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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368화 (368/600)

#368화. 第七十四章 반격(反擊) (3)

야구는 자신을 죽이기 위해서 고용된 사내다. 살인마다. 그전에도 애꿎은 사람을 상당히 많이 죽었다. 타인의 인생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패륜아다.

야구의 인생은 일전통을 잃고 난 후, 확 바뀐다.

뿌리를 잃자 간신히 목숨만 살아서 정처 없이 떠도는 불행한 신세가 되었다. 나름대로 발버둥을 쳐 봤지만, 일전통을 벗어난 야구가 무림에서 발을 디딜 수는 없었다.

일전통이 야구의 한계였다.

야구의 죽음은 그가 일전통을 벗어나는 순간에 이미 정해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위해서 일하다가 죽었다.

최소한 그의 죽음을 알리는 서신이나마 간직해서 그를 잊지 않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

사실, 흑수혈검의 죽음을 전해 듣고 불안함을 느꼈다.

흑수혈검의 죽음…… 마유 마인들이 복수를 시작했다. 얌전히 앉아서 당하지만은 않겠다는 뜻이 읽힌다. 그렇다면 당장 야천 간자들이나 야구가 위험하다.

물러서!

아걸은 즉시 전통을 보냈다.

하지만 한발 늦었다. 야구에 대한 소식이 전해지지 않아서 용케 몸을 빼냈구나 싶었는데, 뒤늦게 시신이 발견되었다. 지붕 위에서 죽은 탓에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시신 상태로 보아서 야구는 흑수혈검보다도 앞서서 당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흑후도 위험하다. 사형도 마찬가지다. 사형은 일홀도 강자이니 안심해도 될까? 아니다. 저들은 공격 수단이나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마유 마인을 건드린 모든 사람이 위험하다.

더불어서 저들은 안으로 꼭꼭 숨었다. 더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야천 간자들이 일러 준 곳으로 찾아가도 복면인들을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야천 간자들이 알려 준 정보는 휴지가 되어 버렸다.

복면인들은 이미 자리를 비웠다. 그만한 준비를 마쳤기 때문에 반격을 시작한 것이다.

‘허도기. 도대체 뭘 한 거야? 무슨 짓을 했고, 앞으로 뭘 하려는 거야. 후후! 당신 인생도 참…… 그렇게까지 하고도 아직까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나?’

아걸은 칼을 꾹 눌러 잡았다.

* * *

사슴은 약한 동물로 태어났다.

사슴 중 절반이 태어나자마자 맹수의 먹이가 된다. 양수를 터트리면서 태어나는데, 이 냄새를 맡고 맹수가 달려온다. 그리고 상당수가 잡아먹힌다.

간신히 위험을 벗어나도 여전히 위태롭다.

몸에 근육이 붙고, 뿔이 날카롭게 곤두서도 맹수에게 잡아먹히는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슴은 맹수와 맞서 싸우지 못한다. 늑대, 곰, 하다못해 고양이보다 조금 큰 스라소니에게도 물려 죽는다. 최후까지 발악은 하지만 결국 죽는다.

그렇다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서식지는 없을까? 없다. 사슴이 풀을 뜯어 먹고 사는 산속은 맹수들의 서식지다. 맹수와 함께 살면서 삶을 모색해야 한다.

사슴은 어떻게 목숨을 연명할까? 물어볼 필요도 없다. 세심한 경계심이다. 이것 외에 달리 목숨을 구해 줄 것이 없다. 맹수가 오는 것을 미리 알고 도주하는 것이다.

맹수가 다가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면 죽는다. 사전에 맹수를 감지하면 아무리 나약한 사슴일지라도 멀리 달아날 수 있다. 호랑이도 피해 내고 곰도 피해 낸다. 늑대 무리에게 포위 공격을 당해도 살아날 수가 있다.

미리 눈치채는 것이 최대 관건이다.

흑화방은 자신들이 강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포식자라기보다는 먹잇감에 가깝다. 무림에는 자신들보다 훨씬 강한 무인이나 집단이 즐비하게 널려 있다.

그들과 함께 무림이라는 서식지에서 살려면 세심한 경계심이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철컹!

누군가가 쇠로 만든 철편을 밟았다.

흙 속에 묻어 놓은 철편인데, 선명하고도 맑은 쇳소리를 울린다. 소리 크기는 일정하다. 개가 밟아도 황소가 밟았을 때와 소리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일명 격판(隔板)이라고 한다.

격판 주위에는 유독 격판 소리만 잘 듣는 무인이 배치되어 있다. 격판이 울림과 동시에 두세 명의 눈길이 격판에 꽂힌다. 그리고 사람과 짐승을 구분해 낸다.

