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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378화 (378/600)

#378화. 第七十六章 야심(野心) (3)

“여긴가.”

아걸은 작은 폭포를 쳐다봤다.

폭포라고 해 봤자 사람 키 하나 높이밖에 안 된다. 폭포라기보다는 조금 층차가 있는 계류라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괜히 폭포라는 말에 현혹되어서 쉽게 찾지 못했다.

아걸은 이곳을 찾기 위해서 산을 두 번이나 오르내렸다.

계곡을 따라서 사오리 정도를 움직였던 것 같다. 폭포라고 생각되는 곳은 모두 뒤졌다.

결국, 이곳에 이르러서야 서신에서 밝힌 장소라는 것을 알았다.

폭포와 계류의 모양, 숲에 자라는 소나무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계류 옆에 있는 핏자국이 새겨진 듯은 홍반석(紅斑石).

폭포 옆에 널찍한 숲이 있다.

나무도 울창하고, 풀도 무성하게 우거졌다.

사람을 영양분으로 삼은 초목이라서인지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는 느낌이 든다.

“휴우!”

아걸은 한숨을 내쉬며 숲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잠시 묵념한다. 죽은 여인들을 기린다.

퍽퍽! 퍽!

아걸은 반철도를 삽 삼아서 땅을 파 내려갔다.

음산사마에게 관심을 두게 된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도대체 음산사마가 뭐냐는 거다.

음산사마가 어떤 가치를 지녔을까? 도대체 어떤 존재이기에 허도기가 그토록 신경을 썼나.

허도기가 음산사마에게 여인을 제공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러면 도대체 음산사마에게 어떤 가치가 있기에 여인을 삼천 명이나 제공했냐는 거다.

성검문 암습 사건에 활용하기 위해서, 마인이 필요해서 여인을 삼천 명이나 제공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 부분 때문에 그는 오음산행을 강행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정보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마음만 있을 뿐 오음산으로 오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음산사마를 지원했던 자들은 여인들의 시신을 오음산 곳곳에 흩뿌려 놓았다. 아주 깊이 매장하기도 하고, 화장을 시키기도 했다. 어떤 시신은 그냥 계곡에 놓아서 맹수들의 밥이 되게 만들었다.

갖가지 방법으로 시신을 훼손했다.

하지만 시신이 백 구를 넘고, 이백 구를 넘어서면 처리하는 사람도 힘들기 마련이다. 그러면 명령을 어기고 한 장소에 무더기로 매장하는 일도 벌어진다.

그중에 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이곳에 대한 정보는 적랑대가 알려 주었다.

적랑대는 이곳에 대한 정보를 알기 위해서 무려 이십 년이라는 세월을 사용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서 꾸준히 주변을 탐문했다.

누군가가 오음산에 대한 소식을 탐문하면 당장 허도기의 귀에 들어갈 것이기 때문에 이십 년이란 세월을 두고 아주 조금씩, 눈에 띄지 않게, 있는 듯 없는 듯 슬며시 정보를 캐냈다.

그 정보가 아걸 손에 쥐어졌을 때, 아걸은 바로 오음산으로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곳에 오니 마유 마인들이 있다.

음산사마가 이곳에 있었다는 건 확실해졌다.

또 심증일 뿐이지만 허도기가 음산사마를 지원했다는 사실도 확실시되었다.

팍팍! 팍팍팍!

아걸은 땅을 파헤쳐 내려갔다.

얼마나 팠을까 드디어 인골이 나오기 시작했다. 살은 썩어서 사라지고 뼈만 남았다.

아걸은 조심스럽게 뼈에 묻은 흙을 털어 냈다.

음산사마가 수련한 공부는 천음마공이다. 천음마공에 음기를 빼앗기면 부식되면서 파란색으로 변색한다.

아걸이 땅에서 파낸 뼈에는 파란 얼룩이 박혀 있었다.

일반적으로 알려지기는 그냥 파란색으로 변색한다는 것 정도였다. 맞는 말이다. 직접 눈으로 보니 깨를 뿌려 놓은 듯 점점이 푸른곰팡이가 피어 있다.

뼈 자체는 흙물이 들어서 누런데, 새파란 점들은 지극히 선명했다.

아걸은 다른 인골도 파냈다. 마찬가지다.

“음!”

아걸은 신음을 흘렸다.

뼈에 새겨진 푸른 점들은 천음마공의 수련 정도를 말해 준다.

아걸이 이곳에 오고자 했던 두 번째 이유가 바로 이것, 천음마공의 수련 정도를 알고 싶었다.

