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395화 (395/600)

第七十九 제기정신(提起精神) (5)

따각! 따각! 따각! 따각!

마차가 느리게 이동했다.

계속 깊은 산속으로만 들어가는 것이 곧 마차에서 내려 걸어가야 할 것 같았다.

마차는 경치 좋은 시골길로 접어들었다. 길은 매우 좋았다. 시골길이라고 하지만 매우 반듯하게 닦여 있었다. 길은 마차 두 대가 지나갈 만큼 넉넉했다.

‘아!’

몽설은 속으로 감탄했다.

갑자기 주변 풍경이 환하게 밝아졌다.

마차가 달리는 옆으로 짙은 호수가 보였다. 넓고 푸른 호수가 시원하게 펼쳐졌다.

다른 쪽은 야트막한 산이었다. 하지만 사실은 결코 낮지 않았다. 매우 높은 고봉인데, 마차가 고지대를 달리고 있어서 주변 산들이 낮아 보였다.

마차를 타고 가면서 보면 얕은 동산을 보는 느낌인데, 봉우리 형태는 날카롭고 매서웠다.

굉장히 인상적인 풍경이다.

‘응?’

몽설은 풍경보다는 산의 형태에 주목했다.

마차가 달리는 길옆으로 나무들이 벌목되어 있다. 적어도 사십 장 정도는 환히 볼 수 있도록 나무가 베어졌고, 바위도 치워졌다. 풀도 낮게 베어 놓았다.

‘숨어 있을 곳이 없네?’

누군가가 암습을 가하기 위해서는 몸을 숨겨야 하는데, 땅을 파고 들어가지 않는 이상은 숨을 곳이 없다. 그런데 땅을 파는 것도 문제다. 사방에 풀이 자라 있어서 땅을 파기 쉽지 않다. 떼를 뜨듯이 살짝 풀잎을 떠야 하는데, 이곳에 심어진 풀들은 뿌리마저 길게 자라는 품종이다.

“여기가 관도예요?”

“사람이 다니는 길 같은가?”

“아뇨.”

“…….”

조위 장군은 빙긋 웃었다.

관도인지 아닌지도 말을 해 주지 않는다.

“나무는 일부러 베어 낸 거죠?”

“사방이 탁 트여 있으니 시원하고 좋은데?”

“기습에 대비한 건가요?”

“글쎄? 기습이 방비한다고 막아지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후후!”

장군이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이곳은 사방이 탁 트여 있어서 기습하기가 매우 곤란하다.

따각! 따각! 따각!

마차가 구불구불한 길로 들어섰다.

길이 마구 휘어지다 보니 굽이를 돌 때마다 아름다운 풍경이 확 와닿는다. 상당히 운치가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앞쪽이 언제나 환히 트여 있다. 뒤도 마찬가지다. 앞뒤 좌우가 언제나 탁 트여 있다. 사방을 한눈에 살필 수 있게 되어 있다.

“워! 워!”

마부가 마차를 길가에 세웠다.

“자! 이제 내리자.”

대장군이 먼저 마차에서 내렸다.

몽설도 따라서 내렸다.

마차는 길가 한가운데 섰다. 길 위로 야트막한 초원이 보이고, 초원에 커다란 주택 한 채가 있다.

시골 산 구석에 세워진 저택치고는 상당히 크다.

장군은 길도 없는 초원을 걸어갔다. 몽설도 뒤따라갔다.

발밑에 풀이 밟힌다. 상당히 거친 풀이지만 신발 위까지 올라오지는 않는다. 풀이 아주 얕게 배어 있다.

‘저곳이 별궁?’

황상의 별궁이라고 하기에는 주위가 너무 삭막하다. 고관대작의 별장도 저것보다는 훨씬 좋을 것 같다. 이곳은 마치 선승들의 수도처 같은 분위기다.

‘황상이 아닌가?’

조 장군이 호위를 부탁한 사람이 황상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어쨌든 이곳도 세상을 떠나서 머리를 식히기에는 딱 좋아 보인다.

그녀를 쫓아왔던 취화원 살수들은 산 밑에 남겨졌다. 이곳 전통이 허락받지 않은 사람은 한 걸음도 들어갈 수 없고, 오직 몽설에게만 허락이 떨어졌다니 어쩔 수 없었다.

취화원 살수만 남겨진 게 아니다. 조 장군을 따라왔단 시위 무인들도 모두 남겨졌다.

