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3화. 第七十三章 방해자(妨害者) (3)
아걸은 농성과 길성에서 벌어진 싸움을 전해 들었다.
사실 그곳에서는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복면인들의 죽음은 감쪽같이 묻혔다. 그리고 죽음을 본 사람도 없다. 시신이 나온 것도 아니다.
송천공방이며, 용마표국은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 평상시처럼 하루를 시작했다.
오직 복면인들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본 사람만이 몇몇 죽음이 있었다는 사실을 안다.
복면인들이 죽을 때도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는 있었다.
그들이 복면인에 대한 정보를 야천에 넘겨주었다. 그러니 누군가가 와서 복면인들과 싸우는 것을 보지 않을 수 없다. 또 결과도 바로 전했다.
천하무적일 것 같은 복면인들이 소리소문없이 쓰러졌다.
이것은 야천에는 대단한 희망이다. 야천 구룡회가 복면인들에게 무너졌다. 한순간에.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구룡회도 무너지고 야천 제일검이라는 자부하던 사람들이 핏물에 잠겼다.
야천에는 희망이 없는 듯이 보였다. 오직 절망만 가득했다.
하지만 그토록 두렵고 강했던 복면인들이 순식간에 쓰러졌다. 아걸만 그들을 쓰러트린 게 아니다. 누군지 모를 사람들까지 나타나서 단번에 승리를 취했다.
이 사실은 분명히 야천에게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이다. 그러니 즉시 보고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부터 차분히 길을 다듬어 가면 된다.
그 소식이 흘러 흘러서 아걸에게까지 전해졌다.
‘사형들이…….’
사형들이 칼을 들고나오리라는 것은 이미 생각했다. 하지만 시기가 좀 빠르다.
아걸은 자신의 싸움이 끝난 후에 사형들이 나서기를 기대했다.
허도기와의 싸움이 끝난 후에!
자신이 이기든 지든 승패와는 상관없다. 자신이 이긴 상태라면 사형들은 자신에게 도전할 것이다. 자신이 진 상황이라면 허도기에게 도전할 것이고.
사형들은 일단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볼 것이다.
이런 판단이었는데……. 확실히 지금은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다.
‘그래도 동문이라는 거네. 같은 동문이니 도와주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칼을 완성한 건가.’
아걸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사형들과 어떤 정이 깊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같은 일홀문이라고 해도 얼굴 몇 번 본 적이 없다. 그나마도 서로 적과 적이 되어서 칼부림만 벌였다.
사실 사형들은 자신의 적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몽설의 적이다. 제자와 자식의 원수가 같은 사람이라고 하면 누가 먼저 칼을 맞대야 할까?
사형과 칼을 맞댈 사람은 몽설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몽설이 사형들 앞에 설 것이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서.
그 싸움을 어떻게 말리나.
그런데 사형들은 자신을 돕겠다고 나선 것인가. 아니면 허도기와의 승부에 강하게 끌린 것인가.
‘누가 말려. 말릴 수 없지.’
아걸은 실소를 흘렸다.
일홀도는 각자의 칼이다. 누구도 관여할 수 없는 개인의 칼이다. 그러면서 최상의 칼을 추구한다.
최상!
가장 높이 있다는 것이다. 자신 위에 누가 있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런 칼이 누구에게 조언을 듣겠나.
사형들이 어떤 의미에서 마유 마인들을 척살하는지 모르겠지만 이것 역시 각자의 몫이다.
‘오음산에서 만나겠군.’
아걸은 사형들이 오음산으로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걸은 이틀째 움직이지 않았다.
야구와 흑후에게 대답을 주어야 한다. 한 마디로 흑화방을 자신에게 던진다는 것인데…… 이런 방파가 때에 따라서는 상당히 큰 힘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흑화방을 움직이는 것이 맞나?
자신과 연관된 모든 사람이 아주 크게 다친다. 곧 그런 일이 벌어진다.
흑후는 자신이 허도기를 이기리라 생각하는 모양인데,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이렇게 승산이 희박한 싸움에 운명을 던지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일까?
흑후에게 어떤 답을 줄까?
아걸이 이런 고민을 이틀이나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흑화방과 취화원을 연결하면 아주 견고한 문파가 탄생할 수 있다. 어느 한쪽만 보면 약하지만, 둘을 합쳐 놓으면 누구도 쉽게 상대할 수 없는 최강 문파가 될 수 있다.
몽설과 흑화방을 연결하면 어떨까 하는 고민이다.
자신이 언제까지고 몽설 곁에 있을 수 있다면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겠지만, 이제 곧 진짜 승부를 가려야 한다. 그래서 몽설이 살아갈 길을 염려한다.
