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6화. 第七十四章 반격(反擊) (1)
“정탐부터 하자.”
“알겠습니다.”
약삭빠른 놈, 눈이 깨알만 하게 작은 놈, 서목이 대답했다. 하지만 곧 되물었다.
“그런데 이거 우리에게는 득보다 실이 많은데…… 정말로 여기에 모든 걸 거실 생각이세요?”
“미친놈.”
“그렇죠?”
“후후! 모든 걸 걸지 않고도 하는 척하는 방법이 있잖아. 일단 정탐부터 해. 싫어도 이것만은 해야 해.”
“그럼요. 최소한의 행동이라는 게 있는데.”
서목이 작은 눈을 번들거리면서 말했다.
아걸이 말한 대로 오음산으로 간다. 하지만 그 전에 정탐부터 한다. 자신이 오음산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알아볼 것은 전부 알아낸 후여야 한다.
“오음산에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녹슨 도끼를 병기로 삼는 수부가 말했다.
“미친놈.”
“큭!”
흑후는 욕을 했고, 서목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꾹 눌러 참았다.
“왜?”
수부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서목을 보면서 물었다.
“큭큭!”
서목은 웃기만 했다.
다각! 다각! 다각!
마차가 느리게 이동했다.
바쁘게 서둘 이유가 없다. 이미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 한가롭게 시간을 죽이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결코, 볼일이 있어서 오음산으로 가는 모습이어서는 안 된다.
“서신이 왔습니다.”
수부가 마차 옆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슷!
창문을 통해서 밀지가 디밀어졌다.
흑후는 밀지를 펼쳤다.
- 다(多)
밀지에는 단 한 글자만 적혀 있다. 하지만 글자가 의미하는 바는 매우 많았다.
‘무인들이!’
오음산에는 서목이 먼저 가서 정탐하고 있다.
만약, 오음산에 무인들이 깔려 있다면 그들은 하나같이 절정 고수일 가능성이 크다.
그들은 일홀도를 상대할 수 있을 만큼 강하다.
정말로 일홀도를 상대할 수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적어도 일홀도라는 말을 듣고도 뒤로 내빼지 않을 만큼 강한 자들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 자들이 오음산에 있다면 정탐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일반인을 고용한다.
무공을 모르는 일반인이 숨어 있는 무인을 찾아낼 수 있을까? 어림도 없지 않을까?
당연하다. 어림도 없다. 하지만 이미 무인이 깔려 있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 누가 어디에 숨어있는지 말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오음산을 터전으로 삼아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이미 무인들이 숨어 있는 것을 안다. 산자락에 사는 사람들도 알고, 산속에 사는 사람들도 안다.
그들이 장을 보기 위해서 산을 벗어났을 때, 산속 소식을 캐묻는다.
서목은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 한발 앞서서 달려갔다. 그리고 정확히 소식을 물어왔다.
오음산에 정체 모를 무인들이 쫙 깔려 있다.
밀지에 ‘다’라고 적힌 것은 숫자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람이 숨어 있다는 뜻이다.
‘정체 모를 자들…… 마유 마인들이 이렇게 많았나? 아니면 다른 자들?’
흑후는 미간을 잔뜩 찡그렸다.
지금 허도기가 동원할 수 있는 무인은 마유 마인과 성검문 무인밖에 없다. 오음산에 이유 없이 무인을 배치하면서 중원 무림을 이용할 수는 없다.
야천 무인도 있나? 아니다. 허도기는 야천을 장악했지만 아직까지 어떠한 입질도 하지 않고 있다. 야천 무인들을 쓰지도 않고, 야천을 이용해서 무엇을 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도대체 왜 야천을 장악했는지 모를 정도로 조용하다.
‘마유 마인들은 숫자가 제한되어 있고…… 성검문 무인들은…… 쓸만한 사람들이 있나? 소축십검이 와르르 무너지는 바람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아! 공봉!’
흑후는 손을 들어서 이마를 탁! 쳤다.
성검문에는 공봉들이 있다.
천하제일 문파가 귀빈으로 정중하게 모실 정도로 무공이 강한 자들이다.
그들이라면 오음산에 깔려 있을 수 있다.
오음산에 음산사마의 유진(遺塵)이 남아 있다고 치자. 천음마공이 부활할 수도 있다. 그리고 아걸이 천음마공의 유진을 찾아서 오음산으로 향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공봉들이 칼을 들고 일어설 것이다.
‘이 사람들은 음산사마의 유진에 대해서 전혀 몰라. 무엇을 지키려고 오는 것이 아니라 아걸을 공격하기 위해서 매복해 있는 거야. 그럼 허도기는 오지 않나?’
