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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377화 (377/600)

#377화. 第七十六章 야심(野心) (2)

“하악!”

아걸은 큰 숨을 토해 내며 눈을 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인독화에 중독되어서 마구 뛰던 생각이 났다.

‘정말 독했어.’

아걸은 인독화를 생각하자 부르르 치가 떨렸다.

인독화는 독성이 정말 강했다. 심장을 쥐어짜고 피가 거꾸로 치솟는 듯한 고통이 쉴새 없이 몰려왔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심장을 파내 버리고 싶었다.

아걸은 그 생각을 하면서 망연히 하늘을 쳐다봤다.

자신은 어딘지 알 수 없는 수풀 속에 누워 있다.

저들이 자신을 꽤 찾았을 텐데, 이런 곳에 누워 있는 것을 보면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 같다.

저들이 발견하지 못하는 장소.

상당히 깊은 산속이거나 아니면 사람 발길이 닿지 못하는 험지일 것이다.

‘용케도 이런 곳을 찾아왔군. 후후!’

아걸은 쓴웃음을 흘렸다.

마유 마인들이 모르는 것이 있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모르는 것이 있다.

오직 한 사람 아삼만 아는 사실이 있다.

할배가 자신을 끌고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일 것 같은가? 무공을 습득시키는 일? 일홀도를 찾게 만드는 일? 천만에! 모두 아니다.

할배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독을 먹이는 일이다.

가벼운 독에서부터 지독한 독까지 계속해서 독을 먹였다. 웬만한 독쯤은 가볍게 소화해 낼 정도로 면역력이 강한 인간으로 키우고자 했다.

물론 할배 혼자만의 지식으로는 어림도 없다. 할배도 독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독에 면역력을 키운다고 자칫 엉뚱한 독초라도 먹였다가는 당장 절명한다. 설혹 독에 철천지 원한이 있다고 해도 그런 식으로 면역력을 키우지는 않는다.

할배는 십 년에 걸쳐서 독천십이연공법(毒天十二練功法)에 맞춰서 연공을 시켰다.

독공 수련법이다.

하지만 독을 먹이는 것 외에 다른 부분은 일절 가르치지 않았다.

약초 몇 개, 독초 몇 개 정도 사용하는, 기본적인 상식에 해당하는 부분은 가르쳐 주었지만 독공이라는 세계에 깊게 들어가는 것은 차단했다.

아걸은 단순히 강한 자만 되는 것이 아니다. 일홀도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

일홀도의 소유자는 칼 외에 다른 잡다한 지식은 필요가 없다.

독공은 일홀도를 얻는 데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다. 다른 공부도 마찬가지다. 본류로 가는 것을 방해하는 지류(支流)는 어떤 것이든 방해가 된다.

누군가와 싸우거나 죽일 때는 항시 손에 칼이 들려 있어야 한다.

설혹 칼로 이길 수 없는 상대를 만나도 반드시 칼로 결과를 내야만 한다. 이기거나, 죽거나. 이길 수 없다면 죽어야 한다는 사실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일홀도라는 칼 자체가 그렇다.

그러면서도 독천십이연공법에 따라서 면역력을 키워 주었다.

사부가 삼인독에 죽었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사인은 허도기가 내지른 검이지만, 삼인독이 아니었다면 그런 식으로 쓰러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무인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게 암습이고, 암습 중에서도 가장 은밀한 것이 독이다.

그래서 독천십이연공법에 따라서 독에 대해 아주 내성이 강한 몸을 만들어 주었다.

이런 사실을 마유 마인들이 알았다면 인독화 대신에 훨씬 더 강력한 독을 사용했을 텐데. 하기야 인독화만 하더라도 해약이 없는 절대 독이지 않나.

인독화에 중독되고도 살아났다는 게 기적이다.

아걸은 할배, 아삼을 떠올렸다.

‘할배 덕분에 또 한 번 목숨을 연명했네. 내가 일홀도를 얻는다면 그 절반은 할배가 만들어 준 거야.’

아걸은 신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아직도 인독화의 중독 증세가 남아 있다.

아랫배가 찢어질 듯이 아프다. 머리도 무겁다.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목덜미가 뻐근하다. 두통도 심하고…… 전반적으로 몸 상태가 굉장히 안 좋다.

하지만 이 정도는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죽다가 살아났지 않은가.

‘이제 공격받을 건 다 받았고…… 내 차례인가?’

