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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371화 (371/600)

#371화. 第七十五章 암중사(暗中事) (1)

“오늘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퇴청할 무렵, 언제나처럼 아걸에 대한 보고가 들어왔다.

전보영주 탁호가 고개를 돌려서 일부사를 쳐다봤다.

“오늘은 방에서 한 걸음도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식사도 하지 않고…… 아무도 들이지 않은 채 향을 피워 놓고 명복을 비는 것으로 보입니다.”

“음. 그렇겠지.”

탁호는 창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주변에서 여러 가지 일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그중에 가장 충격적인 일이 서리형개의 죽음이다.

서리형개가 어떤 자인데 비명에 가나.

마유 마인들이 서리형개마저 죽일 정도로 강한 것인가. 아니면 어떤 허점을 드러냈나.

서리형개의 죽음은 즉각 아걸에게 알려 줬고, 아걸은 자신이 베어야 할 사부의 원수인데도 불구하고 명복을 빈다. 사형에 대해 예우를 하고 있다.

“아마도 내일은 움직이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겠지.”

탁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걸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전보영에 보고되고 있다.

아걸과 허도기가 불가분한 관계로 연결되어 있으니 아걸을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점은 아걸도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

그는 당연히 전보영이 자신의 행동을 관찰할 것으로 생각한다. 아니, 본인이 스스로 온갖 정보를 전보영에 전달해 준다. 현장에서 직접 파악한 사실들을 전해 온다.

그런 아걸이 경고를 보내왔다.

이제 그만 물러서라!

야구와 흑화방이 당하고 서리형개가 쓰러지기 직전에 모든 활동을 접으라는 경고를 보내왔다.

아걸의 경고는 전보영에만 보내진 것이 아니다. 야구나 흑화방에도 보내졌을 것이다. 어쩌면 사형제들에게도…… 그들은 아닐까? 경고를 보낼 만큼 약한 자들이 아니니.

이제 곧 전보영에도 풍파가 닥칠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어떻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나.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은 허도기로부터 숨으라는 말인데. 후후! 전보영은 그럴 수 없다네.’

“오음산에 운집한 사람들은?”

탁호가 창밖 하늘에 눈길을 고정한 채 물었다.

“아직.”

미진한 대답이 들려왔다.

오음산에서 흑화방을 멸절시킨 자들이 있다. 한데 그들이 누군지 파악해내지 못하고 있다. 마유 마인일 것으로 생각하지만 단정하지는 못한다.

“우리한테도 폭풍이 몰아칠 거야. 준비하고.”

“넷! 단단히 경계하고 있습니다.”

일부사가 말했다.

저벅! 저벅!

탁호는 뇌옥을 걸었다.

뇌옥은 죄지은 사람을 가두는 곳이다. 하지만 전보영 뇌옥은 성격이 조금 다르다. 죄를 지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갇힌다. 아니면 정적이거나.

죄를 짓지 않았어도 조사할 게 있다고 생각되면 일단 가둬 놓는다.

이곳에서는 살인이나 도둑질 같은 악행을 저지른 죄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거의 역모나 불충…… 한 마디로 나라 뜻에 거슬리는 사람들이 갇힌다.

저벅! 저벅!

탁호는 뇌옥 안쪽으로 들어섰다.

안에는 여섯 명이 갇혀 있다. 모두 제각각 죄명은 붙어 있다. 전보영 뇌옥에 맞지 않게 특수강도, 특수절도, 다발 사기 등등의 죄명이 붙어 있다.

탁호가 들어서자 날카로운 예기가 칼날처럼 날아왔다.

“오늘은 안색이 왜 이래? 똥 씹은 표정이잖아?”

여섯 명 중 키 작은 자가 말했다.

“서리…… 형개가 죽었다.”

“큿큿! 그놈도 죽네. 아걸?”

“마유 마인.”

“…….”

순간, 싸늘한 정적이 흘렀다.

뇌옥에 갇힌 무인들의 눈빛에 살기가 맴돌았다. 매우 강렬한 살기라서 소름이 쫙 끼쳤다.

“마유…… 마인이…… 서리형개를?”

여섯 명 중 제일 차분한 나통조차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걸이 하루 종일 꼼짝하지 않고 명복을 빈 모양이야. 내일은 움직이겠지.”

탁호가 말했다.

“탁호, 우릴 언제까지 잡아둘 생각이냐?”

키 작은 자가 눈빛을 번들거리며 물었다.

“아직은. 용서들 하게.”

“특수강도. 내가 무슨 강도 짓을 했는지 말해 줄 수는 있고?”

