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364화 (364/600)

#364화. 第七十三章 방해자(妨害者) (4)

아걸은 원래 형주부(荊州府)로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형주부에 들렀다가 오음산으로 가려면 상당히 먼 거리를 돌아가기 때문에, 상덕부(常德府) 쪽으로 움직이는 중이었다.

형주부에는 마유 마인들이 있다. 하지만 굳이 그들을 공격하겠다고 형주부까지 달려갈 필요는 없었다.

오음산으로 가는 길에 그들이 있으면 공격한다. 그들을 공격하려고 일부러 멀리 있는 길을 돌아가지 않는다. 오음산으로 가는 것이 주목적이다. 저들을 공격하는 것이 오음산으로 가는 일에 방해가 된다면 공격하지 않는다.

아걸은 마유 마인들이 형주부에 있는 것을 안다.

형주부에는 야천 오방 본국이 있다. 야천 오방은 하남성(河南省)을 관장하지만, 야천 대방과 함께 호광성(湖廣省)에 본국을 두고 있다. 일종의 방주 제이 거처다.

야천 오방 방주는 형주부에서 참살당했다.

제일선 무인들과 함께 사슴 사냥을 하는 중에 오히려 사냥을 당하고 말았다.

마유 마인들은 제오방 방주를 꺾은 후, 오방 본국을 장악한 채 물러나지 않고 있다. 하남성에 가지 않고 형주부 오방 본국에 일체 활동을 중지한 채 머물러 있다.

이런 사실은 야천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렇게 되면 형주부로 가야 하나?‘

아걸은 결심을 굳혔다.

원래는 마유 마인들을 작심하고 공격할 생각까지는 없었다. 차분히 공격을 시도하고 있지만, 뿌리를 뽑겠다는 생각까지는 일으키지 않았다.

이제는 작심하고 공격해야겠다. 그래야 저들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마유 마인들의 시선이 야천 간자나 흑화방이나 사형에게 돌아가게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을 쳐다볼 수 없을 만큼 강력하게 타격할 생각이다.

“야구.”

아걸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분명히 야구가 따라오고 있는 것을 아는데, 숲에 납작 엎드려서 대답하지 않는다.

“따라오는 거 아니까, 나오든가 아니면 말든가.”

아걸이 다시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아! 나를 불렀구나. 나는 또 음성이 너무 작아서 혼자 심심풀이로 노래를 부르는가 싶었지. 나 부르는 거였습니까?”

야구가 능글맞게 웃으면서 걸어 나왔다.

“부탁 좀 하지.”

“부탁씩이나. 명령이라고 해도 괜찮으니까 하십시오. 거 봐요. 이 몸도 필요할 때가 있지.”

야구가 누런 이를 드러내면서 씩 웃었다.

“소문을 내 줘야겠어.”

“소문에도 종류가 많은데, 어떤 소문을 원하시는지.”

“죽음의 소문.”

“죽음에도 종류가 많아서…….”

“야천을 장악한 복면인들은 마유 마인이다. 이런 소문.”

“앗!”

야구가 깜짝 놀라서 입을 쩍 벌렸다.

소문이라면 얼마든지 내 줄 수 있다. 하지만 복면인들의 정체를 입에 담는 순간부터 보복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과연 뒷감당할 수 있을지 언뜻 상상되지 않는다.

마유 마인은 마인들의 전설이다.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무공을 수련하는지, 존재는 하는 것인지 모두 불분명하다. 모든 소문이 떠도는 말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감춰져 있다.

그런 마인들이 야천을 장악했다고 하면 어떤 사태가 일어날까?

일단, 사람들은 야천을 두려워한다. 야천에서 뭐라고 한마디만 해도 겁에 질려서 벌벌 떨 것이다. 야천은 파락호들의 집단이 아니라 마인들의 집단으로 탈바꿈한다.

그런 인식변화는 또 다른 반응도 불러온다.

야천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어떤 말이라도 믿지 않게 된다. 야천과 관계된 모든 사업이 망할 것이다. 누가 감히 마인들이 운영하는 곳에 발길을 들여놓겠나.

한마디로 말해서 마유 마인들이 벌여 놓은 일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소문이다.

아걸이 태연히 말했다.

“이 일이 발각되면 어떻게 되는지는 말 안 해도 잘 알 거고. 어련히 조심하겠지?”

꿀꺽!

야구는 마른침을 삼켰다.

굳이 아걸이 말해 주지 않아도 안다. 당장 생각나는 게 보복이다.

누가 헛소문을 흘리는지 금방 찾아낸다. 그리고 여지없이 목숨을 거둬 간다.

입을 여는 자는 척살 대상이 된다.

“찔끔찔끔 소문내서는 안 될 것이고…… 꾹꾹 눌러놨다가 한꺼번에 탁 터뜨려야 위험 부담도 덜하고 효과도 좋을 거야. 정신 차릴 수 없게 터트리고 사라지는 거지.”

“지금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습니까? 소문을 어떻게 낼지는 내가 훨씬 더 잘 알죠.”

“위험해서 하는 말이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소문을 내 주면 되는 거죠?”

