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3화. 第七十七章 유일시(唯一視) (3)
스스슷!
아걸은 허도기를 향해 다가섰다. 허도기도 다가왔다. 두 사람이 서로 다가섰기 때문에 순식간에 격검 거리가 이루어졌다. 먼저 치는 사람이 유리한 거리다.
아걸은 즉시 반철도를 뻗어 냈다. 일대 문주의 환부살도 십육식이 번갯불처럼 빠르게 터져 나갔다.
쒯! 쒯! 쒯! 쒯! 쒜에엑!
십육식 백이십팔 초 중 오식 삼십이 초가 그어졌다. 서른두 번의 움직임이 섬광처럼 번뜩였다.
순식간에 12번의 2초가 펼쳐져 나갔다.
허도기 검도 급격하게 변했다. 이제 허도기는 발검술에서 그치지 않았다. 검초에 조명십해가 담겼다. 성검문 최고의 검초가 아걸에게 쏟아졌다.
느닷없이 검에 진기가 집중된다. 그리고 곧장 가슴을 향해 쏘아온다.
일사검광(一死劍光)!
소축십검이 펼치는 조명십해와 허도기가 펼치는 조명십해는 하늘과 땅처럼 큰 차이가 있다.
“훗!”
아걸은 헛바람을 토해 냈다.
아무리 빨라도 일사검광은 피하지 못한다. 어느새 일사검광의 거리를 내주었다. 조명십해는 타격할 자신이 있을 때만 터진다. 이미 검초가 터졌다면 당했다고 봐야 한다.
슛! 퍼억!
검이 어깨를 깊이 찔렀다.
이 순간 아들은 사대문주의 탄궁도를 쳐 냈다.
검에 진기가 모인다. 몸은 사라지고 검만 남는다. 그리고 일직선으로 곧게 뻗어 나간다.
퍼억!
허도기의 옆구리가 길게 갈라졌다.
순간적인 공방으로 서로 한 대씩을 얻어맞았다.
아걸은 일사검광이 날아오는 순간, 진파를 일으켰다. 소축십검이 펼친 잠기일력타를 맞고도 목숨을 보전시켜 준 절공, 진동으로 상대의 검을 미끄러트려서 요혈을 피하는 구명 절초를 펼쳤다.
몸에서 진동이 일어나며 허도기에 검을 미끄러트렸다.
반철도도 움직였다. 허도기의 검을 위로 쳐올렸다. 원래는 어깨 위로 완전히 쳐올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허도기의 진기를 이기지 못했다.
어깨가 뚫리는 것을 감각적으로 느꼈다.
순간, 아걸은 촌경 일촌살타(一寸殺打)를 펼쳤다. 극초단타(極超短打)를 펼쳐서 일방적으로 손해 보는 것을 막았다. 날 한 대 때리면 너도 한 대 맞아야 한다.
결과적으로 허도기는 상단을 취하고 아걸은 중단을 취했다.
아걸은 멈추지 않았다. 옆구리를 베는 순간, 즉시 반철도를 휘돌려서 십문주의 천력도로 내리찍었다.
반철도가 허공으로 툭 튀어 올랐다. 그리고 천근의 힘으로 내리찍었다.
파아앙!
허도기의 검에서 공기를 찢는 소리가 울렸다.
삼륜축첩공이다. 일기잠력타를 연달아 뻗어 낼 수 있는 조명십해 상승 절초다.
까앙! 깡!
검과 칼이 부딪쳤다. 반철도가 손에서 빠져나가려고 했다.
칼의 무게가 훨씬 많이 나가고 위에서 내리찍었는데도 아래에서 받아친 검을 이기지 못했다.
아걸은 빠져나가는 칼을 손끝으로 잡았다. 그리고 빙글 돌려 칼의 무게만으로 허도기를 향해 던졌다. 몸을 빙글 돌려서 완전히 회전력만으로 칼을 쳐 낸다.
회전력과 칼의 무게가 가미된 반철도가 허도기를 강타했다.
