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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367화 (367/600)

#367화. 第七十四章 반격(反擊) (2)

기분 나쁠 이유가 전혀 없는데, 괜히 아무나 보면 시비를 걸고 싶어진다.

‘오늘 일진이 사나우려나.’

야구는 눈살을 팍 찌푸렸다.

기분이 나빠도 몹시 나쁘다. 무엇인가 깔끔하지가 못하다. 꼭 뒷간에 갔다가 밑을 안 닦고 나온 것처럼 께름칙하다. 몸이 불길한 느낌을 알아채서 알려 준다.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지는 않다.

주위는 적막하다. 밤이 깊을 대로 깊어서 사람 발길은 이미 뚝 끊겼다.

누군가가 주위에 있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요즘 내가 기운이 많이 허해졌네. 옛날 같았으면 이따위 일은 일도 아닌데.’

소문을 내기 시작하면 복면인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제 놈들이 뭘 어쩌겠나. 이미 소문은 중원 천하에 퍼져 나갔고, 소문을 낸 사람이 누군지는 알 턱이 없는데. 또 설령 안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칼을 쓰는 것도 상대가 되어야 쓴다. 복면인들에게 자신은 한낱 피라미에 불과하다. 너무 하찮은 조무래기라서 검을 쓸 가치조차도 없다.

‘빨리 가서 잠이나 자야지. 푹 자고 일어나면…….’

저벅! 저벅!

야구는 걸음을 빨리했다.

‘아이씨, 이거 잘못 걸린 것 같은데.’

야구는 허리를 더듬어서 단도를 확인했다.

뒤를 밟히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주의를 세심히 기울여 봐도 누가 쫓아온다는 느낌은 없다.

괜히 기분이 더러우니까 좋지 않은 생각이 드나?

그런데 단순히 느낌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실제로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가슴이 쿵쾅거리면서 뛴다. 맹수를 만난 것처럼 다리가 후들거린다.

이런 느낌…… 정말 안 좋다.

야구는 걸음을 빨리했다.

기분 나쁜 곳은 빨리 벗어나야 한다. 사람이 북적거리는 곳으로 가는 것이 제일 좋다. 술집, 도박판…… 어느 곳으로 가든 사람들과 섞이면 조금 마음이 편해진다. 그런데.

저벅! 저벅! 저벅!

야구는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기분 나쁜 일이 현실로 벌어졌다. 이것이 만약 자신이 예상한 일이라면 횡액을 피하기는 어렵다.

마유 마인들이 움직였다면…… 오늘이 제삿날이다.

‘빠져나가야 해. 어떻게 빠져나가지?’

야구는 즉시 좌우를 살폈다.

상대가 누군지 따져 볼 겨를이 없다. 발걸음 소리를 확인할 여유도 없다. 무조건 도주해야 한다. 설혹, 자신이 겁에 질려서 과잉 행동을 하는 것일지라도 지금은 무조건 몸을 빼내야 한다.

쉬잇!

야구는 신형을 날려서 남의 집 담장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즉시 신형을 퉁겨서 지붕 위까지 올라갔다. 그때,

스읏!

야구 앞에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아! 재수 없네.’

야구는 혀를 끌끌 찼다.

불길한 느낌이 현실로 드러났다. 지붕 위에 복면을 쓴 자들이 늘어서 있다. 신형은 자신이 먼저 날렸지만, 저들이 먼저 지붕 위로 올라섰다.

무공에서 현격한 차이가 난다.

‘제길!’

야구는 뒤를 돌아봤다.

앞이 막혔다면 뒤로 빠져나가야 한다. 어느 쪽이든 돌파구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저들은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다. 앞에 한 명이 서 있고, 뒤에도 한 명이 막아섰다. 옆으로 움직일 수 없도록 검기를 날카롭게 곤두세웠다.

어느 쪽으로 움직이든 저들을 벗어나지 못한다.

“누, 누구냐!”

야구는 하나 마나 한 말을 던졌다.

저들이 설마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달려왔을까. 말 몇 마디로 놓아 줄 것 같은가.

그저 본능적으로 쏟아져 나온 말일 뿐이다. 그때,

푹!

섬뜩한 파육음과 함께 등에서 화끈한 통증이 일어났다. 그리고 곧 통증이 전신을 관통했다. 북부에서 일어난 아픔이 온몸으로 번져 나갔다.

“아아악!”

야구는 있는 힘껏 비명을 내질렀다.

쑥!

배를 뚫었던 검이 빠져나갔다. 이들은 말이 없다. 철저하게 자신의 할 일만 한다.

‘더럽게…… 빨…… 라…….’

야구는 사력을 다해서 지붕 위로 몸을 굴렸다.

빠져나가야 한다. 검을 피해야 한다.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 이들 손에서…….

쒜에엑!

뭔가가 날아온다. 허공을 찢는 파공음이 울린다.

