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4화. 第七十七章 유일시(唯一視) (4)
차앙! 창창! 차앙!
밤이 깊었어도 두 사람의 격전은 끊이지 않았다.
해가 지고 밤이 찾아왔다. 그래도 두 사람은 계속 싸웠다. 잠시 떨어져서 호흡을 고르기는 했지만 즉시 맞붙었다.
이렇게 한 번 맞붙으면 순식간에 오륙십 합이 후딱 지나갔다.
각기 십여 초를 쏟아 내고, 초식마다 검과 칼이 따라붙었다. 그러니 몇 번 움직이는 것 같지도 않은데, 서로 주고받는 공방은 오십 번을 넘어선다.
깡! 까앙!
검과 칼이 부딪쳤다.
허도기의 검은 이빨이 숭숭 빠졌다. 살을 베어도 단숨에 썰어 내기는 힘들어 보일 정도로 날이 많이 상했다. 도검장이 날을 세우려면 애깨나 써야 할 것이다.
두툼한 반철도에도 검날이 찍히기 시작했다.
작두처럼 두툼한 날인데 일부러 작심하고 강도를 쳐 냈을 때처럼 날이 패였다.
두 사람의 병기는 이미 날카롭지 못하다.
쇠로 만든 작대기와 쇠로 만든 몽둥이다.
타탁! 타타탁!
두 사람은 일장 격돌을 벌인 후, 다시 떨어졌다.
“후욱!”
“하아악!”
뚝 떨어진 아걸과 허도기는 거친 숨을 토해 냈다.
두 사람은 웬만해서는 이렇게 거친 숨을 토하지 않는다.
하루 종일 검을 휘두를 수 있다. 그래도 지치지 않는 체력과 진기를 갖췄다.
지금 상대는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초강고수다. 몸을 써서 피곤한 것이 아니다. 바싹 곤두선 긴장감이 정신적인 피로를 몰고 왔다.
진기는 바닥까지 떨어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진기로 싸운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체력으로 싸우는 것도 아니다. 순전히 발악으로 싸우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것은 전신이 녹초가 되어 버린 지금도 마찬가지다.
파아앗! 파앗!
허도기와 아걸은 여전히 활활 불타오르는 눈길을 마주쳤다.
두 사람은 더는 놀라거나 흥분하지 않았다. 놀라는 쪽은 허도기였고, 흥분하는 쪽은 아걸이었다.
허도기는 아걸이 자신하고 이처럼 팽팽하게 싸울 것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아걸도 마찬가지다.
마유 마인들을 공격할 때 그들의 무공이 매우 어색하고 둔해 보인다는 느낌을 받기는 했다. 그들뿐만이 아니다. 모든 사람의 무공이 뭔가 좀 부족해 보였다. 눈에 띈 미비점을 말해 주고 싶은 심정이라고 할까?
자신은 확실히 상수가 되었다.
얼마 전에는 느끼거나 본 적이 없는 부분을 확인할 수 있으니 근래에 새로운 눈을 연 것 같다.
싸우기도 전에 상대가 쓸 초식이 보이니 말해서 뭐 하나.
그렇기는 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자신이 허도기와 이처럼 팽팽하게 싸울 줄은 기대조차 갖지 않았다.
싸움 초반, 허도기는 몹시 놀랐고 아걸은 흥분했다. 하지만 두 시진이 지나고 네 시즌이 지나자 두 사람은 더 이상 놀랍지도 흥분하지도 않았다.
악전고투(惡戰苦鬪)다.
상대방의 무공에는 흥미가 없다. 이제 남은 것은 누가 누구를 죽이느냐 하는 것뿐이다.
“후욱!”
“후우욱!”
두 사람은 큰 숨을 쉬면서 서로를 노려봤다.
“빨리 끝내는 게 어때?”
허도기가 물어왔다.
“빨리 끝내자고?”
“드잡이질을 원하면 끝까지 가고.”
“…….”
아걸은 허도기를 쳐다봤다.
허도기가 빨리 끝내자고 하는 말이 무엇을 말하는지 안다. 발검술, 발도술이다. 하지만 그것은 허도기의 장점이다. 자신은 분명히 허도기보다 뒤처진다.
’일홀사도!’
일홀사도를 얻기 위해서는 전쟁터처럼 거친 환경이 필요하다. 강한 상대를 찾아 나서야 한다. 사람을 끝없이 죽여야 하며, 자신 역시 죽음 앞에 노출된다.
일홀사도를 떠올리자, 허도기의 제안이 별것 아닌 것처럼 여겨졌다.
허도기가 말했다.
“이 보 앞에서 시작하는 거야. 내가 잘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너도 빠른 것 같으니까.”
“발검술, 발도술?”
