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399화 (399/600)

第八十章 우연상우(偶然相遇) (4)

“뭐 하나?”

“쉬는 거 같은데?”

“팔자 늘어졌네. 저러고 싶을까?”

“쉴 때는 쉬어야지. 좀 쉰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은거 무인들이 말을 주고받았다.

그들은 흘러가는 배를 지켜보면서 강변으로 쫓아갔다.

아걸은 오음산을 매우 은밀하게 빠져나왔다. 모든 사람이 떠난 후이지만, 설혹 있다고 해도 찾아내지 못할 정도로 사람 눈을 피해서 움직였다.

오음산을 지켜본 사람 중에 아걸을 본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은거 무인들은 찾아냈다.

그들이 뭐하던 사람들인가. 은거했던 사람들이다. 세상을 피해서 숨었던 사람들이다.

그러니 숨어서 움직이는 방법이라면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들은 숨는 방법이 각기 다르다. 모두 자신만의 방법이 있다. 그것들을 모두 모으면 아걸이 어떻게 움직일지 단박에 예측된다. 막말로 두더지처럼 움직일 수 있다.

그들은 아걸과 같이 있을 때, 자신들이 움직이는 방법을 아걸에게 말해 주었다.

오음산에서 아걸은 자신들이 가르쳐 준 방법을 사용했다.

그러니 어찌 찾지 못할까. 자신들이 가르쳐 준 것을 고스란히 써먹고 있는데 찾지 못한다면 바보지.

아걸을 찾아냈고, 의리상 서신 한 장을 써서 장군부로 보냈다.

취화원에 소식을 전하는 방법은 모르겠고, 장군부에 알려주면 몽설에게 전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최소한 몽설은 아걸 소식을 알고 있어야 하지 않나.

오음산을 지켜보는 자들 중에도 취화원 간자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누군지 모른다. 그래서 알고 있는 자, 장군부에서 파견한 자에게 알려주었다.

취화원에서 보낸 간자가 누군지 알았다면 그에게도 서신 한 장 넘겼을 것이다.

아걸은 배를 빌려서 유유히 유람을 즐긴다.

정말 팔자 좋은 모습이다.

“정박하면 가서 말이나 걸까?”

“뭐하러. 무사한 것만 봐도 됐지. 지금은 좀 쉬고 싶을 텐데 내버려 두자고. 이럴 때 푹 쉬어야지 언제 쉬어.”

“내 생각도 그래. 그런데 허도기하고는 어떻게 된 거야? 누가 이긴 거지? 궁금해 미치겠네.”

“내 생각에는 양패구상.”

“무슨 근거로?”

“허도기가 피투성이가 되어서 나왔잖아. 많이 다쳤지. 허도기가 언제 그렇게 다친 적 있어? 아걸이 만든 상처가 분명한 거고…… 아걸도 오음산에서 늦게 나왔잖아. 상처를 치료한 거지. 서로가 부상 당해서 더 싸울 힘이 없었다. 이게 결론.”

“그럴듯한데?”

“내 생각이 맞다니까. 아걸도 이번에 허도기하고 싸우면서 얻은 게 있는 모양이지? 그러니 저렇게 혼자 뚝 떨어져서 고민하는 거 아냐. 그러니 내버려 둬야 해.”

은거 무인들은 조용히 범선을 뒤쫓았다.

아걸이 혼자 배를 타고 움직이고 있지만, 전혀 염려되지 않았다. 아걸이 다시 배에서 내릴 때는 지금보다 더 강한 무인이 되어서 자신들 앞에 설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저러나 허도기와 평수라니!

이걸 믿어야 하나? 하지만 믿지 않을 수도 없다. 평수가 아니었다면 아걸은 살아남지 못했다. 허도기가 어떤 인간인데 아걸을 살려주겠나.

“아휴! 저 앞에 암벽이지?”

“그러네. 또 돌아가야 하는 거야?”

“아이! 이놈의 강은 왜 이렇게 암벽이 많아!”

“그러게 말이야.”

은거 무인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아걸은 배를 타고 유유히 흘러가면 되지만 강변을 따라서 쫓아가는 사람은 문득문득 나타나는 바위 암벽을 빙 돌아가야 한다. 길이 끊기기 때문이다.

강을 따라서 쫓아간다는 것은 무척 힘들고 피곤하다.

하지만 은거 무인들은 중원 최강자와 동행한다는 즐거움에 피곤한 줄도 몰랐다.

* * *

어디나 마찬가지이지만 시골에는 정말 사람이 없다.

마을이 있고, 논밭이 펼쳐져 있고, 집집이 나물이나 과일을 말리고 있어서 사람 사는 흔적은 뚜렷하다. 사람은 분명히 살고 있는데, 마을을 한 바퀴 돌아봐도 사람은 거의 만나지 못한다. 겨우 한두 명 만나면 다행이다.

