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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385화 (385/600)

#385화. 第七十七章 유일시(唯一視) (5)

허도기는 확실히 승리에 취했던 것 같다.

너무 거친 싸움이라서 그리고 너무 확실해 보이는 승리 앞에서는 누구라도 마음이 풀어진다. 싸움이 완전히 끝나서 지켜보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으니까.

허도기는 그 방심 때문에 화살을 정확히 보지 못했다.

아걸은 화살이 날아오는 순간 정확히 봤다. 몰안으로 화살의 실체를 꿰뚫어 봤다.

아걸은 전 신경을 팽팽하게 곤두세워 놓고 있었다.

몸과 정신과 칼이 일치된 상태, 도신일체를 이루고 허도기를 주시했다.

몸 상태가 최악이라서 더 긴장했다.

복부 상처가 너무 심해서 꿈쩍을 하지 못했다. 정말로 일어서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반철도를 휘두를 힘도 없었다. 허도기가 와서 검을 잡았다면…… 정말 끝난 승부였다. 당장 머리를 잘라 낼 좋은 기회였다.

비록 반철도를 휘두를 힘은 없지만, 신경만큼은 날카롭게 곤두세웠다. 그래야 허도기가 다가오면 칼을 쳐 내는 시도라도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렇게 몰안에 파묻혀 있었던 탓에 화살이 어떤 형태인지 그리고 화살에 매달린 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봤다. 화살이 조금 느리게 날아온 것도 안다.

화살은 생나무를 깎아서 만든 것이다.

자신과 허도기가 싸우는 모습을 누군가가 봤다. 그리고 그때부터 생나무를 잘라서 화살을 만들었다.

화살을 날린 자가 누군지 모르지만, 이 싸움이 빨리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봤다. 그리고 더 기가 막힌 것은 자신이 곤경에 처할 것을 예측했다.

화살 만드는 시간을 고려하면, 당시는 자신과 허도기가 팽팽하게 싸울 때였다. 그때, 누군가가 곤란해질 것을 예측한다는 것은 무척 어렵다.

‘혹여 위험에 처하면 도와주자’ 하는 심정에서 화살을 깎았을 수는 있다.

화살을 만든 그는 인독화에 중독되어 죽은 시신의 팔을 잘랐다.

화살에 매달린 손은 죽은 지 며칠은 경과한 것이다. 멀쩡한 사람의 손을 잘라서 인독화를 묻힌 게 아니다. 당연히 독기를 발산할 리도 없다.

팔에 연기가 피어나도록 약간의 수작을 부렸다.

여기서 한 가지 또 생각할 것이 있다.

사람 팔을 화살에 매달면, 그 화살은 활로 쏘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이 화살은 활로 쏜 것이 아니라 손으로 던진 것이다. 비수 던지듯이 다소 날카롭게.

당시, 자신은 물론이고 허도기조차도 주변에 누군가가 있다는 기척을 탐지해 내지 못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상대가 기척을 숨긴 게 아니라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던 것이다.

기척을 느낄 수 없는 먼 거리에서 화살을 손으로 던졌다.

’그렇다면 거리가…… 길어야 십여 장이야. 사람 힘으로 저런 걸 던지려면 십여 장 안쪽에 있어야 해. 저기 어디쯤.’

아걸은 십여 장 밖을 쳐다봤다.

숲에 화살을 던진 자가 있다. 그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아걸이나 허도기 앞에 나서기를 꺼린다.

아걸은 이런 사실은 화살이 날아올 때부터 허도기가 악담을 퍼붓고 사라지는 짧은 시간 동안에 추론해 냈다. 몰안으로 화살을 정확하게 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빠져나가야 해!’

아걸은 즉각 몸을 움직였다.

허도기는 아직 물러나지 않았다. 떠나면서 다짐한 대로 이 오음산에서 자신의 목숨을 취할 것이다. 다음 싸움에서는 그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오늘 목숨을 끊으려고 사력을 다한다.

