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2화. 第七十七章 유일시(唯一視) (2)
쒜에엑!
허도기의 검이 귀밑을 찍고 지나간 후, 아걸은 즉시 반철도로 허도기를 찍었다.
역공이다.
허도기가 검을 검집에 꽂을 때, 반철도가 허도기의 가슴을 쳤다.
차앙! 까앙!
허도기의 검이 다시 뽑혔다. 그리고 이번에는 검과 반철도가 중간에서 힘차게 부딪혔다. 반철도가 쳐나가는 것을 검이 막은 것이라서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훅!”
“후웃!”
아걸과 허도기는 동시에 헛바람을 토해 냈다.
두 사람 모두 상대방의 검을 흘려보낼 수 있다. 병기를 부딪치지 않고 몸을 칠 수 있다. 할 수만 있다면 병기끼리 부딪치는 일 없이 당장 몸을 쳤을 것이다.
이번에는 허도기도 검을 거두지 못했다. 반철도 역시 흘러나가지 못하고 허공에서 멈췄다. 두 개의 병기가 허공에서 부딪혀 움직이지 못했다.
먼저 움직이는 쪽이 진다.
허도기가 검을 회수하려고 하면 그 즉시 반철도가 허도기를 찍어 갈 것이다. 만약 아걸이 반철도를 회수하려고 하면 허도기의 검이 내쳐 치달려 올 것이다.
두 사람의 진기가 허공에서 팽팽하게 부딪혔다.
‘후훅!’
‘훅.’
아걸과 허도기는 더욱 힘 있게 몰아붙였다. 티끌만큼이라도 밀리면 그 순간에 승부가 끝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절대로 물러설 수 없었다.
두 사람의 싸움은 길게 이어졌다.
꽈앙! 꽝! 꽝!
내력과 내력이 끊임없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반 시진이라는 시간이 무심히 흘렀다.
두 사람은 이렇게 오랫동안 싸워 본 적이 없었다. 어떤 자와도 순식간에 결판을 냈다. 특히 지금처럼 병기를 맞댄 채 내력 싸움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주르륵!
두 사람의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후욱!’
허도기의 검이 꿈틀거렸다, 그러자 아걸의 몸은 부르르 떨렸다. 반면에 허도기는 여전히 무심했다. 검이 번쩍 빛났다. 내력에서 아걸이 밀리고 있다.
‘끄응!’
소리 없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순간, 반철도가 약간 밀렸다.
쫘악!
볼 것도 없다. 약간의 틈! 이것이면 족하다.
허도기의 검이 순식간에 가슴팍을 헤집고 들어왔다.
척! 처억!
두 사람은 그야말로 사력을 다해서 움직였다.
이번 검은 성공해야 한다! 피해야 한다!
쒜에엑! 파앗!
부동의 허도기가 검을 네 번이나 변화시키며 두 걸음 앞으로 걸어 나왔다.
아걸의 가슴에서 붉은 핏물이 파아악! 터졌다.
아걸은 검을 맞는 순간, 반철도를 허도기의 복부에 밀어 넣었다. 순간적인 반격이다.
허도기는 멀쩡했다. 반철도가 복부에 닿기는 했지만, 옷자락을 썰어내는 선에서 그쳤다. 간발의 차이로 살을 베지 못하고 옷만 길게 잘라냈다.
드디어 허도기의 몸에 칼이 닿기 시작했다.
휘릭!
허도기가 검을 허공에 크게 휘두른 후 빙글 돌려서 검집에 넣었다.
“놀랍군. 확실히 동굴에서 보여 주던 그 칼, 예사 칼이 아니었어. 날 상대할 수 있는 칼로 큰 건가?”
허도기가 아걸을 쏘아봤다.
“칭찬받으려고 칼을 쓴 건 아니고.”
스슷!
아걸은 반철도를 가슴 앞으로 모았다. 그리고 다시 두 다리를 살짝 구부렸다. 왼손은 손바닥을 활짝 펴서 앞으로 뻗었다. 왼손으로 반철도를 가린 형세다.
아걸의 두 눈이 맹렬하게 타올랐다. 하지만 맹렬함 속에 차가움이 엿보였다.
아걸은 어느새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가슴이 베었다는 초조함은 떠오르지 않았다. 드디어 허도기 몸에 칼이 닿기 시작했다는 기쁨도 일으키지 않았다. 차분하게…… 허도기가 그랬던 것처럼 도신일체 속으로 들어갔다.
“하루가 다르게 칼이 변해. 역시 젊음이 좋긴 좋군. 내 나이가 되면 여간해서는 검이 안 변해.”
“…….”
아걸은 대답하지 않았다.
허도기가 어떤 말을 해도 아걸은 듣고 있지 않았다. 그는 이미 싸움 속에 있었다.
허도기도 아걸의 상태를 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말을 했다. 아직은 아걸이 한 수 아래로 보인다. 자신은 어른이고, 아걸은 어린애로 여겨진다.
