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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376화 (376/600)

#376화. 第七十六章 야심(野心) (1)

“아걸이 오음산으로 들어갔습니다.”

“뒤따르지는 못했지?”

“네. 워낙 경계가 심해서.”

“됐어. 너무 무리할 건 없어. 그쪽은 어차피 우리 일도 아니고, 우리는 허도기만 주시하면 되니까.”

“네.”

“성검문 쪽은 잘 되어가나?”

“일단 밀집 포위망을 형성해 놨습니다.”

“그런다고 허도기가 모를까.”

“최대한 저희와 관계없는 사람들로.”

일부사가 자신 있게 말했다.

전보영과 전혀 관계없는 민간인들이 초도성에 들어가 있다. 그들이 성검문 주위에 포진해서 허도기의 일거수일투족을 면밀하게 감시하고 있다.

물론 그들은 간자 수련을 쌓지 않았다.

무인도 아니고 간자도 아닌 사람들이 천하제일무인 허도기를 감시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 그래서 어떠한 행동도 하지 말라고 지시해 놨다.

그저 일상생활을 하면서 성검문을 지켜볼 뿐이다. 아니, 본다는 의식도 가지면 안 된다. 우연히 눈에 띄면 말하는 것이고, 전혀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으면 말하지 않으면 된다.

이런 식의 탐문이니 많은 인원이 필요하다.

두어 명 정도 투입해 놓고, 무엇인가를 알아 오라고 하면 도둑놈 심보다. 적어도 백 명, 천 명 정도를 깔아 놓아야 한두 개라고 얻어걸릴 수 있다.

성검문 주위에 밀집 포위망을 형성해 놓으면 누군가의 눈에는 뭐라도 보이게 되어 있다.

물론 이런 포위망 정도로 허도기를 감시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위험부담과 관계없이 모든 것을 시행했다.

“조만간 허도기가 움직일 거니까 잘 감시하고.”

“네.”

“난 이만 퇴청해야겠어.”

탁호가 일어섰다.

“아, 네. 그러잖아도 오늘은 제발 좀 퇴청하시라고 말씀드리려고 했는데요.”

“그런가?”

“하하! 제가 공연한 말씀을 올릴 뻔했습니다.”

“엎드리면 코 닿을 거리인데 굳이 가서 뭐 한다고. 여기 있으나 관사에 있으나 똑같아.”

“그래도 그게 아닙니다. 장소가 달라지면 마음도 달라지는 법이죠. 오늘은 제발 두 다리 쭉 뻗고 편히 주무십시오. 여기서는 새우잠밖에 더 주무십니까.”

“그래. 그렇지 않아도 몸도 찌뿌둥하고. 오늘은 목욕도 좀 하고 푹 쉴 생각이야.”

탁호가 일어섰다.

지금쯤 아걸은 피나는 싸움을 벌이고 있을 것이다. 허도기도 분주하게 움직일 게 뻔하다.

한가하게 목욕이나 하고 있을 틈이 없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주위 변화를 예민하게 읽어내야 한다. 기선을 빼앗기면 곤란하니 예의 주시해야 한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 하루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하루를 푹 쉬려고 한다.

’그래. 오늘 하루 쉬고.’

아걸이 오음산에서 피를 흘리고 나면 반드시 무슨 일인가는 벌어진다. 허도기가 움직인다.

“자네도 오늘은 들어가.”

탁호가 집무실을 나서며 말했다.

저벅! 저벅! 저벅!

탁호는 익숙한 길을 걸어갔다. 너무 익숙한 길이라서 이제는 아예 눈 감고도 걸어갈 수가 있다.

아무도 없는 한적한 길.

뒷짐을 지고 걷다 보면 저절로 사색이 된다.

허도기 같은 사람이 야천을 얻어서 뭐에다 쓸까? 야천으로 뭘 하려는 것일까?

탁호는 뒷짐을 지고 숲길을 걸으면서 허도기가 벌인 일을 곰곰이 생각했다.

허도기가 무림에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는 곧 돌아온다. 그리고 그는 그냥 돌아오지 않는다. 피 묻은 칼을 들고 나타난다.

