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394화 (394/600)

第七十九 제기정신(提起精神) (4)

“취화원주가? 오진북을?”

“그렇다니까. 그것도 일 초에! 일 초에 그냥 손을 쓱 올렸는데, 심장이 뻥 뚫리더래.”

“아! 취화원주가 그 정도일 줄은 정말 몰랐네.”

“그렇지? 다들 놀라가지고 한마디도 못 하더란다. 성검문 무인들도 얼어붙더래. 어찌나 놀랐는지.”

“그러면 이제 성검문도 다 된 거 아냐?”

“소축십검이 원래 잿밥에만 관심이 많은 종자들이잖아. 공부께서 계신 이상 끄떡도 없어.”

“그건 맞아. 공부님이 계시니.”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요즘은 한 걸음만 걸으면 이런 말이 귀를 간질인다.

‘몽설이? 후후! 시기를 아주 잘 잡았네. 명분도 좋았고. 위험천만했는데.’

아걸은 빙긋 웃었다.

살수 문파 원주가 문도의 복수를 하겠다고 나서는 경우는 없다. 그것도 정도 문파를 상대로 칼을 들면 당장 무림 공분을 산다. 어디 살수 문파 따위가 정도 문파에 칼을 들이대나!

몽설은 혈무대에 섰다.

누구나 설 수 있는 무대에 선 것이다. 신분이 취화원주이니 사실대로 말한 것일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취화원주와 오진북의 싸움으로 바뀌었다.

비무가 끝난 후, 몽설이 한 행위도 복수극을 연상케 했다.

하지만 승부는 엄연히 혈무대에서 결정되었다. 혈무대를 내려오면서 뭐라고 중얼거리든 할 말이 없다. 승자는 모든 것을 가져가고, 패자는 모든 것을 잃는다.

또 다른 소문도 나돈다.

“그러고 보면 공부께서는 참 대단해.”

“대단하기는. 제자가 죽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냥 가만히 있잖아. ‘이건 비무다’ 하면서.”

“그러니까 대단한 거지. 공부나 되시니까 참으시는 거야. 무신 눈에는 모두 피라미거든.”

“그런데 공부가 정말 그렇게 강한가?”

“강하지. 천강무신 아냐, 천강무신. 하늘이 내린 무신. 공부가 얼마나 강하냐 하면, 뭐야 그 풍도곡! 맞아, 풍도곡. 풍도곡의 칼 귀신이라는 자가 있었잖아? 서리가헌이라고.”

“있었지.”

“그 서리가헌이라는 자가 공부한테 덤볐다가 일 초에 나가떨어졌대요.”

“그래? 그런 일이 있었어?”

“단 일 초에! 그냥 빵!”

“언제? 그런 소문을 왜 난 못 들었지? 지금 처음 들어.”

“공부는 검을 함부로 안 뽑아. 무림에 해악을 끼치겠다 싶은 자만 찾아서 조용히 눕히시지. 이 정도는 놔둬도 되겠다 싶은 자들은 그냥 내버려 두는 거야. 왜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못 산다고 하잖아. 무림도 적당히 돌아가야 하는 거야. 공부께서 나서면 일거에 싹 정리되지, 뭐. 천강무신이신데.”

서리가헌의 죽음이 사람들 입에서 회자하고 있다. 분명히 서리가헌의 죽음이 이용되고 있다.

그의 죽음은 이 세상에서 단 두 명, 허도기와 아걸밖에 모른다.

허도기가 죽였고, 아걸이 묻었다. 그런 사실은 사령이나 마유 마인도 모른다. 사형이 그들이 오음산을 빠져나간 후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이 소문은 허도기가 낸 것이다.

야천을 통해서 퍼져 나온 소문이다.

몽설에 관한 소문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을 통해 전달되어 온 것이고 허도기에 관한 소문은 야천에서 시작되었다.

아걸은 세간에서 흘러 다니는 소문을 귓가로 흘려들으며 선착장으로 갔다.

“저거 팝니까?”

아걸이 조그만 범선을 가리켰다.

“값만 넉넉하다면야 못 팔 이유도 없지. 얼마나 주시려고?”

“글쎄요. 제가 물정이 어두워서. 저 정도면 얼마나 합니까?”

범선 주인이 아걸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아걸의 행색은 매우 남루했다. 세간에서 값싼 무복을 사 입은 데다가 허리에 찬 칼도 온통 이빨이 빠져 있다. 도저히 칼이라고는 할 수 없고, 쇠뭉치를 꽂고 다니는 듯 보였다.