오음산에는 음산사마의 유진이 남아 있지 않다.
흑후와 서목이 수부의 말에 웃은 것은 오음산에 대한 소문이 거짓이라고 생각해서다.
음산사마가 오음산을 떠난 지 이십여 년이나 흘렀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이 오음산을 다녀갔다. 지금도 오음산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높은 산봉, 깊은 골짜기…… 모두 드러났다.
음산사마의 흔적은 전혀 없다.
그런데도 마치 무엇인가 있는 듯한 소문이 나고, 아걸이 직접 확인하겠다고 발길을 옮긴다.
허도기를 끌어내려는 덫이다.
이 소문은 아걸이 쳐 놓은 올가미다.
오음산에 음산사마의 유진이 있다고 헛소문을 내서 허도기를 격동시킨 것이다.
이런 사실은 허도기도 짐작한다. 그러면서도 아걸의 의중대로 끌려들어 올 수밖에 없다. 아걸이 오음산으로 향한다는 소문을 중원 전역에 퍼트렸기 때문에 어떻게든 이번 일을 수습해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허도기는 이번 기회에 아걸을 처리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싸움이 천하의 운명을 가를 것이다.
여기까지…… 흑후와 서목의 생각이 일치했다.
‘성검문 공봉들인가? 후후!’
흑후는 웃었다.
상대가 성검문 공봉이라면 흑후가 끼어들기 곤란하다. 성검문 공봉을은 흑화방이나 야천 무인들을 경멸한다. 손속을 마주칠 상대도 안 된다고 본다.
‘이렇게 되면 무인이 아니라 유람객으로 방문해야 하나? 까다롭게 됐네.’
오음산은 여덟 개 현(縣)에 걸쳐져 있는 높이 삼백칠십 장의 큰 산이다. 주변에 높은 산들이 많아서 큰 산 취급을 받지 못하지만, 풍경이 빼어나기로 유명하다.
그러면서도 어떤 구역은 사람 발길을 거부할 정도로 험하다.
장금곡(藏禁谷)!
골이 깊고 험해서 들어갈 수는 있어도 나오는 사람은 없다는 죽음의 골짜기다.
음산사마가 거주했다는 골짜기로 추정된다.
“무인들은 장금곡에 집중적으로 깔려 있습니다. 다른 곳으로 입산하는 것은 허용하는데, 장금곡만은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어요. 어느 누구도 입곡을 허락하지 않고 있습니다.”
서목이 보고했다.
“들여다봤어?”
“삼조(三組)아홉 명을 들여보냈는데, 소식이 끊겼습니다. 아마도 죽은 것으로…….”
“성검문 공봉들이 살수를 쓴다는 거지? 아예 작심하고 나섰네.”
“저놈들이 성검문 공봉입니까?”
“짐작하고 있잖아. 모른 척하지 마. 그럴수록 네놈이 믿을 수 없게 돼. 적당한 선에서 속내를 드러내. 그래야 인마, 아 이놈 역시 손을 숨기지 못하는 놈이구나 하고 무시하지. 무사의 대상이 돼야지, 경계의 대상이 되면 쓰냐?”
“큭큭! 제 딴에는 방주님 비위를 맞춘다고 한 건데. 역시 그런가요? 명심하겠습니다.”
서목이 고개를 숙였다.
서목이 정탐꾼을 들여보냈는데, 모두 차단당했다. 억지로 뚫고 들어가면 여지없이 목숨을 잃는다.
“저들을 원망할 수도 없어요. 몰래 숨어 있는 것도 아니고 당분간 장금곡을 통제한다고 통문을 세워놨거든요. 아예 대놓고 매복하고 있어요.”
“흠!”
흑후는 눈빛을 반짝 빛냈다.
서목이 저들을 건드려 볼 것이라는 점은 이미 짐작했다.
수하를 들여보낼 것인데, 무공 차이가 워낙 현격히 벌어지니 틀림없이 잡힐 것이다. 하지만 저들은 명문이니 쉽게 죽이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생각이 틀렸다. 공봉들이 가차 없이 살수를 쓴다.
“수부. 이번에는 네가 움직여. 가서 살피고 와.”
“네. 알겠습니다.”
마차 곁을 따라오던 수부가 즉시 움직였다.
유시초(酉時初: 17시) 초저녁에 떠난 수부는 자정을 넘긴 후에야 돌아왔다.
“살펴봤는데, 뚫고 들어갈 길이 없습니다.”
수부가 보고했다.
“아는 얼굴 있어?”
