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2화. 第七十五章 암중사(暗中事) (2)
츠읏!
나비의 날갯짓처럼 가벼운 소리가 울렸다. 지나가는 바람이 문풍지를 두들기는 소리보다 미약해서 신경이 예민해도 무심히 지나칠 수밖에 없는 소리였다.
그때, 묵직한 음성이 조용하게 울렸다.
“무림에 내보냈더니 도둑고양이가 되어서 돌아왔구나. 강검은 장애를 두려워하지 않아.”
도둑고양이가 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이곳이 보통 곳이라야 말이죠. 경계가…… 강검이 침입자를 두려워해서야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쓸데없는 경계는 절반으로 줄이시는 게 어떠실지.”
허도기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색 바랜 장삼을 입었다. 피부는 구릿빛으로 그을렸고, 턱에는 거친 수염이 가득 자랐다.
야생 늑대의 모습이다.
그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진한 살기가 푹푹 풍긴다. 허도기를 매우 사나운 눈으로 쳐다봤다. 지금 당장 검을 뽑아서 달려들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다.
허도기는 읽고 있던 서신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등을 의자에 깊숙이 묻으며 사내를 쳐다봤다.
“시킨 일은?”
“이미 보고를 받으셨을 텐데요.”
“건방진! 네 입으로 보고해야지?”
“끝냈습니다.”
사내가 허도기를 쏘아보며 말했다.
“잘했군. 생각보다 더 잘했어. 그런데 왜 왔어? 일을 끝내면 자유라고 했을 텐데?”
“그래서 찾아왔습니다.”
“내 검을 보려고?”
“안 될 것 없지 않겠습니까.”
허도기는 잠시 야생 늑대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고개를 좌우로 가로저었다.
“일홀도를 알지?”
“후후! 일홀도부터 꺾고 오라는 말씀입니까?”
“방종 아니면 오만. 눈에 보이는 것이 없거나, 아니면 아예 장님이 되어 버렸거나. 강검은 얻었으나 이게…….”
허도기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들겼다.
야생 늑대에게 머리가 텅 비었다고 놀리는 듯했다. 하지만 야생 늑대는 대꾸하지 못했다. 아니, 대꾸하지 않았다. 허도기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는 듯.
허도기 앞에 나타난 사람은 초가평이다.
무림을 종횡하면서 사부의 명을 이행했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돌아왔다.
밀명을 이행하면 소축십검에서 적(籍)을 빼 주기로 했다.
성검문 입장에서는 파문이다. 하지만 이는 초가평이 원하는 바다. 본인 스스로 적을 빼달라고 요구했다. 아니, 적을 빼주지 않아도 무방하다. 이제 그는 성검문 이름으로 검을 들지 않는다. 사부 말을 듣지 않는다.
초가평은 자신이 얻은 파문의 대가로 제일 먼저 허도기와 겨루고자 찾아온 것이다.
허도기가 의자에 몸을 깊이 묻은 채 말했다.
“지금 네 무공으로는 능히 일홀도와 견줄 만하다. 너는 검을 쓰니 일홀검이라고 해야 하나? 어떤 일홀도와 부딪혀도 자웅을 결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내 앞에 있는 검은 일홀도가 아닙니다. 조명십해. 지상 최강의 검을…….”
허도기가 초가평의 말을 끊고 말했다.
“서리가헌이나 서리형개, 아걸. 누가 되었든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일초단검을 보여 주시죠.”
초가평이 허도기의 별호를 입에 담았다.
“…….”
허도기가 묵묵히 초가평을 쳐다봤다.
“피할 수 없는 승부로 몰아넣을 수도 있었습니다. 제가 혈무대에 서면 사부께서 나올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오진북이 나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실 테니까. 후후후! 애꿎은 희생은 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도 오제(五弟)를 베고 싶지는 않고.”
초가평이 검을 꽉 움켜잡았다.
그래도 허도기는 일어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알아듣게 말하는데도 네 놈은 여전히 귓구멍이 막혀 있구나. 네 검이 아걸이나 서리가헌, 서리형개 수준이라고 말했거늘. 쯧! 한심한…… 손은 일홀인데, 머리는 형편없어.”
“…….”
“일홀도가 무엇이냐? 백만 명 중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칼이다. 그게 일홀도야. 그런 식으로 말하면 내 검은 섬(纖)이다. 일섬검. 일억 명 중 한 명만 얻을 수 있는 검. 오직 하늘이 내린 천재만 얻는 검 중 검.”
“말씀이 깁니다.”
“그러냐? 후후! 지금 나와 싸워도 좋다. 받아주지. 하지만 지금 내 검을 받으면, 너는 죽을 것이야.”
스읏!
허도기가 붓을 들었다. 마치 서신에 글을 쓰려는 듯.
