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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370화 (370/600)

#370화. 第七十四章 반격(反擊) (5)

진기가 사 할에서 오 할가량 사라진 것과 똑같다.

아직도 화염도를 떨쳐 내는 데는 무리가 없지만, 위력 면에서 현저하게 떨어진다. 속도가 따라주지 않으니 화염도가 제 위력을 표출하지 못한다.

’곧 반격이 시작되겠군.’

서리형개는 고소를 베어 물었다.

마유 마인들을 죽였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도 당했다.

상대방의 검에 자신의 피가 묻어 있다. 그렇다면 저들이 가만히 있을까? 곤경에 처한 상대를 지켜보기만 할까? 즉각 추격대를 보내서 마저 숨을 끊으려고 할 것이다.

이건 당연한 일이다.

‘누구라도, 어느 문파라도 가만히 있지 않아.’

서리형개는 차분히 전신 혈도를 점혈해 나갔다.

서리형개는 절맥사혈법(切脈死穴法)이라는 것을 안다. 말 그대로 맥을 끊고, 혈을 죽이는 사법(邪法)이다.

절맥사혈법을 전개하면 통증이 마비된다.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 십육파혈산을 물론이고 복면인에게 당한 상처도 잊을 수 있다. 통증 없이 칼을 쳐 낼 수 있다.

화염도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육신이 둔화하는 것은 어쩌지 못한다. 다만 통증을 말끔히 잊어버리고 자유롭게 검을 쓸 수 있을 뿐이다.

마유 마인들과 부딪치면 항상 최상의 도초를 전개해야 한다.

절맥사혈법에 따라서 점혈해도 당장 효과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절맥사혈법을 전개하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리니 굳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라면 사법을 전개하지 않는다. 일단 준비만 해 놓는 것이다.

준비는 하되, 웬만해서는 펼치지 말아야 한다.

꾸욱! 꾸우욱!

혈을 하나씩 짚어 나갔다.

십이경맥 중 여섯 개 경맥을 건드렸다. 이십사 절대 사혈 중 열여덟 곳을 짚었다. 마지막 한 곳, 간과 배꼽 사이에 있는 제문혈(臍門穴)만 남겨두었다.

언제든 제문혈만 점혈하면 절맥사혈이 된다.

‘이제 싸울 준비는 됐고.’

서리형개는 지필묵을 준비했다.

시간이 있을 때, 서신 몇 장을 적어 놓을 생각이다.

제일 먼저 화염도 구결부터 적었다.

운기법에서부터 신법, 도법까지 한 권의 경전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상세하게 기재했다.

누군가가 이 서신을 얻는다면 화염도를 수련할 수 있을 것이다.

‘후후!”

서리형개는 만족스러운 눈으로 자신이 적은 구결을 쳐다봤다.

이 서신은 아걸에게 보낸다.

자신이 깨달은 절기 화염도가 일홀도로서 가치가 있는지 아걸에게 평가를 부탁할 생각이다.

물론 화염도는 아걸에게 패한 적이 있다. 하지만 자신이 아직 깨우치지 못한 부분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구결로 평가를 받아보려고 한다.

구결 대 구결로 싸웠을 때 네 무공을 꺾을 수 있겠나?

원래 문주가 되지 못한 일홀도는 존재 가치를 잃어버린다. 후대에 전해지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지금처럼 구결이 남겨지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다.

아걸은 화염도를 평가한 후, 태워 버릴 것이다.

두 번째 서신은 사형 앞으로 적었다.

사형이 이 서신을 받아 볼 때쯤이면 자신은 죽었을 것이다. 억울하지 않다. 사형이 암수에 걸려들어서 죽은 꼴이 되어 버리지만, 절대 억울하지 않다.

일홀도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대 억울해하면 안 된다.

사부가 웃으면서 칼을 받았다. 삼인독에 중독된 상태였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어떤 상황을 만들든 자신이 끌어낸 것이다.