범선은커녕 노 젓는 소선 한 척 사지 못할 정도로 궁핍해 보였다.

“가시게. 실없는 농담할 시간 없네.”

아걸은 금편 한 덩이를 꺼냈다.

“가진 게 이거밖에 없는데 가격이 맞으면 사고 안 맞으면 못 사는 거고.”

“파, 팔지! 팔겠네. 팔아!”

범선 주인이 혹여나 아걸이 마음을 바꿀까 봐 급히 말했다.

범선은 조그맣지만 한 사람이 쓰기에는 매우 넉넉하다. 배 안에서 먹고 자는 것이 가능했다. 돛이 달려 있어서 평상시에는 바람을 타지만 배가 작아서 급할 때는 노도 이용할 수 있다.

쉬이이잇!

범선이 바람을 타고 유유히 흘러갔다.

“좋군.”

아걸은 뱃전에 누워서 푸른 하늘을 쳐다봤다.

지금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저 푸른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만 쳐다본다.

허도기에게 입은 상처를 치료하면서 퍼뜩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마치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거센 충격이 몰려와서 털썩 무너질 뻔했다.

-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갑자기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올바르게 살고 있는지…… 방향감각을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모든 게 잘못되었어!’

정말, 진실로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내가 허도기의 역심을 징계하고 있나? 역심을 막는 게 복수인가? 전보영과 장군부는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지? 왜 이들 사이에서 움직이는 거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밀려들었다.

은거 무인들이 대거 죽어간 남만족 싸움도 마찬가지다. 그걸 왜 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적랑대는 할배가 문파다. 한 다리 건너에 있는 문파이며,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다. 그저 약간의 안면이 있는 정도로만 지내면 된다.

왜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을까?

왜 야천에 가서 팔방을 수중에 넣었을까?

갑자기 지금까지 해 온 모든 일이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두 가지를 해야 한다.

하나는 일홀도를 완성해야 한다.

두 번째는 사부님과 아버님의 복수를 한다.

이외에 더할 게 있나? 더 할 게 있어도 이 두 가지를 먼저 풀어낸 다음에 해야 한다.

일홀도를 완성하는 것은 가장 강한 칼을 만들면 된다.

그런데 이것이 너무 힘들다. 아직도 자신만의 일홀도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서리가헌처럼 일탄십검을 만들어지지 못했다. 서리형개처럼, 삼십육 문주처럼 자신만의 이름이 걸린 도법을 만들지 못했다. 이거다 싶은 게 몇 개 있었는데, 곧 사라졌다. 엄밀히 말하면 다른 무공들 속에 녹아버렸다.

도무지 어떠한 칼이라고 할 것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누군가가 당신의 칼이 무엇이냐? 하고 묻는다면, 아걸은 대답할 말이 없다.

내 무공은 도신일체입니다. 이 대답은 말이 안 된다. 내 무공은 몰안에서 시작합니다. 이것도 말이 안 된다. 세상에 어떤 무공이 정신 집중에서 시작하지 않나. 어떤 무공이 병기에 집중하지 않은 채 시작하나.

그런데 아걸은 그렇게밖에 말할 수가 없다.

굳이 말하면…… 아걸은 늘 도신일체를 염두에 두고 있지만, 칼을 병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칼은 병기가 아니다. 반철도는 팔의 연장일 뿐이다.

진짜 병기는 내 몸이다.

아걸에게 당신의 일홀도가 뭐냐고 묻는다면…… 아! 좋은 말이 생각났다! 내 일홀도는 몸이다.

몸이 칼이다.

조금 멋있는 말로 바꾸면 뭐라고 할까? 신도(身刀)? 좀 바보 같은 말인가?

어쨌든 내세울 게 없다.

그렇다고 자신의 무공이 모자란다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일홀도를 완성해야 하는데 일홀도는 완성할 수 없고 굳이 완성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이것이 혼란스러운 것 중 하나다.

사부와 가문의 복수를 하는 것은 흉수를 찾아서 제거하면 된다.

복수 대상자에는 허도기가 있고, 소축십검이 있다. 사형들이 방자로 등장한다.

이들 열세 명을 죽이면 복수는 끝난다.

너무 간단한가? 이들 열세 명을 죽일 수 있는 무공만 있다면 하루 만에도 끝낼 수 있다.

이 복수 속에 성검문을 되찾는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 성검문이 내 것인가? 왜 성검문을 되찾으려고 하나? 왜 성검문을 차지한 사람들이 밉나.

허도기의 역심을 분쇄하는 것도 복수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자신은 왜 오음산에 왔나?

