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392화 (392/600)

第七十九 제기정신(提起精神) (2)

장군부를 청부금으로!

자고로 이런 청부금은 없었다. 황금 몇백 냥도 아니고, 성 하나를 통째로 주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사람만 제외하고 전부다!

농지나 야산 같은 땅, 건물, 장군가를 이어온 병기와 무공 비급, 그리고 재화.

그야말로 막대한 재물이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재물은 숨겨진 재물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장군가에서 재물을 풀면 당장 십만 대병을 거병시킬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장병 십만 명에게 최소한 반년 치의 녹봉을 줄 수 있는 막대한 돈이 있다는 말이다.

일반 사람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큰돈이다.

아니, 돈이 이 정도 되면 이미 개인 돈이 아니다. 이 정도면 나랏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맞다. 나랏돈이다.

한 명의 신하게 이 정도의 재화를 지니려면 황상의 특별 배려가 있어야 한다.

그러면 조위 장군은 왜 이렇게 막대한 재화를 가지고 있는가. 부패한 장군인가? 장군의 녹봉에 비하면 터무니없을 정도로 많지 않은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측이 난무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장군이 탐관오리라서 재물을 취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황상의 윤허하에 재물을 모았다.

딱 그 정도밖에 모른다.

대장군은 그렇게 모든 재물을 모두 청부금으로 내놓았다.

또 다른 부분도 생각해야 한다.

장군부를 청부금으로 내놓는다는 말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가장 먼저 생각할 것은 장군부라는 이름이다.

장군부는 세상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이다. 원래 이 저택의 이름은 조가장(趙家莊)이다. 장군부라는 명칭은 존재하지 않는다. 관사가 아니고 조위 장군의 개인 저택이다.

장군부라는 이름은 세상 사람들이 대장군의 위명을 기리기 위해서 존경하는 의미로 부르는 것이다.

장군이 조가장을 청부금으로 주겠다고 했으면 이해가 빠르다. 한데 분명히 장군부를 준다고 했다. 단순히 실수한 것인가? 아니면 ‘장군부’라는 말에 의미가 있나.

어떤 의미든 몽설이 청부를 받아들이는 즉시, 대장군은 휘하 식솔과 무인을 데리고 떠난다.

이곳은 취화원 소유가 된다.

세상 사람들이 장군부라고 부르던 곳이 살수 집단의 소유가 되는 것이다.

“먼저 청부금에 대해서 말하기 전에 내용부터 살펴봐야겠네요. 누구를 지키라는 거죠? 청부 대상자는 명확하게 말씀해 주셔야 해요. 그래야 저희가 할 수 있는지 판단하죠.”

“미안하지만 허락하면 말해 주지.”

“내용도 모르고 무조건 허락부터 하라, 이 말씀인가요?”

“그렇네.”

“청부금으로 장군부. 이 정도 청부면 보통 사람이 아니겠네요. 제가 생각하는 그분인가요?”

“누구를 생각하는지 모르니 답할 수 없군.”

“그분한테는 저희가 필요 없지 않나요?”

“그 판단은 내가 하네.”

“지금 실수하신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아니,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네.”

몽설은 조위 장군을 빤히 쳐다봤다.

엄청난 청부금을 주면서 지켜야 할 사람을 말해 주지 않는다. 허락하면 말해 주겠단다.

이만한 청부금을 받으면 취화원도 존폐를 걸어야 한다.

대장군을 지키는 일도 어렵다. 마유 마인들을 상대하려면 취화원 식구 중 절반 이상이 죽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런 일을 호의로 해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장군은 그만한 일은 눈도 끔쩍하지 않으면서 엉뚱한, 말도 안 되는 청부를 했다.

적어도 마유 마인보다 더 큰 폭풍인 것이 확실하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당연히 시간이 필요하겠지. 쉬운 결정이 아니니까. 하루 주지. 내일 이맘때, 결정해 주게. 청부를 받아들이면.”

대장군이 서랍 속에서 조그마한 삼각 깃발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놨다. 깃발이라고 해 봤자 겨우 손바닥만 하다. 돌돌 말면 한 손에 꽉 쥐어진다.

“마차를 타고 갈 때 어자석에 이걸 꽂아 놓게. 그러면 청부가 이루어진 거로 알 테니.”

“거절하면요?”

대장군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무 데나 버려도 좋아. 우리가 주울 테니까.”

“제가 찾아오지 않았다면 이번 일을 다른 곳에 맡겼겠죠? 누구에게 맡길 생각이셨어요?”

