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361화 (361/600)

#361화. 第七十三章 방해자(妨害者) (1)

“으윽!”

서리형개는 아랫배를 움켜쥐고 허리를 굽혔다.

갑자기 아랫배가 끊어질 듯 아팠다. 창자가 비비 꼬이면서 배를 쿡쿡 찔러 댔다.

서리형개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길옆에 앉았다.

아침 운공을 할 때도 이상 증세를 발견하지 못했는데, 뭘 잘못 먹었나?

서리형개는 차분히 아랫배 통증을 살폈다.

“우욱!”

또다시 통증이 치민다. 큼지막한 칼이 배를 헤집고 들어오는 느낌이다.

“으음!”

서리형개는 아랫배를 움켜잡고 인상을 찡그렸다.

확실히 뭘 잘못 먹은 것 같다. 하지만 아침에 먹은 것이라고는 물 한 잔밖에 없다. 점심에도 호떡 한 개로 배를 채웠다. 배부른 것이 싫어서 늘 모자란 듯이 식사를 한다.

온종일 먹은 거라고는 호떡 한 개밖에 없는데, 창자가 끊어질 듯이 아프다.

그럼 그 호떡이 잘못되었나? 밀가루 반죽을 불에 구운 것뿐인 호떡이 뭐가 잘못되었을까?

“끄으으으응!”

서리형개는 또다시 통증이 치밀어서 이 앓는 소리를 흘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이 더 거세진다. 어지간한 통증쯤은 눈도 깜짝하지 않는데, 이건 엄청나다. 이토록 지독하게 창자를 갉아 먹는 통증은 처음이다.

츠으읏!

서리형개는 차분히 진기를 조율했다.

경혈을 하나씩 점검하면서 아픈 곳이 어딘지 파악하려고 애썼다.

만약에 먹은 게 잘못된 것이라면 특정혈에서 얽히는 증세가 일어날 것이다. 혈 몇 개가 막혔을 수도 있다. 아니면 혈이 무뎌져서 운기로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다.

지극히 세밀하게 아픈 곳을 파악해 나가야 한다.

츠으읏!

진기가 전신 경맥을 더듬어나갔다. 그런데,

‘응?’

서리형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옥당혈(玉堂穴), 음포혈(陰胞穴), 목창혈(目窓穴)!

이상한 혈을 찾아냈다. 그런데 위치가 정말 이상하다. 통증은 복부에서 일어나는데, 막힌 혈은 가슴 정중앙과 허벅지, 그리고 옆머리 쪽이다.

‘막힌 순서가 가슴, 다리, 머리야. 가슴을 막고, 다리를 건드리고, 머리에서 멈췄어.’

이것은 확실히 체한 증상이 아니다.

세 혈에서는 아무런 느낌도 일어나지 않는다. 혈이 마비되었다고나 할까? 대체로 혈이 얽혀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체한 것 같은 통증이 일어난다. 그런데 지금 그가 파악한 세 혈은 복부 통증과는 전혀 무관하다.

‘이게 뭐지?’

“큭!”

서리형개는 이상한 경혈을 들여다보려다가 다시 아랫배를 움켜잡고 비틀거렸다.

칼을 맞아도 고통을 참을 수 있는 그였지만 창자가 가닥가닥 끊어지는 듯한 아픔은 도저히 견디기 힘들었다. 일단 편안한 곳으로 가서 정식으로 운기를 해야겠다.

서리형개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어딘지 모를 야산을 더듬어 올라갔다.

츠읏! 츠읏! 츠으으읏!

진기를 일주천 시켰다.

열세 곳이 이상했으니, 그곳을 집중적으로…… 아니다! 이상한 혈이 열여섯 개로 늘어났다. 어쩐지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통증이 심해진다 싶었는데, 혈도가 열여섯 곳이나 무너졌다.

‘아무 감각이 없어.’

운기를 하면 무심히 혈을 지나친다. 땡땡이 혈에서 땡땡이 혈로 이어진다.

자궁혈(紫宮穴)에서 옥당혈(玉堂穴)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단중혈(膻中穴)로 내려간다.

그런 혈이 무려 열여섯 곳이나 된다.

진기가 혈도를 건너뛰는 것인데, 세심히 살펴보지 않으면 전혀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다. 진기가 자유롭게 유통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이상한 점을 찾아내지 못한다.

‘열여섯 곳…… 열여섯! 십육파혈산(十六破穴散)?’

서리형개는 아랫입술을 잘끈 깨물었다.

십육파혈산은 사천당문(四川唐門)의 비독(秘毒)이다. 죽음을 일으키는 독은 아니다. 단지 혈을 무디게 만들어서 진기를 절반 이하로 가라앉힌다.

진기가 무뎌진 혈을 지나가면서 상당한 힘을 잃어버린다.

창자에서 일어나는 고통을 멈추려면 십육 혈에 대응하는 반대쪽 십육 혈을 짚으면 된다. 마비된 십육 혈에 대응해서 다른 십육 혈도 감각을 잃게 만든다. 그러면 좌우측 경혈이 균형을 이루기 때문에 고통이 멈춰진다.