아걸은 당장 움직이지 않았다. 서둘 필요가 전혀 없다. 차분히 기다려서 몸이 괜찮다 싶을 때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걸은 눈을 감았다.

아직 결가부좌를 취할 정도도 아니다. 그 정도만 되어도 당장 움직였을 것이다.

아걸은 몸을 비스듬히 일으킨 상태에서 운공조식을 시작했다.

서서히 진기를 끌어올려 전신에 휘둘렸다. 서서히 남은 독기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 * *

다다닥! 다다다닥! 타앗!

칼이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여지없이 피가 튀었다.

휘릭!

서리가헌은 칼을 휘둘러서 피를 털어 냈다.

죽은 자는 누군가? 무인이 아니다. 일반인이다. 일반인이 검을 들고 나타나서 앞을 가로막는다.

죽여달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이들은 누군데 여기 와서 죽음을 맞아야 할까?

‘이놈들!’

서리가헌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무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놈들은 목적을 위해서 사람을 죽일 뿐 칼에 대한 예의 자체를 모르고 있다.

방금 죽은 자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이들을 이곳으로 내몬 자들에게 대한 분노다. 칼을 사용하면서 칼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들에 대한 증오다.

서리가헌은 이들을 용서할 생각이 없다.

무공을 수련했든 안 했든 상관없다. 검을 들고 앞을 가로막았으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는 거다. 그러면 어떤 식으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다.

저벅! 저벅!

서리가헌은 칼을 들고 걸어갔다.

죽여도 죽여도 끝없이 나타나는 자들!

무인이 이런다면 가혹한 수련 혹은 문파에 대한 충성심으로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일반인이 이럴 경우는 협박을 당할 때뿐이다. 이들은 분명히 협박당했다.

하지만 협박 자체는 상관없다. 검을 들고 나선 것이 문제다.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 나타났다면 자신의 목숨 또한 내놓아야 한다 그런 각오가 없다면 나타나지 말았어야 한다. 협박은 아무런 이유가 안 된다. 사람을 죽이는 병기를 들고 사람을 해하는 일에 나섰다면 얼마든지 죽여도 된다.

‘너도 이런 놈을 만난 것이냐!’

서리가헌은 아걸을 떠올렸다.

그는 아걸이 걸었던 길을 걷고 있다. 아걸이 걸었던 소로를 걷고 있다.

처음에는 제법 강한 자들이 나섰다.

그들은 그래도 벨 만했다. 칼을 쓰면서 찝찔한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어느 범주를 넘어서자 그때부터 기분이 더러워지기 시작했다.

민간인들이 병기를 들고 나타났다. 일홀도 근처에도 다가서지 못할 자들이 싸우자고 한다.

기분이 찝찝하다 못해서 더러워졌다.

이들 목적이 뭔지 모르겠지만 검을 들고 나타난다면 죽여 준다.

이런 자들은 가볍게 칼을 써도 죽일 수 있다. 하지만 서리가헌은 일탄십검을 사용했다.

칼에 대한 예의다.

칼에 죽는 사람에 대한 예의다.

일홀도는 어떤 상대든 최선을 다한다. 약자든 강자든 최고의 칼에 죽을 권리가 있다.

저벅! 저벅!

서리가헌은 무심히 걸었다.

주변에 검기가 번뜩인다. 숨은 자리에 가만히 있으면 살고, 나타나면 죽을 것이다.

“서리가헌이 나타났습니다.”

“서리가헌이?”

“네.”

“곤란한 자가 나섰군.”

“원래 이쪽으로 오던 중이었으니까요. 조금 일찍 나타나긴 했는데…… 어떻게 할까요?”

수하가 물었다.

“중간에 다른 방향으로 틀었으면 좋았을 텐데.”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됐어. 물려”

“네? 제거하지 않습니까?”

“무슨 수로? 서리가헌은 우리 상대가 아니야.”

“그건 압니다만……?”

수하가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인독화를 사용하면 잡을 수 있다. 아걸도 잡았는데, 서리가헌인 들 못 잡을까.

“아걸은?”

사령이 생각난 듯 물었다.

“……”

수하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걸을 찾아서 산속 곳곳을 뒤졌지만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지금쯤 인독화가 발작해서 시신이 되었을 텐데, 어디서 쓰러졌는지 흔적도 남지 않았다.

“쯧!”

사령이 혀를 찼다.

“그래도 다시 나타났다는 보고는 없으니……”

“됐어. 모두 물려.”