음산사마는 천음마공을 대략 칠팔성 정도 수련했다고 한다.

정말 그런가? 그 정도의 무공을 수련한 후에 성검문으로 뛰어든 것인가?

아걸은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만 했다.

뼈에 새겨진 푸른 점을 보면 천음마공이 대략 오성이나 육성에 이른 것 같다.

십 성을 수련하면 푸른 점들은 손톱만 하게 커진다. 그래서 뼈 전체가 푸른 물감을 칠해 놓은 듯 파랗게 변한다. 작은 점들이 커지기 때문이다.

지금 아걸이 들고 있는 뼈는 확실히 오성에서 육성 정도라고 말해 준다.

적랑대의 정보에 의하면 이곳에 묻힌 여인들은 천음마공 수련 말기에 죽었다. 제공된 여인이 무더기로 죽어갈 무렵에는 시신 처리도 대충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수련 범위를 폭넓게 봐줘도 칠팔성 정도 수련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소문이 맞다.

음산사마가 성검문을 공격할 당시, 그들의 천음마공은 칠성 내지 팔성 수준이었다.

아걸은 이 부분이 또 이해되지 않았다.

천음마공 칠팔성 수준이라면 성검문 장자 허문승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성검문 허씨는 용골이다. 무인 중의 무인이다. 문일지십이라고 하며, 인중용이라고 부른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우친다는 천재들이다.

그 당시 허문승은 지금 일홀도와 비슷한 수준의 무공성취를 이뤘을 것으로 생각된다.

서리가헌이나 서리형개 그리고 자신.

이 정도의 칼을 가졌을 것이다.

천음마공 칠팔 성 가지고는 도저히 도전하지 못한다. 도전하면 바로 개죽음당한다.

이런 점은 음산사마도 알았을 텐데, 그래도 도전했나?

말이 안 되는 일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허도기가 음산사마에게 여인 삼천 명을 제공한 것, 말도 안 되는 무공으로 장자 허문승에게 도전한 것……

‘그런가. 후후!’

아걸은 툴툴 웃었다.

허도기가 자신의 오음산행을 막고자 한 것은 바로 이런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는 게 싫었기 때문일 것이다.

시신 삼천 구를 일시에 다 소멸시킬 수도 없었을 것이다. 어디 다른 곳에 가져가서 불사르자니 다른 사람들의 이목도 고려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땅에 묻었는데, 아걸이 이제 이런 사실을 파헤치려고 하니 마뜩잖았을 것이다.

이제야 비로소 마유 마인들이 아무 흔적도 남아 있지 않은 산에서 결사적으로 싸운 게 이해된다.

‘그러면 당신도 왔겠네.’

아걸은 허도기를 떠올렸다.

허도기의 성격상 이런 일이 오지 않을 리 없다.

그는 무엇이든 완전히 뿌리를 뽑아야 직성을 풀리는 성격이다. 그러니 반드시 이곳에 와 있다. 자신의 죽음을 확인한 후에야 돌아갈 것이다.

아걸은 파낸 인골 중 두 개를 한지로 쌌다.

“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닌 줄 알지만, 뼈를 가져가야겠습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죽었는지, 왜 죽었는지 궁금한 게 너무 많아서요.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걸은 죽은 여인들을 향해 절을 했다.

봇짐에서 미리 준비해 온 지전도 꺼내어 불에 태웠다.

여인의 뼈를 가져간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이 오음산을 살아서 나갈 수 있을지 자신이 서지 않는다.

허도기…… 음! 허도기!

* * *

저벅! 저벅! 저벅!

서리가헌은 숲길을 따라 걸었다.

더는 앞을 가로막는 사람은 없다. 민간인이든 무인이든 모든 사람이 싹 사라졌다.

이렇게 공격자들이 일시에 사라지는 경우는 딱 하나, 철수뿐이다.

더는 자신과 싸우려고 하지 않는다. 이미 모든 흔적을 지우고 오음산을 떠났다.

스릉!

서리가헌은 칼을 집어넣었다.

그는 마유 마인들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다.

누군가를 막고자 한다면 그에 합당한 준비를 해야 한다. 무공이 강한 자들을 포진시키거나, 함정을 파거나. 하다못해 활을 쏘거나 암기를 날리는 게 훨씬 낫다.

민간인들을 투입해 봤자 죽기밖에 더하나.

왜 이런 일을 했을까? 왜 애꿎은 죽음을 만들어 냈을까? 단 한 걸음도, 단 한순간도 지체시키지 못하는데.

하지만 그런 의문은 곧 풀렸다.

독에 중독된 사람들이 쓰러져 있다.