장군은 잠시 침묵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몽설을 빤히 보면서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자네 주안공(駐顔功)을 수련했나?”

“네. 수련했어요.”

몽설이 숨기지 않고 대답했다.

주안공을 수련하면 피부가 탱탱해진다. 주름이 쉽게 자리 잡지 못한다. 얼굴을 매일 가꾼 여인보다도 싱그럽다. 잡티나 주근깨도 사라진다.

“그 주안공, 혹시 견약반공인가?”

“견약반공을 아세요?”

“자당(慈堂)을 뵌 적이 있지. 견약반공이 뛰어나서 일홀문주보다 스무 살이나 젊어 보였어. 후후! 문주와 세 살 차이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지.”

“어머니를 아는 분은 처음 봬요.”

“당시에는 남소라고 하면 울던 아이도 뚝 그쳤지. 하하! 일홀문주와 혼인하지 않았다면 취화원주가 되었을걸?”

“아버님도 아세요?”

“일홀문주하고도 인연이 있기는 하지. 지나가다가 길에서 뵙고 억지로 다루로 끌고 갔지. 차를 마시자는 것은 핑계고, 천하제일도라기에 기회를 봐서 칼 한 번 보고자 했지.”

“…….”

몽설이 장군을 쳐다봤다.

누군가가 아버지와 어머니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처음이다. 취화원 사람을 제외하고는 어머니를 아는 사람도 없었다. 아버지에 대한 말은 더 듣지 못했다.

그 누구도 일홀문주와 남소에 대한 말은 삼갔다.

“일홀문주가 워낙 유명한 칼이었잖나. 그때는 나도 팔팔할 나이였고. 문주가 나보다 한 배분 높아. 연배로.”

“그렇겠네요.”

“당시 나는 전쟁 경험도 많이 쌓았고, 명성도 있던 때라서 하늘 높은 줄 몰랐지. 그런데 문주와 마주 앉자마자 아! 나는 이 사람 상대가 아니구나. 이 사람과 칼을 맞대면 단박에 목숨이 끊어지겠구나. 그런 느낌이 들더군. 정말 생전 처음 보는 날카로운 칼이었어.

“다들 그런 말씀을 하시는데, 저는 아무 기억도 없어요.”

“그것뿐인 인연이었네.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 그저 어쩌다가 마차에서 내려 차 한잔한 것. 그것밖에 없는데…… 내 평생 만난 사람 중에서 가장 강한 칼로 인식되어 버렸지. 공부가 강하지만…… 음. 아니야. 아니야.”

장군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공부의 검을 보고도 그와 맞설 수 있는 것은 일홀문주와 먼저 만났기 때문일 거네. 이 세상에는 일홀문주 같은 칼이 있다면, 고부는 한 수 아래지. 난 지금도 일홀문주가 살아 계신다면 공부보다 강할 것이라고 보네.”

“네.”

“이제 대답하지. 자네가 찾아오지 않았다면 누구에게 이번 일을 맡겼을까?”

장군이 웃으면서 몽설을 쳐다봤다.

“맡기지 않았네. 굳이 맡기지 않아도 될 일이니까. 이미 준비는 끝나 있지.”

“그런 일에 장군부를 주시는 거예요?”

“그래도 만약 뚫린다면 목숨을 걸어야 하니까. 만에 하나. 그 만에 하나가 매우 소중하지. 만에 하나가 일어나지 않으면 장군부만 날리는 게 아니냐? 그래도 후회하지 않네. 만에 하나가 일어나서 땅을 치고 후회하는 것보다 백번 나으니까.”

“말씀하신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일이 벌어지면 저희도 막지 못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장군님을 공격하려는 자들은 마유 마인일 것으로 생각해요. 그들이 오면 저희도 막지 못해요.”

“그런데 왜 왔나? 이기지도 못하면서.”

“최선을 다해서 장군님을 보호하려고 왔죠. 자신은 없지만, 최선을 다할 거예요.”

“후후후! 내가 자네에게 만에 하나를 맡기는 이유, 자네 입으로 설명했군. 그것 때문에 맡길 생각을 한 거네. 자넨 일홀문주나 아걸 같은 칼이 없어. 하지만 목숨을 지켜주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야. 어떤 칼보다도 강하게. 일홀문주와 남소의 여식이라면…… 장군부를 줘도 아깝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네.”

“장군님 말씀 진지하게 고민해 보겠습니다.”

몽설이 일어섰다.

그때, 밖에서 낭랑한 음성이 들려왔다.

“장군, 비보(祕報)입니다.”