“한 가지 더.”

“까짓거 말씀하세요. 어차피 목숨 걸어야 할 것 같으니까.”

“내가 저들을 공격할 거야. 우선 제오방부터. 내 신분을 밝혀. 명부판관, 혈도비자. 무명 두 개를 한꺼번에 밝히면 명분과 힘을 동시에 얻을 수 있어.”

‘뭐야, 이거!’

야구는 두 눈을 끔뻑거렸다.

명부판관이 말했다. 복면인들이 마유 마인들이라고.

이런 소문이 흘러나가면 믿지 않을 사람이 없다. 무림은 대체로 명부판관이 혈도비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 무림에 관심 없는 민초는 모를 수도 있다. 그런데 명부판관이 혈도비자와 같은 인물이고, 이번에 마유 마인들을 향해 칼을 썼다고 하면…… 그 파장은 상상 이상이다.

야천을 향해서 칼을 뽑은 게 아니라 마유 마인들을 죽이기 위해서 칼을 뽑았다.

야천 일에는 상관하지 않는다. 저들이 마인이기 때문에 척살한다. 명부판관 이름으로. 악을 행했기 때문에 벌을 준 것이지, 다른 의미는 없다.

이래서는 야천을 장악한 보람이 없다.

이런 소문이 흘러나가면 저들은 단박에 명부판관을 주목한다. 모든 시선이 아걸에게 집중된다.

아걸도 이번 일에 목숨을 걸었다.

하기는 허도기와 싸울 것을 빤히 알면서도 오음산으로 달려가는 중이었지 않나.

‘원래부터 미친놈이었던 것만은 틀림없어.’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흑후하고 같이 온 거 알고 있는데, 먼저 가 줄 수 있을까?”

“그러죠, 뭐.”

야구가 섭섭한 표정도 짓지 않고 즉시 포권했다.

같은 편에 선 사람도 알아서는 안 되는 일…… 그런 일을 흑후에게 시키려는 것이다.

‘이게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여기서 목숨을 건지면 한 몫 단단히 잡는 건 틀림없어. 일전통 따위가 아니라 야천 구룡 중 일룡 정도는 차지할 수 있어. 목숨만 건지면…… 그러자면 내 몸 간수는 내가 알아서 잘해야 해.’

쒜에엑!

야구는 즉시 신형을 날려 사라졌다.

아걸은 아득한 눈으로 멀어져 가는 야구를 쳐다봤다.

야구에게 부탁한 소문은 보통 소문이 아니다. 이런 소문을 퍼뜨리면 신상이 온전치 못하다.

이런 사실은 아걸도 알고 야구도 안다.

굉장히 위험한 임무다.

어쩌면 아걸과 야구, 두 사람은 이번 만남이 마지막일 지도 모른다. 정말도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아니, 십중팔구는 못 만난다.

야구는 그 십 분지 일에 목숨을 걸고 떠나간 것이다.

“훗훗!”

야구가 떠나자 흑후가 걸어 나왔다.

“방금 날 들먹인 것 같아서. 뭐, 쫓아온 걸 알고 있으니 숨을 필요도 없고.”

흑후가 걸어 나오면서 웃었다.

“불덩이가 날아와도 닿지 않을 곳으로 뚝 떨어져 있으라고 했는데, 그게 그렇게 어렵습니까?”

“원래 우리 같은 사람들은 동으로 가라면 서로 가고 싶고, 북으로 가라면 남으로 가는 성질이라서. 키키키! 그 성질머리 때문에 제 명대에 못 죽을 거야.”

흑후는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아걸은 멀어져 가는 야구에게서 고개를 돌려 흑후를 쳐다봤다. 말은 하지 않고 얼굴만 쳐다봤다.

“야구를 먼저 보낸 걸 보면 나한테만 특별히 할 말이 있는 거 같은데. 뭐지?”

“성검문의 장자 허문승이 음산사마의 습격을 받고 죽었죠.”

“알지. 그때 음산사마가 수련한 무공이 천음마공이었던 것으로 아는데. 천음마공 일성을 성취하는데 필요한 순음지기가 백 명. 그때 각기 칠팔 성은 되었으니까 한 명당 칠팔 백 명을 죽였다는 말이고…… 네 명이면 삼천. 대단한 살인귀들이야. 살인으로만 따지면 음산사마 같은 살인귀도 없어.”

“그들이 오음산에서 천음마공을 수련한 사실도 알죠?”

“알지.”

“음산사마가 오음산에서 천음마공을 수련했다는 증거가 필요해요.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어디서 거주했는지, 성검문에는 왜 갔는지…… 모든 것을 조사해 주세요.”

“…….”

흑후가 눈을 가늘게 뜨고 아걸을 쳐다봤다.

사실 아걸이 오음산에 가는 이유는 허도기와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바로 그가 지금 한 말, 음산사마가 오음산에서 무엇을 했는지 알아내기 위해서다.

당연한 말이지만, 허도기는 아걸이 오음산으로 가는 목적을 안다.

세월이 거의 이십 년 가깝게 지났는데…… 아직도 오음산에 어떤 단서가 남아 있을까?

