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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381화 (381/600)

#381화. 第七十七章 유일시(唯一視) (1)

아걸은 다시 오음산으로 들어갔다.

허도기는 사형이 죽은 장소에서부터 뚜렷하게 흔적을 남기고 걸었다.

땅 밑에 자갈이 마구 흩뿌려져 있다. 잡초도 짓밟혔다. 일부러 흔적을 남겨 놓으며 걸었다.

오라는 것이다.

이런 유혹을 뿌리치고 오음산을 벗어날 수도 있다. 허도기를 피하는 사람이라면 당장 벗어났을 것이다.

아걸은 허도기의 흔적을 보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했다. 피할 생각이 들지가 않았다. 나를 이긴 검이라서 피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저번에는 졌지만 이번에 이기면 되잖아.

아걸은 발자취를 따라서 오음산 깊숙이 들어갔다.

마유 마인들은 사라지고 없다. 그 어디에도 사람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음산이 텅 비었군. 재미있어.’

아걸은 피식 웃었다.

허도기와 네 번째 만난다. 자신을 반드시 죽이고자 하는 사람을 만나러 간다. 그리고 이번에는 둘 중 한 명은 오음산을 살아서 나가지 못할 것이다.

허도기는 산책하는 중이었다.

사람 발길이 닿지 않는 깊은 숲을 유유자적하게 걸으면서 산새 소리를 즐겼다.

“왔군.”

허도기가 먼저 아걸을 반겼다.

아걸은 허도기를 보고도 담담했다. 자신을 세 번이나 이긴 검, 사형을 죽인 검이 앞에 있는데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인 듯 편안하기까지 했다.

“좋겠어. 세상을 살아가면서 도무지 거침이 없네. 갖고 싶은 것은 갖고, 죽이고 싶은 사람은 죽이고.”

“사람이 얼마나 산다고. 하고 싶은 일은 하면서 살아야지. 그래, 사형은 잘 보냈나?”

허도기가 웃으면서 물었다.

“목숨을 끊은 사람이 할 말은 아닐 것 같은데?”

“그런가? 하하하!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죽이지 않으면 죽어야 하는 게 무인이니. 참! 저번에는 놀라웠어. 사실 약간 좀 당황하기도 했고. 굴속. 하하하! 내 검이 통하지 않는 장소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거든.”

짝! 짝! 짝!

허도기가 손뼉까지 쳤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어떻게 살아 나온 거야? 용케 살아 나왔대?”

“그 말도…… 같이 묻힌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당신은 살아 나왔으면 나도 길이 있었던 거겠지.”

“말에 가시가 심하게 박혀 있군. 좋지 않아. 여유를 가져.”

“여유야 있지.”

“무공도 말처럼 번지르르했으면 좋겠군. 예전처럼 쉽게 무너지면 실망이 클 거야.”

“하하하하!”

아걸이 웃었다.

“내 말이 우스웠나? 별로 우스운 말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니, 조금 우스웠어. 당신 검에 죽으면 죽는다는 느낌도 받지 못할 거야. 그런데 당신이 실망하건 말건 무슨 상관인가. 죽은 자에게 실망스럽게도 말해 봤자…… 하하하!”

“그런가? 그렇네. 그렇게 생각하니 우스운 말이었네. 하하하!”

허도기도 웃었다.

“이건 나만의 느낌인지 모르겠는데, 일홀문도를 만나면 나이가 많건 적건 항상 긴장돼.”

드디어 허도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싸울 장소를 찾아서 천천히 움직인다.

“하다못해 서리 성씨를 받지 못한 동박까지도 저놈 조금만 더 날카로워지면 위험하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니까. 설마 그 가장 밑에 있는 막내가 내 턱밑까지 쳐들어와서 이런 식으로 대들 줄 누가 알았겠나. 대단해. 일홀문.”

휘리릭!

아걸도 반철도를 가볍게 휘둘렀다. 일단 손목부터 부드럽게 풀어 나갔다.

“넌 궁금한 점 없어?”

“…….”

“가헌이는 상당히 많은 걸 물어봤지. 마음 편히 가라고 다 대답해 줬어. 아! 이것도 죽으면 끝인가?”

“내가 알아낼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되어서…… 묻지 않으려고.”

“아! 하나 약 올릴 게 있는데. 들으면 속 좀 쓰릴 거야. 격장지계(激將之計)라고 생각하면 입 다물고.”

아걸이 허도기를 쳐다봤다.

“전보영주 탁호가 죽었다. 모르고 있을 것 같아서.”

“몰랐는데…… 죽었군.”

“대장군 조위도 곧 죽을 거야. 내가 돌아가기 전에 죽어 있겠지?”