“전혀요. 가깝게 다가가지도 못하고 멀리서 보기만 했는데, 제가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수부는 서목보다 무인을 많이 안다. 서목이 지략에 밝다면, 수부는 무림 인맥이 상당하다. 무공도 나름대로 높은 편이지만, 자신보다 서너 배 윗길의 고수도 많이 안다.
서목이 이미 자세히 살펴봤는데도 수부를 따로 보낸 이유다.
“너도 다 된 거 아냐? 장금곡에 깔린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닌데 어떻게 한 명도 못 알아봐?”
“그게…… 제가 우둔한 건 알겠는데, 그래도 제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제 눈에는 공봉처럼 보이지 않았어요. 굉장히 사악한 기운이 감돌았거든요.”
“사악하다고?”
“네.”
흑후는 미간을 찡그렸다.
무공에 대한 수부의 안목은 대단히 높다. 그가 사악한 기운을 읽었다면 틀림없을 것이다.
‘공봉이 아닌가?’
흑후는 자신의 판단에 회의했다.
그만큼 수부의 말은 믿을 수 있다. 자신과 서목이 보지 못한 부분을 수부는 본다.
일기장군 하원랑에게 죽은 독비도 무공 안목이 꽤 높았다.
죽지만 않았다면 수부와 함께 정탐하고 왔을 텐데. 그러면 저들이 누군지 알 수 있었을 텐데.
“마을 사람들은 죽이지 않았지?”
서목에게 물었다.
“네. 인근 마을 사람들은 일절 손대지 않고, 새로 침입하는 사람들만. 음!”
서목이 흑후가 묻는 의미를 짐작하고 침음했다.
저들은 계곡을 틀어막기 전에 인근에 사는 사람들을 낱낱이 조사했다. 그러니 터를 잡고 사는 사람들은 건드리지 않고 낯선 자들만 죽일 수 있는 것이다.
침입하면 즉시 참살당한다.
“계속 뚫어볼까요? 잘하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아니. 그만하자.”
“네? 나중에 아걸이 오면…….”
“이미 알아낼 건 다 알아냈어. 후후!”
흑후는 웃었다.
아걸이 흑후에게 기대한 것은 음산사마와 성검문과의 연관성이다.
음산사마가 이곳에서 천음마공을 수련했는데, 그러자면 삼천 명에 이르는 여인이 필요하다. 여인의 순음지기를 원료로 해서 불태우는 게 천음마공이다.
이곳에서 그런 정보를 찾을 수 있다면 더 말할 나이 없이 좋다.
하지만 오음산에 그런 정보가 남아있을 리 없다. 허도기가 어떤 자인데 흔적을 남겨 놓겠나.
아니다. 흔적은 이미 남겨졌다.
허도기는 이곳에 무인을 배치했다. 이미 온몸으로 연관성을 밝히고 있다.
“서목, 인근 마을을 뒤져 봐. 이십 년 이상 뿌리 박고 사는 사람들을 찾아서 인근에서 여자들이 실종된 적이 있는지, 훗날이라도 인골이 발견된 적이 있는지 알아봐.”
“벌써 알아봤죠. 없어요.”
“다시 알아봐. 한 명이라도 아는 사람이 있을 거야. 천음마공과 연관된 단서를 찾으란 말이야.”
흑후는 아걸이 하는 말을 믿었다.
오음산에 음산사마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이곳에서 천음마공을 수련한 것은 사실이다. 또 성검문이 여인을 제공했다고 확신한다.
이곳에 무인들이 매복해 있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한 명. 한 명만 찾으면 돼. 후후! 꼭 장금곡으로 들어가지 않고도 알아내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지. 피를 흘릴 필요가 없어. 이미 장금곡에서 알아낼 것은 다 알아냈으니까.’
흑후는 지필묵을 꺼냈다.
아걸에게 서신을 보낼 생각이다.
아걸은 사나흘 후쯤에는 도착한다. 그때 차분히 앉아서 말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은 빨리 말해 주는 것이 더 값어치가 높아진다. 자신의 능력을 말해줄 것이니까.
봐라. 내가 움직이니까 단박에 알아내잖아. 이것이 흑화방이야.
‘성검문 공봉이 아니라고? 그럼 누굴까?’
흑후는 글을 쓰려고 했지만, 손에 붓이 잡히지 않았다.
수부가 말한 공봉이 아닐 것이라는 말이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저들이 성검문 공봉이면 더 볼 것도 없이 즉시 서신을 적었을 것이다.
‘누구냐, 너희!’
흑후는 팔짱까지 낀 채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