은거 무인들과 동고동락하면서 찾은 그만의 칼이다. 은거 무인들이 미친 짓이라고 했던 바로 그 칼이 실전에서 허도기 같은 고수를 상대로 펼쳐졌다.
까아아앙!
이번 타격은 큰 충격을 불러왔다. 아걸과 허도기도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허도기가 뒤로 쭉 물러났다.
아걸은 그 즉시 허도기를 따라붙었다. 잠깐의 틈도 주지 않는다. 이대문주의 목도일참! 아래에서 위로 올려치는 상향도로 거세게 몰아붙였다.
허도기의 몸이 부드럽게 구부러졌다.
순간, 허도기가 싸움을 포기한 듯한 인상을 받았다. 전혀 반격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상향도에 목숨을 내맡긴 듯 모든 움직임이 굳어 버렸다.
상향도, 직참도, 후배도…… 아걸은 조금도 방심하지 않고 연달아 목도일참을 쏘아냈다.
허도기는 결코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다. 개울 속에 칼을 숨긴 은장재계이살을 펼쳤을 뿐이다. 목도일참을 제대로 받아 내고 있지 않은가. 잠기일력타로 반격을 가해 오지 않나.
쒜에엑! 쒯! 쒜에에엑! 쒜쒯! 쒜에엑!
두 사람은 순식간에 십여 초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뒤로 쭉 빠졌다. 한순간에 두 사람이 교환한 초수는 오십여 초에 이른다. 하나같이 치명적인 절초다.
두 사람은 크게 큰 숨을 한 번씩 들이켰다.
숨 한 번 들이키는 것으로 진기를 고른다.
“오늘 날밤 새우게 생겼네. 한 번 실컷 싸워 보자고.”
휘릭!
아걸이 반철도를 휘둘렀다.
어렸을 때 싸웠던 기억이 난다.
할배가 싸움을 시켰다.
상대는 뒷골목에서 싸움깨나 하는 악동들이다. 아직 어린애들이지만 어른도 뒷골목으로 끌고 들어가서 두들겨 패는 독종들이다. 그리고 돈을 뜯어낸다.
어린놈들이 무리 지어 다니면서 나쁜 짓만 한다.
“저런 못된 놈들! 저걸 어떻게 하지?”
“나쁜 짓을 못 하게 해야죠.”
“그렇지? 저런 놈들은 다리 몽둥이를 분질러서라도 나쁜 짓을 못 하게 만들어야 해. 뭐 해? 가 보지 않고.”
“네?”
“나쁜 짓을 못 하게 만든다며?”
“제, 제가 해요?”
“그럼 네가 하지 누가 해. 생각만 좋으면 뭐 해. 행동에 옮길 줄 알아야지. 생각만 해서는 쌀 한 톨 안 나온다. 뭐든 움직여야 구해지는 거야. 가 봐!”
“저런 애들은 할아버지가…….”
“에이, 그놈 참 말 많네. 너는 앉아서 구경만 하고 싸움은 늙은이가 하고? 에라이, 후레자식아!”
뻥!
할배가 내지른 발길질에 일곱 명이나 되는 악동과 싸움을 했다.
아걸보다 머리 하나씩은 더 큰 놈들이다. 무공이라고는 산속 동굴 속에서 동물을 관찰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닌 게 전부였는데…… 그놈들은 싸움판을 전전한 싸움꾼이었다.
정말 심하게 얻어맞았다.
입술이 터지고, 코뼈가 부러지고…… 그랬는데도 이상하게 졌다는 말을 하기가 싫었다. 이런 놈들한테 졌다고 말하면 사부의 복수는 영원히 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이 악물고 버텼다. 맞으면서 공격할 곳을 찾았다. 발로 치는 놈은 다리를 붙잡고 종아리를 물어뜯었다. 살점이 떨어질 때까지 물어뜯었다. 입안에 살점과 핏물이 물렸다.
놈들은 악귀처럼 때려댔지만, 아걸도 지독하게 물어뜯었다.
