에서는 두 번째로 밀렸지만, 기루를 말할 때면 여전히 첫 손에 꼽힌다.

척! 척!

서리가헌 앞을 덩치가 우람한 장한 두 명이 가로막았다.

“어이! 여긴 어쩐 일로?”

서리가헌이 고개를 들어 앞을 봤다.

장한 두 명이 팔짱을 낀 채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안에 들어가려고.”

“그러니까 무슨 일로 들어가냐 이거지.”

“만날 사람이…….”

“거참 말귀를 못 알아먹네. 여기는 어중이떠중이가 기웃거릴 곳이 아니라고 꼭 꼬집어서 말해줘야 알아들어? 보아하니 칼 밥 좀 얻어먹으려나 본데. 저기.”

팔짱 낀 장한이 고갯짓으로 담장 옆에 만들어진 작은 쪽문을 가리켰다.

서리가헌의 몰골은 매우 허름하다. 장한들이 무시하면서 말하는 것도 이해된다.

옷은 거의 일 년 동안 입은 것 같다. 한 벌로 버티다 보니 제 빛깔이 나지 않는다. 한쪽 팔이 없어서 소매가 덜렁거리고, 허리에 칼을 차고는 있는데 칼집이 매우 남루하다. 오래된 가죽이 갈라지고 빛이 바랬다.

장한 말대로 잔재주 몇 수 가지고 밥 벌어 먹고사는 놈팡이로 보인다.

서리가헌은 쪽문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즉시 계단에서 물러나, 담장을 따라 걸었다.

“하하!”

“큭큭!”

장한들의 웃음소리가 뒷머리를 간질였다.

서리가헌은 일부러 충돌을 피했다. 장한들이 하찮아서다. 이런 자들까지 베고 싶지는 않다. 일홀도는 그래도 칼다운 칼을 쓰는 자만이 받을 수 있다.

똑똑!

쪽문을 두들겼다.

물론 안에서는 대답이 없다. 굳게 닫힌 문이다. 간혹 열리기는 하지만, 언제 열릴지는 문을 여는 사람 마음이다. 쪽문 앞에서 대략 반나절쯤 기다리면 그제야 용건을 물어올 것이다.

스읏!

서리가헌은 단검을 꺼내서 문틈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위로 툭! 쳐올렸다.

철컥!

나무 빗장문이 단숨에 갈라졌다.

하지만 저들 눈에는 칼로 빗장문을 들어 올린 것처럼 보일 것이다.

저들이 이 한 수만 제대로 봤다면, 한 명이라도 제대로 눈 박힌 자가 있다면 혈겁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면 떼죽음을 면치 못한다.

스읏!

서리가헌은 단검을 다시 집어넣고 안으로 들어섰다.

장한들이 지키는 대문 쪽과 쪽문 쪽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화려한 춤과 음악이 기다린다. 술 냄새와 분 냄새가 한꺼번에 후각을 간질인다. 무엇보다도 아리따운 여인들이 눈을 가린다.

쪽문으로 들어서면 오직 일하는 사람들만 눈에 띈다.

식기를 닦고, 나무를 패고, 반찬을 만들고, 술을 망태에 거르는 사람도 보인다.

저벅! 저벅!

서리가헌이 몇 걸음 걸어 들어갔을 때 몸집이 단단한 장한이 앞을 막아섰다.

“웬 놈인데 함부로 들어와!”

서리가헌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들은 쪽문 여는 수법을 보지 못했다. 문을 걸어 잠근 빗장이 단숨에 잘리는 모습을 보지 않았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놈들.’

아무래도 오늘 혈겁은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되도록 피를 흘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런 자들을 베는 것은 일홀도를 모욕하는 일이 되니까.

“사람을 만나러 왔는데.”

서리가헌이 차분히 말했다.

“누구! 누구를 만나러 왔어? 그리고…… 야! 인마! 사람을 만나러 왔으면 밖에서 불러 달라고 해야지. 다짜고짜 안으로 기어들어 오면 어떡해!”