음산사마가 단지 천음마공을 수련한 단서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마인이 마공을 수련했는데 뭐가 이상하다는 말인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런 일을 조사하기 위해서 오음산으로 가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아걸이 찾는 것은 음산사마와 허도기의 연관성이다.

만약 오음산에 어떤 단서가 남아있다면 허도기는 죽을힘을 다해서 막을 것이다.

아무런 단서도 없다면 이번 오음산행은 헛수고다.

허도기는 오지 않는다. 아걸을 죽이려고 일부러 발걸음을 하면 몰라도, 조사를 가로막을 이유가 없다.

“내가 먼저 가서 단서를 찾아라. 흠! 이건 내 생각인데…… 음산에 무슨 단서 같은 게 남아있을 것 같지는 않아. 세월도 너무 오래 흘렀고.”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삼천 명이나 되는 여자예요. 한두 명도 아니고 삼천 명이나 어디서 잡아 왔을까? 아니면 누가 데려다줬나? 하지만 오음산 주변 사람들은 아무것도 몰랐죠. 오음산에 음산사마가 머물렀다는 사실도 몰랐어요.”

“누군가가 여자들을 납치해서 비밀리에 제공했다?”

“그것도 일이 년에 걸친 일이 아니죠. 천음마공이 만만한 무공은 아니니까.”

아걸은 흑후를 쳐다봤다. 해 줄 수 있나?

흑후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문제고, 흑화방을 끌고 가야겠네. 그러니까 자네는 여기저기 마구잡이로 치고 오겠다는 건데, 그래봤자 하루 이틀 상관이잖아. 먼저 가서 살짝 둘러보지 뭐.”

흑후가 가볍게 말했다.

사실, 오음산을 뒤지는 일은 야구에게 부탁한 소문보다도 더 위험하다.

이미 오음산에는 매복이 쫙 깔려 있을 것이다.

물론 그들과 접전을 벌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들의 눈을 피해서 각종 단서를 수집해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걸을 상대하기 위해서 배치한 매복과 코앞에서 부딪쳐야 한다.

야구보다도 훨씬 더 위험하다.

아걸 입장에서는 흑후가 날벼락을 맞으면 오음산에 무엇인가가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흑후에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굳이 오음산으로 올 필요가 없다.

아걸은 흑후가 매복에 걸려들 것이라는 점을 확신하고 있다. 그만큼 이번 오음산행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있다. 허도기가 나타날 것까지도 감안한다.

아걸이 말했다.

“이래서 옆에 있으면 날벼락을 맞는다고 한 건데. 떨어질 기회는 아직도 있어요. 지금 떨어져도 괜찮습니다.”

“킥킥! 그렇게 말하면 곤란할 텐데?”

“…….”

“어떤 놈에게 지워질 단서였다면 벌써 지워졌지 않을까? 어떤 흔적을 지웠다면 소축십검이나 마유일 텐데…… 그놈들도 찾지 못한 단서를 찾아달라는 거 아냐? 그러니 날 불렀겠지. 킥킥! 이건 값을 꽤 매겨야 하는 부탁인데.”

“외상으로 하죠.”

“기분이 묘하네. 오음산에 가면 매복에 빠질 거 뻔히 아는데, 알면서도 가야 한다.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들라는 말인데, 왜 이런 말이 쉽게 들리지?”

“…….”

“내가 간다고 해서 뭘 많이 알아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알아내지.”

흑후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명확히 알았다.

알아낼 것은 음산사마와 허도기의 연관성이다. 그 단초는 여인을 제공한 방법에서 찾아야 한다. 어떻게 인근 마을 사람들 눈을 감쪽같이 속이고 삼천 명이나 제공했을까?

흑후는 아걸이 허도기를 의심하고 있다는 점도 눈치챘다.

“자! 그럼 나중에 만나자고. 크게 기대하지는 말고. 내가 간다고 해도 세월이 너무 오래 지났고. 주변을 수소문해 봐야 그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은 뭐 늙어 죽었거나 이사했겠지. 아는 사람이 남아 있을 것 같지가 않아. 그럼 나중에 보자고.”

쉬잇!

흑후가 신형을 날려 사라졌다.

아걸은 하늘을 쳐다봤다.

방금 흑후와 야구에게 칼날 위에서 춤춰 달라고 부탁을 했다.

온몸에 기름을 뿌리고 불덩이 속으로 뛰어 들어가 달라는 말이나 진배없다.

정말로 저들을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저들이 인간말짜거나 어둠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런 임무를 거침없이 부탁한 것은 아니다.

저들이 몸을 의탁해 왔기 때문에 부탁한 것이다.

아걸은 야구를 인간말짜로 보지 않았다. 흑후를 어둠의 그림자로 보지 않았다.

그들을 그런 눈으로 보았다면 이런 일도 부탁하지 않았다.

몸을 의탁해온 사람들…… 목숨을 달라고 부탁한 만큼, 저들이 돌아오면 이제부터는 자신이 돌봐주어야 할 것이다. 자신이 거둔 수하이기에 부탁한 거다.

“자! 그럼 나도!”

아걸은 형주부를 향해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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