“그렇군. 그런데 별로 약 안 올라.”

“아니, 아니. 이건 그냥 알아두라고 한 말이고, 약 올린 건 따로 있지. 몽설이 오진북에게 다가가고 있는 거로 아는데. 그렇지? 하하! 오진북이 몽설을 기다리고 있어. 이쯤 하면 약 오를까?”

“원주가 알아서 하겠지.”

“하하! 놀랍군. 이건 연인 간에 할 말이 아닌데?”

“격장지계도 뭣도 아니야. 전혀 놀랍지도 않고, 약 오르지도 않아. 자, 이쯤이면 괜찮겠지?”

두 사람은 말을 하는 동안에 조금 널찍한 소나무 숲에 들어섰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만큼 넓지는 않지만, 도검을 휘두르기에는 부족하지 않았다.

“오늘 일홀문 뿌리를 끊는다고 생각하니 조금 착잡해서 말이 많았나 보네. 후후!”

스읏!

허도기가 웃으면서 자세를 낮췄다.

허도기만의 독특한 기수식이다. 눈을 발밑에 두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허도기는 준비가 끝났다.

그는 여러 가지 말을 많이 했지만 싸움에 들어서는 들어서면 언제나 침묵한다.

‘역시!’

아걸은 고개를 끄덕였다.

허도기는 완벽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느낌이다. 완벽하다고 느끼는 것!

어느 순간부터 칼을 맞댄 상대가 미숙하다고 느껴졌었다. 몸의 움직임, 발걸음, 검을 들어 올리는 높이…… 뭔가가 부족했다. 자신이 무공 교두라면 교정해 줄 부분이 많았다.

그런 느낌을 받은 자 중에는 마유 마인도 섞여 있었다. 나름대로는 절정이라고 자신하는 사람들이었는데도 칼을 들자마자 빈틈을 찾아냈다.

그런 느낌은 싸움에 들어서서도 여전히 지속하였다.

초식을 전개할 때도 미숙해 보였다. 일단 너무 느렸고…… 허점이 단번에 드러났다.

자신은 전신을 촥 풀어놨다.

상대가 보기에는 허점투성이다. 일부로 허점을 노출한 것이 아니었다. 굳이 긴장할 필요가 없었다. 상대가 공격해 오면 받아칠 수 있는 준비만 갖추면 그만이었다.

어른이 어린아이와 대결할 때, 잔뜩 긴장하는 것 봤나? 힘도 주지 않고 적당히 서 있는다.

상대가 보기에는 온몸이 텅 비어 보인다. 어디를 쳐도 쓰러뜨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막상 공격해 보면 텅 비었던 허점이 진검으로 가득 채워진다.

그 어느 곳도 칠 곳이 없는 것이다.

그만큼 상대방은 미숙하고 나는 완벽했다. 상대는 어렸고, 자신은 어른이었다.

옛날, 허도기와 부딪쳤을 때는 반대 상황이었다. 허도기는 어른, 자신은 어린애였다.

허도기가 텅텅 비었다고 느꼈다. 어디를 쳐도 넘겨드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쳐 가면 너무 완벽해서 당황스러운 마음이 와락 일어났다.

자신과 싸웠던 사람들처럼, 자신도 허도기의 검을 몰랐다.

지금은 허도기의 검을 알아볼 수 있다. 전신에 바늘 한 점 들어갈 틈이 없다. 너무 완벽해서 칼을 쓰지 못하겠다. 어느 쪽에서든 허물기는 해야 할 텐데.

지금 허도기와 마주 선 느낌은 예전과는 전혀 달랐다.

이렇게 달라진 느낌, 허도기가 완벽하다고 본 것은 아걸 자신이 성장했다는 뜻이 된다.

스스! 스스스슷!

아걸은 반철도를 들고 서서히 허도기 곁을 맴돌았다.

허도기는 아걸이 앞에 서 있건, 뒤에 서 있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부동신(不動身) 부동심(不動心). 정중동(靜中動) 동중정(動中靜).

허도기는 천 년 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묵직한 바위였다. 더불어서 이 세상 어디든 흘러갈 수 있는 바람이었다.

아걸은 허도기의 몸 주위를 서너 바퀴쯤 돌았다.

‘빈틈이…… 전혀 없다. 치고 들어갈 틈이 없어.’

온갖 공격 수단을 전부 그려 봤지만, 반철도가 뚫고 들어갈 틈이 엿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허도기 앞에 섰다.

“후유!”

숨을 깊게 내쉬었다.

자신도 허도기처럼 두 무릎을 살짝 굽혔다.