“그런가? 밖에서 말하면 불러 줄 거 같지 않아서. 이름은 모르겠고, 얼굴에 복면을 쓴 자들. 여기 그런 놈들이 네 명 있다던데. 아무나 불러 줄 수 있나?”

서리가헌은 일부러 소란을 피웠다.

정말로 애꿎은 사람들이 죽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그러니 알아서 물러나 주기를 바란다. 그런 뜻에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손속을 보여 줄 참이다.

“뭐라고!”

‘복면’을 말하는 순간 장한의 눈가에 살기가 번뜩였다. 순간,

슷!

서리가헌이 번갯불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어느새 작은 단검을 손에 들었다. 장한 앞에 바싹 다가섰고, 단검으로 목젖을 지그시 눌렀다.

그야말로 한순간에 일어난 움직임이다.

“어! 어…….”

장한이 깜짝 놀라서 말을 더듬거렸다.

서리가헌이 차분하게 말했다.

“지금 네 대답 한마디에 농성제일루의 운명이 걸려 있어. 어떤 대답이 나오는가 볼까? 네 명을 넘겨줄래, 아니면 모두 한 운명이 될래. 선택은 자유.”

“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장한이 놀란 눈으로 더듬거리면서 말했다.

사실, 서리가헌은 장한에게 한 말이 아니다. 지금 주변의 많은 자들이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다. 서리가헌이 단검으로 장한을 제압하는 광경도 봤다.

복면인에 대해서는 모른 척하고 물러서라는 뜻이다.

정말로 이런 자들까지 일홀도로 죽이기는 싫다. 하지만 칼을 써야 한다면 최선을 다한다. 절명 직전의 병자를 죽여야 할 때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일홀도다.

저들은 비로소 서리가헌이 무시하지 못할 무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주눅 들지 않는다.

스슷! 스스슥! 스읏!

저들은 서리가헌에게 다가왔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듯 흉흉한 살기를 띠고 있다.

그놈? 죽여. 하지만 너도 죽어. 농성제일루를 침범한 놈은 살려 주지 않아. 감히 어딜 들어와서 난장이야. 아니, 복면 흑의인을 말해? 그걸 안 이상, 넌 살아나가지 못해.

저들의 표정은 단호했다.

이것은 확신이다. 저들은 복면인이 침입자를 누를 수 있다고 확신한다.

“복면 쓴 놈, 안에 있지?”

“무슨 말씀이신지 정말 모르겠다니까요.”

“너 말 잘못했어. 지금 네 말 한마디로 농성제일루의 운명은 결정됐어. 아쉽군.”

“미친놈! 네놈이 난장질하도록 내버려 둘 것 같아? 여기가 그렇게 만만한 곳인 줄 알아! 너 이 새끼, 지금이라도 칼 놓고 살려달라고 빌지 그래!”

장한이 고래고래 고함쳤다.

서리가헌은 그가 충분히 소리 지르도록 내버려 두었다. 될 수 있는 대로 소란이 널리 퍼져나가야 한다. 그래야 칼 든 놈들이 한꺼번에 달려들 것이고, 일이 빨리 끝난다.

“소리 다 질렀어?”

“으!”

장한이 입술을 바들바들 떨면서 서리가헌을 쳐다봤다.

어떤 말을 해도 한 점 흔들림 없는 눈빛, 표정…… 이자, 정말 고수다. 정말로 자신을 죽일 것이다.

장한은 비로소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꼈다.

“이익!”

그가 위험을 무릅쓰고 몸을 빼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단검이 따라붙었다. 몸을 왼쪽으로 돌리면 이미 단검이 먼저 와 있다.

“자! 그럼 시작하지.”

“뭐, 뭐를?”

장한이 되물었을 때 슉! 단검이 장한의 목젖을 파고들었다.

아니, 언제 찔렀는지 모르겠다. 서리가헌은 벌써 한 걸음 뒤로 물러서 있다.

장한이 비명도 지르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손속이다.

파앗!

장한의 목에서 붉은 핏물이 확 솟구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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