시골은 어디나 똑같다.

각기 밭에 가서 일하고 있을 테지만, 밭이 뚝뚝 떨어져 있어서 눈에 띄지 않는다.

아걸은 아무도 없는 시골길을 걷다가 남의 집 담벼락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았다.

딱히 무엇을 하려는 의도는 없어 보였다.

“뭐 하는 거지?”

“햇볕 쬐는 거잖아.”

“그러니까 지금 저게 뭐 하는 짓이냐고? 누굴 찾아다니나?”

“찾을 사람이 어디 있어?”

“또 알아? 우리 같은 사람을 찾고 있는지.”

은거 무인들이 티격태격 말을 나눴다.

아걸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그는 그저 조그만 골목길을 좋아하는 듯 골목만 보이면 걸어갔다. 특별하게 무엇을 찾지도 않았다. 그저 좁은 길을 걷다가 큰길이 나오면 곧장 걸었다.

특별히 골목으로 들어설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지저분한 담장을 보면서 멍하니 서 있기도 했다. 처음에는 밀마를 찾나 했는데, 그것도 아니다. 그저 담장을 타고 흐르는 이끼를 보고 있었다.

아걸은 드넓은 초원을 걷기도 한다. 논둑길만 골라서 하염없이 걷기도 했다. 어떨 때는 논 한 가운데에 있는 둠벙 앞에 앉아서 반나절을 보낸 적도 있다. 둠벙에서 뭘 본 것일까. 헤엄치는 송사리라도 관찰한 건가?

어떨 때는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사람 같다.

어떨 때는 할 일이 없어서 한가롭게 풍광을 즐기며 세상을 떠도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길에서 파는 국수 한 그릇으로 배를 채운다. 돈이 떨어지면 시골 일도 도와주고, 용채 몇 푼을 받는다. 국수 두어 그릇 사 먹으면 떨어질 푼돈이다.

아걸은 잠자리도 따지지 않았다.

온종일 걷다가 피곤해지면 처마 밑이나 큰 나무 밑에 털썩 주저앉는다.

그곳이 잠잘 곳이다.

아걸은 동냥하지 않을 뿐, 거지나 다름없다.

그런데 온갖 일을 다 하고, 이상한 곳을 쏘다니면서도 아걸이 딱 하나, 철석같이 지키는 게 있다.

깨끗하다!

어디에서 잠을 청하더라도 아침이 되면 맑은 물을 찾아서 세수하고 머리를 감고 목욕도 한다. 적어도 사흘에 한 번은 옷을 빨아 입는다.

그는 항상 깨끗하다.

아걸이 허리에 차고 있는 반철도는 칼집이 없어서 칼날이 환이 보인다. 그래서 반철도의 볼품없는 모습이 여실히 보인다. 여기저기 이가 잔뜩 빠져 있어서 도저히 칼 구실을 하지 못한다. 뭉툭한 쇠뭉치를 타고 다니는 것과 같다.

그런데도 한시도 허리에서 떼어놓지 않는다.

“칼이나 다듬지.”

“저게 다듬는다고 되나? 녹여서 다시 만들면 몰라도.”

“아걸이 뭐 칼날로 사람을 쳤어? 저놈 무공은 종잡을 수 없잖아. 저거로도 할 건 다 할걸?”

“베어 죽이는 게 아니라 때려죽이는 거라면 굳이 반철도를 고집할 필요가 없잖아? 차라리 쇠몽둥이가 낫지. 벨 생각이니까 반철도를 차고 있을 텐데, 그러려면 좀 갈라는 거지.”

은거 무인들도 아걸을 따라다니면서 많은 말을 나눴다.

아걸이 혼자 다니기를 고집하니 곁으로 다가서지는 않았다. 아마, 아걸도 자신들이 뒤쫓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것이다. 그런데도 가까이 다가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모두가 귀찮은 것일까?

“그거 사람 베는 칼인가?”

지나가는 무인이 아걸을 알아보지 못하고 말을 걸었다.

“왜요?”

“그걸로 어디 무 조각이라도 베겠어? 칼 쓴다는 사람이 칼에 대한 예의가 그게 뭐야? 칼을 소중히 다뤄야지! 이래서 무공을 가르치기 전에 예의부터 가르쳐야 하는데.”

“아! 말씀을 들어보니 그렇네요. 저만 생각했는데, 얘는 기분이 나빴겠어요.”

아걸이 반철도를 툭 쳤다.

“문파가 어딘가?”

“문파는 없습니다. 그저 세상을 떠돌면서 잔수 몇 가닥 배웠을 뿐입니다.”

“세상에 뜻이 있으면 문파를 찾는 게 좋아. 살다 보면 문파 덕을 볼 때가 많아. 무공이라는 것도 체계적으로 익히는 게 좋고. 아휴! 무공은 어렸을 때부터 배워야지 되는데, 자네 나이를 보면 너무 늦었어. 웬만하면 칼은 포기해.”