그가 돌아왔을 때는 자신을 비롯해서 그에게 칼을 들었던 반대파 대부분이 숙청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 일을 방비하자면 이쪽에서 먼저 공격하는 것이 상책인데…… 허도기를 어떻게 공격할까? 이대로 지낼 수는 없을 거 같은데. 이 싸움은 어느 한쪽이 쓰러져야 끝나는데.

그때다. 탁호 앞에 검은 그림자가 살며시 내려섰다.

“피하셔야겠습니다.”

검은 그림자가 다짜고짜 말했다.

탁호는 눈만 끔뻑거렸다.

“암습입니다.”

“암습?”

탁호는 얼떨떨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암습에 해당하는 어떤 기미도 읽지 못하겠다.

“암습이라니?”

탁호가 믿지 못하고 되물었다.

“시간이 급합니다. 어서 피하십시오.”

검은 그림자가 다급하게 말했다.

“감히 누가 전보영을…….”

탁호는 무심히 말하다가 문득 허도기를 떠올렸다.

‘아뿔싸! 선수를!’

전보영에서 습격당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예전에도 크게 습격을 당한 적이 있다.

그런 일이 또 벌어지나? 허도기가 같은 방법을 두 번 쓰는 건가?

그렇다면 허도기는 실수한 것이다. 그날 이후, 전보영의 경계가 대폭 강화되었다.

탁호도 주위에 호위 무인 다섯 명을 두고 있다. 예전에는 전보영 안에서는 호위를 두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호위가 있다.

“누군진 모르지만, 되잡으면 좋겠는데.”

“안 됩니다.”

검은 그림자가 즉시 말했다.

“저들은 저희 능력을 뛰어넘습니다.”

“그래?”

탁호가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때,

“죄송합니다. 사정이 급해서.”

스읏!

검은 그림자가 재빨리 달려들어 탁호의 허리춤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즉시 신형을 띄었다.

“으악!”

“아아악!”

탁호는 어렴풋이 들려오는 비명을 들었다.

이제는 암습당했다는 말을 믿겠다. 정말로 암습을 당했다. 호위 무인들은 진작 알았는데, 그는 이제야 들었다.

“암습자가 누구일 것 같나?”

호위 무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말하는 것보다는 달리는 데 치중한다. 모든 행동과 감각을 적에 대한 대비로 채운다. 당장은 몸을 피하는 것 외에는 일절 생각하지 않는다.

다다다닥!

좌우에서 거센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호위 무인 네 명이 좌우에서 같이 따라붙고 있다.

“천호, 갈위! 뒤를 막아!”

호위 무인 중 두 명이 즉시 떨어져 나갔다.

쒜에엑! 쒜에엑!

탁호를 짊어진 호위 무인은 두 명이 떨어져 나간 후에도 발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상당히…… 급하네.’

탁호는 말을 걸지 않았다.

직접 말을 듣지 않아도 호위 무인의 긴장감이 피부를 통해서 전달되어 왔다.

휘이이익!

무인이 관사의 담을 뛰어넘었다.

“저희는 여기서!”

나머지 호위 무인 두 명이 한 명은 담장 뒤로, 또 한 명은 지붕 위로 올라섰다.

휘이이익!

호위 무인은 계속 치달려서 뒷담 쪽 우물 앞에 섰다.

“빠져나가십시오.”

탁호가 눈을 부릅떴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네. 저희는 영주님을 지켜드리지 못합니다. 저놈들, 말도 안 되게 강합니다. 저희는 살지 못합니다. 영주님도 서둘지 않으시면 장담할 수 없습니다.”

호위 무인이 말을 하다가 잠시 바깥 동정에 귀를 기울였다.

곧 무인이 얼굴이 참혹할 정도로 일그러졌다.

“천호와 갈위가 방금 당했습니다.”

“뭐라고!”

“어서!”

호위 무인이 재촉했다.

탁호는 호위 무인의 얼굴을 봤다. 결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미안하다.”

“어서!”

호위 무인이 재차 재촉하자, 탁호는 우물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그리고 우물 안에 놓인 줄사다리를 타고 밑으로 내려갔다.

우물에는 비밀 통로가 뚫려 있다. 이것 역시 그때 암습을 받고 난 후에 만든 비밀 통로다. 이쪽으로 해서 밖으로 나가면 전보영을 빠져나갈 수 있다.

이런 통로를 만들 때는 설마 쓸 일이 있겠나 싶었는데, 만든 지 일 년도 되지 않아서 바로 쓰고 있다.