어떤 놈이든 잡히기만 하면 물어뜯었다. 팔이며 등이며…… 나중에는 물기만 하면 살점이 싹둑 뜯겨 나왔다.
때려라! 난 네놈들 살을 뜯어 먹겠어!
결국, 놈들은 도망갔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처참하게 얻어터졌던 싸움이다.
물론 칼을 든 이후에는 그보다 더 심한 상처를 많이 받았다. 하지만 그때의 싸움이 가장 지독했던 싸움으로 기억된다.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게 박혀 있으니까.
그때처럼 악착같이 물고 늘어진다. 악귀처럼 싸운다.
때리고 싶으면 때려라. 나도 때리겠다.
아걸이 씨익 웃었다.
“그렇군.”
문득 허도기가 말했다.
“일홀도가 강한 이유는 무공이 강해서가 아니야. 네놈들 무공은 스스로 얻어낸 것이니 일홀문 무공이라고 할 수도 없지. 일홀문이 강한 이유는 너 같은 놈을 찾아내는 문주의 안목이 뛰어나서야.”
“칭찬이군.”
“그래, 맞다. 칭찬이야. 네가 삼십칠 대인가 그럴걸? 일대부터 삼십육 대까지 문주란 자들…… 한결같이 뛰어난 후인을 골라냈다. 어떻게 한 놈도 일홀도를 얻지 못한 놈이 없어. 후후! 이게 일홀문이 진짜 강한 이유겠지.”
“나 같은 사람을 몰라보는 게 문제지. 알아보는 건 당연한 거야.”
“자화자찬도 할 줄 아나?”
“난 말이야. 성(姓)이 참 많아. 뭔 놈의 아버지가 이렇게 많은지. 아걸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사부는 서리 성을 쓰라고 하네? 서리에 이름이 흔. 서리흔. 또 본성도 있다지? 허씨라고. 그러면 허흔도 내 이름이야. 무슨 의미인지 알지?”
“내 조카라는 건가?”
“아니. 당신이 용골이면 나도 용골이라는 거지. 성씨가 아무래도 괜찮은데, 이놈의 용골인가 뭔가는 조상한테 물려받은 거잖아. 그래서 약 올라. 할아버지가 개망나니였거든.”
“개망나니?”
“그러니까 당신 같은 자식을 낳았지. 조카를 죽이고도 태연하게 살잖아. 지금은 역모도 생각한다며? 당신, 그렇게 살지 마. 할아버지가 지하에서 통곡해.”
“하하하! 하하하하하!”
허도기가 웃었다. 그리고 그 웃음 뒤에 바로 검이 날아왔다.
쒜에엑!
아걸은 허도기에 검이 보였다.
처음 싸움을 시작할 때만 해도 검이 보이지 않았는데, 이제는 확실히 보인다.
몰안이 허도기의 검속을 찾아냈다.
한마디로 허도기의 검이 눈에 익었다. 몸이 검속에 반응해서 피하기도 하고 반격하기도 한다.
쒜에엑!
순식간에 오도(五刀)가 터졌다.
분기도강(分氣刀剛)이다. 칼이 다섯 개로 펼쳐져서 날아간다. 그중 네 개를 도기이며 한 개만 실체다.
아걸은 자신이 배운 모든 도법을 총망라해서 사용했다.
삼십육 문주의 일홀도는 물론이고, 자신이 스스로 깨달은 일홀도에 이것은 안 되겠다 싶어서 버린 일홀도까지 한 번이라도 사용해 본 것은 모두 터져 나왔다.
본인이 사용한 게 아니다. 몸이 반사적으로 어떤 도초를 전개해 냈다. 머리를 치려고 해서 치는 게 아니다. 칼을 쓰다 보니 저절로 머리가 쳐졌다.
쒯! 쒯! !쒯!
다시 삼 초가 터졌다. 아걸은 청성파의 검학인 사전절광검(射電絶光劍)을 펼쳤다. 빠르기가 벼락을 쏘아 낸 것과 흡사하다. 아니, 벼락이다.
