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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369화 (369/600)

#369화. 第七十四章 반격(反擊) (4)

분하다. 억울하다.

흑수혈검과 야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한 시진도 되지 않아서 공격이 시작되었다.

굉장히 빠르다.

‘거침없이 공격해 온다 이거지. 예전부터 우릴 주시했다는 건데……이놈들!’

바깥 상황을 떠올리면 분노가 치밀었다.

흑화방을 예의주시한 사람이라. 누가 주시했겠나. 아걸은 주시하지 않는다. 야천이나 기타 방파도 흑화방은 보지 않는다. 알아야 보는데, 그들은 알지 못한다. 오직 허도기만이 흑화방에 대해서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알고 있다.

허도기가 보낸 자들이다.

오음산에 있는 자들이 공격해 왔을까? 그들이 뛰쳐나와서 살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허도기가 보낸 자들인 것만은 분명하다.

‘흑화방이 이대로 끝나지는 않아. 두고 봐라!’

흑후는 복수를 다짐했다.

원래 이런 겁화가 닥칠 것은 예상했다.

허도기 편에 서면 아걸에게 당할 것이고, 아걸 편에 서면 허도기에게 당할 것이다. 강자들 사이에서 거래를 트는 사람들은 항시 양쪽에서 공격받을 것을 생각해야 한다.

원래는 허도기 편에 서려고 했다.

아무래도 아걸보다는 허도기 쪽에 마음이 더 끌렸다. 배짱도 그쪽이 더 맞았다.

흑화방을 중히 여긴다면 그의 말을 들을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충성을 바치고자 했는데…… 허도기가 흑화방을 무시했다. 네놈들이 뭘 할 수 있느냐는 태도다. 네놈들 손을 빌리지 않아도 야천 정도는 가질 수 있다고.

실제로 허도기는 야천을 공격했다.

그래서 아걸 쪽으로 돌아섰다.

사실…… 승산은 아걸 쪽에도 있다.

아걸과 허도기의 싸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싸움은 분명히 허도기가 이긴다.

아걸이 일홀도의 전인이기는 하지만, 무공으로만 따지면 결코 이기지 못한다. 아마도 이번 오음산 싸움은 십중팔구 허도기의 승리로 끝날 것이다.

그런데 왜 아걸 편에 서서 허도기와 대적하려고 하나?

흑후가 생각하는 싸움은 허도기와 황궁의 싸움, 대장군과의 싸움이다.

허도기의 야망이 황궁에 있다는 걸 안다.

허도기의 적은 아걸이 아니다. 황상이다. 그리고 황상 주위에는 정체불명의 집단, 호황위가 있다.

그들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황제가 지극히 위험할 때만 모습을 드러내는 비밀스러운 존재들인데, 그들의 신위는 거의 천하무적이라고 한다. 물론 소문만 무성한 집단이다. 호황위를 봤다는 사람은 없다. 흑화방조차도 호황위에 대해서는 파악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호황위가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 같다.

허도기가 지금까지 야욕의 발톱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호황위 때문이다.

아걸 쪽에도 이만한 승산이 있으니 달라붙을 만하지 않나.

적당하게 허도기와 야천 사이에서 줄다리기할 생각이었지만 허도기가 야천을 잡아먹은 이상 더는 허도기 편에 있을 수가 없다. 허도기의 말을 들을 수가 없다.

아걸 쪽에서 움직인 이상, 당할 줄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사람인지라 온갖 감정이 회오리치면서 올라왔다. 역시 당하는 것은 억울하다.

‘후우!’

깊은숨을 내쉬고,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 후, 귀식대법(龜息大法)을 펼쳤다.

숨을 완전히 끊어 버린다.

숨 쉬는 소리가 들리지 않고, 심장 박동 소리도 밖으로 흘러나가지 않는다. 체온도 죽은 사람처럼 뚝 떨어진다. 모든 기척을 완전히 감추고 철저히 숨는다.

허도기…… 이제부터 흑화방의 진가가 어떤 것인지 뼈저리게 알게 될 것이다.

‘일단 당해준다. 하지만…….’

흑화방은 사라진다.

어쩌면 하원랑이 흑화방을 들이쳐서 독비를 죽였을 때부터 이런 일이 진행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무너져야 할 문파, 짓밟아야 할 문파로.

흑화방은 탈을 벗는다.

금선탈각(金蟬脫殼)? 껍질을 벗고 매미가 되어 볼까? 그것보다는 태양과 부활의 상징인 불사조(不死鳥) 쪽이 가깝지 않을까 싶다. 자신을 완전히 태우고 다시 태어나는 거다.

‘이 빚은 받아낸다. 반드시.’

후우욱!