그들은 이런 일에 익숙한 듯, 조 장군이 말을 하기 전에 먼저 떨어져 나갔다.

산 밑에서부터 이곳까지 거의 한 시진이 넘는 거리를 단 세 사람만 움직였다.

‘으음!’

초원을 걷던 몸설이 예리한 눈으로 주위를 쓸어봤다.

마차를 타고 오면서 계속 느낀 것인데…… 살기가 물밀듯이 달려든다. 단순히 풀 위를 걷고 있을 뿐인데도 사방에서 살기가 화살처럼 던져진다.

“이 사람들은 누구죠?”

“허! 물어도 대답해 주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 자꾸 묻는구나.”

“혹시 알아요?”

“뭘 말이냐?”

“이렇게 자꾸 물으면 실수로라도 대답해 주실지.”

“하하하!”

조 장군이 유쾌한 듯 웃었다.

길도 없는 풀밭을 걸어 저택에 도착했다.

저택 주의도 온통 풀밭투성이다. 길 같은 것은 없다. 사람이 오가면 길이 나게 마련인데, 전혀 보이지 않는다. 풀밭에서 곧바로 대문으로 이어진다.

완전히 초원 위에 세워진 집이다.

풀밭을 걸어오면서 활짝 열린 대문을 통해 안쪽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장군과 몽설이 대문가에 이르자, 안쪽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오시면 폭포로 모시라고 하셨습니다.”

안에서 나온 사람이 장군을 향해 허리를 깊숙이 숙여 보이며 말했다.

“알았네.”

장군은 이곳 지리에 익숙한지, 안내도 받지 않고 저택을 돌아서 위로 올라갔다.

“여기 폭포가 있나요?”

몽설이 주위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아무리 주위를 돌아봐도 폭포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있지. 보면 알겠지만 아주 멋있어.”

“사방이 절봉인데 용케 폭포가 있나 보네요.”

“가만히 보면 마치 하늘에서 물이 뚝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 아주 장관이야.”

“절벽 위로 물길이 있겠죠.”

“있겠지. 하지만 가 보지는 않았지. 나는 올라갈 자격이 없어서 못 올라갔고, 그분은 궁금한 것은 궁금한 대로 남겨두는 것도 좋다고 하셨네.”

“아! 네.”

몽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절벽 위로 올라가서 폭포의 근원을 찾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폭포수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신비로움 하나쯤은 마음에 남겨도 좋다는 말일 것이다.

사박! 사박! 사박! 사박!

장군과 몽설은 풀밭을 걸었다.

뒤따라오는 사람도 안내하는 사람도 없었다.

“아!”

몽설은 탄성을 토해 냈다.

산 위에 있는 폭포라고 해서 뭐가 얼마나 대수로울까 하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었다.

우렁찬 폭포가 눈앞에 나타났다.

장군이 말한 대로 정말 하늘에서 거대한 물줄기가 쫙 쏟아지는 느낌이다.

“장관이지?”

“정말 멋있네요.”

“하하하! 언제나 이곳에 올 때마다 기분이 좋아.”

장군이 폭포로 다가갔다.

폭포에는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물가 바위에 앉아서 떨어지는 폭포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사내는 매우 병약해 보였다.

너무 말라서 뼈에 살을 붙여 놓은 듯했다. 얼굴은 누렇게 뜬 데다가 눈동자 주변이 검게 물들어서 마치 빈민가에서 피죽 한 그릇 먹지 못한 사람처럼 보였다.

‘황상이…… 아니다.’

몽설은 조 장군을 쳐다봤다. 하지만 조 장군은 사내가 몹시 어려운지 즉시 대례를 취했다.

“소신!”

“허례(虛禮)는…… 이리 와요.”

조 장군이 인사를 미처 마치기 전에 사내가 가까이 다가오라고 손짓을 했다.

몽설은 조 장군을 따라서 사내 곁으로 갔다. 그리고 사내 몸 상태가 굉장히 안 좋다는 것을 알았다.

가까이서 보니 멀리서 봤을 때보다 훨씬 좋지 않았다. 뭐라고 할까? 기(氣)가 굉장히 약하다. 진맥을 해 봐야 알겠지만, 음양이기(陰陽二氣)가 뒤틀어졌다.

오래 살 것 같지가 않다.