아걸은 사전절광검을 수련한 적이 없다. 은거 무인인 나통과 비무를 하면서 눈으로 보고 익힌 것이다. 당연히 사전절광검의 요체는 알지 못한다.
아걸이 펼치는 것은 초식의 형태뿐이다.
그런데도 상관없다. 도초가 워낙 빨라서 허초를 펼쳐도 구분되지 않는다.
허도기는 삼점동타를 연달아 펼쳤다.
삼점동파는 세 번 펼치면 아홉 번을 찍어 오게 된다. 한순간에 전신이 노출된다. 어디를 막아야 할지 구분되지 않는다. 그저 ‘아!’하다가 당한다.
등을 맞고, 옆구리고, 다시 가슴까지…… 한 바퀴 빙 돌아서 검흔이 그어졌다. 허벅지에서 골반으로 다시 등 아랫부분까지 반철도가 쭉 그어갔다.
두 사람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상처가 얕은 것도 아니다. 무척 깊다.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상처가 깊다.
이런 상처는 심한 장애가 된다. 상처 때문에 특정 초식을 펼치지 못할 수도 있다. 허리를 강하게 비틀어야 하는데 허리를 다쳤다면 절초를 펼치지 못한다.
하지만 여기에 맞춰서 공방을 이어가야 한다. 포기하면 죽는다.
까앙! 깡!
검과 칼이 부딪쳤다.
“하악! 학! 하아악!”
“후욱!”
아걸과 허도기는 깊은숨을 토해 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이토록 오랫동안 싸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벌써 두 시진째, 정확히 반나절 동안 싸우고 있다. 그래도 승부는 나지 않았다. 두 사람의 몸은 피투성이가 되었고, 몸은 탈진 상태가 되었지만, 여전히 승기는 불투명하다.
스읏! 슷!
두 사람은 호흡을 고르면서 서로를 노려봤다.
지극히 짧은 동안이지만 다시 힘을 비축한다. 호흡 몇 번으로 진기를 고른다.
“참 세상은 불공평해. 당신같이 나쁜 사람에게 이런 무공을 주고 말이야.”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죽여야겠구나. 너를 살려 주면 다음에는 내가 지겠어.”
“그렇지? 오늘 죽이도록 해. 죽일 수 있을 때 죽여야지. 그동안 너무 태만했어.”
스읏!
아걸이 다시 무릎을 굽혔다.
반철도는 가슴 앞에 세우고, 왼손은 쭉 펴서 허도기를 가리켰다. 왼손이 무게 중심 역할을 한다. 허도기가 공격해 올 때, 거리도 계산해 준다.
쒜에엑!
허도기가 다시 달려들었다.
호흡을 고르는 것은 한두 호흡이면 족하다. 내가 힘들면 상대도 힘들다. 그러니 고통을 억누르면서 상대를 공격한다. 먼저 나가떨어지는 놈이 죽는다.
아걸도 기다렸다는 듯이 유성비도를 펼쳤다.
두 사람의 공방에는 일정한 초식이 보이지 않았다. 놀라울 만큼 획기적인 초식을 써도 이내 상대방에게 간파된다.
조명십해를 사용하면 분명히 아걸에게 타격을 입힌다. 하지만 아걸도 조명십해를 피할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터득해 냈다. 검을 흘리거나 진동을 일으켜서 퉁겨낸다. 아니면 육참골단(肉斬骨斷), 살을 주고 뼈를 끊는다.
검을 맞더라도 아걸은 반드시 대가를 챙겨 간다.
아걸은 일촌살타라는 극초단타를 매우 능숙하게 사용한다. 거기에다가 어느새 십삼대 문주의 단도격타를 가미시켰다. 몸과 몸이 붙으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순식간에 도초가 튀어나온다.
그 도초에 허도기가 번번이 당한다.
두 사람의 속도가 같으면 그런 일이 벌어질 수가 있다. 그렇다. 지금 허도기와 아걸은 속도가 엇비슷하다. 처음에는 간극이 많이 벌어졌지만, 싸우는 동안에 따라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