하나 이 순간 초가평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깜짝 놀라서 뒤로 일장이나 쭈욱 물러섰다.
초가평은 두 무릎을 낮게 구부린 상태였다. 허리도 깊게 숙였다. 손은 이미 검을 뽑아내고 있었다. 검신이 반이나 드러나서 햇살에 반짝였다.
허도기는 단지 붓을 쥐었을 뿐인데, 초가평은 공격을 느꼈다. 맞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뒤로 물러났다.
“후후! 눈을 멀지 않았구나. 오만이었군.”
허도기가 웃었다.
초가평은 신형을 덜덜 떨었다. 하지만 무너지듯 한쪽 무릎을 꿇어 버렸다.
쿵!
무릎이 청석 바닥에 거칠게 찧었다.
초가평은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하지만 곧 검을 집어넣고 일어섰다.
철컥!
검이 검집으로 들어갔다.
“일홀도를 꺾고……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허도기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열 놈 중 한 놈은 살아남아야지. 지금 셋이 살았다. 난 네게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길을 열어 주었다. 그걸 마다하겠다면 할 수 없는 일이고. 내가 너한테 어떤 기회를 주었는지는 나중에 깨닫게 될 것이다.”
슷!
허도기가 물러가라는 듯 손짓을 했다.
그는 처음부터 초가평을 적수로 여기지 않았다.
초가평은 소림사 방장 혜문대사, 청성파 장문인 태운진인, 모용세가 가주 모용화, 하북신창가 가주 정문위 등등 무림 명숙을 무려 열두 명이나 죽였다.
그들 모두를 일 검에 죽였다고 해도 일검수혼이라는 별호를 얻었다. 그야말로 초절정 고수다. 하지만 그런 초가평을 눈 아래로 깔아 보았다.
그리고 초가평은 허도기에게 검을 겨누지 못했다.
죽음을 각오하고 찾아왔으면서도 끝내 검을 뽑지 못했다.
쉬이이잇!
신형을 날려서 사라져가는 소리가 무척 쓸쓸하게 들렸다.
“사령.”
허도기는 초가평이 물러가자 즉시 명을 내렸다.
“네.”
어둠 속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그는 초가평이 나타날 때도 있었다. 언제나 허도기 주위를 떠나지 않았으니까. 물론 초가평도 사령을 눈치챘다. 그러면서도 말하지 않았다.
초가평도 사령은 한 수 아래로 봤다. 자신의 적수로 여기지 않았다. 물론 사령은 이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 역시 초가평을 쓰러트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허도기가 말했다.
“다녀와라.”
“네.”
사령이 대답했다.
하지만 즉시 움직이지 않았다. 사령은 허도기에게 할 말이 남아있는 듯이 보였다.
“너도 내 검을 보고 싶은 것이냐?”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줄 압니다. 다만…… 이제 슬슬 마유령(魔乳令)을 주실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서.”
“요즘 건방진 말들이 많이 들리는 걸 보면 죽을 놈들이 꽤나 생긴 것 같군.”
“다녀오겠습니다.”
사령이 즉시 움직였다.
황상에게는 청무군(靑武軍)이라는 친위대가 삼만 명이나 있다. 하나같이 무공이 뛰어난 일당백의 정예군이다.
이들 친위병력이 황궁을 물 샐 틈 없이 감싸고 있다.
누군가가 허락 없이 황궁 안으로 스며든다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행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궁을 자유자재로 들락거릴 수 있는 사람이 몇 있다.
그중에 한 명이 사령이다.
사령에게 삼만 명의 눈초리는 웃어넘길 수 있는 정도다.
그는 황궁 깊숙이 내시부(內侍府)까지 숨어들었다. 그리고 정삼품 당상관인 상온(尙醞)을 만났다.
“변동 사항은 없습니까?”
“없네.”
“열두 명이 죽었습니다. 전혀 이상 없습니까?”
“전혀.”
“혹시 못 보신 건 아닙니까?”
“네놈이 감히!”
어둠 속에서 상온이 날카로운 소리로 사령을 꾸짖었다.
“죄송합니다. 워낙 심각한 일이라서.”
사령은 즉시 머리를 숙였다.
“가서 전하시게. 우리가 잘못 짚었거나, 아니면 호황위가 귀신 집단이거나. 나는 헛소문이라는 쪽에 무게를 두고 싶네만, 공부께서 워낙 집착하시니.”
“알겠습니다.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사령이 내시 상온을 향해 두 손 모아 읍했다.
초가평이 죽인 무림 명숙 열두 명은 호황위로 추정된다.
잘못 파악했을 수도 있지만, 오랜 세월을 두고 찾은 사람들이 그들이다. 호황위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호황위와 연결된 자들인 것만은 틀림없다.
초가평을 시켜서 그들을 죽였다.