“괜찮지 않아? 다음 한 수로 승부를 보는 거지. 한 사람이라도 편히 쉬자고. 어때?”
“받아들이지.”
아걸이 긴장을 풀면서 말했다.
스르릉!
허도기가 검을 집어넣었다. 아걸도 반철도를 허리춤에 꽂았다.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싸움 방식을 택했다.
지금처럼 아귀다툼을 벌여서는 언제 싸움이 끝날지 모른다. 그래서 단판 승부로 간다.
어른 걸음 이 보!
크게 뛰는 이 보가 아니다. 평상시 걷는 걸음으로 이보다. 그러면 간신히 검 한 자루 거리를 넘는다. 그 거리에 서서 둘이 동시에 병기를 뽑는다.
그래서 위해서는 서로 조건을 맞춰야 한다.
허도기는 검을 검집에 넣을 것이고, 아걸은 반철도를 허리춤에 찔러 넣은 것이다.
물론 이런 상태에서도 정면 대결을 피해서 물러설 수는 있다. 아무리 규칙이 어떻고 명예가 어떻고 해도 목숨 앞에서는 모든 게 다 무효다. 목숨이 위태로우면 물러설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물러서지 못하게 만드는 것도 상대방의 능력이다.
허도기는 그럴 자신이 있다. 아걸도 그럴 자신이 있다.
허도기를 몇 번이나 반철도 아래 피를 묻히게 했던 촌경 일촌살타가 있다. 일촌살타를 응용해서 쓰는 목도일참도 있고. 첫 시작을 뭐로 할까?
아걸은 처음으로 어떤 초식을 쓸지 망설였다.
툭툭! 툭툭툭!
두 사람은 재빨리 점혈을 시작했다.
싸우느라고 상처를 변변히 치료하지 못했다. 지금도 치료할 시간은 없다. 하지만 점멸을 해서 최소한 피가 흘러내리는 것을 막는다. 몸 상태를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짧은 순간에 운공조식을 취할 수 있다면 무방하다. 가부좌를 틀어야 하는 좌식 운공은 취할 수 없겠지만, 서서 하는 입식 운공을 할 수 있다.
지금은 서로가 용인한 시간, 짧은 시간을 최대한 활용한다.
허도기와 아걸이 거의 동시에 몸을 추슬렀다.
저벅! 저벅!
두 사람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서로를 향해 걸어갔다.
“이 정도면 될까?”
두 사람은 서로의 숨소리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섰다.
“아까 보니까 기수식이 특이하더군. 왼손을 앞으로 뻗으면 좋은 점이 있나?”
“처음 해 본 건데, 당신 검을 가늠할 수 있어서 좋아.”
“도움이 된다면 뭐든지 해야지.”
스읏!
아걸과 허도기가 무릎을 굽혔다.
아걸은 손을 반철도 위에 올렸다. 허도기도 검을 잡았다.
두 사람은 각기 오른손으로 병기를 잡았지만, 쳐 내는 방향이 완전히 다르다.
허도기는 검을 왼쪽 허리에 찼다. 오른손으로 왼쪽 허리에 있는 검을 뽑아서 휘두른다. 좌에서 우로 베는 방식이 아니면 발검 즉시 찌른다.
허도기는 발검술을 가장 많이 애용해 왔던 만큼 능숙해질 대로 능숙한 자세다.
반면에 아걸은 오른쪽 허리에 반철도를 찔러 넣었다.
오른손 손바닥이 땅을 향해 누르듯이 반철도 손잡이를 잡았다. 역도다. 반철도를 잡으면 허리띠를 끊어 버릴 듯이 박차고 뛰쳐나와야 한다.
역도는 상대를 치기 어렵다. 아래에서 위로 쳐들리는 칼이며, 칼의 길이도 짧다. 하지만 방어하기에는 용이하다. 허도기가 검을 뽑을 때, 그 검을 가장 짧은 거리에서 막아낼 수 있다. 어쩌면 뽑자마자 바로 가로막을 수도 있다.
한 명은 공격, 한 명은 수비를 택했는가.
병기를 언제 뽑는가. 굳이 말할 필요는 없다. 서로 눈을 쳐다보면 안다.
하나! 둘! 셋!
’지금!’
촤악!
허도기가 검을 뽑았다. 아걸도 반철도를 뽑았다.
까앙!
검과 반철도가 정확히 허공에서 부딪혔다. 순간, 아걸은 검을 강하게 밀치면서 빙글 돌았다. 그리고,
쒜에에엥!
중력, 원심력, 구심력, 칼의 무게를 이용한 자연도(自然刀)를 터트렸다. 은거 무인을 상대하면서 수련한 칼이 눈부신 속도로 빙글 휘둘러졌다.