“죄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것으로 바꿔 줌세. 너무 안달하지 마. 곧 나갈 때가 된 것 같아서…… 그걸 말해 주려고 왔어. 너무 서툴지 않아도 곧 나갈 것 같으니까.”

순간, 키 작은 사내…… 쌍겸의 눈빛이 확 변했다.

“지금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지금 아걸, 그놈에게 탈이 생긴다는 거지?”

“탈은 무슨. 아무런 징조도 없어. 단지 내 느낌이 그렇다는 거지.”

탁호가 고개를 내두르며 말했다.

이들 여섯 명…… 은거 무인들이 뇌옥에 머무는 데는 본인들의 뜻도 포함되어 있다.

아걸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 뇌옥에 갇혀 있는 것이다.

지금은 아걸이 마음대로 움직이도록 내버려 둔다. 자신들이 옆에 있어서 허도기의 표적이 된다면 괜히 아걸의 손발을 묶는 결과가 될지도 모른다.

에조리 월도의 달인 손승이 허도기의 일 검에 무너졌다.

손승은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했다. 칼을 뻗어내자마자 찰나 만에 나가떨어졌다.

그런 일이 계속 반복될 수 있다.

아걸은 자신들의 도움이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도와달라고 말해 올 것이다. 그때까지 뇌옥에서 지낸다. 다만 아걸의 행동은 예의 주시한다.

이것이 탁호와의 약속이다.

은거 무인 여섯 명은 뇌옥에 있으면서도 아걸의 움직임에 대해서 소상히 알았다. 그들이 얌전히 뇌옥에 갇혀 있는 조건으로 전보영이 소식을 전해 주었다.

탁호는 그 약속을 지켰다.

아걸에 대한 소식이라면 빼놓지 않고 전해 주었다.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알아야지, 정작 도움이 필요할 때 손길 하나라도 뻗어 줄 수 있지 않겠나.

“오음산에 있는 놈들이 마유 마인이지?”

황열이 물었다.

“아직은.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아.”

“도대체 전보영은 뭐 하는 곳이야. 도대체 아는 게 뭐야? 아무것도 모르잖아!”

“그러게. 내가 전보영을 영 잘못 이끌었나 봐. 요즘처럼 무기력하게 느껴진 적이 없어.”

탁호가 고개를 내둘렀다.

“그런 말을 듣자고 한 말이 아니잖아!”

황열이 버럭 일갈을 내질렀다.

“음! 오음산에 박혀 있는 놈들이 누군지 빨리 좀 파악해 주지? 그래야 얼마나 위험한지 알지.”

지당검 고사가 말했다.

“그러지. 오늘은 마음이 심란해서 한 번 와 봤어. 내일은 다시 일부사가 올 걸세.”

탁호가 뒤돌아서 걸었다.

“나가자!”

쌍겸이 말했다.

“그렇지. 나가야겠지.”

쾌검의 달인, 나통이 호응했다.

허도기가 일거에 아걸 주변을 싹 쓸어버렸다. 아걸이 외톨이가 되었다.

허도기가 무엇 때문에 야천을 장악하고 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전보영도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허도기는 아걸을 죽이고자 하면서도 시간을 주고 있다.

일부러 나서서 공격하지는 않는다. 이번 오음산 일만 해도 그렇다. 아걸이 나서서 음산사마와 성검문 사건을 연결 짓지만 않았어도 허도기는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그가 나섰다고 판단하기는 쉽지 않지만.

모든 게 불확실하다. 하지만 이제 곧 복잡하게 얽힌 일들이 정리될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다 짐작할 수가 있다. 아니, 이미 정리가 시작되고 있다.

아걸이 도움을 청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도와줄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다.

“열지.”

나통이 말했다.

“알았어.”

변장술에 능한 한항이 품에서 작은 철사를 꺼냈다. 그리고 몇 번의 손놀림만으로 발에 채워진 족쇄를 풀어냈다.

스읏!

손목 수갑도 풀었다.

그는 빠르게 움직였다.

철컥! 철컥!

그들을 옭아매고 있던 족쇄는 처음부터 속박하는 도구가 될 수 없었다.

한항은 변장술의 달인이면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자물쇠를 열 수 있는 도둑이다. 천하에 깔린 뇌옥 구조를 빤히 알고 있어서 오히려 적을 피하는 대피처로 이용하기도 한다.

철컥!

옥사 문도 열렸다.