독이 얼마나 지독했는지 피부색이 새까맣게 탔다. 손톱은 다 녹아 버렸고 살도 흐물흐물 녹는 중이다.

‘맹독!’

서리가헌은 이들이 누구에게 죽었는지 단박에 알았다. 생각해 볼 것도 없다. 아걸과 싸우다가 이렇게 됐을 것이다. 아걸이 독을 쓸 리는 없고…… 자진이다.

서리가헌은 인상을 찌푸리며 녹선마황 한 마리를 꺼내서 땅에 풀어 놓았다.

스륵! 스륵!

녹선마황이 땅을 기어갔다.

‘음! 독은 없는데……’

녹선마황은 독을 탐지할 수 있다. 아니, 독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만약 독이 있으면 애벌레처럼 등이 굽어진다. 그리고 마비된 듯 움직이지 않는다.

지금은 빠르게 기어가고 있다.

‘독은 없고……’

그런데! 아니다! 독이 있다!

‘응?’

서리가헌은 미간을 확 찡그렸다.

녹선마황이 갑자기 검은색으로 변하더니 배를 까뒤집고 벌렁 드러누웠다.

보나 마나 즉사했다.

독을 먹을 줄 아는 녹선마황이 독기를 이기지 못하고 배까지 까뒤집으며 죽었다. 더군다나 녹선마황이 죽은 곳은 시신으로부터 무려 사장이나 떨어진 곳이다.

독기가 매우 강하다.

‘이 정도 독이라면!’

서리가헌은 즉시 인독화를 떠올렸다.

인독화는 주변을 독지로 만들어 버린다. 독지에 발을 디디는 순간, 독에 중독된다.

서리가헌도 무심코 몇 걸음만 더 걸었다면 독에 중독될 뻔했다.

이 생각도 오음산에 있는 자들이 마유 마인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떠올릴 수 있었다.

‘인독화! 음!’

이들이 죽은 모습을 보면 아걸이 인독화에 당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들은 민간인이다. 아걸은 민간인이기에 난감해했을 것이다. 앞에 열 명이나 늘어서 있으니 이들을 죽여, 살려? 죽이기는 해야겠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 인독화가 일어났다.

아걸은 피하지 못했다.

천성이 잔인했다면 이들이 나타나기 무섭게 칼을 썼을 텐데, 사정을 봐준 것이 문제다.

아걸은 이들을 뚫기 위해서 칼을 썼다.

‘그때는 이미 늦었고……’

인독화에 중독된 후에 칼을 쓴들 무엇하나. 이미 독에 중독된 상태이니.

서리가헌은 아걸의 상태를 짐작해 냈다.

인독화에 중독되고도 살 수 있을까? 갑자기 답답해진다. 하지만 아걸이라면 살았을 것 같다. 그렇게 믿는다. 일홀도가 칼이 아니라 독에 죽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사실, 많은 문주가 칼이 아니라 암살에 죽었지만.

도대체 이 오음산에 뭐가 있길래 이토록 지독하게 막아서나.

이들이 자신 앞을 가로막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은 오음산이 지닌 깊은 비밀을 알아낼 수 없다는 말과도 같다. 너는 막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이제 저들은 볼일이 끝났다.

자신과 싸우지 않으려고 물러간 것이 아니다. 할 일이 끝났기에 물러선 것이다.

“후후! 기분이 살짝 나쁘네.”

서리가헌은 웃으면서 독지를 피해 빙 돌아서 걸었다.

저들은 죽은 지 이틀이나 사흘쯤 되어 보인다. 그런데도 독기가 사 장이나 물들이고 있다. 그러니 정작 인독화가 일어났을 때는 아무리 못해도 십여 장은 단박에 죽음의 땅으로 변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저벅! 저벅! 저벅!

서리가헌은 개울을 향해 걸어갔다.

원래는 길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었다. 아걸의 흔적을 쫓아서 숲길을 따라가는 중이었고, 별다른 일이 없는 한은 계속 길을 쫓아갈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개울가에서 고기 굽는 사내를 봤다.

닭인지 꿩인지 모를 고기를 모닥불 위에 올려놓고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굽고 있다.

사내는 서리가헌을 보자 손을 들어서 손짓했다.

이리 와!

서리가헌은 그를 향해 걸어갔다.

“오랜만입니다.”

“앉지.”

“이런 곳에서 고기나 굽고 계시고, 한가하신 모양입니다.”

“공무를 놨더니 한가해지네. 이런 데 앉아서 산바람 쐰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 좋군.”

허도기가 씩 웃으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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