탁호가 우물 밑으로 내려서자, 줄사다리가 탁! 끊어져서 굴러떨어졌다. 호위 무인이 탁호를 지켜보고 있다가 안전하게 내려선 것을 확인한 후에 끊어 버린 것이다.

쉬이이잇!

호위 무인은 온다 간다 말도 없이 사라져갔다.

저벅! 저벅!

탁호는 어두운 통로를 빠르게 걸었다.

허도기가 또다시 선수를 쳤다. 자신이 아걸을 보고 있는 동안, 심장을 찔러 왔다.

‘실수야.’

탁호는 탄식했다.

자신의 모든 관심은 허도기를 향하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진실은 아걸을 보고 있었다. 아걸의 승부가 끝난 후에 허도기가 움직일 것이라고 믿었다.

반대로 말하면 아걸의 승부가 끝나기 전에는 허도기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늘도 그래서 퇴청하던 참이지 않나.

그런데 허도기가 한발 빠르게 움직였다.

탁호는 우물 밑 통로로 걸어가면서 허도기를 떠올렸다.

호위 무인들은 장군부에서 조위 장군이 보내온 정예 무인들이다. 저들이 이렇게 쉽게 당할 정도라면 상당히 강한 자가 달려들었다. 아마도 마유 마인들일 것이다.

마유 마인은 아걸에게 집중하기도 벅찰 텐데, 자신에게까지 달려들 여력이 있나? 왜 이런 자들을 지금까지 파악하지 못했나. 도대체 뭘 하고 있었나.

탁호는 얼굴빛을 굳힌 채 통로를 빠져나갔다.

텅!

뚜껑을 열고 암로 밖으로 나왔다.

우물 밑 암로는 전보영에서 이 리 떨어진 개울가로 향한다. 혹여 개가 따라올 것을 염려해서 개울가로 길을 빼 놨다. 이곳에서 개울을 따라 밑으로 내려간다.

그런데…… 탁호는 밖으로 나오자마자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하나, 둘, 셋…… 여섯! 모두 여섯 명!

밖에는 복면을 쓴 자들이 늘어서 있다.

하나같이 딱딱하고 강직해 보인다. 마치 철갑 기마병 여섯 명과 마주 선 느낌이다.

스릉!

그들이 일제히 검을 뽑았다.

여섯 명이 검을 뽑는데 한 명이 뽑은 것처럼 일사불란하다.

‘횡액을 피하기는 어렵겠군.’

탁호는 삶에 미련을 버렸다.

비밀 통로 출입구를 알고 미리 와서 지키고 서 있다.

전보영 안에 간자가 있는 것이다. 그것도 매우 가까운 곳에 적의 눈이 있다. 자신이 진실로 믿는 삼부, 칠청사 수장 중에 허도기의 수족이 있다.

그들을 수장에 앉히기 전에 두 번, 세 번 점검했는데 어떻게 허도기 수족을 놓쳤을까? 그런 자를 옆에 두고 있었으니 맥없이 당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너희만 온 거냐? 아니면 말 섞을 자라도 있나?”

탁호가 말했다.

복면인들은 말을 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이들이 야천에 나타난 마유 마인들이다면 자신에게도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순간, 다짜고짜 복면인 두 명이 날아왔다.

쒯! 쒜에엑! 파아앗! 퍼억!

그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탁호의 옆구리와 가슴에 검을 꽂아 넣었다.

“크윽!”

탁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들은 철저한 살인검이다. 상대방이 누군지, 왜 검을 쓰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오직 목적을 이루는 것, 상대방을 죽이는 데만 관심이 있다.

지시를 내리는 자가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면 죽이고, 살리라면 살린다. 오직 그런 행동만 한다.

‘앗! 아…… 장군!’

어쩌면 장군도?

탁호는 불현듯 조위 장군을 떠올렸다.

장군과의 연락을 취해야 하는데…….

쒜에엑! 퍽퍽!

다시 검 두 자루가 몸을 관통했다.

‘이런 느낌이군.’

탁호는 그대로 무너졌다.

더 이상 생각을 이어갈 정도로 여유 있는 검이 아니다. 복면인들의 검은 정확하고 날카로웠다.

검 네 자루가 정확히 요혈만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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