흑후는 깊은 수면 속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이곳을 들이친 자가 흑후를 발견해 내면 불사조고 나발이고 모두 무효가 된다. 어떤 재기도 불가능해진다. 하지만 천운이 깃들어서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때는 장구한 계획이 다시 세워질 것이다.

모든 것은 저들에게 달렸다.

더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 여기서는 목숨을 천운에 맡기고 기다려야 한다.

“뭐야? 숨었나?”

그들은 흑후가 머물던 방을 서성거렸다.

“여기 어디 있겠지.”

“바보 같은 놈 아닌가. 여길 불태워 버리면 어떻게 하려고. 귀식대법을 너무 맹신하면 안 되는데.”

저벅! 저벅!

그들은 흑후가 마룻바닥 밑에 숨은 것을 알고 있다는 듯 바닥을 예의주시하면서 걸었다.

삐걱! 삐걱!

그들이 걸을 때마다 마룻바닥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어디를 밟든 바닥이 삐걱거린다. 모든 곳이 텅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과연 흑후가 고른 장소다.

“살려 주지. 듣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때로는 말이야. 목숨을 살려 주는 것이 죽이는 것보다 더 비참할 때가 있어. 차라리 오늘 여기서 죽는 게 더 나았다고 느낄 때가 있을 것이야. 그때까지 살아 봐. 누가 흑화방을 무너트렸는지 곱씹으면서. 하하하!”

그들은 흑후가 이곳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짐작한다. 흑후는 귀식대법을 펼쳤다. 체온까지 죽이는 바람에 전혀 저항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모를 리 있나. 흑화방을 예의주시했다. 낱낱이 조사했다. 그들이 무엇을 할 줄 아는지 안다. 땅에 격판이 있다는 것을 모른 줄 아나? 알면서도 밟아주었다.

만일의 경우, 흑화방은 은밀한 곳으로 숨어든다. 저항을 포기하고 삶을 구걸한다. 지금처럼 기척을 숨기고 천운이 닿기만 바라면서 처분을 기다린다.

이 정도는 이미 알고 있다.

흑화방은 사마외도와 정도 무림을 오가면서 막대한 돈을 벌었다. 한데 지금 그 돈이 전부 허도기에게 흘러갔다. 무인은 척살 당하고, 돈은 빼앗긴다. 가지고 있는 모든 기반이 허도기에게 넘어가서 남은 게 없다.

이제 무엇을 할 수 있나?

흑후의 목숨 따위는 언제든지 거둘 수 있다.

“하하하!”

“킥킥킥!”

그들은 웃으면서 물러났다.

흑후에게는 죽음보다도 더한 치욕이다.

츠읏!

흑후는 귀식대법을 풀었다.

풀려고 해서 풀은 게 아니다. 귀식대법은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풀린다.

조용히 진기를 운기하면서 바깥 상황을 살펴봤다.

움직이는 자가 없다.

흑후는 몸을 회복시키는 데 주력했다. 체온을 정상으로 끌어올리고, 진기가 퍼져나가는 과정을 세심하게 살폈다.

귀식대법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상태가 되기까지는 대략 반 시진 정도가 요구된다. 반 시진 동안에는 애벌레처럼 꼼짝하지 못하는 처지이니, 누군가가 공격해 온다면 여지없이 당한다.

또 죽은 자에서 산자로 돌아오는 과정은 매우 급격한 활기를 끌어온다. 숨이 거칠어지니 자연스럽게 기척도 새어나간다.

귀식대법의 약점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과정이기도 하다.

츠으으읏!

단전에서 일어난 진기가 마룻바닥 밖으로 던져졌다.

그래도 그를 찾아오는 사람은 없다. 기습이 시작되고 거의 하루 정도는 지났다.

‘모두 떠났어. 아무도 없다!’

저벅! 저벅! 저벅!

흑후는 산 사람이 아무도 없는 텅 빈 마을을 걸었다.

많은 사람이 눈에 띈다. 하지만 모두 죽었다. 피를 흘리고 쓰러진 시신들이다.

정말 다 죽었다.

“이놈들 최대한 발악했을 텐데, 모두 다 죽었습니다.”

서목이 안타까운 듯 말했다.

“발악해도 안 된다고 했잖아. 흑화방 무공 정도로는 안 돼. 이번에는 상대가 너무 쎄.”

흑후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흑화방은 절대 무가가 아니다. 무공으로 싸우는 문파가 아니다. 흑화방은 돈과 정보로 싸우는 문파다. 힘으로 싸울 일이 있으면 돈을 주고 무인을 산다.

“서목. 넌 지금 바로 가서…….”

“알겠습니다.”