사형보다 한발 앞서서 저승에 갈 수 있으니, 이것도 괜찮은 것 같다. 먼저 저승에 가면 사형에 앞서서 사부와 진검 승부를 가릴 수 있으니 나쁘지 않다.

그런 내용으로 서신을 한 장 적었고…… 마지막 서신은 몽설에게 남겼다.

- 겸구(歉疚), 겸측(歉仄), 불락인(不落忍).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몽설에게는 딱 세 마디만 적었다.

양심에 걸리는 미안함, 사부를 암산해서 미안하다.

송구스러운 미안함, 사모를 죽음에 이르게 해서 미안하다.

마음이 편치 않은 미안함, 네 인생을 엉망으로 만들어서 미안하다.

몽설이라면 세 마디, ’미안하다‘에 담긴 의미를 짐작할 것이다.

몽설이 이 미안한 마음을 받아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진심으로 적었다.

‘나도 많이 약해졌군. 감성적이야.’

서리형개는 붓을 내려 놓으며 객점 주인에게 말했다.

“이보쇼, 주인. 부탁 좀 합시다. 이 서신을…….”

‘빨리도 왔군.’

최소한 칠 주야 정도는 걸릴 줄 알았는데 사흘도 안 되어서 놈들이 나타났다.

저벅! 저벅! 저벅!

사방에서 복면인들이 걸어온다. 두 명이 한 조를 이뤄서 차분하게 다가온다.

모두 다섯 조다.

이 조, 네 명과 싸우면서 곤욕을 치렀다. 다섯 조, 열 명과 싸운다면 필패가 예상된다. 십육파혈산에 당하지 않았다면 ‘이까짓 놈들!’ 하고 코웃음을 쳤겠지만, 지금은 굉장히 난감하다.

절맥사혈법을 격발시킬까?

‘아직은…… 일단 싸워 보고…….’

서리형개는 칼을 꽉 움켜잡았다.

열 명이 일제히 달려든다.

삼 조, 여섯 명은 직하검을 사용한다. 이 조, 네 명은 상충검이다. 직하검을 쓰는 자는 전면에서 달려들고, 상충검을 쓰는 자들은 뒤에서 기회를 노린다.

필살 검은 상충검이다.

직하검으로 칼을 붙잡아 놓고, 상충검으로 벨 생각이다.

츠으읏!

전신 진기를 끌어내어서 강도에 실었다.

강도가 시뻘겋게 부풀어 올랐다. 거대한 화염을 일으켰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분노가 화염으로 변해서 칼에 담겼다.

네 놈들! 네까짓 놈들이 감히! 내가 지금 십육파혈산에 당했다고 감히 나를 능멸해!

세상에 대한 분노, 마유 마인들에 대한 분노…… 모든 분노가 칼에 실렸다.

“죽어!”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그리고 진기로 응축된 칼이 활화산처럼 터져 나갔다.

꽈꽈꽈! 깡깡깡깡!

요란한 소리가 울리며 칼과 검이 부딪혔다.

순간, 직하검을 구사한 복면인이 머리가 꽈리처럼 터져 나갔다.

붉은 핏물이 확 솟구쳤다. 하늘에서 피 비가 내리는 듯 온 세상이 빨갛게 물들었다.

다른 한 명은 목에 칼을 맞았다.

쒜엑!

서리형개는 칼이 목을 반쯤 파고들었을 때, 밑으로 확 잡아당겼다.

그 순간, 서리형개도 등에 일 검을 맞았다. 역시 상충검이다. 기회를 노리고 있던 상충검이 느닷없이 겁날 사이로 스며들더니 순식간에 그어 버렸다.

마유 마인들의 검공은 수십 번, 수천 번 고련을 거듭한 끝에 탄생했다. 똑같은 검초를 전개하는 듯이 보이지만, 수시로 검의 방향이 틀어진다. 검으로 칠 수 있는 곳과 칠 수 없는 곳을 지극히 짧은 순간에 분간해 낸다.