철컹! 철컹! 철컹!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사람이 격판을 밟았다는 뜻이다. 평범한 사람이 아니고 병기를 휴대한 무인이다.

이즈음에는 격판을 밟은 사람도 습격이 발각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무인들이 건드린 격판 울림이 마을 전체를 울리기 때문에 모를 수 없다.

서쪽에서 울린 격판 소리가 마을을 일깨웠다.

철컹! 철컹! 철컹! 철컹!

동쪽에서도 격판이 울렸다.

격판을 밟은 사람이 우연히 마을을 지나치는 무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서쪽에 이어서 동쪽에서도? 어떤 무리가 사방을 에워싸고 다가온다.

이제 경고는 무의미해졌다. 습격한 사람도 격판을 준비한 흑화방도 기습 사실을 인지했다.

쒯! 쒜에엑!

“으아악!”

본격적으로 파공음과 비명이 터졌다.

“웬 놈이냐!”

“기습이다! 정신 차려! 적이야!”

흑화방 무인들이 병기를 챙겨 들고 분분히 뛰쳐나갔다. 아니다! 뛰쳐나온 것이 아니라 사방으로 도주한다. 경각심을 돋우는 소리는 한껏 내질렀지만, 정작 행동은 정반대로 한다. 죽을힘을 다해서 도주하고 있다.

편한 길로 도주하는 자는 없다. 논밭으로, 대나무 숲으로, 산길로…… 도주하기 힘든 길로만 뛰쳐나간다. 아마도 따라오지 않으리라 생각한 것 같다.

이들의 도주는 사전에 약조된 것이 아니다. 오합지졸처럼 싸움이 두려워서 도주한다.

이런 자들을 굳이 쫓아가서 죽여야 하나 싶은 회의마저 든다.

추격자들은 추격을 시작했다. 사방으로 뛰쳐나가는 무인들을 쫓아가서 거침없이 병기를 휘둘렀다.

쒯! 쒜에엑!

“크아아악!”

사방에서 처절한 비명이 쏟아졌다.

“몰살시키려고 작정했습니다.”

서목이 말했다.

“바보 같은 놈들. 도주하지 말고 숨으라니까. 귓구멍이 막혔는지 말귀를 알아먹지 못해.”

“여기도 곧 들이칠 겁니다. 숨으셔야 합니다.”

“그래야지.”

흑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 여기까지만 모시겠습니다.”

수부가 녹슨 도끼를 집어 들며 말했다.

흑후가 멀거니 수부를 쳐다봤다.

“그래도 여기서 한 놈쯤은 책임 있는 놈이 죽어 줘야지 저놈들이 믿을 거 아닙니까.”

“건방진! 넌 네가 쓸 만하다고 생각하냐?”

“그래도 저 정도면…….”

“이놈아, 넌 저놈들 밥이야. 일초지적도 안 돼. 저놈들이 보통 놈들인 줄 알아?”

흑화방을 몰살시키려고 달려든 인간들이다.

흑화방을 소상히 조사했을 터이니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도 알 것이다.

“상대가 안 되더라도 제 도끼를 보면 누군지 알 거 아닙니까? 그 정도면 됐죠.”

“하! 이놈도 귓구멍이 막혀서는.”

“방주님 잘 모셔.”

수부가 서목에게 씩 웃어 보이며 일어섰다.

‘바보 같은 놈!’

수부의 말이 틀리지 않는다. 흑화방을 이끄는 사람이 한두 명쯤은 있어야 한다. 흑후를 죽이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설혹 죽이지 못해도 무방하다.

이곳에는 흑화방 전력이 모여 있다.

이들을 몰살시키면 흑후가 살아 있다고 해도 기를 펴지 못한다. 일전통을 잃은 야구처럼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떠돌이 신세를 면치 못한다.

흑화방을 이끌만한 자가 죽어 있다면 저들은 물러날 것이다.

“방주, 우리는 여기서 전력을 다 잃을 겁니다.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해요. 미련을 버리시죠.”

흑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수부 저놈…… 너무 미안해서 그런다.”

마유 마인들이 공격해 오면 흑화방은 몰살당한다. 이미 짐작하고 있는 터이다.

이 겁화를 피할 길이 없다.

아걸 같은 절대 무인이 있으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죽게 된다. 연약한 사슴처럼. 이 겁화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숨는 것밖에 없다.

흑후는 어디서 머물던 급습에 대비했다.

지금 머물고 있는 촌마을에서도 숨을 곳을 마련해 놨다. 격판을 준비했는데, 몸뚱이 하나 숨길 곳을 마련하지 못할까. 제일 먼저 점검하는 곳이 은신처다.

덜컹!