“조금씩 다가오는 것도 아니고 확확 변해서 다가와. 놀라워. 이제는 정말 내 코앞까지 다가왔어.”
스읏!
아걸의 무릎이 조금 더 굽혀졌다. 무릎의 탄력을 이용해서 반철도를 쳐 내려는 것 같다.
허도기도 살짝 무릎을 굽혔다. 손을 검 위에 놓았다.
“여기 올 때는 말이야. 막연하게 일홀도가 마음에 걸렸는데, 널 보니까 확실히 알겠어. 일홀문을 없애지 않고는 두 발 뻗고 자기 힘들겠어. 안타깝군. 한 일 년만 늦게 만났어도 날 벨 수 있었을 거 같은데.”
츠읏!
허도기가 침묵 속으로, 부동으로 들어갔다.
‘달라진 것은 없다!’
아걸은 어떠한 느낌도 들지 않았다.
허도기의 옷자락을 베었지만, 허도기 몸에 반철도가 닿았다는 쾌감이나 희열은 일어나지 않았다.
허도기의 검이 가슴을 베며 지나갔다. 핏물이 흘러내린다.
역시 허도기가 나보다 한 수 빠르구나. 그럼 이번에도 이길 수 없나? 또 지는 건가? 하는 느낌이 들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느낌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주루룩!
가슴에서 피가 계속 흘러내리고 있다.
이것은 현실이다. 실질적으로 살이 갈라졌고, 핏물이 쏟아져 내린다. 이런 식으로 피가 계속 흘러내리면 기혈이 급격하게 소진된다. 몸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진다.
당연히 빨리 지혈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그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정말이지 머릿속이 텅 빈 것처럼 어떠한 생각도, 느낌도 일어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방금 움직였다. 허도기가 공격했고, 자신이 반격했다.
그런 사실이 있을 뿐이다. 그런 행동만이 있을 뿐, 그 행동 뒤에 옷자락을 잘라낸 사실이나 가슴이 베인 결과에 대해서는 일절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결과는 무시해도 좋다.
아직은 싸움 중이다. 싸움이 끝나지 않았으니 결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금 허도기의 팔을 베어 냈다고 한들 무슨 소용인가? 그가 여전히 검을 들고 맞선다면 싸움은 계속해야 한다. 그리고 다음 검에 자신이 죽는다면…… 팔을 벤 것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싸움 중에는 결과라는 것도 없는 법이다.
칼은 칼일 뿐!
사형의 시신 옆에서 터득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싸움 중에는 행동만 있다. 결과는 없다.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츠읏!
몰안이 일어났다. 도신일체가 이루어진다. 순간,
탁! 타탁! 탁탁! 탁!
혹중혈(惑中穴), 화개혈(華蓋穴), 신장혈(神臧穴), 자궁혈(紫宮穴), 천지혈(天池穴)…… 가슴 부위에 있는 혈들이 일제히 격랑을 일으켰다.
이것 역시 아걸이 행한 것이 아니다.
아걸은 칼과 하나가 된 채, 허도기만 쳐다보고 있다. 싸움판에 선 투사(鬪士)다.
그러자 몸이 알아서 최상의 상태를 만들고 있다.
일단, 무엇부터 해야 하나? 기혈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러자면 가슴 부위를 지혈해야 하는데…… 지혈할 시간은 없다. 손을 들어서 지혈하고자 하면 당장 허도기가 공격해 올 것이다. 지혈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공격을 끌어들인다.
상처 부위에 피가 흐르지 못하도록 혈맥을 차단하자.
진기로 혈이 흐르는 경맥을 강하게 압박하는 것이다. 그러면 점혈한 효과가 일어난다.
착착착착! 착착!
진기가 요란하게 움직였다. 어떤 경맥은 차단했고, 어떤 경맥은 더 활짝 열었다.
가슴에서 피가 흘러내리지 않았다.
의점(意點), 의혈(意穴)이라고 부른다.
아걸은 의점을 할 줄 모른다. 배운 바도 없다.
실질적으로 싸우는 와중에 상처 부위에 신경을 쓸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의점을 하느니 차라리 손을 들어서 경혈 몇 군데를 찍는 게 빠르다.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무인이 의혈 같은 것은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배워 놔도 평생 쓸모가 없을 것.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절대적이다. 허도기 같은 고수는 점혈조차도 허락하지 않는다. 병기를 쓰는 것 외에 어떤 동작도 차단한다.
이런 경우가 생길 줄 누가 알았나.
아걸이 의점을 배우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의점이 펼쳐진 것은 그가 다른 것을 수련했기 때문이다.
몸과 정신을 칼로 옮겨가고, 칼날을 몸으로 옮겨온다.
기본은 도신일체다.
아걸은 이미 도객으로서는 최고 경지인 칼과 몸이 합일되는 경지를 이뤘다.
