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393화 (393/600)

第七十九 제기정신(提起精神) (3)

몽설은 구곡주와 둘러앉았다.

구곡주는 이미 장군부에 대한 건물 지도를 입수한 후였다. 그뿐만 아니라 살수들을 배치할 장소까지 선정했다.

장군부 주변에 깨알 같은 점들이 가득 찍혔다.

각 점의 색깔이 다른 것은 구곡을 구분했기 때문이다. 같이 움직이면서도 구곡의 독자성을 인정했다.

“장군부는 장군부 무인들이 지킬 것이니, 우리는 대장군이 출두할 때만 지키면 되죠. 대장군이 마차를 탈 때와 말을 탈 때로 구분해서 위치를 정했어요.”

몽설 앞에 지도가 펼쳐졌다. 몽설은 지도만 봐도 취운의 전략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스윽!

몽설이 묵묵히 지도를 접었다.

“왜?”

취운이 막 설명하려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조 장군이 우리 호의를 거절했어요.”

“아! 잘됐다!”

몽설이 말하기 무섭게 취운이 반색했다.

다른 곡주들도 마찬가지다. 모두 안도했는지 얼굴색이 환하게 밝아졌다.

역시 정가와 인연을 맺는 것은 찜찜하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랬다고, 살수는 살수 문파로 남아야 한다. 상군의 뜻이 장군부에 있다는 것만은 확실해서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이 사양해 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몽설이 차분히 말했다.

“먼저…… 그 사람, 살아 있어요.”

“네? 정말입니까?”

취운이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그녀가 묻는 말에는 반가움과 당혹감이 반반씩 섞여 있었다.

아걸이 살아 있다는 말은 무엇보다도 반가운 말이다. 하지만 아걸이 살아 있는데도 아직 취화원이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은 약간 아쉽다. 아직 보고조차 올라오지 않았다. 세상 정보를 취합하는 제오곡주 입장에서는 민망한 정보다.

“오음산에서 봤다는 사람이 있어요.”

“죄송합니다.”

“정말입니까?”

“와! 정말 잘됐네.!”

“살아 있을 줄 알았다니까. 그러면 둘 싸움은 어떻게 된 거지? 상군이 이긴 거야, 허도기가 이긴 거야?”

“정말? 두 사람 모두 싸움을 시작했으면 끝장을 내는 성격들인데, 이상하네? 둘이 안 싸웠나?”

“허도기 온몸이 피투성이였어. 싸운 건 확실해.”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네.”

구곡주가 중구난방으로 떠들었다.

오곡주를 제외한 모두가 반갑다, 다행이라는 말을 했다.

몽설을 슬쩍 취운의 손을 잡았다. 괜찮다는 웃음을 가득 머금고.

몽설이 차분히 말했다.

“자! 이제 그 사람 이야기는 끝! 살아 있으면 뭐 해요? 연락 한 통 없는데. 이제 그 사람 이야기는 끝!”

“호호호!”

“원주님, 삐졌네.”

구곡주가 모든 근심·걱정을 내려놓고 환하게 웃었다.

몽설이 차분하게 말했다.

“이번에 조 장군한테 갔는데, 조 장군에 제 호의를 거부하는 대신에 다른 청부를 줬어요.”

“청부요? 거절하셨죠?”

취운이 당장 말했다.

“맞아. 이런 건 거절하는 거야. 뒤끝이 안 좋아.”

사사가 말했다.

“장군가에서 청부를 넣을 정도라면 보통 일이 아니니까. 우리 힘으로 감당할 수 없어.”

월영이 말했다.

몽설은 그들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차분히 말했다.

“생각해 본다고 했어요.”

모두 무슨 말이냐는 듯 몽설을 쳐다봤다. 상군도 살아있고, 조 장군도 호의를 거절했고…… 그런데도 청부를 거절하지 않고 생각해 본다고? 왜?

“청부금이 장군가예요.”

몽설이 짧게 말했다.

이제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장군가라는 화려한 청부금에 매료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장군가에서 무엇 때문에 그만한 청부금을 걸었고, 원주는 또 왜 당장 거절하지 않았는지.

모두 몽설만 쳐다봤다.

“장군가의 재산은 엄청나죠. 저희 취화원이 백 년을 노력해도 쌓을 수 없는 재산일 거예요. 그러니 청부금에 대해서는 말할 게 없고…… 이제 청부 내용을 들어봐야겠네요.”

취운이 침착하게 말했다.

“한 사람을 지켜달라고 했어요. 제 생각에 그 한 사람, 황상일 것으로 생각해요.”

거대한 둔기가 구곡주의 머리를 후려쳤다.

장군가에서 살수 집단에 황상의 보호를 요청했다. 이건 말이 안 된다. 이 말을 듣는 사람은 무조건 ‘왜?’라고 되묻게 되어 있다. 그러니 정작 당사자들은 어떻겠나?

왜?

황제에게는 금군(禁軍)이라고 불리는 근위대가 있다.