야구는 저항하고 싶었다. 아니, 저항은 생각하지도 않는다. 단지 한순간이라도 이 자리를 벗어났으면 좋겠다.

하지만 복면인들은 틈을 주지 않았다.

이들은 자칫 연약한 듯이 보였다. 무기력해 보이기도 했다. 아걸이 너무 쉽게 베어 내서 이들이 정말 말만 들어도 치 떨리는 마유 마인들인가 싶었다.

마유 마인…… 맞다. 이들은 절대 연약하지 않다. 소름 끼치도록 강한 자들이다.

푸욱!

야구는 쇠꼬챙이에 심장이 꿰뚫리는 것을 느꼈다.

검이 들어온 것인데…… 마치 벼락을 맞은 듯이 힘이 풀렸다. 사지가 남의 것인 듯 흔들렸다.

그는 털썩 무너졌다.

그 순간 다시 목에서 화끈한 통증이 일어났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세상을 보지 못했다.

* * *

무인은 결국 혼자다. 제 목숨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 누가 대신해서 지켜주지 않는다. 무인이라는 자가 누군가의 보호를 받기 시작하면 그 끝은 항상 죽음으로 끝난다.

자신보다 강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생각할 것도 없다. 언제든지 죽을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주변 인물이 한두 번쯤은 적을 막아 줄 수가 있다.

아걸이 막아 주었듯이 적을 끌어들여서 오히려 베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한두 번에 그친다. 언젠가는 검대 검으로 부딪혀야 할 때가 찾아온다.

쉬이이익!

흑수혈검은 검풍을 일으켰다.

예전에는 자신의 무공 정도면 이 무림 바닥에서 충분히 포식자 노릇을 하며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다. 자신보다 더 강한 칼은 존재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진짜 파도와 부딪히고 난 후부터는 그런 자신감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시간이 날 때마다 검을 수련해야 한다.

검을 버리고 초야에 은거할 생각이 아니라면 반드시 천하제일검이 되어야 한다. 천하제일검이 아니라면 언제 죽어도 놀랍지 않다.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목숨이 아닌 것이다.

쒯! 쒜에엑!

검초가 부드럽게, 강하게, 빠르게 흐른다.

그는 직하검을 상대하고 있다. 상충검을 벤다. 흑수혈검의 뇌리에는 복면인들의 검초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그리고 바로 지금, 그의 검 앞에서 되살아난다.

저들의 빠름, 힘, 절묘한 배합 등등 모든 것이 기억난다. 복면인들의 호흡까지 느껴진다.

까앙!

상상 속에서 직하검과 부딪쳤다. 그리고 곧바로 상충검을 쳐올렸다. 하지만 이미 검이 몸을 베고 지나간다.

‘빨라! 이걸 막을 수가 없어. 공격은 언제나 직하검부터 시작해. 이 두 검과 부딪히면 어느 쪽부터 막아내든 몸은 틀어지게 되는데…… 이때 상충검이 베어 온단 말이야.’

급하게 검을 들어서 하나를 막았다. 하지만 또 다른 하나는 막지 못했다.

늘 문제가 되는 것은 등을 베어 오는 검이다.

앞에서 오는 검은 막아 낼 수가 있는데, 뒤에서 쳐오는 검은 막아 내지를 못하겠다.

검 세 자루를 막아 내고 네 자루째에 어김없이 몸이 베인다.

‘아직은 검 네 개를 막아 낼 만큼 빠르지가 않아. 분명히 내가 느려. 이대로는 안 돼.’

같은 검초라도 누가 전개하느냐에 따라서 막기도 하고 못 막기도 한다. 복면인들이 검초를 전개하는 속도는 경이적이다. 그나마 야천 제일검이나 되니까 삼 검이라도 막아 내는 것이다.

‘다시!’

쒯! 쒜에엑! 쒜에엑!

흑수혈검은 밤을 잊은 채 검초를 수련했다.

아걸이 대방에서 손을 떼고 물러나라고 권고했다. 이 권고를 뒤집어서 말하면 자신이 곧 공격당한다는 소리다. 누가 공격해 올까? 복면인들이다. 그들 외에는 없다.

그걸 알면서도 차마 떠나지를 못하겠다.

권력에 맛 들인 것이 아니다. 자리에 연연하지도 않는다. 다만 야천을 버리지 못하겠다.

그때다. 어둠을 뚫고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저벅! 저벅! 저벅!

발걸음 소리는 전면에서 들린다. 저들이 소리를 죽이지 않고 걸어서 단박에 알아챘다.

‘네 명! 왔군.’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빨리 왔다.

흑수혈검은 웃통을 벗었다. 그리고 겉옷으로 몸에 흐른 땀을 닦아 냈다.

저벅! 저벅! 저벅!