그들은 서둘지 않았다. 여유 있게 몸을 추스르면서 떠날 채비를 했다. 떠날 채비라고 별것도 없다. 그들은 뇌옥에서 자유롭게 지냈다. 책도 읽었고, 다도도 즐겼으며, 글도 썼다.

그런 것 중에는 챙길 것도 있는 법이다.

“탈출할 모양입니다.”

“그런가.”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누가 막아. 저 사람들을.”

“저들이 싸움에 능한 것은 알지만, 저희 전보영도 만만치 않습니다. 명만 내리시면…….”

“아니, 아니. 저들은 아걸과 함께 남만족 전사들과 부딪친 진짜 전사들이야. 목숨 걸고 싸우는 게 뭔지 아는 사람들이라는 거지. 저들과 부딪치면 전보영 태반이 죽을 거야. 일부사, 그만한 판단이 들지 않지?”

“그렇게까지는…….”

탁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막을 이유도 없고, 권리도 없어. 가겠다고 하면 보내 줘야지. 저 사람들 병기는?”

“병기고에 있습니다.”

“병기고에 불을 밝혀놔. 먼 길을 가는데 병기는 가지고 가야지.”

“알겠습니다.”

일부사가 대답하고는 총총히 사라져갔다.

탁호는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쳐다봤다.

일부사는 아직도 눈치를 못 채고 있다. 자신이 저들을 움직였다는 사실을.

저들이 세상으로 나가려는 것은 온전히 자신 때문이다.

서리형개가 죽은 일을 말해 주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그중에 가장 격정적인 방법으로 말해주었다. 충격이 강하게 들도록 말했다.

서리형개 같은 사람도 죽었다!

야구가 시신으로 발견된 일이나, 흑화방이 당한 일, 흑수혈검이 쓰러진 일은 아무리 심하게 말해도 충격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누구에게라도 죽을 수 있다.

서리형개는 다르다. 서리형개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은 몇몇 사람으로 딱 정해져 있다. 아걸이라든가 서리가헌 혹은 허도기 같은 사람들만 죽일 수 있다.

소축십검만 하더라도 서리형개의 적수가 되지 않는다.

그런 초강자가 겨우 마유 마인에게 무너졌다. 아걸도 허도기에게 닿기 전에 무너질 수 있다. 마유 마인은 초강자도 죽일 수 있을 만큼 강하다.

그러자 저들이 당황한 것이다.

저들 머릿속에는 한시라도 빨리 아걸 곁으로 가야겠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을 것이다.

그 점은 탁호도 마찬가지다.

자신 역시 서리형개가 무너진 순간부터 크게 동요하고 있다.

침착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정도 일에 흔들려서야 하고 웃으면서도 마음이 마구 요동치고 있다. 모든 일이 허도기 뜻대로 슬슬 풀려나가는 것 같아서 불안하다.

지금까지도 전보영은 허도기의 의도를 전혀 감지해 내지 못했다.

허도기는 왜 야천을 장악했나, 마유 마인들과는 어떤 관계인가, 그들을 왜 끌어냈으며 얼마나 끌어냈는가, 왜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나.

어떤 사실도 알아내지 못했다.

막연하게 마유 무인이 대략 삼십여 명 정도 무림에 나왔다는 정도만 안다.

그것도 전보영이 스스로 알아낸 것이 아니다. 아걸이 소식을 전해 왔기 때문에 알아낸 것이다.

허도기는 철저하게 물 밑에서 움직이고 있다. 그러니 불안한 것이다. 무슨 일인가를 벌이고 있는데, 어떤 일인지 전혀 알지 못하니 답답해진다.

은거 무인이 아걸 곁으로 가고자 하는 것은 자신이 아걸 곁에 있어 달라고 무언으로 말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불안한 마음이 저들에게 전달됐다고나 할까?

“후우!”

탁호는 한숨을 크게 쉬었다.

일부사가 자신의 의중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것처럼, 자신도 대장군의 의중을 알지 못한다. 일부사는 자신 만큼 안목이 넓지 않다. 그래서 자신이 보는 것을 보지 못한다. 자신도 그렇다. 안목이 넓지 않아서 대장군이 보는 것을 보지 못한다.

대장군은 왜 허도기를 내버려 두고 있나.

나라에 우환이 될 자라면 지금이라도 쳐버리는 게 낫지 않나. 본인이 하기 힘들면 황상에게 고할 수도 있는 일인데. 허도기가 역심을 품었다는 증거는 차고 넘치니까.

“후우! 장군이 알아서 하시겠지.”

탁호는 달빛에 답답한 마음을 실어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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