자연도는 아걸이 펼칠 수 있는 최대한의 빠름을 끌어내 준다. 지금 그가 펼칠 수 있는 한계치를 정확히 터트린다. 반철도가 허도기의 등을 그대로…….
아니다! 어느새 허리를 숙인 허도기가 아걸의 복부에 검을 찔러 넣었다.
푸욱!
허도기는 휘둘러지는 반철도를 피해서 즉시 옆으로 빠져나갔다. 검은 놓아 버렸다. 검을 뽑을 틈이 없었다. 병기까지 회수하려다가는 반철도에 맞는다.
아걸의 반철도는 허도기의 등이 아니라 옷자락을 스치면서 지나갔다.
꽈앙!
반철도가 땅을 후려쳤다. 간발의 차이!
“크윽!”
아걸은 신음을 흘리며 무릎을 꺾었다.
이번 일격은 아주 정확했다.
’제길!’
아걸은 툴툴 웃었다.
허도기의 검이 매우 심각한 부상을 끌어냈다.
“이겼군. 운이 좋았어. 후후!”
허도기가 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끝장을 내기 위해서 아걸에게 다가서지는 않았다.
아걸 손에 아직 반철도가 굳게 잡혀 있다.
검을 놓쳐 버린 이상, 반철도를 막기가 어렵다. 가까이 접근하면 즉시 타격당한다.
털썩!
아걸이 두 다리를 쭉 펴고 주저앉았다.
그래도 허도기는 다가오지 않았다.
쓰윽! 쓱! 쓰으윽!
아걸은 복부에 박힌 장검을 뽑기 시작했다.
한 번에 쭉 뽑아내지도 못했다. 힘이 없어서 조금 뽑아내고, 또 조금 뽑아냈다. 그리고 마지막 검첨 부분이 남았을 때, 쭉 뽑아냈다.
핏물이 확 솟구친다.
아걸은 뽑아낸 장검을 허벅지 옆에 던지듯 떨궜다.
그래도 허도기는 지켜만 봤다. 여전히 반철도를 쥔 손에서 힘이 빠지기를 기다린다.
아걸도 허도기를 노려봤다.
힘이 없어서 일어설 수 없다. 반철도를 꽉 쥐고는 있지만 휘두르기는 힘들 것 같다.
“끝장내야지?”
아걸이 허도기를 보며 말했다.
“가만히 둬도 끝장날 것 같은데?”
“무인이 뭐 그래? 직접 끝장내는 성격 아닌가?”
“아니, 잘못 봤어. 확실히 죽이는 성격이기는 해도 직접 끝장내는 성격은 아냐.”
“후후! 졸장부네. 그런 식이니까 호황위를 두려워하지. 허씨 핏줄답게 굴어 봐. 모험할 때는 해. 이거 잡지? 설마 이 칼이 두려워서 검을 못 잡는 거야?”
아걸이 눈짓으로 검을 가리켰다.
검만 잡으면 아걸을 죽이는 것은 손바닥 뒤집기보다 쉽다. 아걸은 이번 일격에서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아예 일어서지를 못하고 있다. 하지만 허도기는 웃기만 할 뿐 다가서지 않았다.
허도기 같은 무인은 나뭇가지도 검처럼 쓸 수 있다. 하나 그것 역시 상대 나름이다. 아걸 같은 자에게 병기 없이 달려들면 당장 두 동강 난다.
스읏!
허도기가 바위에 앉았다.
“한 시진만 버텨 봐라. 나도 그 정도는 쉬어야지. 그다음에도 죽지 않았다면 내 친히 죽여주지.”
허도기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때,
쒜에엑! 탁!
두 사람 사이에 뭔가가 날아와 떨어졌다.
허도기는 무심히 날아온 물체를 봤다.
화살이다. 어떤 놈이 감히 화살을? 싸움을 방해하겠다고? 도대체 어떤 놈이!
그런데 화살에 뭔가가 매달려 있다.
새카만…… 손? 새카만 손!
“인독화!”
허도기가 벼락같이 소리쳤다.
파아아아아앗!
화살에 매달린 손에서 시커먼 연기가 피어났다. 인독화가 번져 나오고 있다.
사람 손을 잘라서 인독화를 묻혔다. 사람을 들여보낼 수 없으니 팔만 잘라서 쏘아 냈다. 팔에 인독화를 어느 정도나 묻혀 놨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두 사람을 죽일 정도는 충분하다.
“넌 반드시 죽인다. 여기서 못 나가! 어떤 놈도 네가 죽는 것은 방해하지 못해! 하하하하!”
허도기가 아걸을 보며 일갈했다. 하지만 그는 곧 신형을 솟구쳐 자리를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