아걸이 고민을 거듭하고 있을 때, 밖에서 야구의 음성이 들려왔다.
“방물장수가 들렸는데, 뭐 필요한 거 있습니까?”
‘방물장수?’
또 야천이다. 어제 사형 소식을 전해왔는데, 하루 만에 또 사람이 왔다.
‘요즘 야천이 빈번하게 들락거리네, 이것도 안 좋은데.’
아걸은 밖으로 나가서 방물장수를 만났다.
“이거 한 번 써보십시오. 공자님 같은 분에게는 이게 딱 좋은데.”
방물장수가 붓 한 자루를 들어 보였다.
아걸은 가까이 다가가지도 않고 멀찍이 떨어져서 방물장수가 꺼내 보이는 물건들을 구경했다.
아걸의 눈은 물건들을 쫓지 않았다. 물건을 담은 함을 쳐다봤다.
그 속에 글씨가 쓰여있다.
- 무공불수록(無功不受祿)
공로가 없으면 녹봉을 받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속담이다.
글씨 옆에는 몽(夢) 자가 쓰여 있다.
‘몽설이?’
몽설이 이런 글귀를 자신에게 보내려면 일부러 야천 간자를 찾아가야 한다.
평범한 전언은 아니라는 거다.
“다 봤습니다.”
아걸이 말했다.
그러자 방물장수가 물병을 꺼내서 글씨 위에 뿌렸다.
먹물은 지워졌다.
“그 글씨를 적은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그거야 전 모르죠.”
“전언을 어디서 받으셨는지?”
“하! 전 정말…….”
“말해주세요.”
“어유! 곤란한데……. 미송(渼松)이라고…… 아시려나 모르겠는데. 더는 정말 모릅니다.”
방물장수가 말하면서 아걸의 눈치를 힐끔 살폈다.
‘미송.’
몽설은 장사(長沙)에 있었다. 그런데 미송에 있다? 장사와 미송을 일직선으로 쭉 이으면 그 위에는 초도성이 나온다.
‘성검문!’
아걸은 몽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아냈다.
성검문 오진북!
몽설은 일전통에서 벌어진 살겁을 마무리 지을 생각이다. 팔 장로의 복수를 하려고 한다.
몽설의 자신감은 아걸에게서 나왔다.
아걸이 오음산으로 가고 있다. 허도기도 오음산으로 간다. 그러면 성검문이 빈다. 강자에게 방해받지 않고 오진북과 생사를 결정하기에는 절호의 기회다.
그렇다면 몽설도 자신의 생각을 읽고 있다는 뜻이다.
이 싸움은 양쪽에서 일어난다.
‘이것도 못 말리지. 사형을 못 말리듯이 살수들의 복수도 못 말려. 어떻게 말리나.’
아걸은 양지바른 곳으로 가서 눈을 감고 따뜻한 햇볕을 쬐었다.
모두 못 말릴 사람들이다.
그럼 자신은 말릴 수 있나? 자신도 말릴 수 없다. 아무도 못 말린다. 그러다가,
“엇!”
눈을 감고 따뜻한 햇볕을 쬐던 아걸이 눈을 번쩍 떴다.
몽설이 전해온 ‘무공불수록’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공이 없으면 녹봉을 받지 않는다. 녹봉을 받으려면 공을 세워라. 일을 해라.
갑자기 이 말이 뒤통수를 후려쳤다.
몽설은 이 말로 어떤 말을 대신하고 싶었던 것인가?
마유 마인들, 복면인들이 야천을 왜 공격했는지 말해주고 있다.
복면인들은 허도기가 보냈다. 그렇다면 허도기가 일부러 야천을 장악한 것이다. 왜? 허도기가 야천을 장악한 데는 분명히 특별한 이유가 있다.
‘야천을 장악해야만 하는 이유?’
야천은 허도기에게 투신할 생각이었다. 그 일을 흑화방이 중간에서 체결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본인이 직접 나서서 야천을 장악해 버렸다.
허도기의 뜻이 천하에 있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다 안다.
그런 허도기가 장군부를 치지 않았다. 전보영을 공격한 것도 아니다. 황궁을 건드리지도 않았다. 선급할 것 같은 모든 일을 제쳐놓고 야천부터 장악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야천은 천하를 취하는 반석이다.
‘안돼! 이것을 방해하면 안 돼!’
갑자기 사형들이 위험하다 느껴졌다.
자신은 괜찮다. 어차피 자신은 허도기에게 부딪히는 사람이니 어떤 짓을 해도 상관없다. 하지만 야천 장악에 방해가 된 사람들은 모두 허도기와 칼을 맞대야 한다.