“그럼 저는 이만.”

몽설이 급히 일어서려고 했다.

비보, 비밀 보고…… 그렇다면 당연히 주변에 사람이 없어야 한다. 외인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즉시 자리를 피해 주는 것이 장군에 대한 예의다.

그런데 장군이 손을 들어서 자리에 앉혔다.

“있어 보게.”

“네?”

“들어와라.”

장군은 몽설이 있는데도 수하를 불러들였다.

비보를 전하는 자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곧장 장군에게 가서 서신을 내밀었다.

장군이 서신을 받아들고 차분히 읽었다.

“후후! 이럴 줄 알았지.”

장군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그리고 서신 너머로 원주를 보며 웃었다.

“원주.”

“네.”

“선물 하나 줄까?”

“네?”

장군은 몽설이 대답도 하기 전에 서신을 내밀었다.

몽설은 엉겁결에 서신을 받아들었지만, 바로 읽지는 않았다.

“제가 읽어도 되나요?”

장군이 읽어보라는 듯 손짓을 했다.

- 아걸(阿杰) 십일일(十一日) 오음산(吾音山) 출현(出現) 무사(無事).

서신 내용은 짧았다. 하지만 몽설에게는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는 듯 세상이 환해지는 내용이었다.

“이, 이게 정말! 정말이에요?”

몽설이 진중함도 있고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서신을 들고 있는 손이 덜덜 떨렸다.

“자네가 오고 곧바로 이 소식이 온 걸 보면 인연은 인연인 모양이군. 하하하!”

장군이 웃었다.

“소식,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몽설이 서신을 다시 내밀었다.

그러자 장군이 손을 휘휘 저었다.

“가져가시게. 비록 전혀 모르는 자가 보낸 서신이지만, 자네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반가운 소식이지 않나. 잘 간직하시게. 나중에 아걸이 속 썩이면 슬쩍 보여 줘.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마음고생 한 줄 아느냐고 한마디 해 주고. 이 서신으로 서너 번쯤은 우려먹을 수 있을 거네.”

“풋!”

몽설은 장군의 말에 웃음을 흘렸다.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몽설이 서신을 접어서 품에 넣었다.

“몽설은?”

“돌아갔습니다.”

침착한 대답이 들려왔다.

“황상을 뵈어야겠다.”

장군이 찻잔에 차를 따르며 말했다.

“이해가 안 되어서 그렇습니다만,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문밖에서 조용한 음성이 울렸다.

“후후! 일개 살수 문파에 불과한 취화원을 황상에게 천거하는 게 그렇게 못마땅하냐?”

조위 장군은 무슨 내용인지 알고 있었다.

“힘이 된다면 살수 문파보다 더해도 천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들은…… 솔직히 황상 곁에 있다 한들 아무런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서. 왜 그런 일에 장군부라는 거대한 청부금을 지불하면서까지 시키신 건지 이유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몽설이 말하지 않았더냐.”

문밖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하하하!”

조위 장군이 웃었다.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때로는 말이다. 아무런 힘이 없어도 천하를 떠받을 수가 있고, 때로는 천하를 떠받을 힘이 있어도 아무것도 못 하는 수가 있다. 너는 왜 몽설이 취화원에서 살수로 자랐다고 생각하느냐? 천하에 일홀문주의 딸이.”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생각하는 중이다.

내가 천하제일도를 가지고 있다면, 내 딸을 살수 문파에 맡길까? 천만에! 맡기지 않는다. 어떤 위험이 닥쳐도 내 칼로 막아낼 수 있다고 자신한다.

일홀문주와 문주의 부인인 남소는 딸을 취화원에 맡겼다. 일이 벌어지기 한참 전에 맡겼다.

자신이 무너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것이 천하를 떠받들고 있어도 아무것도 못 하는 경우다.

반면에 아걸은 공부 허도기의 발목을 잡았다.

별것도 아닌데, 허도기가 조금만 신경 쓰면 단박에 쓰러뜨릴 수 있는 자인데도…… 그런 자가 공부를 끌어내려 무림에 주저앉혔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가 천하를 떠받들었다.

조위 장군은 몽설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그런 것들만 보고 살아온 여인이기에.

칼도 무디지 않지만, 촉(觸)은 천하의 으뜸이다.

허도기가 성검문을 비웠을 때, 가장 적절한 순간에 오진북을 친 것만 봐도 그렇다.

“소신이 생각이 짧았습니다. 곧 관복을 대령하겠습니다.”

문밖에 있는 자가 말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