그는 인독화를 잘못 판단해서 즉각 물러섰다. 하지만 그렇게 멀리 가지 않았다.

인독화는 마유 마인들의 전유물이다. 그러니 허도기가 인독화에 대해서 모를 리 없다. 사람 손 하나에 깃든 독량(毒量)을 정확하게 셈해 낼 수 있다.

사람 손 하나에 담을 수 있는 인독화의 양을 생각하면 살상 범위도 짐작된다. 대략 십여 장!

허도기는 십여 장 언저리, 주변 어딘가에 숨어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싸움을 방해한 자가 누군지도 찾을 것이고.

‘화살을 던진 자도, 당신도 십 장 밖에 있다는 거지. 후후!’

아걸은 큰 숨을 들이켠 후, 반철도를 거둬서 허리춤에 찔러 넣었다. 그리고 옆에 떨어진 허도기의 장검을 들어서 지팡이 삼아 땅에 꾹 짚고 일어났다.

스읏! 슷! 스읏! 슷!

아걸은 느리게, 느리게 걸었다.

십 장 밖은 위험하다. 허도기가 기다리고 있다가 즉시 공격할 것이다. 특히 지금은 방해자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아걸의 상태에 개의치 않고 당장 습격해 온다.

그에 대해 대비를 해야 한다.

아걸은 삼 장쯤 걷다가 풀썩 쓰러졌다.

어둠이 아걸을 감췄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히 떠 있다. 달빛도 밝다. 그들이 싸우는 곳을 환하게 밝혀 주었다.

원래 두 사람이 선정한 장소가 그런 곳이었다. 밤이 깊을 때까지 싸울 줄은 몰랐지만, 본능적으로 가장 싸우기 좋은 장소를 찾아서 마주 섰다.

아걸은 나무가 짙게 드리워진 곳까지 걸어와 쓰러졌다.

나무 그늘이 워낙 짙게 깔려서 바싹 엎어져 있으면 사물을 식별하기 곤란하다.

물론 이 정도로 허도기를 속이지는 못한다. 그래서 엎어지자마자 바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질 시간을 주면 안 된다. 그 전에 빠져나가야 한다.

스읏! 슷!

아걸은 오체진감을 일으켰다. 오감을 닫고, 오직 감각에 의존해서 움직였다. 허도기 같은 자를 속이려면 어떠한 움직임도 드러나서는 안 된다.

아걸은 최선을 다해서 도주했다.

어차피 이번 승부는 끝났다. 졌다. 여기서 더 싸우면 속절없이 목숨만 빼앗긴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최대한 목숨을 아껴서 빠져나가는 것뿐이다.

스으으읏!

어둠 속을 은밀히, 지극히 조심해서 기어갔다.

‘누굴까?’

누가 화살을 던졌을까?

그의 의도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자신을 도와줄 생각으로 화살을 던진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는 인독화에 중독된 팔을 던졌다.

허도기의 검에 복부가 관통되었는데, 인독화까지 중독된다면 살아날 방법이 없다. 누군가의 그런 행위는 오히려 아걸을 죽음 속으로 밀어 넣을 수도 있었다.

죽은 지 이틀이 지난 손이지만 여전히 인독화를 풍긴다. 아직도 독성이 일이 장 정도는 미친다. 실제로 아걸은 인독화에 다시 중독된 상태다.

이게 미량의 독일까? 아니다. 다른 독과 비교해보면 아직도 극독이다. 살상 범위가 일이 장에 미치는 치명적인 독이다. 원래 독이 워낙 독성이 강해서 미독으로 보일 뿐이다.

허도기와 자신 사이에 독손을 던졌을 때는 두 사람 모두 중독될 것을 생각했을 것이다.

누구냐? 왜 독손을 던졌냐? 둘 다 중독시킬 생각이었나? 아니면 이 방법 외에는 자신을 구할 방법이 없었던 것인가? 그러면 지금이라도 나타나서 해약을 줘야지. 당신의 의도는 무엇인가. 적인가, 아군인가.