서목이 쥐눈을 데룩데룩 굴렸다.

“전 지금 바로 가서…… 방주님은?”

“아걸이 올 거야. 기다려야지.”

“넷! 그럼 전 이만!”

쒜에엑!

서목이 뒤도 안 들어 보고 신형을 날려 사라져 갔다.

흑후는 마을을 걷다가 수부의 시신을 찾아냈다. 수부는 몸과 머리가 분리된 채 널브러져 있었다.

건드리지 않았다. 절대 시신을 건드리지 않는다. 시신을 건드리는 것은 누군가 찾아왔다는 표시가 되기도 한다. 하루나 이틀 뒤쯤 누군가 와서 이들의 시신을 살펴볼 수도 있다.

흑화방이라면 그렇게 한다.

‘쓸데없는 죽음이라고 했는데…… 참 말을 안 들어. 내 말만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데. 쯧!’

흑후는 앞만 보고 걸어갔다.

죽은 사람들…… 이들은 성충을 만들고 난 애벌레 껍질이다.

* * *

시신들이 일렬로 놓였다.

시신은 썩지 않도록 약물이 발라져 있다. 하지만 칼이 들어간 자리는 건들지 않았다.

죽은 사람의 머리맡에는 그들이 사용하던 검이 놓여 있다.

피가 묻었으면 묻은 대로…… 병기를 일절 손대지 않았다. 원형 그대로 보존했다.

“좋군. 일격에 베었어.”

복면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병기끼리 부딪치지도 않았습니다.”

“그게 일홀도다. 걸리면 죽을 수밖에 없어. 부딪치기 전에 어떤 칼인지 파악해야 해.”

“칼이 너무 빨라서…….”

“그러면 베이는 수밖에 없고. 베이지 않으려면 그런 빠름 속에서도 칼을 읽어 내야 한다.”

복면인이 한 명, 한 명 죽은 자들의 상처를 살펴봤다.

처음 몇 명을 지나치자 드디어 약간의 흔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칼도 매끄럽지 못하고, 병기끼리 부딪친 흔적도 나타났다. 앞선 자보다 칼의 품격이 떨어진다.

슷!

복면인이 머리맡에 놓인 검을 집어 들었다.

검에 이빨이 빠져 있다. 아주 강한 칼과 부딪쳤다. 자칫했으면 검이 두 동강 날 뻔했다.

“빠르진 않군.”

복면인이 검을 쳐다보며 말했다.

“병기끼리 부딪쳤다는 것은 신법으로 우리 검진을 따돌리지 못했다는 소리가 돼. 이건 분명히 느려. 거기에 힘도 없다. 일홀도라면 검을 잘라내야 했는데.”

복면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같은 일홀도인데 칼이 크게 다르다.

아걸에게 베인 자들은 쳐다볼 필요도 없다. 상처가 너무 깨끗해서 두 번 볼 필요도 없다.

농성에서 죽은 자들도 상당히 깨끗하다.

역시 일홀도. 사형제 간에 주거니 받거니. 정말 깨끗한 칼들을 가졌군.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길성에서 죽은 자들로 넘어가자, 칼이 달라진다. 매우 지저분하다. 특히, 길성에서 죽은 복면인들의 검에는 피가 묻어 있다. 상대를 벴다는 뜻이다.

이들 정도의 검에 베이는 일홀도?

상상하기는 어렵지만, 반격 요소는 얼마든지 있다. 이 정도의 칼이라면 벨 수 있다.

“후후후! 일홀도에도 틈이 있었군. 서리형개가 이렇게 약했나? 아니면 무슨 일이……? 몸이 안 좋다는 것은 자기 관리를 못 한 것이니 죽을 만하지.”

일홀도를 제거할 수 있는 최적의 기회다.

시신을 살펴본 결과, 서리형개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그가 보기에도 굉장히 약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면 말 다 한 것이다.

아걸과 서리가헌은 공격하지 못한다. 그들을 공격하면 피해가 굉장히 커진다. 그들이 죽인 시신을 보면 이런 칼을 어떻게 상대할지 대응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서리형개는 다르다. 이것은 너무나도 분명하게 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네 명은 죽였지만 여덟 명이 가면…… 후후! 여덟 명이 간다. 아니 열 명이 간다. 가서 죽여!”

복면인, 사령이 말했다.

일홀도 처리 문제만큼은 전적으로 허도기에게 맡기고 있지만, 이런 칼이라면 즉시 보복해도 될 것 같다. 열 명이 가면 큰 피해 없이 죽일 수 있다.

“무인은 약해지면 안 돼. 절대로. 후후후!”

사령은 곧 일어날 죽음을 생각하면서 잔인한 미소를 입가에 베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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