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八十章 우연상우(偶然相遇) (3)
공부에게 조 장군은 고름이 잔뜩 베인 곪은 상처다. 칼을 들어서 도려내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 새 살이 돋아야 비로소 공부가 원하는 세상이 된다.
이곳에서 나가면 공부는 바로 급습당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급습은 매우 거세서 과연 장군이 막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물론 장군은 충분히 대비하고 있다.
공부도 조 장군이 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더 강한 수를 준비했다.
서로 수를 읽고 읽는다.
누구의 수가 더 깊으냐. 아니, 누가 더 확실하게 상대방을 알고 부딪쳤느냐에 이 싸움은 결정된다.
공부가 완벽하게 준비한 상태에서 공격한다면 조 장군은 죽는다.
공부를 알고 반격할 준비를 끝내 왔다면 오히려 반대로 공격한 공부가 당한다.
“궁금한 게 있어요.”
“오늘은 다 물어보게. 궁금한 게 뭐든지.”
“황상께는 호황위가 있지 않나요?”
“있지.”
“호황위는 언제쯤 나올까요?”
“이미 나왔네.”
“네? 그럼 제가 필요 없을 텐데, 왜 저를?”
“자네가 호황위야.”
“네에? 말도 안 돼!”
몽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애당초 호황위 같은 게 있을 리 없잖나. 공부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방책이었지. 당대의 충성도 어려운데 어떻게 대를 이어가면서 충성하기를 바라겠나. 그런 단체는 없네.”
“그렇군요. 그런데 공부가 그 말을 믿어요?”
“믿을 수밖에. 십 년 전에도 공부가 움직인 적이 있었지. 그때는 십인회(十人會)라는 걸 만들었어. 무림 인사 중에서 강하다고 정평 난 사람들을 모아서…… 그들이 허도기가 암암리에 준비한 적무군(赤武軍) 이천 명을 암살했네.”
“십인회요?”
“그때 호황위라는 말을 슬쩍 흘렸지.”
‘호왕위는 없어!’
몽설은 오늘 하늘 종일 놀라는 중이었다.
“황제의 비밀 수호 집단. 혈해검신이 신경을 내놓은 것처럼 많은 초절정 고수가 무공을 내놨고, 그것을 바탕으로 초절정 무공을 수련한 암살집단. 그런 말을 슬쩍 흘리면 믿지 않을 수 없지. 적무군 이천 명도 암살당했겠다.”
“십인회는?”
“그 사람들…… 이번에 모두 암살당했어.”
“아!”
“소축십검 초가평에게 당했네. 비무를 요청당했다는데…… 딱 십인회만 꼬집어서 공격한 것을 보면, 그들이 호황위와 연결되었다고 생각한 모양이야.”
“그럼 소림 방장님, 무당파 장로님…….”
조 장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말 고마운 분들인데…… 허도기가 십 년 동안 적무군 사건을 캔 거겠지.”
조 장군이 무너지는 모닥불에 장작을 넣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허도기는 아직도 호황위를 믿고 있다는 거지. 무척 조심해서 움직이잖아. 언제 기습당할지 모르니까. 이런 기회를 살리지 않으면 우리도 힘들어.”
조 장군이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봤다.
“이제는 자네가 호황위가 되어야 해. 어떻게 움직일지는 자네가 알아서 해야 하고. 황상께서 어떤 일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집법기관을 말할 때는 호황위를 염두에 두셨을 거야.”
“황상께서도 호황위를 아시나요?”
“알고 계시지. 황상께서는 세간에 떠돌아다니는 소문을 의외로 많이 아시네.”
“아, 네.”
“그 검. 신경. 빨리 터득해야 할 거야.”
장군의 말에 몽설을 무릎에 올려놓고 있는 보자기를 쳐다봤다.
혈검경은 쉽게 터득할 수 있는 공부가 아니다. 신경을 살펴보기는 하겠지만 언제 터득할지는 요원하다.
장군이 말했다.
“황상께 닥치는 위험은 내게 닥치는 위험보다 더 클 테니까. 항상 곁에 바짝 붙어 있고. 어떤가? 이 정도면 장군부 정도로 청부를 끌어냈으니 내가 이득이지 않나?”
“그러네요. 장군부를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을 때는 세상에서 가장 큰 청부라고 생각했는데, 인제 보니 너무 값싸게 받았네요. 흥정을 다시 해야겠어요.”
“그럴 수는 없지. 살수 문파 아닌가. 이미 결정된 사항은 변경될 수 없어. 허허허!”
장군이 웃었다.
“화탄을 쏘겠습니다.”
몽설이 차분하게 말했다.
몽설은 어제처럼 허리를 숙이지도 않았다. 황상 앞이지만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편안하게 말했다.
“그런 걸 나한테 일일이 말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을 텐데?”
황상이 빙그레 웃었다.
오랜만에 잠을 푹 자서인지 혈색이 한결 나아 보였다.