황제의 경호를 맡은 시위군(侍衛軍)과 경비를 내군(內軍)이 모두 황제 직속이다.

이들의 경비는 그야말로 철통이다.

황실까지 무려 스무 겹 이상의 경비망이 깔려 있어서 취화원 살수들조차도 뚫기 힘들다. 또한, 이들은 황제가 특별히 선발한 무인이거나 과거를 통해서 급제한 자들, 또는 군대에서 특출한 무용을 드러냈던 자들로 하나같이 무공이 뛰어나다.

고르고 고른 정예들이다.

더욱이 이들의 수는 무려 삼천 명에 이른다. 장군만 육백 명씩 다섯 조, 다섯 명이다.

어느 누가 감히 궁궐을 넘어가서 황상을 해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면 황상을 죽이라는 청부는 어떤가? 받아들일 수 있나? 정의나 도의 등등 여타의 문제를 모두 제쳐놓고 단순히 능력으로만 판단했을 때, 가능한가?

‘무리야!’

황상을 살해하라는 청부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렇다면 반대되는 청부도 받을 수 없다. 그만한 포위망을 뚫고 들어온 자들이라면 일단 능력 면에서 취화원 살수들을 능가한다. 살수들이 펑펑 나가떨어지는 것은 둘째치고, 보호 대상인 황상을 보호하지 못한다.

구 곡주는 답답했다.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좀 어렵죠?”

몽설이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이건…… 청부를 받으면 우리가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놓아 주지 않으면 싸우면서 나와야 하잖아요. 금군과 싸운다는 게…….”

규화가 찌푸려진 인상을 풀지 못하고 말했다.

황상을 보호하려면 궁궐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대궐에 파묻혀서 지내야 한다.

이 생각을 하자 당장 그러면 영원히 나오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놔주지 않는 한, 쉽게 풀려나지 못한다. 더욱이 대궐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모른다.

황상이 살수를 정적 제거 도구로 이용하면? 누군가를 죽이는 데 사용하면?

따를 수밖에 더 있나.

“기간은 육 개월이에요. 육 개월만 보호하면 그 후에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그 말을 믿으세요?”

취운이 말했다.

“일단 그 부분은 그분을 만나서 확답을 들어야 하는데, 장군은 대답부터 원해요. 그러니 확답을 받을 수는 없어요. 장군을 믿고 하든가, 아니면 그만두든가.”

“하지 말죠?”

청란이 말했다.

“원주님이 망설이는 이유가 뭔지 알고 싶은데요.”

취운은 조금 더 신중하게 말했다.

“누가 그분을 노릴까? 이 문제가 풀리지 않네요. 허도기가 야습할 것을 우려하나? 아무리 허도기라도 황궁을 야습하지는 못하겠죠? 그럼 뭔가?”

“금군?”

“제 생각도 그래요. 반역. 허도기가 신호를 보내면 동시에 뒤돌아서 설 자들. 이런 자들이 금군 내에 다수 있다면 우리에게 청부하는 게 이해되어요.”

“음! 그렇긴 하네요.”

“그럴 때 우리 할 일은 맞서 싸우는 게 아니라 황상을 탈출시키는 일이 될 거예요. 하루나 이틀쯤 완벽하게 숨어 있거나. 그 사이에 역도를 제압하지 못하면 싸움은 끝난 거고요. 아마 이 나라는 역도 손에 넘어가겠죠?”

싸우는 게 아니라 숨는 것, 탈출하는 것.

물론 그 와중에 취화원 살수 다수가 희생될 것은 자명하다. 어제까지만 해도 굳게 믿었던 금군이 휘몰아칠 것이고, 파괴력 또한 상상을 불허할 것이다.

“원주님 생각은 어떠신데요?”

“글쎄요. 아직은 아무 결정도…… 이럴 때 팔 장로님이 옆에 계시면 좋을 텐데.”

세상은 지혜로만 살지 못한다. 어떨 때는 세상을 살아온 경험이 무엇보다 필요한 순간도 있다. 늙은 생강이 맵다고 했나? 오래 살아온 현자의 한 마디가 아쉽다.

이 문제는 단순히 지혜나 감정, 이해타산만으로는 결정할 수 없는 문제였다.

“전임 적랑대주님을 만나보시는 게 어떠세요?”

취운이 말했다.

“할아버지요? 할아버지가 어디 계신데요?”

“엎드리면 코 닿을 데? 호호호! 원주님이 오진북과 싸우는데 그분이 안 오실 것 같아요? 먼발치에서 구경하시는 것 봤어요. 지금도 근처에 계실 텐데, 찾아볼까요?”

“네. 그래 주세요. 할아버지 말씀을 들어보고 숙의하기로 해요.”

몽설이 긴장을 풀지 못한 채 말했다.

아삼은 술에 취해서 널브러져 있었다.

아삼은 취화원 살수들이 주루를 뒤진 지 겨우 한 시진 만에 찾아냈다. 비싼 술집을 제외하고, 파락호들이 들락거리는 술집을 제외하면 찾을 곳이 몇 군데 되지 않았다.