어둠과 동화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자들이 걸어왔다. 예상했던 대로 흑의를 입은 복면인들이며, 항시 그렇듯이 일렬로 나란히 서서 걸어온다.

두 명은 직하검이고, 가운데 있는 두 명은 상충검을 쓴다.

흑수혈검은 상충검을 쓰는 자 중에 오른쪽에 있는 자를 쳐다봤다.

검 세 개는 막는다. 마지막 한 자루…… 그가 쳐다보는 오른쪽 사내의 검만 막으면 첫 번째 격돌을 벗어날 수가 있다. 저들 네 명 중에 자신을 벨 자가 있다면 바로 저자다.

‘오늘 결국 네놈한테 베이나? 후후! 조금 빨랐어. 한두 달만 늦게 왔어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낼 수 있었을 텐데. 내가 너무 늦게 준비를 한 게지.’

흑수혈검은 검을 들어 올렸다.

다다 다다다닥! 타 타 타 탁!

좌우에 있는 자가 냅다 달려왔다. 그 뒤로 가운데 두 명도 쾌속하게 달려들었다.

“인사도 없이 시작인가!”

흑수혈검은 가운데 두 명을 향해 벽혈검법(碧血劍法)을 쏟아냈다.

저들 방식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검초를 쳐 낸다. 어차피 네 번째 검에 목숨을 잃는다. 그럴 바에는 전혀 다른 검초로 저들을 흔들어 버린다.

쒜에엑! 쒜에엑!

좌우에서 달려드는 두 검은 무시했다.

사실, 무시할 수 없는 검이다. 직하검을 무시하면 당장 몸이 두 쪽으로 갈라진다.

직하검과 상충검을 염두에 두고 수십 번에 걸쳐서 상상 대결을 펼쳤다. 이 방법, 저 방법…… 모든 방법을 구사해 봤다. 지금 그가 전개한 방법도 그중에 하나, 결과는 필패다.

이런 식으로 벽혈검법을 전개하면 직하검을 피하지 못한다. 더욱이 상대방도 타격하지 못한다. 상충검이 벽혈검법을 막을 것이다. 저들의 움직임이 훨씬 빠르니까.

그야말로 최악의 결과가 일어난다.

적은 치지도 못한 채 전신이 난자되는…… 검 세 자루가 몸에 틀어박혔다. 상상 속 대결에서는 그랬다.

현실도 다르지 않다.

타앙!

벽혈검법이 상충검에 막혔다. 오른쪽 사내를 노리고 검을 쳐 냈는데, 왼쪽 사내의 검에 걸렸다.

그 사이, 직하검 두 자루가 몸통을 격타했다.

퍽! 퍼어억!

흑수혈검은 벼락을 맞은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예상은 했지만, 검에 맞은 충격이 매우 컸다. 한순간에 모든 생각과 감각이 소멸되는 느낌이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도 어차피 당하게 되어 있어.’

슈우우웃!

흑수혈검은 검을 놓아 버렸다. 검에 맞은 충격을 이기지 못한 듯 비틀거리면서 달려 나갔다. 처음부터 노리고 노렸던 오른쪽 사내를 향해서 빈손으로 검초를 전개했다.

슷! 스읏!

직하검을 성공한 복면인들이 좌우로 갈라섰다.

복면인들의 눈에는 다소 여유가 흘렀다. 이제 한두 걸음…… 흑수혈검은 한두 걸음 안에 쓰러진다. 창자가 보일 정도로 깊게 얻어맞았으니 견디지 못한다. 그 순간,

슈윳! 퍼억!

비수 한 자루가 복면인의 가슴에 틀어박혔다.

상충검을 쓰는 오른쪽 복면인, 흑수혈검이 처음부터 노리던 자, 빈손으로 전개한 검초를 웃으면서 바라본 자…… 그자의 가슴에 흑수혈검의 왼손이 닿았다.

복면인들은 방심했다.

흑수혈검은 결코 방심할 수 없는 사내인데…… 폭죽 터지듯 솟구치는 핏물을 보고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흑수혈검이 웃통을 벗은 이유는 맨살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자신에게는 검 한 자루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싸움 중에 들고 있던 검까지 놓아 버렸다.

비수는 허리 뒤춤에 숨겨져 있었다.

비겁한가? 치사하게 네 명이 한 명한테 덤벼드는 게 비겁하지 암수를 쓰는 게 비겁할 리가 있나.

팍! 팍!

검이 다시 쏟아졌다.

흑수혈검이 비수를 쓰자 당황한 복면인들이 재차 검을 쏟아냈다.

흑수혈검은 순식간에 오 검 이상을 맞았다. 더는 살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인 검초다.

흑수혈검도 가슴을 찌른 비수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밑으로 훅! 잡아당겼다.

두두둑!

상대방의 뼈가 갈라진다.

그것이 흑수혈검이 느낀 마지막 감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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