“야구.”
아걸은 먼 곳을 바라보며 야구를 불렀다.
“네.”
야구가 급히 대답했다.
“야천으로 가서 흑수혈검을 만나. 그리고 내 말을 전해. 숨죽이고 살라고. 아무것도 하지 말고 숨죽이고 있으라고. 야천을 구할 생각도 하지 말고.”
“네? 갑자기 그게 무슨…….”
“야천은 지키지 못해. 그러니 목숨이나 구하라고 해. 내 말을 안 들어도 상관없지만, 이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조언이야. 숨죽이고 있는 게 좋아.”
아걸은 고개를 돌려 흑후를 쳐다봤다.
“방금 말 들었을 테니까 긴말은 필요 없을 겁니다. 흑화방도 숨죽이고 있는 편이 좋을 겁니다.”
“관망하라는 말입니까?”
“관망이라는 말이 멀리 뚝 떨어져서 화살이 날아와도 맞지 않을 거리라면…… 맞습니다. 불길이 튀어도 닿지 않는 곳에 떨어져 있다면 관망하세요.”
“그 정도입니까?”
“오신 김에 부탁이나 하죠.”
아걸은 흑후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방물장수를 쳐다봤다.
“네. 말씀하시죠,”
“적랑대에 기별을 넣어 주세요. 지금도 잘하고 있기는 한데, 더 멀찍이 떨어지라고 전해주세요.”
야구, 흑후, 방물장수를 서로를 쳐다봤다.
아걸이 무엇을 떠올렸는지 모르겠는데,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을 뒤로 물리고 있다.
“그리고 이거.”
아걸은 땅에 그림을 그렸다.
하나는 관망하라. 두 번째는 허도기를 주시하라. 세 번째는 허도기가 야천에서 대계를 펼칠 것이다.
이 세 가지의 말을 내포하고 있는 그림이다.
눈, 자루 없는 검, 태양을 찌르는 검.
“이 그림 외웠습니까?”
“네.”
“전보영에 가서 이대로 그려주세요.”
세 사람은 아걸이 그림이 어떤 내용인지 눈치챘다. 정확한 말은 모르지만, 이 그림 역시 야구나 흑후에게 했던 말처럼 물러서라는 말인 게 틀림없다.
아걸을 야천에서 줄곧 사용하던 대도를 풀어서 옆에 놨다. 그리고 그동안 정이 들었다는 듯 손으로 툭툭 쳤다. 하지만 곧 반철도를 집어서 허리에 차고 일어섰다.
“따라오지 마세요. 지금부터는 저 혼자 갑니다. 따라오는 것 또한 목숨을 걸어야 하니.”
“이 칼에 죽은 사람이 몇 명인데, 이 칼을 그냥 버려.”
야구가 대도를 집어서 품에 안았다.
“음! 이거 심상치 않은데.”
흑후는 신음부터 흘렸다.
“지금 아걸이 한 말 말이야. 멀찍이 떨어지라는 말. 이거 모두에게서 떨어지라는 말, 맞지? 자신에게서도 떨어지고 허도기한테서도 떨어지고.”
“그 말이 맞는 것 같은데?”
“모든 사람에게서 다 떨어져라. 흠!”
“느낌이 쎄하지? 뭔가 일어나도 크게 일어날 것 같은데, 뭐지? 흑화방에서 뭐 주워들은 거 없어?”
“없어.”
“쯧! 흑화방이 그러니까 동네북이 되는 거여. 이 정도 일은 딱 감을 잡고 있어야지.”
“음!”
흑후는 침음했다.
허도기가 하는 일은 늘 이런 식이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문득 일이 벌어진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일이 터진 다음에야 어떤 일인지 알게 된다.
“이봐, 어떻게 할 거야? 여기서 접을 거야?”
야구가 흑후를 보면서 물었다.
“어떡하긴 뭘 어떻게 해.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는데, 쫓아가야지. 넌 흑수혈검에게 가봐야 하지 않아. 아걸이 특별히 지목해서 부탁까지 했는데.”
“야천은 말이야, 자기 목숨은 자기가 관리하는 거야.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하겠지. 내가 뭐라고 한다고 들을 것 같아? 그놈에게 야천을 지키지 말라? 어림도 없는 소리. 하나 마나 한 소리를 하러 그 먼 거리를 가?”
“킥킥킥! 그렇기는 하네. 자넨 가보게. 보고할 때 우리 동향을 빼주면 고맙고.”
흑후가 방물장수에게 말했다.
두 사람은 계속 아걸을 따라갈 생각이다.
여기 못 말리는 사람들이 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