중요한 물음이다. 어쩌면 복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가 바로 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오음산에 와서 취집한 뼈가 아직도 붓짐 속에 있다.

저 뼈로 도대체 뭘 하려고 하는 것인가. 이십 년 전에 허도기가 마인을 끌어들여서 성검문을 뒤집었다. 그래서 그 일에 가담한 자들을 죽이려고 한다.

그런 일에 굳이 반역 사건까지 밝힐 이유가 있나?

허도기의 인면수심을 벗기려고 하나? 이것도 복수 속에 포함되는 것인가? 인면수심을 밝히고 죽이는 것과 그냥 죽이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죽이면 끝나는 문제다.

세상 사람들이 이십 년 전 사건을 올바르게 알고, ‘허도기 저놈 죽일 놈이다!’ 하고 손가락질해 봐야 돌아가신 어머니, 형, 사부가 살아오지 않는다.

죽이는 것보다 더한 복수가 어디 있나.

허도기가 무엇을 하든 상관할 것이 없다.

복수를 생각한 것과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은 분명히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엉뚱한 길을 걷고 있다. 뭐가 잘못되었지? 아니면 제대로 잘 가고 있는 건가?’

아걸은 혼란스러웠다.

갑자기 이런 생각들이 들었다.

몽설은 혈무대 비무를 통해서 성검문 임시 문주인 오진북을 죽였다. 몽설이 그 일을 하게 된 이유는 오직 하나, 팔 장로와 취화원 식구들의 복수다.

몽설은 제 갈 길을 또박또박 가고 있다.

그녀는 아직 복수에 대해서는 손도 대지 않고 있다. 서리형개나 서리가헌이 옆에 있었는데, 그들을 보면서도 복수에 대한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녀에게 당장 급한 것은 사는 것이다.

취화원이 가야 할 길을 정립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다음에 복수를 해결한다.

만약 몽설이 흐트러진 점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 때문이다.

자신이 취화원을 엉뚱한 일에 끌어들였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허도기가 황실에 눈독을 들이든, 변방에 장군을 포섭해 놨든, 군대를 포섭해 놨든…… 그건 대장군이 알아서 해야 할 일이고, 자신은 상관할 일이 아니었다.

만약에 자신이 오직 목표만 보고 달려갔다면 사형들은 자신의 칼에 죽었다. 아니면 자신이 사형의 칼에 죽었다.

동박을 죽일 때만 해도 자신은 목표를 향해 달려갔다.

‘아무래도 거기서부터 잘못된 것 같아.’

동박을 죽인 후, 풍도곡이 너무 강한 것을 알았다. 둘째 사형이 양성한 정동 무인도 상당히 강했다. 그러자 바로 옆길로 빠지기 시작했다.

세력을 형성하기 시작했고, 날 이해해주는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고, 많은 정보를 알고 싶어 했고…… 그런 조그마한 일들이 자신을 복수에서 벗어나게 했다.

어쩌면 일홀도를 키우는 것과 복수가 혼합되었는지도 모른다.

복수할 대상자가 워낙 강하다 보니까 자신도 모르게 좌충우돌하게 되고, 그래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닌지.

정말 그럴까?

무림에 출도할 당시, 지금과 같은 칼을 가졌다면 당장 풍도곡을 찾아갔을 것 같다.

혈무대는? 당장 혈첩을 전했다.

확실히 강하면 뭐든지 거침없이 할 수 있다. 강하지 못했기 때문에 빙빙 돌았다.

그러면 지금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일홀사도를 추구한다면 지금 당장 또다시 허도기를 찾아가는 게 마땅하다. 가서 다시 한번 부딪치는 것이다. 복수와 일홀도를 가지는 일, 둘을 한꺼번에 하는 길이다.

다른 일을 손댄다면 또다시 돌아가는 길을 택한 셈이다.

무엇이 맞나? 아니, 지금 떠올린 이 생각은 맞나?

아걸은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잠시 쉬려고 안다. 혼란부터 정리하는 게 순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일체 모든 것을 신경 쓰지 않는다.

일홀도의 방향을 잡아야 한다.

복수를 어떻게 해야 할지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고 싶다.

스으으읏!

배가 강을 따라 흘러갔다.

아걸은 뱃전에 누워서 흘러가는 구름을 쳐다봤다.

지금 세상 속에서는 허도기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조위 장군의 목숨도 위태롭다. 몽설도 상당히 위험한 영역에 발을 들여놨다. 일단 허도기의 눈에 띄었다.

모든 게 급하다.

하지만 서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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