미지의 인물에 대해서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아걸은 죽을힘을 다해서 기었다.

십 장!

여기서부터는 위험지대다. 정상적으로 인독화를 사용했을 때, 살상 범위가 여기까지 미친다. 그러니 허도기가 숨어 있다면 지금이나 조금 있다가 나타날 것이다.

스으읏! 스읏!

오체진감이 주변을 읽는다.

바람 소리, 풀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움직이는 모든 소리를 몸으로 듣는다.

스읏! 슷!

아걸은 기고 또 기었다.

아걸은 한 시진을 움직인 끝에 다시 사형을 찾아왔다.

싸움터에서 벗어난 후에도 혹여 누가 뒤를 쫓을까 봐 지극히 조심하면서 달려왔다.

자신이 무덤을 만들어주고 묘비 대신 칼을 세워준 무덤.

아걸은 작은 봉분 앞에 이르자, 망설임 없이 묘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스읏! 스으으읏!

무덤을 팔 때도 소리가 흘러나가지 않게 지극히 조심했다.

오체진감은 여전히 유지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러니 자신이 흘리는 소리도 듣는다. 혹여 소리가 일어날 것 같으면 즉시 멈추고 다시 조심해서 움직인다.

귀신이 어두운 밤에 봉분을 파헤친다.

아걸은 전신이 피투성이다. 머리는 산발했고, 옷은 갈기갈기 찢어졌다.

만약 누군가가 아걸의 지금 모습을 봤다면 정말 귀신인 줄 알고 기절초풍을 했을 것이다.

사형, 서리가헌의 시신은 곧 드러났다.

‘사형, 마지막인 줄 알았는데 또 보네.’

아걸은 툴툴 웃었다.

사형은 녹선마황을 지니고 있다. 그것 때문에 사형을 찾았고, 무덤을 팠다.

허도기와 싸우면 일 초에 승부가 날 것이고, 녹선마황 같은 것은 필요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절실히 필요할 줄이야. 사형의 영면을 방해할 줄이야.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허도기에게 당한 상처가 너무 심해서 이대로는 오음산을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다. 허도기가 굳이 손을 쓰지 않는다고 해도 현재 아걸이 지닌 간단한 금창약만으로는 상처를 치료할 수가 없다.

아마도 농이 생겨서 끙끙 앓다가 죽을 것이다.

더군다나 아무리 독에 강한 체질이라고 해도 인독화에 중독된 것은 무시하지 못한다. 곧 인독화의 독기가 심장을 마비시킬 것이다. 온몸을 팔팔 끓게 만들 것이다.

“끄응!”

아걸은 사형의 품에서 녹선마황이 든 목갑을 꺼냈다.

“사형. 미안! 힘이 없어서. 정리는 나중에 와서 다시 하지.”

아걸은 시신이 보이지 않을 정도만 흙을 덮었다. 봉분까지 깔끔하게 세워주고 싶지만 그럴 만한 힘이 없다.

아걸은 일어섰다.

허도기의 장검을 지팡이 삼아서 전신을 의지한 채 숲으로 들어갔다.

본격적으로 숨어야 한다.

“놓쳤군.”

허도기는 미간을 확 찡그렸다.

서리가헌의 봉분이 흩어져 있다. 누군가가 파낸 흔적이 너무도 뚜렷하다.

짐승이 파헤쳤나? 천만에! 아걸이다.

허도기는 피식 웃었다.

아걸이 다시 여기로 와서 사형의 봉분을 뒤진 것은 녹선마황이 필요해서다.

아걸은 이미 숨었다.

음산 전체를 뒤져도 그를 찾기는 힘들다. 아걸 같은 자가 숨기로 작정했으면 철저하게 숨는다.

‘이제는 내 목숨을 염려해야 하나? 후후!’