“화탄을 쏘면 제 수하들이 달려옵니다. 황상 주위에 살수들이 늘어섭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생각을.”
“네가 화탄을 터뜨리면 살수만 몰려오는 게 아니지. 근위대가 몰려올 거야. 도공(盜工).”
“네.”
환관이 허리를 숙이며 답했다.
황상은 환관을 도공이라고 불렀다. ‘도둑놈’이라는 말이다. 환관이 재물을 빼돌려서 민초를 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황제의 이름으로.
“근위대장을 불러. 서로 충돌이 생기면 곤란해.”
“네.”
“화탄은 근위대장하고 인사한 후에 쏴. 이런 조율은 내가 해 줄 수 있어. 아! 간밤에는 푹 잤더니 몸이 아주 개운해. 도공, 내가 기절했었지?”
“족히 여섯 시진은 주무셨습니다.”
“그래? 하하! 꿈도 꾸지 않고 푹 잤다니까. 이렇게 자 본 게 얼마 만인지 몰라. 하하하!”
황상이 웃었다.
근위대장은 서른 중반으로 보이는 사내다.
첫인상이 매우 날카롭다. 두 번째 인상은 제멋대로라는 것이다. 황상과 조 장군이 앞에 있는데도 전혀 개의치 않게 제멋대로 행동한다. 하고 싶은 말도 마음껏 한다.
“이 여자예요? 그 잘났다는 여자가?”
몽설에게 한 첫인사다.
“직분상 네 위에 둘 생각인데.”
황제도 근위대장의 행동을 용인하고 있는 듯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실수하시는 거라니까. 쩝! 하긴 내가 못났으니 뭐라고 할 말도 없고. 이 여자, 언제부터 상관으로 모시면 되는 겁니까? 설마 지금부터는 아니죠?”
“지금부터.”
“어쩐지 오늘 아침부터 몸이 찌뿌드드하더라니, 퉷!”
근위대장은 황상 앞에 서서 거침없이 침을 뱉었다.
‘황상 앞에서 이런 행동을? 죽일 테면 죽여라? 목숨 따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자. 언제든 죽을 준비가 되어 있어. 그러니 겁나는 것이 없고…… 황상이나 장군이 가만히 있는 것을 보면 충심은 인정한 거야.’
몽설이 근위대장을 보며 말했다.
“몽설이에요. 취화원주로 있죠.”
“말 놓으셔. 황상께서 내 윗대가리라고 했으니. 하지만 나도 말은 높이지 못하겠는데? 이건 이해하고. 내게 존대를 받고 싶으면 검으로 찍어누르면 돼. 아! 혈검을 완전히 수련하기 전에는 내 상대가 안 돼. 그러니 섣불리 검을 뽑진 말고.”
근위대장이 씩 웃었다.
근위대장은 몽설은 나쁘게 보지 않는다. 황상이 하는 말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아마도 사전에 서로 조율이 있었던 듯싶다.
“황상께서 당신을…… 아! 당신은 아니지? 이거 뭐라고 불러야 하나? 이름을 부를 수도 없고, 직책도 없고.”
“취화원주라고 불러 주세요.”
몽설이 말했다.
“그럴 수는 없지. 취화원주는 살수 문파 대가리인데, 그래도 나는 종삼품(從三品) 당상관이야. 칼 차고 있지만, 관복은 홍색이라고. 이런 사람이 살수 문파 대가리를 모실 수는 없고…… 군주(君主). 괜찮으면 군주라고 부르지.”
“아무래도 좋아요.”
몽설이 웃었다.
근위대장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 것뿐인데, 이 사내를 대충은 알겠다.
근위대장은 종삼품 무관이다.
전쟁터에 나가면 당장 수만 명을 지휘하는 장군으로 변신할 자다.
하지만 그는 야전 대신 황상 곁을 택했다. 황상을 지키기 위해서 혼인도 하지 않았다.
궁밖에 거처도 마련하지 않았다.
봉록은 받지만 한 푼도 쓰지 않았다. 돈을 쓸 만한 시간이 없었다는 것을 보면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있다. 그에게는 봉록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는 궁에서 먹고 자고 움직인다.
황상이 언제 어디서나 ‘배충(壞種)’ 하고 부르면 즉시 대답 소리가 울려온다.
배충은 놈팡이라는 말이다. 같은 놈팡이를 부르는 말 중에서도 아주 많이 얕잡아 부르는 속어다, 황상은 하는 일 없이 늘 밥만 축낸다고 타박하고, 근위대장은 신경질 나면 관직 확 때려치우고 낙향한다는 소리를 밥 먹듯이 한다.
근위대장이 말했다.
“황상께서 군주를 내 윗대가리에 둔 게 무슨 뜻인지 아슈?”
“밤만 되면 근위대가 삼 리 밖으로 물러나야 하는 것과 관계가 있겠죠.”
“똑똑하다더니 맞네.”