사령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혹시나 아걸이 나타날까 봐 끝까지 지키고 있었는데, 이제는 필요 없을 것 같다.

아걸이 사라지고 벌써 이틀이 지났다.

지금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면 죽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시신을 보지 않았으니 죽었다는 말은 쓰지 못하겠지만, 마음만은 그렇다.

“모두 물리겠습니다.”

수하가 복명했다.

수하는 서리가헌까지 잡고 싶은 모양이다.

서리가헌을 죽이려면 인독화를 또 써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인독화가 너무 아깝다. 쉽게 만들 수도 없는 천고의 절독을 이런 식으로 허비하면 안 된다.

특히…… 서리가헌은 도객일 뿐,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온 것이 아니다.

한마디로 칼에 미친 놈이다.

아걸처럼 오음산에서 음산사마의 흔적을 찾겠다고 나선 놈이 아니다. 그러니 주의해야 할 필요가 없다. 칼에 미친 놈이니 무조건 피하기만 하면 된다.

사령은 수하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지켜봤다.

오음산에는 음산사마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아걸이 오음산을 뒤지러 왔지만, 방해하지 않았어도 흔적을 찾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걸이 정곡을 찌르기는 했다.

이곳은 음산사마가 살던 곳이다. 그것은 확실하다. 수많은 여인이 끌려왔고, 음기를 빼앗긴 끝에 죽은 것도 맞다. 삼천여 명이 그런 식으로 죽었다.

하지만 그녀들의 시신은 옛날에 땅에 묻혔다. 살은 썩고 뼈는 부서졌다.

피살당한 여인이 그토록 많은데, 시신인들 좋게 묻었을까. 오음산 곳곳에 뿔뿔이 흩어 놓았다. 아마 지금 딛고 선 땅을 파헤쳐도 시신 한두 구쯤은 나올 것이다.

그만큼 많은 시신을 묻었다.

그래서 뭐가 어쨌다고? 이미 뼈만 남은 시신들인데…… 그 시신들이 음산사마와 연관되었다고 말할 수 있나? 또 연관되었으면 어떤가? 음산사마 자체가 벌써 이십 년 전에 죽은 자들인데. 그런 자들이 누구를 얼마만큼 죽인 게 성검문 탓인가?

아걸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아걸은 오음산행을 택했다. 그리고 허도기도 오음산행을 찬성했다.

아걸이 오음산까지 오면서 흘린 수많은 소문은 모두 허도기가 용인했기 때문에 퍼져 나갔다. 허도기가 용인하지 않았다면 세상 밖으로 흘러나오지 못할 말들이었다.

좋다. 얼마든지 소문을 내게 해라.

허도기가 직접 그런 명령을 내렸다.

그래서 야천 간자들이며, 적랑대 간자들이 활기차게 소문을 흘리고 다닐 수 있었던 것이다.

뭘 알고서 말해야지.

소문의 혜택은 아걸이 받은 게 아니다. 허도기가 받았다. 아걸이 무슨 혜택을 받았나? 아무것도 받은 게 없다. 반면에 허도기는 야천을 장악했고, 전보영을 쳤다. 눈엣가시들을 하나씩 제거하기 시작했다. 세상이 모르는 사이에.

아걸은 단지 이곳에 와서 죽었을 뿐이다.

서리가헌은 그런 아걸을 쫓아서 오음산에 온 것 같은데, 그 역시 얻어갈 것이 아무것도 없다.

오음산에서 할 일은 마쳤다.

“자! 이제 나는 대장군에게만 집중하면 되나? 후후!”

사령이 몸을 일으켰다.

방금 전보영주 탁호가 죽었다는 소식을 받았다.

아걸도 죽고, 전보영 탁호도 죽고…… 모든 일이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다.

이제 대장군만 죽이면 허도기에게서 받은 명령은 모두 끝난다.

‘이렇게 간단히 끝날 일을…… 그놈의 천시(天時)가 뭐라고.’

사령은 허도기가 이해되지 않았다.

허도기는 천시를 기다렸다. 모든 준비가 끝났는데, 다 때가 있다면서 기다렸다.

사령이 보기에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

허도기가 공부에서 물러났을 때나, 야천을 휘어잡기 전이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지금은 뭐가 달라졌다는 건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끼리 잘 놀라고 하고…… 대장군만 죽이면 무림으로 들어간다. 마유 마인들을 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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