사실 이 자세는 가만히 서 있는 것보다 더 편하다. 그냥 반듯하게 서 있는 것이 더 편한 것 같지만, 오랜 시간 동안 한 자세를 유지하기에 가장 적합한 자세다.

살짝 구부린 자세에서 반철도를 축 늘어뜨리고 시선을 발밑에 두었다.

투웅!

몰안이 일어났다.

완벽한 정신 집중! 도신일체(刀身一體)!

감각망기술과 오체진감이 동시에 일어났다.

말도 안 되는 현상이다. 감각망기술을 감각을 잃어버리는 진공이다. 오체진감은 감각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공부다. 두 공부는 같이 일어날 수 없다.

아걸도 설명할 수는 없지만…… 두 공부가 동시에 일어났다.

감각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감각이 최고조로 예민해졌다. 말이 안 되지만 정말 그런 현상이 일어났다. 둔감해도 좋을 때와 예민할 때의 구분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허도기가 공격해 와도 좋고 아니어도 좋다.

그동안은 허도기에게 선수를 빼앗기면 당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자신뿐만이 아니고 허도기를 대하는 모든 무인이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선공을 취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사로잡힌다.

지금은 상관없다. 허도기가 선공을 가해 오면 받아치면 된다. 받아치지 못하면 당할 것이다. 그러면 그것으로 최선을 다했으니 되었다는 생각이다.

몸과 칼과 자신이 서 있는 이 땅 오음산이 하나가 되었다.

아걸도 허도기처럼 조용히 상대의 공격을 기다렸다.

슛! 팟!

허도기가 검을 쳐 냈다.

검 위에 올려져 있는 손이 움직이지 않는 듯 움직였다.

한순간, 검이 날아와서 아걸의 이마를 치고 돌아갔다. 아걸은 당장 고개를 뒤로 젖혔다.

피윳!

날카로운 검날이 이마를 스치며 지나갔다.

처음이다! 허도기의 검을 맞지 않은 게.

스으읏!

허도기는 다시 부동으로 들어갔다. 말도 하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는다. 검은 검집에 들어가 있다. 손은 검 위에 올려져 있다. 공격하기 전과 같은 모습이다.

아걸도 다시 몰안 속으로 몰입해 들어갔다.

허도기의 검이 스쳐올 때나 스치고 지나간 후에나 그는 몰안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모든 느낌을 지우고 오로지 두 눈만 크게 일으켰다.

그가 느끼는 허도기의 공격은…… 공격이 아니었다. 조금 전, 공격이 있었던 게 아니다.

누군가가 움직였고 자신은 피했다.

그런 사실만 있다. 공방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각기 한 번씩 움직임을 보였다. 움직임…… 아걸은 움직임만 본다. 움직임만 중시한다. 움직임의 결과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스읏!

아걸이 차분하게 발을 옮겼다. 반걸음, 다가섰다.

아걸은 자신이 움직인 것도 의식하지 못했다. 의지로 움직인 것이 아니다. 반걸음 앞으로 다가서자고 생각한 것도 아니다.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스읏!

또 반걸음 앞으로 나섰다. 이제 한 걸음을 좁혔다.

두 사람에게 한 걸음 차이는 매우 크다. 이제는 허도기가 검을 쳐 오면 피하지 못한다. 고개를 젖히는 선에서 검을 피할 수 없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섰다.

몰안으로 일으킨 도신일체는 완벽한 감각도(感覺刀)다.

수련으로 터득한 거리감이 아니다. 싸움 본능이 탐지한 거리 감각이다. 허도기와 싸우려면 한 걸음 정도는 가까이 다가서야 한다고 지시한다.

의지는 개입할 틈이 없다.

아걸은 무엇을 하고자 하지도 않는다. 어떤 초식을 구사할지, 왜 앞으로 다가서는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그저 몸이 알아서 행하고 있다.

오체진감과 감각망기술.

아걸의 모든 신경과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졌다. 또 극도로 느슨해졌다.

극과 극이 공존한다.

이것 역시 아걸이 행하고자 한 것이 아니다. 그는 오체진감을 생각하지 않았다. 감각망기술을 일으키려고 한 적도 없다. 몸이 저절로 일으키고 있다.

스읏!

아걸이 다시 반걸음 앞으로 나섰다. 한 걸음 반!

쒯!

허도기도 즉시 검을 쳐 냈다.

화살처럼 날아온 검이 아걸의 귀밑을 푹! 찍고는 돌아갔다.

아걸은 고개를 우측으로 약간 젖혔다.

그 한 수로 허도기 검을 피해 냈다.

허도기가 검을 쓰는 속도와 아걸이 고개를 돌리는 속도가 맞아떨어졌다.

허도기만큼 아걸도 빠르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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