사인은 알아볼 수 없다. 초가평이 수련한 일사검광은 단검(單劍)이다. 단 일 초에 승부를 결하는 단결검이다. 이런 단검의 특징 중 하나가 사인을 알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초가평에게 내린 명령이다. 특별히 일사검광을 수련시킨 목적이기도 하다.
소림방장, 무당파 장문인, 모용세가의 가주…… 이런 거장들을 죽이면서 단 일 초만 쓰라고 했다.
이들 열두 명은 능히 아걸의 일홀도에 맞설 수 있는 강자다.
일홀도와 진검 승부를 벌이면 승부가 어떻게 결정될지 알 수 없는 초강자들이다.
초가평도 전력을 다해야만 했다. 어쩌면 기습까지 노렸을지도 모른다. 그에게 다가오면서 보인 신법도 저들을 공격하면서 얻은 결과일 것이다.
이들이 모두 죽었는데, 황궁이 매우 조용하다.
‘너무 조용해. 이것도 문제야. 숨죽이고 틈을 보는 것 같단 말이지. 후후! 조금 더 관찰해야겠어.’
허도기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무림은 또 황궁은 모두 아걸을 주시하고 있다. 마유 마인들이 야천을 건드렸기 때문에 야천도 주시하고 있다.
모든 사람의 관심 대상은 야천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는 점이다.
그래서 모두 아걸과 야천만 주시한다.
특히 아걸이 오음산으로 찾아간다 어쩐다 하는 덕에 아걸을 향한 관심은 더욱 짙어졌다.
이 일이 허도기에게 틈을 벌려 주었다. 아걸과 야천 덕분에 생각보다는 허도기를 주시하지 않는다. 대장군도 그렇고, 전보영도 그렇고…… 허도기가 무슨 일을 벌일까 주시하고 있지만, 정작 보는 곳은 야천이다.
허도기는 보지 않고 있다.
허도기는 이 기회에 호황위를 쓸어버릴 생각이었다.
제일 목표가 호황위다.
한데 호황위의 발끝도 찾아내지 못했다. 상온 말대로 호황위의 맥이 끊겼거나, 소문으로만 전해지는 유령 집단이거나…… 아니면 더 무서운 자들일 것이다.
‘이렇게 되면 호황위부터 친다는 계획은 무너진 거고. 어쩔 수 없지. 그러면…….’
허도기는 책상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붉은 옥으로 만든 옥패를 꺼내서 사령에게 던졌다.
사령은 옥패가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즉시 받았다. 두 손으로 매우 공손하게. 그리고 옥패를 하늘 높이 받들어 올리면서 즉시 무릎을 꿇었다.
“마, 마유령을……!”
사령의 음성이 덜덜 떨려 나왔다.
“너에게 마지막 명령을 내리겠다.”
“받듭니다.”
“아걸을 제거해라.”
“받듭니다.”
“조위 대장군을 제거해라.”
“받듭니다.”
“장군부를 무너트릴 필요는 없어. 조장군만 제거하면 된다. 욕심부리지 마라.”
“네. 받듭니다.”
“탁호와 삼부사, 칠청사를 제거해라. 전보영을 재기불능 상태로 만들면 더 좋고.”
“받듭니다.”
“이 세 가지 명을 이루면 십 년의 자유를 준다. 마유가 성검문이나 나를 건드리지 않는 한, 십 년 동안 무엇을 하든 너희를 건드리지 않겠다.”
“감사합니다. 마유령에 대고 맹세해 주십시오.”
“마유령에 맹세한다.”
“감사합니다.”
사령이 머리를 깊이 숙였다.
마유 마인들이 움직이는 한, 호황위는 움직이지 않는다. 대장군도 전보영도 움직이지 않는다. 허도기라는 사람이 움직이지 않는 한은 누구도 움직이지 않는다.
두 번째 계획 속에는 사령에게 내린 명령 외에 또 다른 일도 포함되어 있다.
호황위가 숨어 있지만, 반드시 끌어내야 한다.
야천이 그 역할을 해 줄 것이다. 그러자면 일기장군과 적위군장을 대기시켜 놔야 한다.
일기장군에게는 삼만 정병이 있다. 그들이 언제든지 출격할 수 있게끔 대기시켜 놓는다. 적위군장은 적위군을 오백 명으로 키워 놨다. 그들은 언제든 황궁을 들이칠 수 있어야 한다.
사령이 대장군을 죽이든 죽이지 못하든 상관없다. 사령이 대장군을 죽이지 못하면 야천이 죽인다. 이미 야천에 그만한 바탕을 깔아 놨다.
이들만 제거하면 바로 일기장군과 적위군장이 움직인다.
‘두고 보면 알겠지. 호황위가 언제까지 숨죽이고 있을지.’
허도기는 피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