하지만 삼십이 혈을 막아 버리면 화염도를 펼치지 못한다. 아마 진기도 절반 이하로 떨어질 것이다.

절정의 화염도를 펼치려면 전신 경혈을 극성으로 열어야 한다. 어느 한 곳이라도 막히면 곤란해진다. 하물며 한두 군데도 아니고 삼십이 혈이나 봉쇄하면 치명적이다.

본능에 따라서 검을 쓸 수는 있다. 화염도에 따른 초식을 펼칠 수도 있다. 하지만 화염도는 한낮 어린애의 장난 만도 못 한 수준으로 전락할 것이다.

이래서는 흑의 복면인을 공격하지 못한다.

‘누가 이걸?’

서리형개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반대쪽 혈을 누르기 시작했다.

툭! 툭! 툭!

검지에 진기를 주입해서 혈을 지그시 눌렀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꼬집듯이 비틀어서 혈을 무너뜨렸다.

이렇게 혈에 매듭을 지어 놓으면 당분간 혈이 잊힌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일단, 통증은 멈춰야 한다. 십육파혈산이 일으키는 통증은 시간이 지날수록 거세진다. 선택권을 아예 빼앗아 버리는 독이다.

십육 혈을 짚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다른 십육 혈이 마비되어 있어서 위치도 쉽게 찾는다. 왼쪽, 오른쪽만 바꿔서 혈을 누르면 된다.

‘누구냐!’

서리형개는 파혈을 하면서도 계속 하독한 자를 생각했다.

십육파혈산을 풀려면 사천당문으로 가야 한다. 오직 사천당문에만 존재하는 독이기 때문에 해독단도 그곳에만 있다. 다른 독문이나 독인은 해독약을 만들지 못한다.

결국, 사천에 다녀와야 한다.

이것이 서리형개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사천까지는 빠른 걸음으로 다녀온다고 해도 족히 한 달은 걸린다. 사형과 약속한 대로 흑의 복면인들을 공격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오음산에도 가지 못한다.

서리형개는 깊이 고민했다.

‘어떤 놈이냐!’

자신에게 독을 풀 수 있는 사람은 딱 두 명이다. 귀적칠흔, 그리고 사형.

귀적칠흔이 주인에게 하독할 리는 없다. 그렇다면 남은 사람은 오직 한 명, 사형이다.

“흐흐흐!”

서리형개는 키득키득 웃었다.

갑자기 옛날 일이 떠올라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사부를 딛고 올라서기로 작정했을 때, 삼인독을 사용했다. 독 하나만 사용해서는 아무런 느낌도 일어나지 않는다. 세 가지 독이 합성되어야만 독효가 일어난다.

하나, 둘……. 사부는 독에 중독되면서도 중독된 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사형이 들어섰을 때, 삼인독이 하나로 합쳐졌을 때, 사부는 비로소 신음을 흘렸다.

자신이 당한 십육파혈산도 삼인독과 같은 성질을 지녔다.

사형에게 일차로 당했고, 이차로 몸 어딘가에 다른 독을 묻혀 놨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차로 이차 중독이 일어났다. 독은 예전에 살포되었는데, 발현이 매우 늦게 일어났다. 그러니 의아했던 것이다.

고통을 느끼기 전 무엇을 했나? 한 것은 없다. 복면인을 공격하기 위해서 목적지를 향해 걸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독은 정말로 몸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

서리형개는 즉시 몸을 뒤졌다.

아니, 오래 뒤질 필요도 없었다. 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이마를 만지는 순간, 벌써 느낌이 왔다.

영웅건!

서리형개는 이마에 두른 영웅건에서 하얀 가루를 찾아냈다.

길을 걷는 동안에 미세한 가루가 조금씩 바람에 날려 흡입되었던 것 같다.

‘사형!’

역시 맞다. 사형이 독을 풀었다. 아주 치밀하게, 당하지 않을 수 없게끔 하독했다.

저녁을 먹으면서 하독했고, 잠을 청하는 동안에 영웅건에 이차 독물을 묻혔다.

두 가지 동작은 각기 다른 형태이고, 아무런 증상도 일어나지 않아서 알지 못했다. 독을 쓸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무방비 상태였던 점도 크다.

‘왜 내게?’

서리형개는 차분하게 생각했다.

십육파혈산은 당장 생명을 위협하지는 않는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은 아니다. 마인을 제압하기 위해서, 마인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은밀히 내공을 갉아먹기 위해서 만든 독이다.

가만? 이상한데?

십육파혈산은 경혈 열여섯 개가 모두 무너질 때까지 아무런 증상도 일으키지 않는다. 자신이 겪었던 것처럼 극심한 복통이 생기지 않는다.

십육파혈산에 당하면 진기가 절반 이하로 소진된 이후에야 중독 여부를 알게 된다.