도신일체는 다른 경지로 연결된다. 초식을 떠올리지 않아도 몸이 알아서 삼십육 문주의 일홀도 중 특정 일홀도를 전개해 내는 무동지동(無動之動)이 이루어진다.
무동지동이 펼쳐지면서 자연스럽게 지혈도 되었다.
아걸은 몰랐는데…… 허도기의 경지가 이런 것이었다. 허도기의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 늘 궁금했는데, 본인이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손이 알아서 검을 뽑아내는 경지였다.
본인 스스로 틈을 찾을 필요도 없었다. 싸움 감각이 순간적으로 몸을 이끌어 낸다.
슛! 피윳!
허도기와 검을 쏘아 냈다.
아걸은 상반신을 틀어서 가슴으로 흘러드는 검을 비켜 냈다.
허도기의 검이 아슬아슬하게 머리카락 한 올 차이로 가슴 앞을 쓸며 지나갔다.
옷자락이 쭉 베었다.
- 아! 위험했어!
당연히 일어나는 생각이다. 하지만 ‘위험했다’라는 말도 결과를 말한 것이다.
아걸은 행동만 봤다.
허도기가 방금 움직였다. 검을 쳐 냈다.
딱 그 선에서 보는 것은 그친다. 그 뒤에 일어난 결과는 보지 않는다. 그러니 옷자락이 베었든, 가슴이 베었든, 심장이 찔렸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영역이 아니다. 허도기의 영역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검이 날아오는 것을 보는 것까지다. 피하거나 반격하는 것도 몸이 알아서 한다. 철저히 싸움 감각을 쫓아서 움직인다.
몸이, 싸움 감각이 뭐라고 하나?
허도기의 검이 가슴을 쓸고 돌아갈 때, 아걸은 크게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동시에 반철도가 아래에서 위로 화라락 요란한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구대문주의 환도, 십이살환도가 펼쳐졌다.
반철도가 수십 개의 변화를 일으키며 허도기의 전신을 치고 들어갔다. 더욱이 칼은 스스로 움직이는 듯 부르르 치를 떨었다. 용트림하듯이 부르르 떨었다.
십이살환도가 일어나는 와중에,
회선도가 일어나는 과정 중에서 십팔대문주의 사도진파까지 겹쳐졌다.
허도기가 반사적으로 검을 쳐 냈다.
반철도와 검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전처럼 두 사람의 병기가 허공에서 얽히지 않았다. 반철도가 용수철로 퉁겨진 것처럼 연달아 격타했다.
탕탕탕! 탕탕탕탕! 타앙!
사도진파의 영향이다.
검과 칼이 부딪치는 순간 사도진파가 일어나면서 칼이 살짝 떨어져 나왔다. 동시에 십이살환도가 다시 토해졌다. 방향을 틀어서 다른 곳을 공격했다.
그런데 허도기가 또 그 칼을 막는다. 기묘하게, 빠르게 틀어진 칼인데 기막히게 막아낸다.
아걸은 무려 십여 차례나 칼을 쳐 냈다.
그는 반철도를 쳐내면서 두 걸음 앞으로 나갔고, 허도기는 칼을 막아내면서 두 걸음 밀려났다.
아걸과 허도기가 서로 숨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근접했을 때, 반철도가 아주 짧은 변화를 보였다. 십이살환도를 버리고 십삼대 문주의 단도격타가 터졌다.
쒜에엑! 퍼억!
반철도는 허도기의 어깨를 휘저으며 지나갔다.
파아악!
허도기의 몸에서 피가 솟구쳤다.
이번에는 허도기가 손해를 봤다.
츠읏!
아걸은 언제 반철도를 쳐 냈냐는 듯 다시 무릎을 굽혔다. 왼손은 여전히 허도기를 가리켰고, 피 맛을 본 반철도는 가슴 앞에 수평으로 세웠다.
뚝! 뚝!
반철도에서 핏물이 떨어졌다. 허도기의 어깨를 훑고 나온 피다.
툭! 툭!
허도기가 손을 들어서 어깨에 있는 운문혈(雲門穴)과 기호혈(氣戶穴)을 찍었다.
가벼운 점혈이다.
허도기도 의점을 할 줄 안다. 하지만 굳이 할 필요가 없다. 아걸이 허도기를 압박하지 못한다. 태연히 손을 들어서 점혈을 하지만 공격할 틈이 보이지 않는다.
허도기는 점혈하면서도 여전히 아걸을 노리고 있다.
어깨에서 피를 뽑아 내기는 했지만, 여전히 어른은 허도기다. 아걸은 어린애다.
허도기는 말을 하지 않았다. 웃지도 않았다. 허도기의 표정은 싸늘하다 못해 차갑게 굳어졌다.
스읏!
허도기가 검을 검집에 넣지 않고 가슴 앞에 세웠다.
아걸을 오늘 이 자리에서 반드시 베고 말겠다는 살심이 검에 묻어 나왔다.
스슷! 슷!
두 사람은 다시 부동 상태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