아삼은 야천 일이 생각나서인지 파락호들이 즐겨 찾는 술집에는 발길도 들여 놓지 않았다.

몽설은 아삼을 깨우지 않고 곁을 지켰다.

근 두 시진 이상, 작은 술집에 앉아서 오가는 사람들을 쳐다봤다.

사람들이 몽설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허름한 술집에 너무 예쁜 여자가 앉아 있으니 쳐다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비를 거는 사람은 없었다.

아삼 곁에는 적랑대 무인들이 지키고 있다. 모두 떠나고 없지만 그래도 두 명이 붙어 있다. 몽설 주위에도 취화원 살수들이 붙어있다. 그녀들이 시비 걸려는 사람을 막아섰다.

“아함!”

잠에서 깬 아삼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말했다.

“내가 죽었나? 내 곁에 왜 선녀가 앉아 있지?”

“해!”

“해요?”

“해야지! 그걸 안 해?”

아삼은 무슨 바보 같은 소리냐는 듯 당장 하라고 다그쳤다.

“황궁은 권력의 최정점이잖아요. 이건 단순한 불기둥을 잡는 게 아니고 용암으로 들어가는 건데, 무사히 나올 수 있을까요? 저희 취화원 정도는 단숨에 타버릴 것 같아서.”

“지랄하고 있네. 킥킥!”

아삼이 키득대며 웃었다.

“너희가 언제부터 목숨 생각하면서 움직였어? 살수 아냐? 이것들이 아직 뜨거운 맛을 못 봐서. 왜? 하는 일마다 잘 되고, 치는 족족 부수니까 안전한 길만 가고 싶어?”

“할배!”

몽설이 빽 소리쳤다.

“이것아. 살수나 무인이나 목숨 내놓고 다니는 건 똑같아. 그래, 안 그래?”

“그렇죠.”

“그럼 일단 뒈질 염려는 팽개쳐 두고, 다른 걸 봐야지.”

“가장 중요한 걸 제쳐 놓네요?”

“너흰 살수라니까! 정말로 조 장군이 황상 보호를 요청했다면, 너흰 궁궐로 들어가야 해. 그런데 궁궐이란 곳이 사인(私人)은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이지. 꼭 허락을 받아야만 들어가. 이 말을 듣고도 뭐 생각하는 게 없냐?”

몽설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르겠다고.

“멍청하기는. 너희가 황상을 보호한다면 궁궐을 수시로 들락거려야 하잖아.”

“네. 그러면 좋죠.”

“그때마다 어떻게 출입을 확인해. 그러니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도록 금룡패(金龍牌)를 내주는데, 이 금룡패는 한 번 주면 거두지 않아. 이게 불문율이야. 즉, 너는 언제든 황상에게 쪼르르 달려갈 수 있으니 가장 든든한 뒷배를 둔 셈이라 이거지. 궁궐에 들어가면 못 나온다고? 에라이! 금룡패가 있는데 왜 못 나와?”

“그런 게 있어요?”

“취운! 너 거기 있지! 오곡은 이런 거 알아내라고 있는 거 아냐! 게을러 터져 가지고는. 야! 너 돌아가면 저것부터 갈아치워라. 요즘 취화원 정보가 영 부실해.”

아삼이 취운의 아픈 곳을 찔렀다.

확실히 취화원 정보가 약하기는 하다. 아예 정보망 자체가 확실하게 구축되어 있지 않다.

지금쯤 취운도 이런 점을 여실히 느끼고 있을 것이다.

아삼이 술 취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러니까 이번에 궁에 들어가면 황상을 잘 사귀어 놔. 또 알아? 자네가 자식을 낳으면 승상이라도 시켜줄지.”

“할배!”

“아이, 깜짝이야! 야! 아걸 그놈이 할배, 할배 하니까 이것까지 할배라고 그러네! 넌 위아래도 없냐!”

“그러니까 왜 쓸데없는 소리 하세요!”

“뭐가 쓸데없는 소리야! 다 맞는 말이구만. 그리고…… 조 장군은 믿어도 돼. 조 장군이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일홀문주다. 네 아버지.”

“대충 짐작은 했어요.”

“그래? 후후! 조 장군이 뭘 염려하는지 모르겠는데, 너희가 적임자라고 생각하니까 맡긴 거겠지. 가서 지켜봐. 할 건 해 주고, 얻어낼 거는 최대한 얻어내고. 어쨌든 이번 일을 맡으면 앞으로 취화원은 돈 걱정 안 해도 돼. 반드시 살수 문파를 유지해야 할 필요는 없잖아? 업종 전환도 생각해 봐. 아걸이 명부판관 노릇을 한 적이 있지? 그런 식으로 세상을 바로 잡아도 되고. 취화원 무공으로, 해 봐. 손해 볼 거 없을 거 같아.”

아삼이 흔쾌히 말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