“후욱!”

서리형개는 큰 숨을 내쉬며 뒤로 물러섰다.

두 명을 죽었지만 일 검을 맞았다. 역시 길성에서 마유 마인들을 벨 때 당한 상처가 발목을 잡았다. 화염도가 마지막 순간까지 쭉 뻗어 나가지 못했다.

“후욱! 훅!”

서리형개는 연신 가쁜 숨을 토해 냈다.

십육파혈산에 당한 상태에서 마유 마인 열 명을 상대하는 건 무리였나? 무리였던 것 같다. 그러면 이제는 절맥사혈법을 격발시켜야 하나? 그래야 한다.

‘이제는 끝났어.’

서리형개는 들고 있는 칼이 매우 무겁다고 느꼈다.

이미 한계에 부딪혔다. 십육파혈산은 시간이 흐를수록 진기를 갉아먹는다. 길성에서 화염도를 쓸 때보다 훨씬 칼이 빨리 끊어진다. 더욱이 몸에 난 상처는…….

서리형개는 마지막 남은 혈, 제문혈을 꾹 눌렀다.

순간, 전신을 극통으로 밀어 넣던 통증들이 한순간에 거짓말처럼 싹 사라졌다.

아픔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렇게 좋은 거라면 진작에 할 것이지. 천만에! 절맥사혈법은 대가를 요구한다고 하지 않았나. 너무 치명적이라서 감히 펼칠 생각을 하지 못하는 대가를 주어야 한다.

절맥사혈법을 전개하면 신경이 완전히, 영구히 차단된다.

살을 가를 때 일어나는 통증이 전달되지 않는다. 멀쩡하게 살아서 움직이지만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 감각도 사라진다. 내 팔을 만져도 감촉을 느끼지 못한다. 이빨로 혀를 깨물어도 아픔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절맥사혈법은 평생에 딱 한 번만 펼칠 수 있다. 두 번 펼칠 이유도 없다.

그러니 살 수 있는 가능성이 단 일 푼만 있어도 절맥사혈법은 펼치는 게 아니다. 이제는 살지 못한다. 지금 휘두르는 칼이 마지막 칼이라는…… 절대적인 절망감이 전신을 지배할 때만 딱 한 번 펼치는 사법이다.

“후후!”

서리형개는 웃으면서 칼을 들어 올렸다.

방금 당한 일격으로 등에서 피가 철철 흘러내린다. 하지만 서리형개는 전혀 개의치 않고 주위를 쓱 쓸어 봤다.

‘여덟 명인가? 너희 정도는 쓸어버릴 수 있지.’

쒜에에엑!

이번에는 서리형개가 먼저 공격했다.

칼이 순식간에 일곱 번의 변화를 일으키며 허공을 갈랐다. 하지만 절정으로 화염도를 펼칠 때보다는 훨씬 느리다. 칼에 깃든 세기도 약해진 것 같다.

화염도가 절정에 이르면 도신이 새빨갛게 물드는데, 지금은 그저 불그스름하다.

쒯! 쒜에엑!

복면인도 즉시 반격해 왔다.

화염도가 복면인의 배를 그었다. 칼 맞고 쓰러지는 복면인을 어깨로 쳐올리면서 빙글 휘돌았다. 그 칼에 옆에 있던 자가 가슴을 얻어맞았다.

복면인을 껴안듯이 붙잡고 빙글 돌았다.

퍽! 퍽!

복면인의 검이 가슴 베인 복면인을 후려쳤다.

서리형개는 복면인을 방패 삼아서 상대방의 검을 막아 내고, 다시 칼을 그었다.

퍽! 퍼억!

복면인의 머리가 절반쯤 썰려 나갔다. 다른 한 명은 가슴을 뚫렸다. 가슴을 찌른 칼이 복부까지 쭉 그어졌다.