놀라운 놈! 항상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놈!

아걸은 반드시 죽였어야만 했다. 다시 만나면, 아니 이제는 아걸이 찾아올 것이니…… 다음에 만나면 정말 긴장해야 한다. 어쩌면 질지도 모른다.

놈의 칼은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어떻게 이토록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단 말인가?

갓난아기에서 갑자기 큰 어른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엊그제 봤을 때는 꼬마였는데 오늘 보니 다 큰 청년이다. 내일은 능숙한 도객, 완숙한 도객이 되어서 나타날 것이다.

칼이 농익을 대로 농익어서 능히 조명십해를 감당해 낸다.

‘용골이라는 건가.’

이번에도 웃음이 흘러나왔다.

허가는 용골이다. 체력과 근골은 태어날 때부터 뛰어나다. 뼈가 굵고, 몸도 바윗덩어리처럼 단단하다. 팔다리의 비율이 좋아서 어떤 무공도 쉽게 흡수한다.

아걸은 용골 중 용골, 진골이다.

허도기는 아걸의 비밀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형은 막내아들을 숨겨놓고 키웠다. 그 이유도 오늘 알게 되었다.

만약 자신 앞에 아걸을 드러냈다면, 다른 세 조카를 죽이지 못하는 한이 있어도 아걸만은 죽였을 것이다. 아걸은 용골 중에서도 천 명 중 하나, 만 명 중 하나가 태어난다는 진골이다. 무공에 최고로 적합하다는 체질과 오성, 그리고 반사신경을 지녔다.

그러니 이토록 빨리 따라올 수 있는 것이다.

“후후후!”

허도기는 웃으면서 걸었다.

아걸은 이미 놓쳤다. 오음산을 구석구석 뒤져도 못 찾는다. 이건 장담한다.

‘그러나저러나 당신은 또 누구야? 궁금하네.’

허도기는 급조한 화살을 던져서 아걸을 구해낸 자가 누군지 궁금했다.

그자는 무공이 약하다. 나름대로는 강할지 모르지만, 아걸이나 자신을 상대할 자신은 없다. 그러니 당당하게 나서지 못하고 암수를 쓴 것이다.

그 당시, 아걸은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다. 자신도 거의 녹초가 되어 있었다. 기운이 펄펄 넘치는 자와 다시 정식으로 싸울 수 있는 몸이 아니었다.

상대가 나타나지 못한 것은 아걸이나 성검문주의 위명에 주눅이 들어서다. 아예 싸울 생각을 못 한 것이다. 아니면 두 사람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기가 질렸을 수도 있다.

그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잔수를 써서 아걸을 구한 것뿐이다.

허도기는 생각을 깊게 해봤다. 하지만 도저히 상대가 누군지 떠오르지 않았다. 마유 마인들이 쫙 깔린 오음산에 들어와서 이런 짓을 할만한 사람이 생각나지 않았다.

물론 지금은 마유 마인들이 모두 철수하고 없지만, 상대는 그런 사실을 모르고 들어왔을 것이다. 마유 마인들이 있다고 가정하고 은밀히 숨어들었다.

그자가 누군지 정말 궁금하다.

더욱 약 오르는 것은 자신이 그런 자에게 희롱당했다는 사실이다.

독한 싸움을 치른 탓에 절대로 하지 않을 실수를 하고야 말았다. 인독화를 잘못 판단한 실수다. 그런 자잘한 수나 쓰는 하찮은 자를 잡지 못한 실수다.

자신 역시 인간이었다.

사람들이 공부, 공부하고 불러대고 무신이라고 추켜세우니 정말 신이라도 된 듯 알고 살아왔다. 하지만 오늘, 아걸이 당신 역시 인간이라고 하고 일깨워 주었다.

“아무래도 아걸은 잡았어야 해. 하아! 내 일생 최대의 실수라면 오늘 아걸을 죽이지 못한 것…….”

허도기는 산길을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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