서목이 나무 바닥을 뜯었다. 그러자 마루 밑에서 음습하고 텁텁한 곰팡내가 훅! 풍겨 왔다. 원래는 불길이 통하는 화로(火路)인데, 쓰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몸이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를 정도로 좁은 구멍이다.

“가시죠.”

“그래. 가야지.”

흑후는 구멍 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서목이 뒤따라 내려섰다. 그리고 능숙한 솜씨로 뜯었던 나무판자를 제자리에 끼워 맞췄다.

“웬 놈들이냐!”

수부가 녹슨 도끼를 들고 상대를 노려봤다.

수부는 침입자가 당연히 마유 마인들인 줄 알았다. 흑의를 입고 복면을 쓴 자들.

그런데 그들이 아니다. 이들이 누군진 모르지만 흑의도 입지 않았고, 복면도 쓰지 않았다. 병기도 검만 있는 게 아니다. 각양각색, 일정하지가 않다.

“우리가 통성명할 사이는 아니지?”

스릉!

한 명이 칼을 뽑아 들고 성큼성큼 걸어왔다.

“야밤에 침입한 쥐새끼 주제에.”

“그래도 네 놈은 도망가지 않네?”

“와라! 죽여 줄 테니까.”

수부가 도끼를 꽉 움켜잡았다.

그는 일부러 녹슨 도끼를 사용한다. 날이 잘 갈린 도끼로 내리치면 단박에 죽는다. 날이 잘 들지 않아야 살이 짓이겨 나가고 뼈가 부러져서 죽는다.

칼을 든 놈도 마찬가지, 고통스럽게 죽인다!

쒜에엑!

수부는 도끼를 휘둘러서 허공에 참두부법(斬頭斧法)을 그렸다.

망나니가 죄인의 목을 칠 때 사용하는 부법이다. 돈푼께가 받으면 일격에 죽이고, 동전 한 닢 주지 않는 놈에게는 도끼질을 수십 차례나 한다. 지켜보는 죄인이 가족에게 가슴이 미어지는 고통을 안기는 것이다.

고통 없이 저승길 보내려면 돈 내놔!

돈만 내놓으면 실제로 고통 없이 죽인다. 도끼가 언제 목을 치고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빠르게 쳐 낸다. 아픔을 느끼기도 전에 머리가 떨어진다.

참두부법이 뛰어난 망나니는 인기가 좋다. 돈도 많이 번다.

망나니들은 도끼 쓰는 법을 연마하기 위해 거의 매일 소와 돼지를 잡는다.

실전을 통해서 연마하는 실전 부법인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부법도 이들에게는 일초지적밖에 되지 않는다. 이들이 마유 마인들 만큼 강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자신 정도는 손쉽게 찍어 넘길 것이다.

“크아악!”

“커억!”

사방으로 메뚜기처럼 뛰쳐나갔던 흑화방 무인들이 벌레처럼 죽어 나가고 있다.

도대체 몇 명이나 공격해 온 것일까? 어림잡아도 사오십 명은 넘어 보인다. 기가 질릴 정도로 많다. 더욱이 이들은 개개인이 하나같이 절정 고수들이다.

수부 앞에 선 자들만 여섯 명이다.

수부는 여섯 명 중에서 자신보다 약한 자는 찾아내지 못했다. 여섯 명 모두 기세가 날카롭다. 눈빛이 차갑다. 살인을 아는 살인자의 눈이다.

쒜에엑!

수부 앞으로 다가선 자가 칼을 쳐 냈다.

순간, 야밤인데도 불구하고 허공에서 번쩍! 섬광이 토해졌다.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빛이다. 도신에서 번져 나온 빛살이 두 눈을 아프게 찔러 온다.

‘이, 일순십시(一瞬十矢)?’

수부는 엉겁결이 참두부법을 펼쳐 칼날을 받아내면서 얼핏 일순십시를 떠올렸다.

상대가 쳐 낸 병기는 칼인데, 이상하게도 활로 공격당한다는 느낌이 든다. 성검문 이 공자 허문학을 공격했다는 노궁인혼마 곽충과 절기가 생각난다.

카앙! 깡! 깡! 깡! 깡!

도끼와 칼이 요란하게 부딪쳤다. 하지만 제일 나중에 터진 소리는 살을 써는 파육음이다.

써어억!

“큭!”

수부는 짧은 비명을 토해 냈다.

자신이 일초지적밖에 안 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일초조차 받아 내지 못할 줄은 몰랐다. 적어도 몇 초 정도는 받아 낼 줄 알았는데.

‘일순십시가 맞아!’

수부는 상대가 어떤 놈인지 얼굴을 보려고 했다. 어떻게 궁법을 도법으로 변형시켜서 전개했는지도 알고 싶었다. 그 순간,

쒯!

섬광이 다시 터졌다. 그리고 수부의 머리가 뎅겅 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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