복통을 심하게 느낀 것은 먼저 느낀 삼 개 혈이 창자를 굳혀 놨기 때문이다. 창자가 마비되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되면, 굉장한 복통이 일어난다.

“후후후! 후후후후!”

서리형개는 웃었다.

사형은 십육파혈산에 당한 사실을 빨리 눈치채게 해 주었다. 이유 없는 복통을 일으키면 누구든 경혈부터 살필 것이다. 어디가 아픈지 봐야 하지 않나.

사형의 뜻은 오음산에 오지 말라는 거다.

벽면인 일에도 손을 떼고, 사천당문에 가서 치료나 받고 오라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중원 일은 모두 끝난다.

사형과 아걸은 죽는다. 두 사람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싸움판을 향해서 걷고 있다. 자신이 한 팔을 거들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다 죽는다.

너라도 살아남아서 일홀문의 명맥을 이어라.

너는 이 판에 끼어들지 말라.

서리형개는 사형의 뜻을 읽었다.

“후후! 끝까지 잘난 체하기는. 사형답게 사람을 오도 가도 못 하게 만들었네? 하지만 안 되겠어. 이대로 물러서는 것은 내 자존심이 허락지 않거든.”

풍도곡 생활을 할 때 서리가헌은 풍도곡 안에만 머물렀다. 하지만 자신은 정동에 무인을 양성하면서 활발하게 움직였다. 언젠가는 성검문과 부딪힐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성검문 검공에 대해서도 절대 소홀하지 않았다.

허도기의 무공을 구경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소축십검이 전개하는 무공은 충분히 관찰했다.

성검문 무공은 단순히 진기로만은 설명되지 않는다. 진기로 설명되는 것은 조명천검이다. 조명십해로 들어가면 진기로 설명할 수가 없다.

조명십해는 일종의 잠력 격발이다.

인간이 가진 모든 능력을 한순간에 모아서 터뜨린다. 그야말로 인간이 표출해 낼 수 있는 최대치의 힘을 끌어내어서 활용한다. 수련의 가치가 매우 빛난다. 열흘 동안 수련하면 열흘 이상의 대가를 주는 무공이다.

허도기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그런 무공에 대비해야 했다.

잠력 사용!

서리형개는 이 부분을 예의주시했다. 호기심을 가지고 연구했다. 잠력에 관한 모든 무공을 살펴봤다. 화염도에 응용할 수 있는지 고민을 거듭했다.

일홀도 역시 최대한의 잠력을 끌어내는 무공이다.

그러니 외도로 빠졌다고는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일홀도에 더욱 깊숙이 들어가는 방편이 된다.

오랜 연구 끝에 서리형개는 화염도와 어울릴 만한 잠력 격발법을 찾아냈다.

아직은 미완성이다.

진기를 운용해 화염도를 만들면서 거센 힘으로 경맥에 스며 있는 한 올의 진기까지 모두 끌어낸다. 거대한 힘을 칼에 실어서 한순간에 탁 터트린다.

조명십해 중에서는 잠기일력타와 가장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결과도 잠기일력타와 비슷하다. 화염도를 쓰고 나면 일시 무력해진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무기력함, 완전한 탈진 상태에 빠진다.

화염도를 지금보다 세 배, 네 배 강하게 터뜨릴 수는 있지만, 일 초 이상 전개하지 못한다.

한순간에 모든 힘이 사라져 버린다.

이 부분을 해결하지 못하는 한, 자신이 찾아낸 잠력 격발은 절체절명의 순간에만 사용할 수 있는 구명 절초가 될 수밖에 없다.

꾸우욱!

혈도 열여섯 개를 누르고, 이번에는 십육파혈산에 중독된 열여섯 개의 혈을 눌러 나갔다.

손가락에 진기를 운집해서 혈을 꼬집었다.

타악!

경혈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출렁거렸다.

경혈 주변에 흩어져 있는 세맥에서 힘을 얻어낸다. 이슬방울을 모아서 우물을 만든다. 살과 뼈를 이루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힘마저 모두 끌어낸다.

이렇게 하면 일시적이나마 십육파혈산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중독된 경혈을 무력화시키고, 자신이 짚은 혈도 열여섯 개를 풀어낸다. 독은 여전히 몸 안에 존재하지만, 잠깐은 멀쩡하게 움직일 수 있다.

물론 십육파혈산이 언제 어떤 작용을 발휘할지는 예측하지 못한다. 자신의 방법이 옳다고 확신하지도 못한다.

서리형개가 잠력 격발법을 실전에서 사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직 싸움을 벌이는 것은 아니지만, 이 한 수에 목숨을 건 것이나 마찬가지이니까.

머릿속에 ‘이러면 될 것 같다’ 하는 방책이 떠올랐고, 사천당문에 가기 싫으니 이거라도 해 보는 수밖에 없다.

타악! 탁탁!

서리형개는 십육파혈산에 무너진 열여섯 개의 혈도를 재건시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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