“그런가요?”

“어른 충고를 들어.”

무인이 아걸에게 멋진 충고를 한 후, 사라져갔다.

아걸은 멀어져 가는 무인의 등에 대고 감사하다는 듯 포권까지 취했다.

“저거 뭐지?”

은거 무인들은 경악했다.

당금 무림에서 아걸에게 칼에 대해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몇몇 특정 고수만 한두 마디…… 그것도 조심해서 말을 해 준다.

방금 아걸에게 조언을 한 무인은 평범한 삼류 무인이다.

아걸은 고사하고 은거 무인들과 부딪쳐도 일 검을 받지 못하는 평범한 무인이다.

그런 무인이 감히 아걸에게 칼에 대해서 조언을 했다.

아걸 같은 무인은 보기만 해도 슬슬 피하게 되는데…… 감히 삼류 무인이 조언까지?

은거 무인들이 보기에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니, 이런 경우가 딱 하나 있기는 하다.

아걸의 몸에서 날카로움이 사라졌다!

이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다. 삼류 무인이 보기에 자신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봤다.

그런 마음이 없다면 이런 조언도 불가능하다. 자칫 조언을 잘못하면 시비가 걸리는데, 그러면 진검을 뽑아 들고 싸워야 할 경우도 생긴다.

절대적으로 이길 자신이 없다면 조언하지 못한다.

“하!”

지당검 고사가 기막힌 듯 신음을 흘렸다.

아걸은 칼을 드러내지 않는다.

무인이 드러내는 예기(銳氣), 투기(鬪氣), 강기(剛氣)도 보이지 않는다. 강직함, 굳셈, 날카로움, 흉맹함…… 칼과 관련된 모든 기운이 없어졌다.

허리에 칼을 꽂고 있지만, 장난감일 뿐이다.

“어이! 그 칼 팔 건가? 값을 후히 쳐 줄 테니까 이리 가져와. 쇠가 좋아 보이네.”

길가에서 대장간을 운영하는 사람이 반철도를 보고 말했다.

아걸은 팔지 않는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이런 일은 이제 놀랍지도 않다. 아걸을 어떻게 봤으면 허리에 꽂은 칼을 팔라고 할까.

“먼 길을 걸어왔나 보네. 피곤해 보여.”

“네.”

“밥 안 먹었으면 같이 한술 뜨지?”

“아휴! 감사합니다.”

아걸은 농부들과 어울렸다.

그들에게서 새참을 얻어먹었다.

처음에는 한두 번 정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 이제는 거의 매일 점심은 그런 식으로 때운다.

농가에서 일하는 일도 잦아졌다.

동전 한 닢, 두 닢에 허드렛일을 해 주고 밥 한 끼 얻어먹는다. 논일을 거들기도 하고 호미로 밭을 매어주기도 했다. 닭장이나 돼지우리를 손보기도 했다.

아걸의 행동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버렸나?’

밤만 되면 떠올리는 말이다.

오늘은 무엇을 버렸나!

몸에 익힌 모든 것, 머릿속에 담긴 모든 것……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리려고 한다.

몰안을 버린다. 도신일체도 버린다.

일홀도를 얻기 위해서 집중했던 모든 것들을 말끔히 지워 버린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을 때까지.

오늘은 무엇을 얼마나 버렸나?

아직도 집착이 남아 있다.

도신일체를 버린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사실, 대다수 무인은 평생의 꿈이 도신일체를 이루는 것이다. 명문 대파 무인 중에도 이런 경지가 꿈인 사람들이 있다.

중원 무림에 가서 도신일체를 버리려고 노력 중이다. 라는 말을 하면 무슨 미친놈이 헛소리하고 있냐는 듯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을 것이다.

도신일체는 이루기도 어렵지만 버리기는 더 어렵다.

평생 쌓아온 습관을 버리는 일이다. 모든 칼을 버리는 일이며, 칼을 배우기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작업이다.

스읏!

걸음을 내디딘다.

이렇게 간단한 걸음 하나에도 감각이 살아서 꿈틀거린다.

걸음 하나를 내딛는데도 전신 감각이 칼처럼 살아서 꿈틀거린다. 바람에 반응하고, 풀벌레 울음에도 반응한다. 토끼가 놀라서 뛰어가기 전에 이미 존재를 눈치챈다.

날카롭게 곤두선 감각을 버린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

하지만 노력한 결과는 조금은 있는 것 같다. 예전에는 사오 장 밖에서 뱀이 기어가도 눈치챘는데, 이제는 바로 옆으로 개구리가 펄쩍 뛰어도 잘 모른다.

바보 같은 일이지만 모든 것을 버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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