조 장군은 사내 곁에 이르러서도 깊게 허리를 숙인 채 펴지 않았다.

“인사드리게나.”

몽설은 장군의 지시에 따라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취화원주 몽설입니다.”

마흔? 쉰?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사내가 손으로 옆에 있는 바위를 툭툭 쳤다.

옆에 앉으라는 표시다.

그래도 장군은 앉지 않았다. 장군이 앉지 않으니 몽설도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앉으라니까.”

“서 있겠습니다.”

“고집도 참. 이 여자야? 나를 보호해 준다는 여자가?”

“네.”

“예쁘군. 천하절색이야.”

“네. 그렇습니다.”

“이렇게 예쁘면서 어떻게 살수를 할 수 있지? 예쁜 꽃에 가시가 많다더니 정말 그런가?”

“무공이 상당히 강합니다. 소축십검을 검으로 눌렀습니다.”

“그 얘기는 들었어.”

사내는 조 장군에게 거침없이 하대했다. 그리고 장군은 지극히 공손했다.

“네가 비무 때 사용한 게 혈검이냐?”

사내가 힘없는 음성으로 물었다. 처음 보는 몽설에게 물으면서도 거침없이 하대했다.

사내의 음성은 나약했지만, 사람을 압도하는 힘이 실려 있었다.

‘황상! 황상 맞다!’

용모만 보면 전혀 아닌데, 황상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말투를 쓴다.

만인지상(萬人之上)!

사내는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 강함을 지녔다.

“네. 혈검이 맞습니다.”

몽설은 조 장군을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조 장군이 자신을 천거하면서 취화원 원주라는 사실부터 무공내력까지 모두 말한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황상이 이미 사라진 무공을 어떻게 알겠나.

사내가 말했다.

“혈검은 중권하고 하권밖에 없을 텐데?”

“네.”

몽설은 다소 놀랐다. 조 장군이 이런 것까지 말했나?

“중권이 검초고, 하권이 심경이지?”

황상으로 추측되는 사내는 혈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사내가 말하는 투로 보면 조 장군이 말한 것 같지 않았다. 원래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네. 그렇습니다.”

몽설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황제 주위에는 사람이 많다. 황제가 알고자 하면 어떤 것이든 금방 알 수 있다. 취화원 원주가 자신을 보호해 준다니 어떤 여자인지 알아봤나?

사내가 말했다.

“왜 순서가 바뀐 줄 알아?”

“네?”

몽설이 사내의 말뜻을 언뜻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었다.

사내가 눈길을 폭포로 돌리면서 물었다.

“무공비급은 대체로 상권이 심경이다. 중권이 검초이며, 하권은 잡공으로 이루어져 있어. 상중하 삼권으로 된 비급은 거의 이 순서지. 하권에 신법을 따로 수록할 때도 있고.”

맞다! 혈검은 순서가 거꾸로 되어 있다! 중권이 검법이며, 하권이 심경이다.

“순서가 바뀐 이유는 모르고 있습니다.”

몽설이 답했다.

솔직히 사내가 말하기 전까지는 순서가 바뀐 줄도 몰랐다. 으레 그렇게 되어 있으려니 했다.

“후후후!”

사내가 희미하게 웃었다. 웃음소리도 약하고…… 웃는 것조차 힘들어 보인다.

“내 선친이…… 선친이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래서 혈검 순서가 그렇게 된 거야.”

“네?”

몽설이 깜짝 놀라서 고개를 쳐들었다. 하지만 이내 곧바로 다시 고개를 숙였다.

“선친이 혈해검신을 만난 모양이더라고. 혈해검신의 검공을 보니 가히 하늘에 닿은 듯했고. 놀랍기도 하고, 두려운 마음도 일고, 세상에 이런 검도 있구나 싶더란다. 그래서 ‘비급을 보자’ 그랬더니 비급을 내놨는데 상중하 삼권이더라지? 그래서 ‘이 상중하 순서를 바꿔라’ 하고 말했다는 거야.”

“그래서 검신이 바꿨습니까?”

조 장군이 물었다.

“그 자리에서 바꿨지.”

“아!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조 장군이 담담하게 말했다.

몽설은 내심 깜짝 놀라고 있었다. 혈검의 비밀 한 자락을 또 알았는데, 이런 일일 줄이야. 그런데 혈해검신 같은 무공 귀신이 말 한마디에 비급 순서를 바꿔? 이게 정말일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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