서리형개는 성난 들짐승처럼 날뛰었다.

퍽퍽퍽!

그의 등에서 파육음이 들려왔다.

검 두 개? 세 개? 몇 개인지 모를 검이 등을 쑤셨다. 하지만 아픔은 느껴지지 않는다. 어디를 어떻게 맞았는지 모르겠지만 전혀 아프지 않다.

덕분에 적이 굉장히 가깝게 다가왔다.

탁! 터억!

휘돌려 친 칼에 복면인 두 명이 풀썩 쓰러졌다.

순식간에 복면인 여섯 명이 쓰러졌다. 하지만 서리형개도 무사하지 못했다.

핏물이 하의를 붉게 물들였다. 쏟아져 내리는 피의 양으로 보아서 상당히 심한 타격을 당한 것 같다.

그런데도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다. 절맥사혈법 이런 거였나.

‘이제 두 명!’

서리형개는 차분히 기다렸다.

피를 상당히 많이 흘렸다. 통증은 느껴지지 않지만, 쏟아 낸 피만큼 기혈이 빠져나갔다. 분명히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을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단칼에 베어 낼 수 있을 것 같지만 정작 움직여 보면 답답할 만큼 느릴 것이다.

‘속도가 거의 죽었어.’

서리형개는 자신의 몸 상태를 정확하게 읽지 못한다. 그래서 저들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린다.

비틀!

서리형개는 일부로 다리를 휘청이면서 비틀거렸다.

가식으로 지어 낸 행동은 적을 오히려 긴장시킨다. 오히려 경각심만 높인다. 그래서 진짜인 것처럼 속이지 못할 바에는 유인 행동을 하지 않는 게 더 낫다.

사실, 서리형개는 위중함을 지어 낼 필요가 없다. 그의 몸은 진짜로 위중했다. 단지 서리형개 본인만 모를 뿐이다. 복면인들이 보기에는 쓰러지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다.

쒯! 쒜에엑!

복면인 두 명이 검을 쳐 왔다.

직하검 한 명, 상충검 한 명.

서리형개는 검이 몸을 그을 때까지 기다렸다. 어차피 이제는 끝났다. 삶을 기대할 수 있는 몸이 아니다.

퍽! 퍼어억!

파육음이 들렸다. 검이 등을 뚫고 배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 순간, 서리형개는 화염도를 번개같이 휘둘렀다. 사력을 다해서, 이 세상 마지막 칼을 쳐 냈다.

퍽!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복면인 두 명이 쓰러졌다.

서리형개는 털썩 주저앉았다.

“사형! 사형! 사혀어엉!”

서리형개는 서리가헌을 목놓아 불었다.

통한의 울부짖음이 사형을 향했다. 모든 게 자신 탓이라고 여기면서도 자연히 원망이 사형을 향했다. 십육파혈산이 아니라면 이런 식으로 쓰러지지는 않았을 텐데.

순간, 서리형개는 깜빡 정신을 놓았다가 다시 수습했다.

너무 피곤해서 자신도 모르게 잠시 눈이 감겼을 때처럼 깜빡 정신이 떨어졌다.

생명이 소진되고 있다.

“후후후! 후후!”

서리형개는 웃었다.

이것도 일홀도다. 모든 게 운명이다.

일홀문 삼십육 문주처럼 자신 역시 일홀도를 추구하다가 죽을 뿐이다.

이제 다 끝났다.

서리형개는 눈을 감았다.

어제 써 놓은 서신은 이미 세 사람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다.

마지막 전갈…… 그것조차도 괜한 짓이었나. 숨 떨어지면 끝나는 것이 일홀도 여정인데.

이만하면 한평생 잘 산 것 같기도 하고, 허튼짓만 하다가 가는 것 같기도 하고…… 판단을 못 하겠다.

“후후!”

서리형개는 고개를 떨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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