근위대장이 몽설을 보고 씩 웃었다.
“정확히 내 밑에 있는 놈들은 백팔십 명밖에 안 돼. 대가리 하나에 졸개 마흔넷. 마흔다섯 명이 한 조. 이렇게 네 개. 그놈들 신상 명세서 사돈에 팔촌까지 모두 조사한 게 이거.”
근위대장이 상당히 두툼한 보자기를 내려놨다.
적어도 손가락 두 마디 두께의 책이 적어도 마흔 권 이상 들어 있는 것 같다.
“이거 군주 마음대로 하라고.”
근위대장이 밑도 끝도 없는 말을 했다.
“일단 황상께서 믿고 맡기셨으니 지원은 완벽히 할 거고, 지금, 이 순간부터 황상의 안위도 군주가 책임져야 하고. 황상이 암살당하면 군주 책임이라는 거지. 그 말은 내 칼에 베인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되고. ‘어디 해 봐라.’ 이런 말은 하지 마. 신경을 수련하기 전에는 내 상대가 안 된다고 분명히 말했으니까.”
파파파팟!
근위대장의 눈에서 번갯불이 튀었다.
적어도 이 말은 진심이다. 황상의 안위를 포기하고 물러선다. 한낱 강호의 살수 문파에게 황상의 안위를 맡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여기서 벌어지고 이다.
근위대장이 말했다.
“군주. 이건 부탁인데…… 뭘 해도 좋아. 우리 전원을 깡그리 죽여도 좋아. 하지만 황상께서 밤에 우리를 삼 리 밖으로 물리는 일만은 없게 만들어.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가 옆에 있어야만 잠을 푹 주무실 수 있도록.”
“알았어요. 최선을 다해 볼게요.”
“최선 가지고는 안된다니까. 목숨을 걸라니까. 하하하!”
근위대장이 크게 웃었다.
“자! 그럼 저는 오늘부터 코가 삐뚤어지게 술이나 마시고 있으렵니다. 어차피 배충 소리를 들을 바에는 철저하게 삐뚤어져야지. 괜찮죠? 하하!”
“너무 많이 취하지는 말고.”
“하하하! 흠뻑 취하는 게 좋죠. 눈앞에서 내 새끼들이 죽어 나갈 텐데, 그 꼴을 어떻게 봅니까. 딱 칠 일만 취해 있겠습니다.”
황상이 허락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근위대장은 이미 몽설과 취화원을 조사했다.
직접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는 이렇게 행동하지 못한다.
세상에 어떤 미친 근위대가 한낱 살수에게 황상을 맡기겠나.
근위대장은 황상 곁은 떠난 적이 없는 자다. 근위대가 삼 리 밖으로 물러나도, 그의 촉각은 항상 황상을 향해 있었다. 그가 삼 리 밖으로 물러난 것은 근위대를 통제하기 위해서다.
대장군이 황상에게 몽설을 말하는 순간, 이미 근위대장은 몽설과 구곡주, 그리고 취화원 살수들을 낱낱이 조사했다. 뿌리까지 모두 캐냈다고 봐야 한다.
아마 취화원에 대해서라면 몽설이 모르는 사실까지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건 장담할 수 있다.
그 결과, 근위대장은 몽설을 믿기로 했다.
황상이 몽설을 믿는 것은 다분히 감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근위대장은 현실적으로 믿는다.
믿는 의미가 전혀 다르다.
근위대장도 근위대에 허도기 간자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황상 곁에서 더 떨어질 수 없다.
물론 그도 간자를 찾아내려고 애를 썼겠지만,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다. 내 식구 중에 배신자가 있을 경우에는,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근위대장은 그 일을 몽설에게 맡긴 것이다. 근위대 중에서 배신자를 찾아내라고.
황상이 말했다.
“배충이 그러더군. 취화원은 돈을 좇는 집단이라 믿을 수 없다고. 하지만 몽설은 믿을 수 있다고.”
“그랬어요?”
“후후! 취화원은 살수가 너무 많아. 사람이 많으면 말이 많아지고. 구곡주에게 심복이 있다던데. 각기 두 명씩. 그러면 모두 스물일곱인가?”
“네.”
“배충이 한 말을 그대로 전하지. 스물일곱 중 여기에 들일 수 있는 자는 스물두 명뿐이라고. 취화원에도…… 근위대가 가진 문제가 그대로 있어. 이 문제를 해결한 후에 화탄을 쏴. 난 배충이 틀린 말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네엣?”
몽설은 깜짝 놀랐다.
황상의 말이 사실이라면…… 스물일곱 명 중 다섯 명은 허도기 사람이라는 뜻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어디! 질부의 능력 한번 볼까? 도공. 우린 폭포나 구경하러 갈까?”
“물보라가 세찹니다.”
“어제 잠을 푹 자서 괜찮아. 가지. 아침은 거기서 먹는 게 좋겠어. 기분이 아주 좋아.”
황상이 웃으면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